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1837~1905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1837~1905) 선교사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구자이자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과 초기 조선인 신앙 공동체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존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소속의 존 매킨타이어 목사는 1871년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동역자였던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와는 처남-매부 사이(존 로스의 여동생 캐더린과 결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중국 만주 지역을 거점으로 사역하면서, 당시 쇄국정책으로 문이 닫혀 있던 '은둔의 나라'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 로스 선교사와 함께 동북아 선교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상주 선교사가 조선 땅에 직접 발을 디디기 전, 만주 영구(營口)와 고려문 일대에서 조선인들을 만나며 초기 한국 교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나 1885년 언더우드·아펜젤러 선
교사의 입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앞서 존 매킨타이어와 존 로스가 만주에서 뿌린 씨앗이 선교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세례를 받고 성경을 배운 서상륜, 서경조 등의 조선인들은 번역된 한글 성경을 몰래 숨겨 조선 본토(황해도 소래 등)로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외국인 선교사가 정식으로 들어오기 전인 1883년에 한국인 스스로의 힘으로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우는 세계 선교 역사상 유례없는 '수용적 선교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의 고향 생활과 소명 (1837~1871)
중국 만주에서의 선교사 생활 (1872~1905)
만주 땅에서의 그의 삶은 거친 개척 선교의 연속이었으며, 역사적인 만남과 슬픔, 그리고 위대한 업적이 교차하는 현장이었습니다.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화려한 주목을 받기보다는 묵묵히 기초를 다지고 사람을 키워내는 선교사였습니다. 그의 철저한 번역 검증과 영혼을 향한 돌봄이 있었기에, 만주 땅에서 피어난 한글 성경과 조선인 제자들이 훗날 한국 교회를 세우는 거대한 밀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주에서 번역된 한글 성경과 그 과정에서 길러진 조선인 제자들이 어떻게 한국 교회의 거대한 밀알이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역사적 연결고리와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생적 신앙 공동체의 형성 (선교사보다 앞선 교회)
일반적으로 선교 역사에서는 외국인 선교사가 먼저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순서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정반대였습니다권서(Colporteur)들의 활약과 성경의 확산만주에서 키워진 제자들은 단순히 개인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목숨을 걸고 성경을 유통하는 '권서(매서인)'가 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이 가져온 민족사적·문화적 변혁매킨타이어와 로스, 그리고 조선인 제자들이 번역한 성경은 '순한글'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점이 한국 교회와 사회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산실 만주에서 매킨타이어 선교사에게 철저한 신학 훈련과 성경 공부를 받았던 인물들은 훗날 초기 한국 교회의 단단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결국 존 매킨타이어와 존 로스 선교사가 만주에서 뿌린 씨앗은 선교사가 들어올 길을 닦았고,
그들이 키워낸 조선인 제자들은 직접 성경을 배달하고 교회를 세움으로써 "한국인은 한국인의 손으로 복음화한다"는 유례없는 자립적이고 역동적인 한국 교회의 전통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