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삼국지 47
(평설 인물삼국지 )
10. 여몽: 괄목상대한 동오의 명장
인물평: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역경을 극복한 동오의 명장
여몽은 동오에서 주유에 버금가는 명장이다. 주유가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물리쳐 형주까지 영토를 넓혔다면 여몽은 관우를 패사시키고 노숙이 유비에게 빌려주었던 형주를 되찾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출신배경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주유가 삼공을 배출한 명문가의 자제였던 반면에 여몽은 가난하고 천한 집안 출신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배경도 없었던 그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한 시대의 명장으로 거듭났다. 가난과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입신 영달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여몽의 유일한 밑천이었다.
여몽은 원래 여남 군 출신이었으나 어려서 난을 피해 장강 남쪽으로 이주했다. 여몽의 가족은 손책의 부하 장수였던 매부 등당에게 빌붙어 살았다. 등당이 산월족을 토벌하러 갔을 때, 여몽이 몰래 군대를 따라가 참전했다. 이때 여몽의 나이가 불과 십오륙 세였다. 등당이 매우 놀라 만류했지만 여몽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등당은 이 사실을 여몽의 어머니에게 알렸다. 여몽의 어머니가 화를 내며 꾸짖자 여몽이 말대꾸했다.
“가난하고 천한 처지로 사는 것은 고통스런 일입니다. 오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을 세워 부귀를 이루어야 합니다. 호랑이 굴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서야 어찌 호랑이 새끼를 잡겠습니까?"
결국 여몽은 등당의 군중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여몽은 하시라도 빨리 공을 세우지 못해 안달이었다. 한번은 등당의 군관 하나가 여몽의 무모함과 공명심을 비웃고 모욕하자 여몽은 단칼에 그를 베어버렸다. 여몽은 제 발로 자수를 했으나 손책은 엉뚱하게 그가 기개가 있다고 높이 평가해 발탁했다. 몇 년 후 등당이 죽자 여몽이 그의 부대를 물려받았다.
손권이 집권한 후 난립된 부대들을 정리하고자 했다. 주로 소규모 부대가 대상이 되었는데 여몽의 부대도 여기 포함되었다. 손권이 직접 각 부대를 평가해 통폐합 여부를 결정하고자 했다. 여몽은 평가에 대비해 빚을 내어 병사들에게 진홍색 군장을 맞추어주고 철저하게 훈련을 시켰다. 검열에 나선 손권은 여몽의 부대가 매우 정예한 것을 보고는 오히려 병력을 증강시켜 주었다. 이때부터 여몽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여몽은 직접 황조의 도독 진취의 목을 베었고, 적벽대전에서는 선봉에 서서 조조의 수군을 초전에 격파했으며, 남군싸움에서도 맹활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몽은 감녕, 능통 등과 같은 여러 돌격장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손권의 권유로 학문에 힘쓴 결과 용맹과 지략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유수구의 싸움에서 유수오를 축조해 조조의 대군을 막아낸 것이 그의 계책이었고, 속전속결로 환성을 함락시킨 것도 그의 공로였다. 여몽은 장사, 영릉, 계양 등 형주의 세 개 군을 탈환하면서 책략을 써서 학보의 항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자만심이 극에 달했던 관우마저도 여몽만은 매우 경계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급기야 노숙의 후임이 된 여몽은 번성에서 기세를 떨치고 있던 관우의 배후를 기습해 동오의 오랜 숙원이었던 형주평정의 대공을 이루었다.
성공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한다. 거칠기만 했던 여몽의 성품도 계속되는 성공과 함께 순화되었나보다. 여몽과 가까운 곳에 군영을 두고 있던 성당, 송정, 서고 등 세 명의 장수들이 죽자 손권은 이들이 통솔하던 부대를 다 여몽에게 주려했다. 당시 동오는 각 장수의 군대가 사병집단화 되어 있어 군대를 물려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 지위를 계승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몽이 이 부대들은 죽은 장수들의 자제들에게 물려줄 것을 주청했다.
“성당 등은 다 나라 일을 위해 수고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의 자제들이 어리고 약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부곡병들을 없애서는 안됩니다.”
여몽이 세 차례나 간곡하게 사양했으므로 손권이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출세에 눈이 어두웠던 여몽으로서는 놀라운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한번은 강하태수 채유가 직무와 관련해 그를 고발한 적도 있었지만, 여몽은 오히려 그가 직무에 충실한 훌륭한 관리라고 칭찬하고 예장태수로 천거하기도 했다. 여몽은 또 거칠고 포악해 다루기가 어려웠던 감녕 같은 장수도 다독거리며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했다. 한번은 감녕이 명령을 위반해 손권이 불같이 화를 내자 여몽이 그를 감싸주었다.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않았고 감녕과 같이 싸움 잘하는 장수는 얻기 어렵습니다. 마땅히 참으셔야 합니다.”
이를 보면 여몽이 인격적으로도 무척 성숙해졌음을 알 수 있다.
여몽은 사람이 얼마나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다. 여몽은 어려서 거칠고 사납기만 했지 배운 것도 없고 인간성도 좋지 않았다. 오로지 출세해 비천한 신분에서 탈피하고 영화로운 삶을 꿈꾸던 비속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몽은 학문을 닦고 수양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지력과 인격을 갖추게 되었다. 여몽은 천애고아의 신세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주유, 노숙과 같은 반열의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일화: 괄목상대(刮目相對)
여몽이 심양현령이 되었을 때, 손권이 그에게 학문에 힘쓸 것을 권고했다. 여몽이 혁혁한 전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배운 것이 없어 까막눈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손권의 생각에 한 현의 수장된 자가 불학무식해서는 곤란했다.
“경은 이제 현의 사무를 처리하게 되었으니 학문을 배워야만 하오.”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여몽은 군무에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사양했다. 손권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어찌 경에게 경서를 공부해 박사가 되라 하겠소! 단지 한두 번 두루 살펴나 보라는 말이오. 현의 사무를 처리하면서 책에서 읽은 옛일을 참고할 수 있을 정도면 되오. 경이 일이 많다 하는데 나와 비교하면 더 많다고 할 수 있소! 나는 항상 독서를 하는데 얻는 바가 매우 많소.”
여몽은 하는 수 없이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여몽은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선생을 초빙해 전적을 읽고 병법을 공부하자 시야가 넓어지고 견식이 풍부해졌다.
일찍이 노숙은 여몽을 단순무식한 무사로만 보아 그와 교제를 맺지 않았다. 노숙이 주유의 뒤를 잇게 되자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권고했다.
“여장군의 공명이 날로 두드러지고 있으니 옛날과 같이 대해서는 곤란합니다. 그에게 관심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노숙이 마지못해 여몽의 군영을 방문하자 여몽이 연회를 베풀어 노숙을 환대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여몽이 노숙에게 물었다.
“그대는 중책을 맡아 관우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장차 어떤 계책으로 대비하여 나라의 근심을 없애고자 합니까?”
노숙이 답변을 하지 못하자 여몽이 상황변화에 따른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노숙이 여몽의 깊은 식견에 깜짝 놀라 감탄했다.
“경의 재주와 책략은 지난 날 오군에 있던 시절의 여몽이 아니구려! 나는 경의 재주와 계략이 이 수준에까지 이르렀는지는 미처 몰랐소.”
여몽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비란 헤어지고 나서 삼일 만이면 개선된 점이 괄목상대(刮目相待)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대형께서는 어찌 이리 늦게 알아보셨습니까!”
노숙이 이때부터 여몽과 대등한 관계로 교우를 맺었는데, 여기서 괄목상대라는 고사가 나왔다고 한다.
거짓말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여몽은 관우의 원혼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다.
여몽이 관우가 죽은 직후 사망한 것은 사실이다. 여몽은 형주를 되찾은 공로로 손권으로부터 큰 포상을 받았으니 이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불과 사십대 초반의 나이에 병사했다.
여몽은 매우 건장하고 용맹한 장수였으나 형주 탈환이전부터 고질병에 시달려 왔었다. 당시만 해도 장강 주변은 미개발지여서 풍토병이 심했으므로 그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대체로 요절하는 경향이 있었다. 주유와 진등은 나이 사십을 넘기지도 못했다. 여몽은 주혈흡충과 같은 기생충에 감염되어 죽었을 것이다.
* 괄목상대(刮目相待): 눈을 비비고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