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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하늘을 닮은 우즈베키스탄
정 선 영(위례청소년지킴이 대표)
22일 (화)
- <타슈켄트> 도착. 1박
23일(수)
- 오전 9시 <우르겐치>로 이동 -비행기
짙은 안개로 오후 7시30 비행기로 연착, 일정을 변경하여 타슈겐트 시내관광
- <히바>로 이동
-숙소 체크인 후 관광
//호레즘 왕국의 옛 도읍지 - 히바//
-이찬칼라 관광 :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 유산
아타 디르바자 문/ 무함마드 아민 칸 메드레세/ 칼타 미노르 미나레트/ 쿠나 아르크/ 세이트 알라우딘 묘/쉬르가지 칸 메드레세/ 이슬람 훗자 메드레세/ 미나레트/ 주마모스크와 미나레트/타쉬 하울리 궁전/ 누룰라바이 궁전/
- 석식 후 히바의 낙조 감상
24일(목)
-아침식사/휴식
-<우르겐치> 이동. 점심.
-<부하라> 이동 -기차 10시간 소요
아무다리야강 감상: 아랄해로 흘러드는 중앙아시아의 젖줄
키질쿰 사막 관광: '붉은 모래'라는 뜻을 가진 태양의 땅
-<부하라> 밤 도착. 호텔 체크인.
25일(금)
//종교적 신비로 빛나는 문명의 발상지 - 부하라//
라비 하우즈/ 노디르 디반베기 앙상블/ 유태인 집성촌/ 훗자나스렛딘 동상/ 굼바스 관광
마고키 앗타리 모스크/ 욥의 우물/ 이스마엘의 무덤/ 아르크 성/ 울르그벡 메드레세/ 칼란 미나레트/바라하우스 모스크/ 이슬람의 금요기도 모임 감상/칼란 모스크/ 미르 아랍 메드레세/ 쉬토라이 모히하사 궁전
26일(토)
-6시 30분 체크아웃.
-7시 기차- <사마르칸트> 이동 - 4시간 소요
-숙소 체크인/ 점심
//실크로드 최고의 문화,예술,역사의 도시- 사마르칸트//
울르그벡 천문대/ 레기스탄 광장/ 울르그벡 메드레세/ 쉬르도르 메드레세/ 틸라카이 메드레세/국립문화 역사 박물관/ 비비하임 모스크/ 그르에미르(아무르티무르의 묘)
27(일)
-아침/휴식/관광
-<타슈켄트>이동 -기차 4~5시간 소요
-체크인/관광
28(월)
//중앙아시아의 중심, 구소련 제 4의 도시 - 타슈켄트//
-고려인집성촌 방문/김병화 농장 방문
-나보이극장 공연 감상- 오페라 또는 발레공연
-저녁/타슈켄트 시내관광
29(화)
-혁명광장/아무르티무르 동상/ 아무르티무르 박물관/ 로마노프궁전 방문/ 바라크 한 메드레세
타슈켄트 바자르(철수 바자르)/국립 예술 박물관/사일고흐거리
-저녁식사
-휴식-밤 10시 30분 서울행.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떠난 도시--히바
달빛에 비치는 지붕들의 선이 몽상적 분위기를 한층 자아낸다. 대상들이 묵었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 말라카 히바호텔은 로비가 인상적이었다. 천정이 높고 원목과 작은 카펫으로 꾸며 훨씬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 호텔에서 걸어서 가는 위치에 있는 이 성안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2천년 전의 시간 속을 헤매고 다녔다. 날씨는 40년 만에 온 한파로 우리들은 얼굴까지 꽁꽁 싸매고 다녔지만 숨쉴 때 마다 입김이 그대로 눈썹에 올라가 얼어 붙어 하얀 눈썹과 하얗게 마스카라한 속눈썹을 달고 다녔다. 옛 히바는 기원전 4세기 아랄해 남쪽, 중앙아시아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코레즘 왕국의 영토였다. ‘태양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 코레즘 왕국은 징기스칸과 티무르에 의해 계속 정복되면서 왕국은 물론 도시 자체가 안타깝게도 파괴되었다.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은 후에 재건된 것으로 ‘디샨칼라’라는 외벽과 ‘이찬칼라’라는 내성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칸의 거처이자 집무소였던 타쉬하울리 궁전은 화려하게 조각된 높은 기둥에서 당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메카를 향하는 문인 미쿠라브와 지도자 이맘이 앉았던 민부라는 가는 곳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빛이 주는 맑고 신비한
타일은 하늘을 닮아 있었고 높이 솟은 미나렛은 하늘로 향해 끝없이 솟아 있어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에 경외심을 느끼게 해준다. 이 추운 날씨에 관광객이 왔다고 작은 좌판을 펼치고 호객행위를 하는 그들에게서 작은연민을 느껴본다.
*민속예술공연
맛있는 만둣국과 김치로 호사를 누리며 저녁식사를 한 후 우즈벡전통민속공연을 보았다.
한가족으로 보이는 팀이었는데 전통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5살 정도로 보이는 아들의 춤이
압권이었다. 가락에 맞추어 다채롭게 펼치는 춤사위와 표정연기로 우리들을 한방에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앙징맞게 리듬을 타며 춤을 출 때마다 모두들 귀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히바의 잊지 못할 공연관람이었다.
✰ 과학과 예술의 중심지---부하라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원’이라는 뜻을 가진 부하라는 실크로드의 여정상 주요 오아시스 중의 하나이다. 구운 벽돌에 상감을 입혀서 지은 것으로, 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아주 아름다은 능묘이다. 이슬람 통치 초기인 900년에 건립된 것으로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벽돌 건물로서 벽돌의 쌓는 방법에 따라 외관의 변화를 주어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 내고 태양의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화하도록 건축되었다. 지붕 돔의 형태도 비잔틴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다른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벽돌로만 벽과 아취를 만들고 그 위에 돔을 만든 것이 정말 뛰어난 건축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들의 휴식처-부하라
히바에서 버스를 타고 부하라로 가는 창밖의 풍경은 온통 눈밭이었다. 키질쿰(붉은모래사막)이라고 불리는 곳이지만 눈으로 덮여 있어서 사막이란 느낌이 덜 하였다. 한참을 졸다가 내다봐도 몇 시간째 같은 풍경이다. 버스에 문제가 생겨 예약된 식당이 아닌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식당주인 아줌마가 아주 미인이었다.
멧돼지로 만든 샤슬릭과 맛있는 리뽀슈카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같은 아줌마끼리
통하는 특유의 수다를 떨었다. 35세인 이 식당주인 아줌마는 밀레의 명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같이 생겼다. 소박한 차림이었지만 맑고 깨끗한 피부가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아줌마는 우리들의 나이를 물어보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깜짝 놀란다. 동양인이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가 보다. 김치를 먹어서 그렇다고 하며 김치를 먹어보라고 했더니 얼굴 전체가 빨개지며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지만 다시 보고 싶은 얼굴이다.
실크로드의 교차로인 이곳 부하라는 대상들이 쉴 수 있는 오아시스마을이었다. 숙소와 목욕탕, 이슬람사원, 입구가 높아 낙타를 타고 그대로 지나갈 수 있는 천정 높은 시장 등이 있었다. 우리가 묵은 ‘라비하우즈’란 호텔은 유태인 집성촌 옆에 위치해 있었는데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에도 나오는 유명한 곳이었다. 하우즈는 ‘연못’이란 뜻인데 지금은 100 여개의 연못 중 2개만 남아 그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연못가에 나스렛딘호자가 당나귀를 타고 있는 동상이 있는데 얼굴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나온다. 터키인으로 이솝과 맞먹는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7세기초에 이슬람화된 이 도시는 징키즈칸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었지만 티무르 지배하에 다시 재건되고 그의 손자 울르그벡에 의해 모스크가 세워지면서 이슬람 문화가 다시 화려하게 꽃피운 도시다. 웅장하다란 뜻의 칼란 미나렛은 부하라의 상징물로 그 아래 칼란 사원은 아직도 무슬림들이 하루에 다섯 번씩 모여 메카를 향해 예배를 보고 있다. 한꺼번에 1만 여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208개의 기둥이 천정을 떠받들고 있고 울림효과가 있는 반구형지붕으로 되어있다. 예배를 알리는 아잔들이 하루에 5번을 오르락내리락 했을 이 곳을 깜깜한 나선형 계단을 통해 올라가 부하라 전경을 한눈에 보았던 것이 인상적이다.
옛날 대상들이 초원과 사막을 지나올 때 이들을 위해 밤새 불을 밝힌 사막의 등대인 46m의 탑, 칼란 미나렛은 죄수들을 떨어뜨려 죽이는 사형집행대로도 유명했다.
✰문화의 예술의 푸른 도시---사마르칸트
타쉬켄트보다도 500여 년이나 앞선 역사를 가진 도시 사마르칸트는 알렉산더 대왕, 사라센 제국, 징기스칸, 그리고 티무르 제국 등 이 땅을 점령했던 모든 영웅들을 맞이했던 도시이다. 티무르가 좋아하는 푸른 색조를 띤 이 도시는 가는 곳마다 신비로운 푸른색의 매력을 한껏 발하고 있었다.
샤히진다(Shahizinda,'살아있는 왕‘)에는 마호메트의 사촌인 쿠산 이븐 압바스가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어느 날 기도 중에 이교도들에 의해 목이 잘렸는데, 자신의 목을 껴안고 우물 바닥에 들어가 다시 생명을 얻어 재탄생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바로 그 무덤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14-15세기 티무르 왕조의 릉 11기도 이곳에 있다.
뿐만 아니라 위쪽으로는 현재 고려인들의 무덤까지 건립된 넓은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한 무덤지에서 현재와 과거의 사람들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며 누워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레키스탄 광장 -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양 건축물로 손꼽히는 레기스탄 광장과 주변에 있는 3개의 메드레세, 중세에 이슬람 신학교와 대상들의 숙소가 있었던 곳이다.
시내 중심부에는 레키스탄 광장의 정면과 좌우에 세 개의 메드레세가 우뚝 솟아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이후 아랍과 몽골의 침략, 티무르제국,
제정러시아에 이르는 2500 여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있다.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아프라시압 박물관 에서 7세기경 조로아스터교 시절에 그곳에 온 두 사람의 새 깃털 모자를 쓴 고구려 사신을 프레스코 벽화에서 만날 수 있었다. 멀리 이 곳 서역까지 외교의 폭을 넓혔던 고구려의 기상에 경외심을 느낀다.
✰중앙아시아의 중심---타슈켄트
도착한 날 하얀 눈꽃을 뒤집어 쓴 나무들과 성에를 온 몸에 달고서 도시 전체가 얼어 버린 듯 맹렬한 추위로 우리를 맞이하던 타슈겐트도 다시 돌아오니 한결 날씨가 풀어져 있었다.
1966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타쉬켄트를 구 소련연방국들이 힘을 합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우즈벡의 위인 알리셔 나보이는 러시아의 푸쉬킨과 같은 우즈벡 민족문화의 아버지로서 우즈벡어로 된 아름다운 시와 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타슈켄트의 명칭은 투르크어로 ‘돌’(타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중국의 고서에는 석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크로드(비단길)의 중심지역으로서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그런데 ‘돌’의 의미는 당시 중국, 몽골 등에서 가져온 보석을 이곳에서 재가공하여 새로운 보석을 만들었기 때문에 돌(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나라라는 의미로 석국이라 불렸다고 한다.
타슈켄트는 징기스칸에 의해 중앙아시가가 정복된 후 티무르 제국, 샤이바니 왕조시대를 거쳐 1809년 코칸트 칸국의 지배 하에서 큰 도시로 성장했으며, 1865년에는 러시아에 점령당해 중앙아시아 지배의 중심도시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당시에 건립된 비행기 제조공장이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 이러한 타슈켄트의 북서부 지역은 아직도 옛 자취가 남아있어 구도시라 불리고 있으며 여러 유적지와 단층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으며, 8세기에는 아랍인들이 정복하여 이슬람교의 중심지로서 동서무역의 중계지가 되었다. 이후 당나라 시기에는 고구려 출신 고선지 장군이 이 지역에 파견되기도 한 곳이다. 1243년 징기스칸에 의해 정복되어 그의 2남인 차가타이에 의해 차가타이 칸국이 세워졌으며, 14세기 후반에는 자칭 우즈벡이라 칭하던 몽골 유목민 집단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러시아 제국에 의해 다시 점령당했으며, 1917년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나자 소비에트 공화국에 편입되었고, 1991년 12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자 비로소 독립을 이루게 된 나라다. 이러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가 타슈켄트이다.
국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그려 넣은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에 깊게 빠진 나라이다.
중앙아시아는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 3개국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 우리가 만난 역사속 인물
비비하눔 - 이름만큼이나 비비하눔과 관련된 ‘운명의 키스’전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티무르의 비 9명가운데 가장 사랑받던 비비하눔은 인도에 원정 간 남편이 돌아오면 줄 선물로 사원을 짓기 시작하였다. 아치 하나만 남겨 놓고 비를 연모하던 이란출신의 젊은 건축가는 공사완성을 조건으로 키스를 요구하였다. 고심 끝에 꾀를 낸 비비하눔은 여자는 다 똑같은 거라며 각기 다르게 색칠한 40개의 달걀을 보인다. 겉모양은 다르지만 계란 속은 다 똑같은 것이라며. 하지만 이에 질세라 그 젊은 건축가는 유리잔 한 곳에는 물을, 다른 유리잔에는 백포도주를 담아서 겉모습은 같아도 맛은 다르다며 키스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비는 할 수 없이 키스를 허락하였는데 그만 얼굴에 키스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원정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사건의 내막을 알아내고는 건축가는 처형을 하고, 비비하눔은 미나렛에서 떨어져 죽게 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만으로는 화려했던 그 당시를 추정하기엔 역부족이지만 푸른 색 돔과 미나렛만이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서있다. 비비하눔! 비비안리처럼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것이다. 권근향 선생님과 00동의 비비하눔이라고 서로를 부르며 이름을 기억하였다.
아무르티무르 - 징키즈칸 이후 최대의 유목제국을 건설한 티무르는 중앙아시아 전역을 비롯한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터키 등 흑해와 지중해 연안까지 이르렀다. 제국 건설 과정에서 이질적인 문명의 수용을 적극 받아들인 티무르는 우수한 건축가와 기술자들을 사마르칸트에 불러 들여 중세 세계의 가장 화려한 도시를 건설하였다. 시리아 등지에서 돔 건축양식을 도입하고, 자신이 즐기는 청색을 주조로 푸른 도시를 꾸몄다. 그리고 대상로를 정비하고 대상들의 숙박소, 보호소를 도처에 설치하여 교역도 적극 장려하였다. 그리하여 지중해에서 사라르칸트와 타슈켄트를 지나 몽골에 이르는 동서대상로가 원활히 소통될 수 있었다. 하지만 티무르는 이란과의 시스틴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평생 절름발이였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바로 ‘절름발이’란 뜻의 ‘티무르’이다. 티무르와 그의 가족들의 무덤인 구르에미르에서 절름발이 뼈가 발견됨으로써 확실히 확인이 되었다.
울르그벡 - 아미르티무르의 손자로서 40년 동안 집권하면서도 높은 명성을 쌓았다. 그는
사마르칸트에 저명한 천문학자들을 모아서 천문대를 세우고 십진법, 기하학, 삼각법을 도입하였는데 이같은 과학 발달에 따른 이슬람교의 위축을 두려워한 승려들이 그의 아들을
사주하여 자객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우리의 세종대왕 같은 존재인데 오덕만 선생님께 한국의 울르그벡이라고 불러드리자 아주 만족해하시는 것 같았다.
알리세르나보이 - 러시아의 푸쉬킨과 같은 우즈벡의 민족문화의 아버지로서 우즈벡어로 된 아름다운 시와 문화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래서 거리, 학교, 도서관 등 많은 시설물에 알리셔나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나보이 예술 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기 전 자유시간을 주었는데 행여 길을 잃을까 가이드가 가르쳐 준 “젯 떼아뜨르 나바이(나바이 극장이 어디예요?)”란 말이 기억난다. .
고려인 할머니들 - 스탈린 정권의 사할린 거주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정책에 24만 명에 이르는 고려인들이 화물차에 실려 전혀 연고도 없는 이역만리로 보내져 모진 세월을 견딘 분들이시다. 소련이 무너지고 난 후 똑같이 강제 이주된 독일인과 유태인들은 본국의 노력으로 대부분 귀국했는데 이들은 귀국은 커녕 조국을 방문할 때도 입국비자가 매우 까다롭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 동안 구 소련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서 노력 영웅훈장을 받은 김병화농장에서 척박한 환경을 개선하여 고려인촌을 형성하여 잡초처럼 질긴 삶을 이어온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김병화박물관에 걸려 있는 ‘이 땅에서 나는 새로운 조국을 찿았다.’라는 글씨가 그대로 말을 하는 것 같다. 최이골 지점장의 부모님댁을 느닷없이 방문하여 열심히 살아온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아랄해의 물 공급원인 아무다리아강줄기를 돌려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세계적인 목화산지로
가꾸는 기적을 내면서 아랄해의 재앙은 시작되었다. 주변 강에서 유입되는 수량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말라 들어가 점점 사막으로 변해간다는데 아랄해를 못보고 온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이 낯선 우즈벡의 박물관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고 조명희 작가를 만나 볼 수 있었는데 아나키즘문학의 대표작 ‘낙동강’이라는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실크로드중에서 이번에 다녀온 곳은 한가운데 부분이다. 언제 실크로드의 앞과 뒤를 연결하여 하나의 선으로 완결할 수 있을까------
✰ 여행의 팁
<언어>
여행하면서 꼭 필요한 우즈벡언어를 몇 개 배워서 틈만 나면 사용하였다. 상대방이 알아듣고 같이 응대해 주면 자신감도 생기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라흐맡(러시아어:스파시바)--고맙습니다.
리쉐블랙따이즈--깍아주세요
도츠이다아냐--헤어질때 인사말
췌부시까--아줌마
무시나--아저씨
뚜왈렛--화장실
아진--1 드바--2 뜨리--3
< 맛있는 음식>
리뽀슈까
우즈벡사람들의 주식으로 길에 지나가면서 제일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이 빵이다.
조그만 손수레에 밍크담요같은 것으로 덮어놓고 파는데 담요를 들치면 크고 둥그런 리뽀슈카가 가득하다. 커다랗게 만드는 이유는 공동체생활의 일환으로 조금씩 같이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한다. 리뽀슈까하면 사마란트것을 으뜸으로 친다. 다양한 빵 중에서도 식탁에 항상 올라오는 주식은 '리뾰쉬카'라는 벌집 모양의 빵이다. 이 빵은 '탄드라'라고 불리는 벌집 모양의 큰 가마에서 굽는다. 리뾰쉬까는 피자치즈 느낌의 쫄깃함과 과자 같은 바삭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리뾰쉬까는 뜨거운 '차이' 한 잔을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보통 원형모양으로 두껍고 가운데는 얇고 편편하며, 표면에 깨나 향신료를 뿌렸다. 뜨끈뜨끈한 리뽀슈까에 치즈 몇 조각이면 행복하다. 밀의 구수함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제일 생각이 많이 난다. 우즈벡인들에게 빵은 신성한 것으로 만들 때도 보관할 때도 항상 정성을 다한다. 우즈벡어로는 ‘논’이라고 한다.
샤실릭
미리 향신료로 양념한 양, 소, 닭, 돼지고기를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구워먹는 음식으로 맛있게 먹었다. 숯불에 구운 후 얇게 썰어 식초에 절인 양파를 곁들여 먹는데 다져서 만든 것과 그냥 썰어 구운 것도 있는데 둘 다 맛이 있다. 저녁식사 때가 되면 거리 곳곳에 샤실릭 굽는 냄새와 연기로 가득하다.
슈르빠
고기를 끊인 후 감자, 양배추, 양파, 당근 등을 넣어 끊인 국이다. 양념을 넣지 않고 향신료로 간을 해서 기름이 많고 좀 느끼한 맛이 난다. 아무리 노력을 해 봐도 좀처럼 친숙해지지 않은 음식이다. 참 슈르빠의 맛을 알게 될 때 진정한 여행의 맛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차이
목이 마를 때도, 손님이 와도,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에도, 한여름에도 뜨거운 차이 한잔. 다과를 할 때는 물론이고 식사를 할 때에도 반드시 차이를 제공한다. 물건을 사러 매장에 들러도 뜨거운 차이 한잔과 맛있는 견과류를 내오는데 이번 여행에서 리뽀슈까에 이어 두 번째로 마음에 든다. 추위를 녹이는데 일조를 하였다.
견과류
견과류를 파는 시장에 가니 이름은 모르지만 종류가 아주 많고 맛도 아주 좋았다. 수북이 쌓인 아몬드, 땅콩, 건포도, 건살구 등은 보기만 하여도 기분이 좋아진다. 유난히 견과류를 좋아하는 나는 가는 곳 마다 욕심껏 먹었다. 이곳 사람들은 길을 가면서도 먹고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항상 즐겨 먹는 간식이다. 나도 견과류를 특히 좋아하여 볼 때 마다 탐이 내어 비축하여 두었다가 틈틈이 먹고 다녔다.
치르치크강과 고려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꼴육시장에서 우즈벡상인이 이기냐, 대한민국 아줌마가 이기냐 가격흥정 속에 무서운 아줌마의 힘으로 맛있는 건포도와 아몬드를 사가지고 왔다.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우리의 얼굴모습을 한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강제 이주되어온 고려인들이 갈대밭과 사막뿐인 황무지를 개간하여 구 소련에서는 가장 대접받는 민족이 된 저력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고려인들이 이 시장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장사를 하며 잡초처럼 질긴 삶들을 이어갔을 것이다.
과일
우리가 겨울에 와 말린 과일을 주로 맛보았지만 그 맛을 보면 생과일이 얼마나 맛있을지가 짐작이 간다 이곳서 먹은 생과일은 오렌지와 석류뿐이었는데 석류가 특히 맛이 있었다. 빨간 핏물 같은 물이 뚝뚝 흐르는 석류 한 개를 먹으니 배가 부르다. 여자한테 좋은 과일이라 배가 불러도 끝까지 먹었다. 과일의 계절인 5월이나 8월에 오면 체리와 멜론의 맛이 환상이라는데 다시 한 번 와서 그 맛을 보고 싶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여러 유적 못지않게 마음을 다하여 우리를 감동시킨 사람들이 많다.
* 세븐데이투어의 석이사님: 차근차근 진행하는 여유 있는 말씨와 작은 것 까지도 불편이 없도록 신경을 써 주시는 예리함을 갖추신 분이시다. 프로그램 개발로 앞으로도 긴 여행을 하셔야 한다는데 건강히 마치시기를 기원해 본다.
* 양이골 현지 지사장님: 고려인 3세로 할머님께 배운 서툰 한국말로 이 곳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알려 주시려 애를 많이 쓰셨다. 자식농사도 잘 지으시고 의사이신 부인과 함께 고려인 마을의 노인들을 잘 모시는 고마운 분이시다.
* 조인나 가이드: 고려인 4세로 몸집은 작고 가늘지만 초롱초롱한 눈빛과 밝은 미소가 아름다운 아가씨이다. 조인나씨의 수줍은 미소와 목소리가 그립다.
* 고려인 마을의 할머님들: 연해주에서 짐을 싣는 화물열차를 타고 하루아침에 강제로 이곳 우즈베키스탄으로 실려와 뿌리를 내리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주름진 얼굴과 손에서 강인한 우리 한국 어머님의 모습을 느껴본다.
* 우즈벡사람들: 6시간, 9시간씩 버스를 타고 도시를 옮겨 다니다 보면 제일 아쉬운 곳이 화장실이다. 가이드가 모르는 집에 들어가서 양해를 구한 뒤 사용하고 나오면 아주머니가 따뜻한 물을 한 바가지 퍼 가지고 서서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 조금씩 부어주신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따뜻한 마음과 미소로 추위가 한층 누그러진다.
* 대우차: 사람은 아니지만 낯선 타국에서 만나는 티코, 다마스,엘란트라 같은 차들은 우리 한국사람을 만난 것 이상으로 반갑고 가슴이 뿌듯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