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김태현 글, 신웅 그림의 길리언 웹툰을 춘자라는 인물과 그 인물의 서울역 광장 생활을 내 시각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관심있는 분들은 만화를 통해 그 속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길리언 2화 호들갑 떨지 마쇼!>
서울역 광장에서 롯데마트로 가는 계단에 한 여자가 등장한다.
두꺼운 옷을 입고 목도리를 한 것으로 보아 계절이 겨울인 모양이다.
등엔 백팩을 걸치고 왼 손에는 큰 봉지를 든 것이나, 머리 정돈을 제대로 못한 모습으로 보아, 서울역 노숙인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옆의 사람이 보기에도 위태롭게 보일 정도로 비틀 거리며 계단을 내려온다.
(에고 취한다...)
낮 술을 과하게 한 것 같다.
(어데로 가부렀으까이...)
말투로 보아 지방 출신에다가 조금은 지적 장애로 느껴진다.
이 여자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취기에 다리가 계단을 헛집어 미끄러져 와당탕탕 계단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쿠당탕탕... 아구메메, 나 죽네... 퍽 .... 어이쿠야...!)
코를 다쳤는지, 얼굴에 피가 번벅이고, 이빨이 2개 부러졌다.
주위사람이 팔을 부축해주자 팔이 부러졌는지 이 여자는 기겁을 하며 아파한다.
(아아악! 아퍼 ... 아퍼...)
평소 알고지니던 노숙인들이 몰려와 걱정을 해준다.
(춘자 누나 ...)
(어이 춘자, 괜잖은 겨?)
아 이 여자 이름이 춘자로구나. 그런데 춘자의 반응이 좀 이상하다.
주위 사람들의 걱정에 대해 춘자는 마치 누군지 모를 어떤 이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중얼거린다.
(갠잖아. 헤헤 안아퍼...나 안 아픈디 헤헤...)
조금있다가 119 구급차가 도착하고 춘자는 들것에 실려 가면서
춘자는 눈물을 글썽 거린다.
(나가말이요, 희영 아부지 ... 미안혀요 희영 아부지 ....)
중얼거리는 춘자를 실고 구급차는 서울역을 떠난다.
희영 아버지 ... 누굴까...? 아주머니
가슴에 맺혀 있는 ... 남편...일까...?
<길리언 3화 언니와 동생>
서울역 광장 시계탑 아래 춘자가 앉아 있다. 시계탑 시계는 두시를 가르킨다.
춘자가 팔에 기부스를 한 걸 보니 전번 계단 추락으로 인해 팔이 부러진 모양이다.
그런데 혼자서 중얼거리는 내용이 이상하다.
(내 애기... 헤헤... 내 애기...)
이때 전번 사고때 엠블런스 불러준 사람을 만난다.
춘자는 도와 주어서 고맙다면서 이야기한다.
(근디 이빨이... 세 개 나갔는디, 두 개는 찾었는디, 한나가 어데로 가붓는지.... 삼켜붓으까? 통 보이덜 안 해요.
헤헤헤, 내 애기...)
그러면서 배 속에 넣어 두었던 풍선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하늘로 날려 보낸다.
계단 추락 사고때 도와 주었던 사람이 묻는다.
(저기 .... 애기가 있어요?>
춘자가 답한다.
(응 ... 있어...근디 ... 헤헤헤... 델꼬 가붓어...)
그러자 질문을 했던 사람은 생각에 잠긴다.
(애기가 보고 싶은건가 애기가... 헤어졌을가... 죽었을까...)
<제4화 꽂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1970년 초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초도.
한쪽에서는 어부들이 부지런이 일하고 그 뒤켠에서는 누구 죽었는 지 장사 준비에 한 참이다.
아낙들이 이야기한다.
(용왕님도 참 매정허시제....)
(긍께 말이여. 저리고 어린 아그가 있는디... 어매 죽고 아볘꺼정...)
아낙들 일하는 옆에서 여섯 여덟살이 되었을까? 춘자라는 꼬맹이 여자 아이가 뛰어 다니며 노래 부른다.
(산토끼 토끼야~~)
아버지 장례후 춘자는 고모로 보이는 여자의 손길에 잡혀 배를 타고 여수 시내로 간다. 고모 집에서 살기 위해.
배를 타는 춘자의 손에는 누런색 술잔에 잡혀있다.
고모가 묻는다.
(고것이 뭣이여?)
춘자가 답한다.
(울 아부지꺼...)
시간이 지나 소녀가 된 춘자는 여수 국동항 근처 고모가 하는 식당일을 돕는다.
이때라디오에서는 노래가 크게 울려 퍼진다.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춘자가 등장한다.
열여섯살 혹은 열 여덟살 모습에 머리를 뒤로 묶고, 앞 치마를 하고 손님에게 밥상을 차려준다.
그 나이 누구나 처럼 이쁘다.
밥상을 차리면서 고모랑 이야기한다.
(춘자야 니 참말로 부산 가야 쓰것냐?)
(신발 공장이 봉급을 많이 준다 안 그요. 나가 거그서 쪼까 벌어와가꼬, 돈을 왕창 벌꺼요.
꽃집 차릴라요.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쾌활하고 명괘하고 꿈도 많다.
춘자는 전포동 신발공장에 취직한다.
화가는 춘자의 눈을 동그랗게 그린다. 아마 바지런히 일하는 춘자의 모습을 그린 모양이다.
작업장 스피커에서는 노래가 퍼져 나온다.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춘자의 행복과 꿈은 한차례 여기서 끊어질 모양이다.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가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과 그들의 매운 손놀림과 가난에서 탈피라는 절박감 속에서는 진행되는 가운데, 산업현장에서는 무슨 무용담 같은 성폭행 성희롱이 난무 했듯이
춘자도 반장이라는 중간 관리자의 성폭행의 희생양이 된다.
폭력으로 성폭행 당하는 춘자는 눈물을 흘리며 남자를 수용하는데 그 동그란 눈이 풀려 눈동자가 흩어진다.
이듬해 전포동에서 춘자에게 봄이 온다.
규병이라는 남자가 프로포즈한다:
(근디 나가 춘자씨 눈에서 눈물 날 일은 없게 할 것이여.)
춘자는 썸을 탄다.
(지는요 나쁜 년이어요. 성깔도 더럽고, 지는 더려운... 여잔디요...)
정한수 떠놓고 결혼한다.
(규병씨... 나 같은 년을 좋아해줘서 고맙구만요...)
둘은 결혼해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하고 춘자 남편은 자동차 세차장하면서 둘은 희영이라는 아이도 가진다.
여기까지가 춘자의 행복인 것 같다.
어느날 규병은 동료로부터 전포동 신발공장이 반장이 춘자를 성폭행한 사실을 알려주고,
규병은 이 사실에 분노하고 방황하다가 태풍 매비가 부산을 덮친 날, 그 신발 공장 반장을 찾아가 팔뚝만한 스패너로 보복 린치를 가하고 돌아 오던중, 태풍으로 자동차가 뒤집히면서 사망한다.
그리고 춘자는 시집에서 쫓겨난다. 재산분할권 주장도, 희영이 양육권 주장도 못한 채...
(시모: 저년이 남편을 잡아묵어부럿다아!)
(동서: 이 통장하며 모든 재산은 다 규병이 껏이여!)
(또 다른 동서: (희영이를 데리고 가면서) 그년 쪼까 잡어...)
춘자는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노래가 퍼저 나오는 전파상 앞에서 중얼거린다.
(내 새끼... 희영이...)
그리면서 오늘밤부터 어디서 잠을 자나 두리번 거린다. 누구의 노래처럼 두리번 거린다.
전파상에서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는데...
(꽃집의 아가씨는 예뼈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춘자는 밤 10시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 소재하는 부전역을 찾아든다.
그리고 어디서 가져온 종이 상자를 펼치고 잠자리에 든다.
(희영 아부지... 희영이가 어데로 가붓소....)
(희영아... 여게서 자자. 이불깔고... 따땃할 거여.)
(희영아...따시제? 아부지 오실 때꺼지 쪼까 자야 쓰것다...)
이렇게 춘자의 노숙인 생활이 시작된다.
이때가 춘자 나이 20대 중후반이고 시대는 1980년대 중반인 것으로 보인다.
<길리언 제20화 춘자의 길>
부전역에서 시작하여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춘자의 노숙인 삶은
컴컴하고 긴 동굴같고, 얽힌 실타래같은 2012년까지 30여년 가까이 이어진다.
그 동그랗던 눈은 풀어지고,
그 명량하던 말은 더듬더듬거리게 되고,
그 조숙하던 생활은 술에 찌들고
무언가에 눈치보고,
무언가에 주눅들고
그리고 조금씩 몸은 망가져 가면서
그렇게 노숙인이 되어갔다.
2012년 어느날 춘자는 서울역 지하철14번 출구 앞의 환풍기 위에 누워 있다.
환풍기 높이는 대략 70~80cm이고, 양 옆에는 은행 나무가 환풍기를 호위하듯 서 있고
환풍기 위에 누은 춘자의 배는 복수가 차서 그런지 배가 불럭하다.
그리고 그의 꽃집의 꽃으로 보이는 그의 남편과 그의 아이 희영이를 눈물로 기억하면서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다.
이때 춘자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보인다.
(고맙...소...희...희영... 아...부지 ... 용서...해중께... 차 말...로 고맙...소...)
*춘자의 이 말이 조금 이상한 독자는 만화를 보시면 이해될 것이다.
동부시립병원 시체 안치실에서 춘자의 사망 내용을 확인하는데
춘자의 본명은 김매순이었다. 그리고 그의 유품에서는 그의 아버지 유품 놋쇠 술잔이 나왔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그의 고향 앞바다에 한 줌의 재로 뿌려졌다.
<에필로그>
오늘도 바쁜 걸음으로 서울역을 향한다.
문득 서울역 지하철 14번 출구 앞 환풍구에 누군가들이 누워있는 장면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벌써 여름인가? 더위를 식히려, 술 취기를 식히려 환풍구 위에 올라 갔는가?
또 있다:
서울역 지하철 2번 출구 벽에 쪼그려 앉아 있는 춘자가 생각난다.
그리고 서울역 파출소 앞 지하보도에 앉아 졸고 있는 춘자도 생각나고,
서울역광장에서 14번 출구쪽으로 가는 식당에서 거지라고 쫓겨나는 모습도 생각나고,
춘자가 배를 채우던 13번 출구 근처 따스한 채움터도
서울역을 오가는 내 눈길을 끈다.
김매순 선생(춘자씨) 명복을 빈다.
출처: http://webtoon.daum.net/league/view/14810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윤형주): https://www.youtube.com/watch?v=kAVHElgTfdk
이 글은 성 프란시스 인문학 대학 교육과정에서 숙제의 일환으로 저자와 화가의 허락없이 인용 참고 했음을 밝힌다.
첫댓글 '화가는 춘자의 눈을 동그랗게 그린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아요 🥺 눈도 동그랗고 꿈 많고 쾌활하던 춘자와 서울역 계단에서 넘어져서 피흘리는 춘자의 인생 사이를 묘사하는 석일 선생님의 글이 너무나 인상 깊습니다!
서울역에 계시는 많은 분들이
하나 하나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요.
그리고 서울역에서 돌아가신 많은 분 들
그 분들을 생각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냥 입이 떡 벌어졌답니다.
벌어진 입이 한동안 닫히지 않았답니다.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귀에 엥엥~~잉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