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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단법인한국시조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덕남
[국제신문 당선작]
휠체어의 반경
조은정
아픔의 무게만큼 하루를 밀어낸다
불 꺼진 병실에 접어놓은 우두커니
온종일 바쁜 바퀴는 이제야 잠이 든다
꿈속을 굴려봐도 상처뿐인 막다른 길
굴리는 대로 굴러간 당신 손을 감싸면
가파른 시간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주저앉은 불빛마저 걷기 연습 한창인데
환한 봄 언제 올까 길목이 피어난다
당신과 멀어질수록 일어서는 내일들
[당선 소감] : 조은정
병마에도 삶의 반경 넓히는 엄마를 응원
눈은 오지 않고 기다림만 쌓일 때 받은 당선 통보는 머릿속부터 하얘졌습니다. 그 기쁨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내 앞에 유난히 좋아하는 눈이 내렸습니다.
몸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나의 문장을 찾기 위해 내 주변을 오래 서성였습니다.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은 느낌입니다. 흩날리는 눈처럼 감사와 환희가 춤을 춥니다. 시조의 결을 따라 앞만 보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함께 해준 모든 이들의 고마움이 깊이 새겨집니다.
‘휠체어의 반경’은 요양병원에 8년째 누워 계신 엄마의 불편한 몸을 묵묵히 받들며 반경을 넓혀가는 휠체어를 보고 쓴 글입니다. 치유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하루를 밀고 나가는 모습이 눈물겨웠습니다. 제 발로 움직일 수 없어도 바퀴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 두고 움직입니다. 그것이 고결한 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힘겹게 병마와 싸우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글을 쓰는 일도 이와 같아서 쓸 수 있을 때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때로 무용한 것이라고 여기던 것이 유용한 것이 되는 것처럼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내면의 울림이며 희망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글쓰기였습니다. 막연하지만 마음속에 저를 추동하는 불꽃이었고 그 불꽃의 일렁거림에 설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뚜벅뚜벅 저의 보폭으로 걷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 연습하며 발을 떼듯, 시조로 바로 설 수 있게 이끌어주신 조경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부하며 힘이 되어준 시란 동인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난 용인문학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국제신문과 부족한 제 글을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리며, 공부하는 모습으로 롤 모델이 되어주신 아버지와 묵묵히 저를 지켜봐 주신 엄마가 계셨기에 글이라는 씨앗이 싹틀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다영이, 동호 그리고 남편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약력 1969년 경기 출생. 시란 동인. 용인문학회 회원
[심사평] : 정용국, 이광 시조시인
긍정의 힘으로 밀어 올린 희망의 꽃대
시조는 한글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상승하는 반려자라고 생각한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부터 우리 민족이 수천 년을 사용해온 말의 음보를 가장 적확하게 지켜가고 있는 것이 바로 시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조는 누가 소리 내어 읽어도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어야 한다.
투고작들은 난세의 시절가조 답게 다양하고 새로운 소재를 담아낸 모습들로 가득하여 뿌듯했다. 코로나가 다녀간 모습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과 위급한 생태계에 대한 걱정, 출산율 감소에 대한 우려와 팍팍한 서민의 허전함에 보내는 따듯하고 애잔한 감정들이 포근했다. 더러 시조의 율격에 어긋나는 작품이 보였지만 대체로 음보와 정형성을 무난하게 구사했다는 것도 대견스러운 현상이었다.
2차 통독을 통해 건져낸 여덟 편의 작품을 다시 교차 심사하여 마지막 세 사람의 작품이 최종심에 남게 되었다. ‘휠체어의 반경’과 ‘스태추 마임’, 그리고 ‘라인댄스’가 다시 겨루었다. ‘스태추 마임’(동봉한 다른 응모작 포함)은 압축미가 부족했고 부자연스러운 시어가 음보를 거스르는 부분이 있었다. ‘라인댄스’(〃)는 단정했지만 뚜렷하게 드러나는 주제의 힘이 강하지 못했다. 다시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기대한다.
조은정의 작품들은 시조가 갖추어야 하는 함축성과 평온한 음보가 돋보였고 절실하게 다가오는 주제와 소재의 어울림이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긍정의 힘으로 밀고 나간 구성과 끝까지 놓지 않은 희망의 꽃대는 새해 아침을 활짝 여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고 두 위원은 의견을 공유했다. 그의 시안이 더 넓어지고 탄탄해져서 시조의 멋진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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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당선작]
사북
장경미
동생의 몸속에서 사북이 빠져나갔다
펴지도 접히지도 못하는 쥘부채로
흐느적 늘어지고 만
해삼 같은 몸뚱이
장손으로 태어나 어머니 면 세우고
갑갑한 시집살이 시원한 바람이던
댓개비 휘청이게 한
작디작은 저 구멍
헐거워진 정신은 돌아올 줄 모르고
다시금 아기가 된 아들 곁을 지키며
늙은 몸 갈고 갈아서
사북이 된 어머니
[당선소감] : 장경미
쉼이 되고 숨이 될 수 있는 글 쓰겠다
5그램 남짓 몸무게, 12줄의 키.
당선 연락을 받고, 첫 번째로 내밀지 못했던 원고를 다시 펼쳐 한참을 보았다.
가벼운 A4 용지에 쓰인 짤막한 3수.
그 속에는 일 년이 넘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우리 가족 모습이 담겼다. 우체국에서 이별하고 온 글을 마음에서도 지우려 애썼다. 아직도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고, 병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생과 어머니의 현실이 너무도 아파서.
글 쓰는 이들의 연말은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탄절 같다. ‘신춘’의 설렘과 기대가 어우러져 하루하루를 간절함으로 보낸다. 성탄이 지나고도 휴대전화가 잠잠하면 밀려오는 허탈감과 아쉬움은 오롯이 혼자만 겪어내야 하는 진통이다. 그럼에도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쓰지 않고서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쉼이고 숨이 되는 시조가 내게는 어려운 과제 같았다. 시조라는 정형의 틀에 덜 익은 나를 스스로 가두기도 하고 옛것을 이어가는 시조의 책임감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당선 소식은 시조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가슴에 품은 것을 쏟아냈는데 그것을 받아 준 그릇이 시조였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도 잠깐의 쉼이 되고 한 가닥 숨이 될 수 있는 시조를 쓰고 싶다.
부족한 글에 마음을 내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경남신문사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자꾸만 야위어가는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약력 △1970년생 △창원 거주 △초등학교 교사
[심사평] : 임성구 시조시인, 신상조 문학평론가
시상의 전개 방식 삶의 진정성과 맞물려
시조는 고려말에 생성되어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혈관에 면면히 흘러오고 있는 정형 미학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인 문학 장르가 시조이고, 현대시조의 발전을 견인한 것 중 첫째가 제국주의의 억압에 굴하지 않으려는 저항정신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시조를 가리켜 ‘민족문학’이라 서슴없이 일컬을 수 있는 이유다. 2024년 신춘문예 시조 부문 응모편수가 368편으로 경남신문 역사상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시조가 세대를 이어 활발히 전달되고 있다는 방증이라서 기쁘다.
다만 응모작들을 일별한 결과, 정형 시학의 제한된 형식이 진부한 언어적 틀과 사고의 반복으로 이어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형식적 규범이 절제미를 조성하는 시조일수록 행간의 여백과 언어의 함축성은 필수적이다. 시란 자아에 갇혀 닫힌 세계가 아니라 자아를 내려놓고 자아를 여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시조는 형식과 의미와 표현이라는 세 개의 과녁을 동시에 노려야만 하는 까다로운 장르다. 치열함이 결여된 시조 이해는, 역설적이거나 낯설게 하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시의 진부함으로 드러나게 마련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사고와 인식, 전근대적 삶의 편린들, 정형성에 기초한 율의 효과 및 표현이 지나치게 동요적인 작품, 삶이 체감되지 않음으로 정서적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평면적 재현, 파격이 아니라 정형의 미숙함에 불과한 시들을 일차와 이차에 걸쳐 걸러냈다. 남은 작품은 ‘한겨울에 매미 울다’와 ‘탄소 보폭, 더듬어 읽다’ 및 ‘사북’이었다. 한겨울 구세군 종소리와 노숙자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밥차를 소재로 한 ‘한겨울에 매미 울다’, 그리고 온실가스를 주목함으로써 지구 생태계를 걱정하는 ‘탄소 보폭, 더듬어 읽다’는 둘 다 사회성과 당대성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인식의 건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 또한 두 작품 모두 탁월한 형상화를 보이고 있었다. 기성 문인들의 세례를 받은 흔적이 보이지 않은 점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식물인간인 아들을 지키는 노모의 뜨거운 모성(母性)에 결국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시상의 전개 방식이 삶의 진정성과 맞물리는 ‘사북’은, ‘어머니’야말로 이 땅에서 신의 사랑을 대신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만든다. 감동으로 말하자면 신춘문예 최고가 될 듯한 작품이라는 심사자의 말이 생각난다. 시인에게 기쁜 일이 일어났듯, 작품 속 동생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해본다. 아울러 시인의 무한한 발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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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당선작]
채렴을 읽다
문윤정
옮겨 든 바다가 무자맥질 숨길 풀 때
불볕 터진 하, 목마름 온몸에 두른 염전
치열한 역류의 물결 부서지고 고이면서
견디는 망막에 아린 결정체 되새김할까?
바람살에 서럽도록 들썩이며 얽힌 속내
짓물러 뒤챈 상처가 순백의 꽃 피우고
허공 짚고 쏟아지는 잔별들 획을 긋고
도돌이표 궤도 따라 흰 뼈대로 추스른 허기
오랜 날 매인 가래질, 짜디짜게 길들여진 채
절인 몸피 버석대는 늙은 염부 그 한 생애
윤기 도는 짠맛 세상 혀끝 절로 사로잡고
지나도 또렷이 남는 길 소금처럼 반짝인다
*채렴: 염전에 잔뜩 깔린 소금을 모아 야적장에 옮기는 일.
[당선소감] : 문윤정
꿋꿋하게 살아가며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겨울나무처럼 꿋꿋하게 살아가며,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휴대폰을 움켜쥐고 인도를 걸었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운 좋게도 든든한 디딤돌을 밟고 서는 행운을 선사 받게 됐습니다.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도 축하 연주하듯 경쾌했습니다. 빗방울 탄주를 받으며 이렇게 ‘신출내기’가 탄생하는 것일까요.
직장 일과 두 아이의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지역 시민예술대학 문창반과 유튜브 강의, 다른 매체들을 통해 시조 공부를 해왔습니다.
읽고 쓰고 필사하고 사유하면서 시조에 대한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암중모색일 뿐이었습니다. 거듭거듭 좌절을 겪는 아픔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막연한 믿음에 매달리며, 정형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사유를 형상화해 낼 수 있도록 매진했습니다. 내공이 쌓일수록 시조의 완성도를 추구하게 되고 그 미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일상의 짐이 버거워 위축된 저에게 정신적 탈출구가 되어준 것이 바로 시조였습니다, 수십 번 퇴고 끝에 한 작품을 마주하면서, 그 희열이 바로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시조에 대한 깊은 애착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며 저 스스로 채찍질을 거듭하겠습니다.
아직은 시조시인으로 당당히 내세울 자신은 없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각오와 함께 나만의 문체와 역량을 다지며 작품으로 세상과 공감대를 이뤄가겠습니다. 거듭 밝히지만, 겨울나무처럼 꿋꿋하게 살면서,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언제나 시조에 시간을 빼앗긴 나머지 마음 한 자락 돌려 앉혀 놓고 사는 저를 그래도 늘 응원해 주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챙겨주신 심사위원들과 경상일보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약력 경기 평택 출생, 단국대 간호학과 졸업, 현재 중학교 보건교사로 재직
[심사평] : 유재영 시조시인
부정확한 어휘의 바다 속 반짝이는 천일염 작품
예심을 거쳐 올라온 것은 단 8명의 작품 25편, 대다수가 관념어와 상투어 남발로 현대시조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그 수준이 떨어졌다.
가령 ‘몹쓸 봄 마지막 품사위 체리불러썸 퀵퀵’ ‘오래된 끽연의 기억이 비를 받아먹고 있다’ ‘마음 속 마지막까지 깐깐하게 달려가요’ ‘잡어로 잡혀온 삶이 측은지심 같더란다’ ‘속내 다 까발리는 세상이 흔했던가’ ‘당신의/ 휘어진 탄성으로/ 한 뼘 더 커집니다’ 같은 표현들이 과연 신춘문예 응모작품 수준인가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예선 탈락자 작품을 모두 뒤져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럴만한 권한이 없었다. 시는 관념어와 상투어와의 싸움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시인으로서 가능성은 접어야 한다.
당선작 선정 포기 직전 ‘채렴을 읽다’와 같은 원숙한 작품을 발견한 것은 다행이었다. 당선작 ‘채렴을 읽다’는 부정확한 어휘들이 허우적거리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천일염처럼 반짝이는 존재’였다. 네 수 모두 안정감 있고 구성면에서도 기승전결이 분명했다. 시가 보편적 정서에 접근한다는 것은 많은 독서와 창작을 겸하지 않고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지점이다. 응모자의 다른 작품 ‘사유를 탁본하다’도 수준작, 그러나 ‘입가에 미소 그윽하다’와 같은 상투어들이 눈에 거슬렸다. 잘 다져진 기본기를 바탕으로 정밀성과 섬세함을 더한다면 당선자에 거는 기대가 결코 어긋나지 않으리라.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명분에 앞서 내가 아니면 표현 할 수 없다는 현대시조로서의 독특한 개성을 지닐 때만이 당선자에 대한 시조단의 주목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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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가작 당선작]
민달팽이 길
천윤우
몸으로 그려 놓은 쓸쓸한 생의 궤적
옷 한 벌 입지 않은
느릿한 육필 같은,
일평생
길을 만드는 수행 같은 저 의식
세상과 소통하는 축축한 하루하루
살아서 가는 길이
마침내 유물 같은
마침표
찍는 날까지 그려갔을 저 동선
바닥이 허공 같은 불안한 걸음이라
죽은 뒤 남은 흔적
묵묵히 바라보니
외로운
유고집 같은 얇디얇은 길이다
[당선 소감] : 천윤우
"멈추지 않아 닿을 수 있었다"
"가지 않은 길" 떠올려 본다. 가난을 핑계로 놓아버린 화가의 길 어른거린다. 이제 시조로 뜻 깊은 그림 그리고 싶다.
출근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때 입원한 60일이 시조와 현대시를 만나는 계기가 됐다. 그 뒤 문학에 대한 부족한 부분 채우려 2009년 만학에 도전하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과정을 수료했다. 한번 타오른 시의 불꽃 꺼지지 않아 '시인의 바다' 닿으려 달린지 17년! 바라던 시조시인의 길에 설 수 있었다.
배터리를 교체하러 가는 길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선정됐다는 한라일보 담당자님의 전화였다. 비로소 선비로 입문한 것 같아 기뻤다. 돌아보면 우리 고유 시조가 그랬다. 3장 6구의 단단한 율격에 철학적 사유를 담은 글에는 고아한 향기가 난다. 숨을 불어넣은 오랜 문장에는 역사가 꿈틀거린다. 행간은 산을 품은 운무 같아서 읊조릴수록 깊어진다. 시가 산으로 오르는 것이라면, 시조는 마음까지 내려놓아야 닿는 해탈에 가깝다.
'민달팽이 길'에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신 심사위원 김정숙, 김연미, 고정국, 한희정 시조시인님께 감사의 마음 올린다. 새삼 돌아보니 지난 글이 부끄러워진다. '다시 시작하라, 정진하라'는 말씀으로 겸허히 받아 안는다.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손종흠 교수님, 2009학번 학우 및 선·후배님. 모든 지인들께 감사의 마음 전한다.
긴 세월 묵묵히 동행해준 아내와 아들, 딸에게 못한 말,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약력 1960년 울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 고정국, 한희정 시조시인
생명력과 역동성 갖춰 한층 진화하길
예심을 거쳐 본심 탁자에 올라온 작품에는 저마다 아름다운 시어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게 보려면 한 번만 봐야 하고, 제대로 보려면 세 번을 봐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본심에 임했다.
정형률을 기본으로 하는 시조장르 특성상, 제목과 초장 중장 종장의 유기적 관계 그리고 시력, 어휘력, 사고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전개시키는 신인들의 필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목을 설명하는 낱말풀이 식 작품들이 있었다. 더구나 '나열과 전개'의 인식 부재는 등단 작가 작품에서도 곧잘 지적되곤 하는 문제가 아니던가.
결국 민달팽이가 그려놓은 실크로드를 "마침표/찍는 날까지 그려갔을 저 동선" 또는 "외로운/유고집 같은 얇디얇은 길"이라는 천윤우의 '민달팽이 길'에 심사위원의 눈길이 머물렀다. 그런데, 이 작품 초중종장에 "그려 놓은 쓸쓸한" "입지 않은 느릿한" 등등 시어선택의 안일함과 형용사 남발로 인해 가작에 머물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정형의 틀에다 글자 수를 맞췄다 해서 다 시조는 아니다. 시조라는 어휘에는, 이 시대 사람들 삶의 애환이나 에피소드 그리고, 장르 특유의 음악성이 스며있기 마련이다. 결국 서정과 서사의 알맞은 조화는 물론, 생명력과 역동성 그리고 새로운 시대인식이 갖춰져 있을 때 현대시조가 하향적 평준화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시조시인의 양적 증가에 연연하지 말고, 한층 진화된 작품들이 탄생했을 때 시조의 자리매김이 한 층 뚜렷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