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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이야기> - 신형호
1. 봄을 읽다
봄은 춤추는 인형이다. 잔설이 희끗희끗한 산길 응달에 노란 복수초가 맑은 얼굴로 기지개를 켠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도 낭랑하다. 찬바람 안고 눈 비비는 매화 눈망울이 붉게 물들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른 새벽 는개 속에서 여기저기 산수유 꽃 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출근길 상동교(上洞橋)에서 펼쳐지는 신천대로(新川大路) 냇물 쪽은 갓 태어난 병아리 닮은 개나리가 지천이다. 바람 따라 춤추는 그들은 어제 저녁 통화한 그리운 친구의 얼굴이다.
봄은 꽃의 대유요, 꽃은 그의 악기다. 세상은 꽃 잔치로 펼쳐진 웅장한 관현악단이다. 꽃망울은 겨우내 간직했던 고운 사연들을 쉴 새 없이 허공으로 터뜨린다. 그의 노래는 꽃과 함께 연주한다. 붉은 꽃이 앞장을 서면 노랑꽃이 뒤따르고, 연분홍, 하얀 꽃이 줄지어 박자를 맞춘다. 수줍은 진달래 닮은 가곡이 들리고 우아한 왈츠 같은 백목련의 고고함도 흐른다. 초이레 달빛 아래 은은한 세레나데 같은 배꽃이 눈부시고 연분홍 복사꽃이 수채화 되어 현악 중주를 들려준다. 노랗게 들판 가득 물들이는 유채꽃 따라 잔잔한 미뉴에트가 흐른다.
봄은 싱싱한 에너지다. 여명의 정원에 들어가 눈감고 푸른 나무에 손을 얹어 보아라. 가지마다 물 길어 올리는 소리로 분주하다. 파르스름하게 변하는 듯 줄기마다 통통하게 살찌는 느낌이다. 연둣빛으로 단장하는 새잎이 내 눈을 맑게 한다. 마른 가지마다 쏙쏙 고개 내민 잎은 이른 아침 이슬 머금어 싱싱하고 푸르다. 활기찬 그가 정원을 움찔거리게 한다. 느티나무 가지 끝에는 언제 날아왔는지 박새들이 술래잡기 놀이에 바쁘다. 연신 서로 부르며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곡예를 한다. 엊그제 내린 비에 흙이 촉촉하다. 한쪽 구석에 얌전히 고개 숙인 할미꽃 서너 송이가 유난히 붉고 사랑스럽다. 꽃핀 자리마다 밝음의 메시지로 환하다. 먼저 핀 꽃이 조금씩 스러지면 파릇한 새잎이 꽃자리를 잇는다. 주고받는 왁자지껄한 꽃과 여린 잎 소리에 온 정원이 술렁인다.
봄은 새 학기에 펴낸 깨끗한 교과서이다. 펼쳐 든 책은 참신한 생각의 곳간이다. 그를 펼치면 빳빳한 새 종이 냄새 사이로 맑은 글이 주룩 쏟아진다. 숲길을 걷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그의 향기에 빠져보아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알싸하면서도 신선한 문장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가슴속에 환한 꽃불이 켜지는 그는 갓 발간한 언어의 보고이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깊은 향기로 세상을 점령한다. 아날로그 시대의 그리운 정이 담긴 옛글과 톡톡 튀는 디지털 시대의 새글이 어우러진다. 읽는 내내 마음이 푸르게 물든다.
봄은 기억 속의 그리운 사람을 불러낸다. 음력 삼월 초사흘 저녁, 해거름 녘 쪽빛 하늘에 또렷이 걸려있는 초승달이 시리다. 첫사랑의 눈썹 같은 상큼한 달이 눈에 안긴다.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공연히 눈물이 난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던가.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며 불현듯 살아온 날을 돌아본다. 폭설이 쌓인 산길보다 눈부신 운흥사(雲興寺)* 벚꽃이 보고 싶어 핸들을 잡는다. 운흥사(雲興寺) 가는 숲길은 온통 벚꽃의 흰 터널을 이룬다. 멀리서 달려온 바람이 소리를 내기도 전에 바닥은 연분홍 꽃비로 점박이 길이다. 부르지도 않은 골바람이 잠든 산을 깨워 놓으면 꽃길은 희미한 옛사랑의 흔적으로 촉촉이 젖는다.
봄은 순간이요, 손에 움켜진 신기루이다.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만큼 짜릿한 노랫말이 그 얼마나 되는가? 그 어느 계절이 오는가 싶더니 팔랑 가버리는 시간이 또 있는가. 그리움도 추억도 채 여물기 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봄날인가. 잠깐에 꽃은 지고, 싱싱하고 푸른 냄새로 숲은 온통 초록빛이다. 밤새 커진 잎들이 바람 타고 서로 어깨를 친다. 새로움, 새날, 새 세계를 꿈꾸는 듯 바람 따라 춤을 춘다. 순간에서 왔다가 찰나로 사라지는 삶이 아쉬워 오늘도 바람 소리 앓는 숲에 들어가서 그를 찾는다.
봄은 꿈이요, 꿈은 그의 실체이다. 해마다 꿈을 꾸며 계절을 맞지만, 현실은 만만하지가 않다. 마음속에 그렸던 그를 품어보기도 전에 다시 여름에게 자리를 내 주고 나면 풋풋한 사랑도 한 점으로 사라진다. 아직도 갈 수 없는 길과 아득히 멀어져 손짓만 하는 그가 아른거린다. 내 삶의 봄날은 가뭇없이 가는가 보다.
*운흥사(雲興寺) : 달성군 가창 댐 안쪽 최정산 기슭에 있는 절.
2. 여름에 빠지다
어둑새벽 꽃 피는 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여명이 채 눈을 비비기 전의 연밭은 물안개가 자욱하다. 아기 엉덩이보다 큰 연잎마다 물방울이 또르르 투명하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영롱한 구슬이다. 보석을 보고 있으면 홀인 하듯 마음이 빨려 들어간다, 이따금 물개구리밥 사이에서 퍼덕이는 물고기가 새벽을 깨운다. 해 뜨기 직전의 연못 풍경은 동화 속의 수채화이다.
장마다. 칠월 초까지는 억수장마가 잦더니 지금은 마른장마가 한창이다.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던 비는 동네 친구 찾아 잠시 남쪽으로 여행을 갔다. 더위에 뒤척이다 갑자기 번쩍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연이 보고 싶었다. 둥근 달처럼 환하게 웃는 연꽃이 그리웠다. 누구보다 연을 사랑한 송나라 주무숙*이 아니라도 연꽃이 눈앞에 아른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쯤 연꽃이 절정일 테지. 연꽃 피는 소리는 어떤가? 혹시 새벽이면 배시시 꽃잎 피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 심청이가 꽃에서 나오듯 한번에 다 필까?’
유등지 가는 새벽길은 상쾌함보다 텁텁한 공기가 먼저 달려든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달콤한 듯 칙칙하다. 차창을 열고 내닫는 길은 으슴푸레하다. 건너편 산기슭엔 화선지에 옅은 먹물이 번진 듯 운무가 허리까지 내려와 있다. 평일 새벽이라 도로는 한산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뜬다. 꿈을 꾸다 무엇에 홀린 듯 출발을 했지만, 정신은 또렷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 들판도 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데크로 만든 산책로에 들어섰다. 가슴이 확 트인다. 활짝 핀 꽃과 부끄러운 듯 불그레한 봉오리만 쏘옥 내밀고 고개를 끄덕이는 꽃들의 잔치에 입이 벌어진다. 키 자랑하듯 들쑥날쑥 솟은 꽃대와 넓은 잎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간밤에 소나기가 내렸는지 촉촉이 젖어 파릇파릇하다. 같은 못에 있더라도 피고 지는 시기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둑 근처의 꽃과 조금 떨어진 봉오리들이 조화를 이룬다. 꽃 피는 소리와 함께 절정의 삶을 보러 왔지만 이미 삶을 마감하고 꽃대 위에 연밥만 동그마니 남아있기도 하다. 펼쳐진 연 밭에서 내 삶을 돌아본다. 내 인생의 싱싱한 시간은 언제였을까. 활짝 핀 잎들은 아직도 싱싱한 여름을 노래하지만, 꽃 떨어진 대는 삶을 갈무리하는 결실로 가고 있다. 오고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지는 꽃을 보니 간다는 사실이 성큼 눈앞을 흐리게 한다.
한때는 사라진다는 것의 슬픔에 빠진 적도 있었다. 오늘 떨어지는 연꽃을 보며 많은 생각이 앞서간다. 간다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지는 꽃잎에서 무엇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떠나야 할 때 떠나는 사물의 뒷모습은 한없이 평화롭다. 가지 않으면 정체되어 썩게 마련이다. 머무르는 것은 타성에 젖어 생명력을 잃는다. 세상은 언제나 새로움을 요구하고 개혁과 변화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한 세계로 나가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도 절대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처럼 순리에 맡기고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둑길의 나무들도 진초록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다. 저 잎도 이 여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 아닌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반짝임도 시시각각 밝기를 다르게 한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퍼렇게 빛을 낸다.
꽃대 위에 잠든 잠자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문득 내가 저 잠자리가 아닐까도 생각된다. 살아온 날이 하루 같고, 하늘거리는 꽃대 위에서 곤한 잠을 자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닐까. 내 삶에서 퍼덕이던 푸른 시간은 언제였을까. 꼭두서니 빛 새벽하늘같이 맑은 20대도 있었고, 연둣빛 은행잎 닮아 살아가던 30대 시절이 그리워진다. 돌아보니 순간순간이 절정이었으리라. 가늠하지 못하고 살아온 날이 부끄러울 뿐이다.
못가 들길로 천천히 걸었다. 달맞이꽃과 엉겅퀴, 개망초가 지천이다. 이른 아침 달맞이꽃은 노랑나비 떼가 춤을 추는듯하다. 연꽃 피는 소리를 듣는다는 핑계로 찾아왔지만 가당찮게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첫새벽 꽃들의 모습에서 절정의 여름에 취한 즐거움만 남는다. 사실 꽃이 하루 중 언제 피는지 알 수가 없다. 두둥둥 북소리가 울리는 듯한 보름달이 뜰 때 피는지, 아무도 모르게 잠든 시간에 눈을 비비는지 알 수가 없다. 쨍쨍 불같이 내리붓는 한낮은 아니리라. 잠자리 날개 닮은 순결한 옷을 한 겹씩 펴는 시간은 동트기 직전의 첫새벽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니 마음이 평온하고 온 하늘의 별이 마구 쏟아지는 여명, 닭 울기 직전에 피지 않을까도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스위스의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깊은 밤 별 밑에서 경이로움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꽃피는 소리를 들으려 하고, 겨울 군밤 굽는 냄새를 좋아하고, 별이 쏟아지는 밤에 감동할 줄 아는 이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둥글어진다.
느린 걸음으로 조금씩 여름은 깊어만 간다.
*주무숙(周茂叔) :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연을 무척 사랑하여 ‘애련설’이라는 명작을 남김.
3. 가을에 물들다
백로(白露) 지난 하늘이 한층 가깝게 다가온다. 오랜만에 만난 숲은 많이 수척하다. 겹친 태풍이 할퀸 오솔길에는 어지럽게 누워있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은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오른 길이다. 드문드문 떨어진 잎을 보니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가 문득 생각난다. 가을 병일까? 지난해부터 가슴이 답답한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산을 찾았고 숲에 안기면 조금씩 안정이 되었다. 이유 없는 증상이 있겠느냐마는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뇌에서 분비되는 어떤 물질이 모자라서 그럴 수 있다는 의학적인 설명도 들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입이 떡 벌어졌다. 골 중턱 숲길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양팔을 벌리고 엎드려 있지 않은가. 지난 태풍의 영향이다. 수년 전 그렇게 사납던 태풍 ‘매미’나 ‘볼라벤’ 때도 괜찮았는데……. 기어가듯 몸을 낮추어 길을 지나갔다. 누운 나무는 푸른 물기를 머금은 채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 시골 재래시장 전깃줄처럼 어지럽게 얽힌 허연 뿌리가 끊어진 채 황토에서 빠져나와 내 가슴을 찌른다. 얼마 지나면 그도 삶을 마감할 것이다. 거북 등 닮은 둥치에 손을 얹고 그의 일생을 곰곰 생각해 봤다. 수령이 백여 년은 넘었으리라.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았고 온갖 풍상을 겪고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제 그의 운명이 다했음일까?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태풍에 쓰러진 그를 보니 우리네 삶과 비교된다. 큰 사고 없이 일생을 사는 것의 어려움을 그가 말해 주는 듯하다.
한 시간 반쯤 올라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전에 내 아이들이 어릴 때 같이 와서 자주 놀던 곳이다. 오늘은 그날의 추억을 되찾으려 그물침대를 준비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주변의 바위와 계곡은 별 변화가 없다. 모처럼 거는 그물침대에 가슴이 설렜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그물을 매달았다. 앉아서 흔들거리다가 이내 누워서 편안히 하늘을 우러렀다.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과 햇살이 아른거린다. 행복하다. 누구도 부럽지 않고 아쉬움도 없는 천국에 오면 이런 느낌일까. 짜릿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비집고 쏟아진다. 편안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 세상은 온통 내 것 인양 황홀하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흥으로 몸이 가벼워진다. 아이들 웃음소리도 들린다. 가을이 내 몸 구석구석까지 물든다.
그때였다. ‘윙’ 소리와 함께 땅벌 한 마리가 내 주위를 돈다. 이내 팔에 소름이 돋았다. 매스컴에서 가을철 벌에 쏘이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소식도 들었기에 겁이 났다. 큰일이다. 살며시 눈을 뜨고 보니 보통 벌보다 엄청나게 큰 놈이다. 숨을 죽이고 눈을 감았다. ‘부근에 벌집이 있는가.’ ‘재수 없게 자리를 잘못 잡았는가.’ 온갖 생각으로 천국 주변에서 즐기던 마음이 순식간에 지옥 가까이 떨어진다. 다행히 조금 있으니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탈한 마음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무엇이란 말인가? 어쩔 수 없는 돌발 상황이면 누구나 같겠지만, 너무 나약한 자신이 밉다. 나이가 들면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 수양이 되고 원숙해진다는 옛사람의 말이 내게는 맞지 않은 것 같다. 작은 벌 한 마리에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다시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비로소 계곡물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바람에 일렁이며 서걱거리는 나뭇잎이 눈앞에 떠오른다. 흐느끼는 듯하면서 고양이가 담 넘어가는 듯한 소리, 숲 덤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허공에서 잎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온갖 상념을 불러온다. 살아온 날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아쉽고 안타까웠던 순간도 되살아난다. 내 삶의 길에서 갈림길은 어디였을까? 인생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느긋하게 누리지 못하는 내가 안타깝다.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웃던 얼굴이 겹쳐지고 아직 병상에 누워있는 동무의 음성도 들리는 듯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벗에게 안부라도 묻고 싶다. 주소록을 찾아 통화를 시도하지만, 내내 통화권 이탈로 연결되지 않는다. 영원할 듯하지만, 찰나로 마무리되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 매스컴에서는 연일 평균 수명의 연장을 자랑하고 있지만 가까운 지인의 삶은 봄꽃과 같아 허망하기도 하다.
어디서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눈을 떴다. 건너편 나무 꼭대기에서 한 무리의 새들이 돌림노래라도 하듯 지저귄다. 멍하던 마음이 따뜻해진다. 시작도 끝도 없이 들쑥날쑥하던 상념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새들의 노래가 귀를 두드린다. 의식 밖에 허덕이던 생각이 화들짝 사라지고 영롱한 구슬 부딪치는 소리만 들린다. 하늘은 여전히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은가루를 뿌린다. 눈이 시리다. 어찌 보면 뒤집히며 몸 흔드는 잎이 사람 같다. 수많은 손을 흔들며 경쟁하듯 모여 사는 군중으로 보인다. 자세히 쳐다보니 잎의 빛깔과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약간 큰 잎과 작은 잎, 푸른 잎과 벌써 물들기 시작해 노릇노릇한 잎이 어울려 살아간다. 하나하나가 모여 큰 나무를 만들고 다시 숲을 이루고 세상을 꾸려간다.
천천히 일어나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투명한 물에 비친 나무가 수채화 한 장이다. 물에 잠긴 나뭇잎 몇 장이 나를 쳐다본다. 그 속에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겹쳐진다. 우연으로 포장된 필연도 있었고 필연인 줄 알았던 우연도 있었다. 스쳐가거나 간직된 사람도 모두 순간이다. 오래전 석용산 스님의 책 한 구절이 떠올라 혼자 중얼거린다.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솔바람 한줌 집어 가렴. 농담 말구. 그럼, 댓 그늘 한 자락 묻혀 가렴 …….’ 삶에서 죽음이 오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연에 감사하고 현재의 삶에 따뜻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눈앞의 풀 한 포기, 나뭇잎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 보인다. 고개를 돌리니 알싸한 흙냄새와 풀냄새가 어울려 향긋한 숲 향기를 뿜는다. 조금씩 물든 잎들이 사람을 포근하게 한다. 이 계절이 깊어지면 숲은 절정으로 황홀하게 치장하겠지. 내 마음도 조금씩 풍요로워지리라.
시나브로 잎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은 익어간다. 꽃 피우고 새잎 나고 물들고, 그리고 떨어지면 사라지리라. 땅속에 묻힌다고 그들의 삶이 끝난 것이 아니다. 내년에 새로 필 근원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라짐은 이별이 아니라, 다시 필 새 생명을 위한 시작이 아닐까 생각하며 계곡을 올라왔다.
4. 겨울에 스미다
바람 부는 날, 보이는 것이 갑자기 시큰둥해지는 시간이 생긴다. 흔들린 마음의 물결이 몸을 인도할 수 없는 날이다. 몸의 나이테가 쌓여 갈수록 정신은 익어가지만, 알 수 없는 허전함에 가끔 하늘을 쳐다본다. 이런 날은 숲의 소리가 그리워 운동화 끈을 졸라맨다.
길섶에 납작 엎드린 마른 풀은 바스락거리고, 한 계절 푸르렀던 숲은 저물어 가는 햇빛 속에 황량하다. 잎이 무성하던 나무도 듬성듬성 바닥을 드러낸 머리숱처럼 헐벗어 차갑게 느껴진다. 눈길 닿는 곳을 따라간 마음은 벌써 앙상한 겨울 나목을 떠올리며 고요의 늪에 빠진다. 발길에 밟히는 낙엽이 가슴을 더 시리게 한다. 대설(大雪) 지난 숲은 명절 다음날 가족들이 뿔뿔이 빠져나간 뒤 혼자 앉은 거실처럼 횅하다.
시린 하늘을 이고 있는 은사시나무 숲길에 들어선다. 허옇게 껍질 벗어진 몸통, 한 장 남은 섣달 달력을 보는 듯 허전하고 안타깝다. 여물어 가는 나이 탓일까? 걸음의 경쾌함도 예전 같지 않다. 실체를 모르는 우울의 그림자가 내내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다. 찌를 듯이 허공으로 뻗어 있는 가지 끝을 올려다본다. 가만히 두 팔로 나무를 안는다. 진한 온기가 없어도 맑은 기운이 전해온다. 잠시 눈을 감고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작년부터일까? 몸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자연스러운 세월의 현상이라는 지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반기를 든다. 늘 어제가 그립고 오늘은 답답하다는 날이 이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수없이 들지만, 심신이 따로 움직이니 삶의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삶을 8단계로 나누었다. 내가 접어든 단계는 마지막 단계이다. 여생을 앞두고 살아온 삶을 점검하고 통합하는 시간이다. 좋은 점은 지난날 잘못이나 결정 등을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자아 통찰을 이룰 수가 있다. 반대가 되면 절망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 삶은 부정적인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좌절은 진화와 변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좌절을 통해 우리가 성장하고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한다. 지금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비교하지 마라.’ ‘따지지 마라.’ 갑자기 싱크대 위에 붙여진 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암자의 가르침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에는 생각 없이 보던 글이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 내게 뒤통수를 ‘탁’ 치는 말이 아닌가. 돌아보면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평범하지만 큰 탈 없이 직장에서 은퇴하고, 인생의 황금기라는 삶을 누리는 시기이다. 몇 해 전부터 건강에 빨간불이 몇 개 켜졌지만 아직은 견딜 만하다. 왜 나보다 좋은 환경과 비교만 하고 남에게 따지기만 하는 마음만 가졌을까?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힘이 좀 들지만 이렇게 산행도 하고 있지 않은가? 왜 낡은 생각에 허우적거리고 있었을까? 노화라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갈림길 너럭바위에 앉았다. 산 정수리 쪽 하늘 아래 세월을 감돌아 흐르는 능선 길이 눈에 들어온다. 새털구름과 마주한 숲길에는 세속의 찌꺼기가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본다. 건너편 나뭇가지에서 황금빛 가슴 털을 가진 산새 한 마리, 청아한 지저귐으로 귀를 간질인다. 조금 있으니 잿빛 나래를 가진 박새가 겨울 산을 노래한다. 유튜브에서 즐기던 경쾌한 현악 연주에 빠진 것 같다. 세상이 아름답다. 귀여운 새들의 연주에 취하니 심신이 덩달아 환해진다. 새로움으로 몸이 가벼워진다. 올라올 때 듣지 못했던 계곡물 소리가 그늘을 밟고 은은하게 울린다.
아래편에서 느린 걸음으로 지팡이를 짚고 한 사람이 올라온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가벼운 눈웃음으로 오가는 인사말이 정겹다. 팔순이 넘어 보이지만 하회탈 닮아 싱긋 웃는 얼굴에서 긍정적인 삶의 연륜이 보인다. 잠시 나눈 대화에 편안해진다. 내려가는 길에 다시 은사시나무 숲에 들어갔다. 그늘이 짙어졌지만, 나무껍질은 여전히 허옇고 투명하다. 사랑하는 심정으로 포근히 안고 귀를 대 보았다. 따뜻한 숨소리가 들린다. 허연 몸통에서 황금빛 밝은 에너지가 뿜어 나온다. 새롭다. 새봄이 오면 길어 올릴 수액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올라 올 때 느끼지 못한 기운이 늑골 아래까지 스며온다.
콧노래가 나온다. 잃었던 내 안의 긍정 에너지를 찾은 즐거움일까? ‘한오백년’ 민요 한 자락 길게 숲을 헤집으며 산길을 내려온다. 푸른 이끼 낀 바위에서 손 비비던 다람쥐 한 마리가 바쁘게 지나간다. 나도 손 흔들어 인사한다. 귀엽고 예뻐 보고 있는 내 의식도 아늑해진다. 새우 허리처럼 굽은 샛길이 올라올 때보다 폭신하다. 울긋불긋한 지난 계절에 느끼지 못한 아름다움이 몸에 스민다. 더딘 걸음이지만 향긋한 숲길이 황홀하다.
길은 자욱한 숲 내음으로 쫄깃하고 간간하다. 서늘한 하늘을 이고 있는 나목들과 말을 주고받는다.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지난날을 꾸짖는다. 물, 바람 자연 소리를 받아들이고 순리를 사랑하면 자유롭다고 속삭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정조 때 유한준 님의 글을 되새긴다. 앞서고 뒤따르는 순서를 걱정하지 않아도 맑은 몸과 마음이 숲길에 소리 없이 스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