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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지 석불비상(보물 제946호)과 산신각 뒤에 핀 매화들이 봄이 완연해 졌음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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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 청매 등 1백여 매화나무 서생 통일신라시대 창건 후 폐허, 1980년대 중창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촬영
전남 순천 금둔사에 진분홍빛 홍매화가 피었다. 금둔사에는 매년 봄날이면 홍매, 청매, 백매 등 삼색 매화가 흐드러진다. 이렇게 다양한 매화가 피는 사찰도 드물다. 매화는 살을 에는 겨울 추위를 겪지 않으면 향기를 뿜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인고의 상징이다. 모진 시간을 견디고 세상에 다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나온다.
하나둘 늘어난 금둔사 매화나무는 현재 100여 그루에 이른다. 납월매라고도 하는 납매 6그루는 금둔사의 또다른 성보(?)다. 납월은 음력 섣달을 의미하는데, 납매는 이때부터 피기 시작한다.
엄동설한에 몸이 움츠러드는 양력 1월 말부터 3월까지 연분홍빛의 자태를 뽐낸다. 음력 12월에 피는 매화이기에 열매가 없다. 벌과 나비가 없는 추운 날 꽃을 피우는 그 특성으로 인해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대신 진한 향기를 선사한다. 납월매만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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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옆에 진분홍 홍매화가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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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납매는 금둔사에서만 볼 수 있다. 낙안읍성에 있던 늙은 납매의 씨앗을 옮겨다 심었는데, 모종은 죽고 금둔사 납매만 살아남았다. 그래서 금둔사에는 봄이 가장 빨리 온다. 바로 납매 때문이다. 금둔사 납매는 한데 모여 있지 않다. 대웅전을 비롯해 태고선원 등 경내에 흩어져 있다. 하지만 둥치 부근에 이름표가 걸려 있어서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이렇게 2개월 동안 납매의 고운 꽃송이가 피고 지기를 계속하면, 어느덧 추위가 물러가고 다른 매화들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비로소 금둔사가 은은한 매화 향기로 가득차는 진짜 봄이다.
금둔사의 또 다른 매화는 백매(白梅)다. 청매와 백매는 꽃잎이 똑같이 하얗지만, 꽃받침의 색상이 초록색과 팥죽색으로 다르다. 세 가지 색깔의 매화꽃은 4월 초까지 금둔사를 아름답게 수놓아 준다.
“수행자를 상징하는 꽃이 바로 매화입니다. 선비에게는 지조가 필요하듯 수행자에게는 겨울날 반복된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매화야 말로 수행자의 올곧은 심지(心志)를 상징할 수 있지요” 주지 지허 스님은 매화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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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 스님이 1984년 가람불사를 일으킨 후 정비된 금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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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향기 가득한 금둔사는 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창건됐으나 오랫동안 폐허 상태였다가 1980년대 중창됐다. 지허 스님은 폐사 됐던 금둔사에 1984년 처음 들어와 천막생활을 시작으로 가람을 일으키는 불사를 시작했다. 그 후 여러 인연들을 통해 개인 땅을 매입하고 차(茶)를 제조해 ‘뿌리깊은나무’에 보급 하면서 대웅전과 일주문, 태고선원, 약사전, 설선당, 산신각, 범종각 등을 복원 중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석조불비상 외에는 대부분의 전각이 근자에 세워졌다.
해발 679m의 금전산 서쪽에 위치한 금둔사는 1530년(중종 25)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금둔사 재금전산(金芚寺 在金錢山)’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찰이 존속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정확한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근래 들어 순천대 박물관측이 금둔사 지층 120∼150㎝서 창건 당시 건물지 지층을 발굴했다. 지금까지 유구층서 4동의 건물지를 확인했고, 초석·기단·연화문 숫막새·주름문늬병 등의 유물도 발견했다. 이런 것들로 미뤄볼 때 박물관측은 금둔사가 9세기경 창건된 사찰임을 확인했다. 금둔사에는 통일신라에 조성된 ‘금둔사지 삼층석탑(金芚寺址三層石塔, 보물 제945호)’과 ‘금둔사지 석불비상(金芚寺址石佛碑像, 보물 제946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금둔사는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영화 촬영 장소로도 알려졌는데,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인〈천년학〉도 이 곳서 촬영했다.
“수행과 운력은 不二”
‘반농반선(半農半禪)’. 즉 참선과 노동을 수행자의 본분으로 삼는 지허 스님은 반농반선의 주창자이다. 하지만 편한 것만을 찾으려는 후학들과 불교의 현실에 스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지금 불교의 현실이 사회의 흐름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된 사회니까요. 그래서 출가의 길을 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스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노동을 안 하려고 합니다.”
수행과 운력을 늘 생활처럼 함께하는 스님이지만, 지허 스님의 또 다른 이력은 바로 한국 전통차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우리 전통의 차는 뿌리가 깊고 단단해 맛과 향기 일품입니다.”라는 스님은 제다법을 큰스님들로부터 배웠다. 금둔사에 온 후 스님이 만든 차가 ‘뿌리깊은 나무’에 납품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주변 가 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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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읍성 |
▲순천 낙안읍성=순천 낙안읍성은 1983년 사적 302호로 지정됐는데, 사적으로 지정되기까지 故 한창기 선생이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낙안읍성은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서문을 지나 남문으로 내려오는 돌계단에서 낙안읍성의 풍경이 가장 잘 보인다. 남문까지 길게 이어진 성곽 길과 초가집, 흙길 등 온통 누런빛이 감도는 읍성의 풍경이 예스럽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2011년 개관한 이곳은 평생 우리 것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한 브리태니커 한국 대표이사를 지낸 故 한창기 선생의 열정과 고집이 깃든 공간이다. 선생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팔아 많은 수익을 남겼고 그 수익금으로 한국 전통문화 사업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문헌 〈용비어천가〉에서 따왔으며, 창조적이고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잡지 형식을 추구한 〈뿌리깊은 나무〉였다. 하지만 이 잡지는 안타깝게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1980년 8월 강제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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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
잡지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유물 전시실과 야외 전시 공간, 백경 김무규 선생 고택으로 구성된다. 유물 전시실은 선생이 만든 잡지의 이름을 따 각각 뿌리깊은나무(상설 전시실), 샘이깊은물(기획 전시실), 배움나무(세미나실)로 나뉜다. 전시실에는 유물 800여 점이 전시된다.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의 기와, 옹기, 토기에서 청자, 백자, 불교 의식 용구, 민속용품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문화재급 유물도 있지만, 아직도 온기가 남았을 것 같은 서민 생활용품도 제법 많다. 서까래의 목재를 보호하기 위해 끼우던 서까래막새, 청동기시대의 별 모양 돌도끼, 한글과 한자가 혼용된 ‘정순왕후국장반차도’ 등 특이하면서도 희소가치 있는 유물들이다.
▲김무규 선생 고택=박물관 주변에 멋들어진 한옥 한 채가 있다. 1920년대에 지어진 백경 김무규 선생 고택으로, 전남 구례에서 옮겨왔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가 눈먼 뒤 아버지 유봉과 함께 머무르는 곳으로, 하얀 한복을 입은 이가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거문고를 타자 유봉이 구음을 부르는 장면이 이 집에서 촬영되었다. 고택은 전형적인 양반 상류 주택으로 사랑채와 안채, 사당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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