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었던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아웃라이어』(노정태 역, 김영사, 2009.)는 책의 제목부터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아웃라이어(outlier)'의 사전적 의미는 '본체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따로 분류되는 사물, 또는 모집단의 속성과 확연히 구분되는 표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역자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책의 맨 첫 페이지에 단어의 뜻을 친절하게 기술하면서 책의 내용 구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책에서 말하는 아웃라이어는 뭔가 일반적인 현상과는 다른 특별한 사실들에 대하여 관련 증거를 제시하면서 독자들을 이해시키려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체 9개의 장으로 나눠진 주제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시하고 으레 그러려니 해 왔던 많은 현상들을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준 내용은 1997년 대한항공 747기가 괌 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하여 228명이 사망한 사고의 원인을 상하간 소통 부재라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비밀에 기인한다고 규정하였다는 것이었는데...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모두 신선한데다 그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증거들이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을 뿐 아니라, 문화인류학자 해리스(Marvin Harris)의『문화의 수수께끼』 시리즈맹키로 관심 가는 주제에 더한 경쾌한 내용 전개가 일품이었다고 하겠다. 그러한 영향으로 각종 강연 및 연수에서도 책의 내용이 무수하게 인용되었으니 가히 아웃라이어 신드롬이었다고나 할까...
이 책에 나열된 9개의 장(章) 가운데 세계적으로 특히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었던 건 아마도 '제2장 1만 시간의 법칙'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어떤 한 분야에 집중하여 1만 시간의 정교한 훈련을 거치면 그 방면의 대가(大家)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인간이 당초 어떤 인지적 능력이나 체력, 또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조건이 없으니 이 얼마나 장밋빛 전망이자 꿈이란 말인가? 해서리 책을 읽은 세계의 독자들은 누구나 많은 시간을 한 분야에 집중 투자하면 대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혹할 수밖에 없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글래드웰이 제시한 이 법칙에 유독 많은 반론이 제기되고 있음을 본다. 딱히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던 이 법칙이 현실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불순한 의도까지 개입된 게 아닌가 하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1만 시간의 법칙에 관하여 지금까지 제시된 몇 가지 비판을 들어보자.
먼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워라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법칙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론일 뿐 아니라, 고용주 또는 기득권 세력이 노동자 또는 피지배 계층에게 일을 시키려 그들의 삶을 희생하도록 유도하는 이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단다.
다음으로 위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이 사회학적 관점으로 볼 때 갈등론(conflict theory)의 또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지배계층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지키고 권력의 대물림을 위하여 교묘한 언어의 유희로 "너희들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상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어."라며 하류층이 처한 현실을 아무런 저항 없이 인정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한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결정적인 자료들은 1만 시간의 법칙이 더 이상 유효한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2016년 체육 분야 33개의 연구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학(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연구팀은 노력이 성공 요인으로 기여하는 비율은 18% 정도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연구팀은 어떤 분야에 대한 성공을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 성격, 학습환경 등이 보다 중요하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프로 농구선수 드레프트에서 최상위 순번에 지명된 선수가 프로야구 드레프트에서도 최상위급의 순번으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주는 게 아닐까 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이 무너진다고 해서 글래드웰의 모든 주장이 허구일 수는 없고, 또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일부러 들먹이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의 인류의 삶에서 어떤 일을 하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주장은 변함 없는 진리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가 저절로 떨어져 내 입에 쏘옥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란 건 누구나 인정하는 또 하나의 진리 아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