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
(한윤섭 글∥서영아 그림∥문학동네)
아주 자유롭고 평화로운 땅, 언제나 파랗게 빛나는 바다. 술은 푸르고, 햇살은 감미로운 곳. 아주 오랜 시간 거북, 이구아나, 핀치, 펭귄, 펠리칸, 가마우지의 땅이었던 곳. 해리엇은 가족과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배가 우리의 바다 위에 떠 있었고, 사람들이 우리의 모래를 밟았다. 사람들이 우리의 땅으로 왔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맞서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와 맞선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우리 눈에 비친 사람의 모습은 우리와 같은 하나의 동물일 뿐이었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순순히 그들이 섬에 머무는 것을 받아들였다.
해리엇과 친구들은 누구도 사람들을 경계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배가 바다에 나타나고, 땅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져도 이들은 누구하나 아픔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사람이라는 동물이 자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느다는 것을 깨달은 건 낯선 냄새의 정체를 알고 난 후 부터다. 어느 날부터인가 섬을 가득 채운 낯선 냄새, 그리고 하나 둘 사람들의 손에 잡혀 커다란 배로 옮겨지는 동물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동물들의 살을 불에 익혀 먹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아주 교묘하게 동물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수영을 못하면서도 바다에 떠 있었고, 빠르지 않으면서도 앞에 가는 동물을 잡을 수 있었고, 자신들보다 크고 힘이 센 동물들을 쉽게 들어 올리고, 한쪽 손에는 늘 무언가를 들고 상대를 위협했다. 그러나 사람이 동물과 가장 달랐던 점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리엇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그의 과거 이야기 중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너무 부끄럽고 고통스러웠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웃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은 끔찍하면서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잔혹성이 그간 얼마나 많은 우리보다 약한 존재에게 고통을 안겨왔던가. 또는 인간 세계 내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결국 해리엇도 배에 태워진다. 그리고 그 배는 아름다운 섬을 떠나 어디론가 향한다. 그 배의 이름이 ‘비글호’이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진화론>의 다윈이 탔던 그 배. 다윈은 이 배를 타고 아름다운 섬들을 보며 아래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띄우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 바나나와 커피나무 숲에서 코코아 열매 아래서 산책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들꽃들을 만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던 곳이었지만 이 섬이 제게 주는 지식과 기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 유럽을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열대의 풍경을 설명하는 것은 장님에게 색깔을 설명하는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 제가 새로운 세계를 걷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다시 섬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해리엇이, 그리고 그 배안에서 물도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해 죽어갔던 수많은 동물들이 이 편지를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과연 인간이 이 지구에서 누릴 수 있는 권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것은 누가 허락한 것인가.
찰리라는 원숭이도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손에 붙잡히고 만다. 찰리에게 숲도 해리엇에게 그 섬과 같았다. 언제나 엄마와 함께였고, 그곳에서 충분히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원숭이들을 보이는 대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동물원 주인의 아들인 한 아이의 손에 맡겨진다.
“내 눈을 봐야지. 친구끼리는 눈을 보고 얘기하는 거야.”
찰리는 신경질적으로 아이를 향해 이빨을 내보였다. 아이는 그런 찰리가 재미있다는 듯 계속해서 고개를 돌렸다.
찰리의 일그러진 얼굴이 천천히 펴졌다. 아이는 팔을 내려 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야 착하지. 찰리! 네 이름은 이제부터 찰리야. 알았지? 찰리, 우린 친구가 된 거야.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야 돼.”
이 부분을 읽으며 참 익숙했다. 동시에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꼈다. 우리 집 강아지 ‘행복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인간과 동물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혹시 인간만의 만족은 아닌 걸까?
찰리는 결국 아이가 공부 때문에 멀리 떠나고 동물원에 보내진다. 그곳에서 170살의 해리엇을 만난다. 개코 원숭이의 위협에도 해리엇의 따뜻한 한 마디와 눈빛에 찰리는 나날이 마음의 키가 자란다. 그리고 해리엇이 175살이 되던 해,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하게 된다.
해리엇은 언젠가는 바다가 자신이 살던 섬까지 데려다줄 거란 꿈을 버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동물원에 갇혀 있는 몸으로, 게다가 이제는 죽음을 앞둔 약한 몸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찰리가 묻는다.
“해리엇, 바다가 정말 당신을 갈라파고스까지 데려다 주나요?”
그러자 해리엇이 말한다.
“찰리,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바다가 그립지만 그건 그리운 바다일 뿐이야.”
다른 동물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우리의 찰리는 무어라 말했을까? 나는 요 녀석의 말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럼 바다로 가세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요. 너무 오래 기다렸잖아요.”
결국 인간이 빼앗은 해리엇의 꿈을 똑같이 인간에게 행복을 빼앗긴 찰리가 찾아주려는 것이다. 이 말은 가끔 꿈 때문에 좌절하고, 비틀대는 나를 향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넓게 열려 있잖아.’
해리엇은 동물친구들의 도움으로 한발 한발 바다를 향한다. 죽음을 앞둔 그의 몸은 매우 느렸지만, 바다를 향하는 그 의지만큼은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바다가 날 갈라파고스까지 데려갈 거야.’
눈이 감기고 세상의 빛이 사라졌다. 해리엇의 몸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해리엇은 갈라파고스에 닿았을까? 그의 몸은 어쩌면 그대로 바다에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꿈만은 반드시 그 섬에 닿아 앉았을 것이다.
해리엇은 정말 가슴 뛰는 동화였다. 울고 싶고, 울고 싶고, 참 따뜻한 동화였다. 내가 인간임을 자책하게 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했지만, 그렇기에 내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리엇, 찰리! 너희와 함께 꿈을 노래하고 싶어.
<읽은 작품>
속 좁은 아빠
실험가족
해리엇
장건, 실크로드를 개척하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아직 못 읽었는데 읽어봐야겠네요
'사람이 동물과 달랐던 점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웃을 수 있다는거' 이 말이 사람에 속한 저로서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