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경찰서장 출신 사위의 ‘경로효친(敬老孝親)’
― 경찰관 아내로 살아온 누님의 ‘사위 사랑’ 이야기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동생, 나는 사위가 고마워도 표현을 하지 못하고 사네. 그러니 더욱 미안하지.”
팔순을 바라보는 누님의 전화였다. 평소 사위에 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던 누님의 이 같은 말씀을 듣고 동생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위에 대해 ‘고마운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하는 뜻은 어디 있는지 여쭸다.
“사위가 그러는데, 어르신들은 연세 드실수록 고기를 챙겨 드셔야 한다면서 냉장고에 고기가 떨어지지 않게 사다 넣어주니 고마운 일이지. 그뿐만이 아니야. 노인이 외롭고 쓸쓸할 때 자식 손자들만 그리워하지 말고 위안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면서 책을 보내 준다네. 장모를 위해 사위가 유익한 내용의 월간지도 정기구독 신청을 해주니 심심하지 않아. 그런데 이 못난 장모는 사위에게 고맙다는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니, 안타까운 일이지.”
그러면서 누님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처음 꺼내는 듯 속내를 털어놓았다.
▲ 누님과 사위 - 격무와 박봉의 경찰관 아내로서 남모르게 고생 많이 하신 「나의 누님」(尹具慶, 시니어모델)과 「현직 경찰서장 시절 사위」(김재선 전 총경 : 청양경찰서장, 대전서부경찰서장, 대전대덕경찰서장, 대전유성경찰서장, 홍성경찰서장 역임 ※ 사진과 경력 출처 : 조선일보 인물정보)
◆ 누님이 처음 공개하는 사위의 ‘따뜻한 마음’
“못난 내가 동생처럼 글을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할 수가 있나, 어려운 사위 앞에서 속에 품고 있는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있나, 그저 이렇게 멋없이 살아가는 게 미안해서 동생에게나 허물없이 얘기해 보는 거야.”
누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손수 글로 쓰진 못해도 남의 좋은 글은 매일같이 읽는다고 했다. 동생이 카톡으로 매일 같이 보내는 유익한 글이나 영상도 삶의 정서를 풍부하게 한다면서 고마워했다.
요즘 누님은 두 가지 종류의 글을 읽는다고 했다. 하나는 ‘조간신문’이고, 또 하나는 사위가 정기구독 신청해 준 ‘월간 잡지’라고 했다.
새벽에 배달되는 조간신문은 전체 기사는 물론 광고까지 죄다 꼼꼼히 읽는데 2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월간지를 읽고 또 읽고, 감명 깊은 글은 한 달 내내 여러 번도 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작 동생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을 털어놨다.
◆ 사위가 매달 보내 주는 ‘책 선물’의 의미
“사위가 보내 주는 책은 그냥 일반적인 보통 서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책을 펼쳐 읽을 때마다 사위의 따뜻한 성의를 생각하게 되지. 경찰서장을 지낸 사위라고 해서 남들은 정서적으로 삭막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도 몰라. 사위는 아내가 현직 경찰관으로 직장 생활을 하니 가정일도 자상하게 챙기고, 음식도 맛있게 아주 잘 해.”
좀처럼 사위 자랑을 하지 않던 누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보니, 그동안 내가 몰랐던 숨어 있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았다.
무엇보다 누님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위의 순수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어르신에 대한 공경’ 태도였다.
특히 사위가 냉장고에 넣어주는 ‘고기’도 고맙지만, 매달 보내 주는 ‘책 선물’에서 남다른 효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문득 부모님의 생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시골에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밤이 되면 부모님께 책을 자주 읽어 드렸다.
눈이 어두우신 부모님은 내가 책을 읽어드리는 것을 일상의 큰 행복으로 여기셨다. 누님도 이제 옛 부모님 연세가 됐다. 책을 좋아하는 집안 정서와 내력을 이어가는 것 같아 동생은 그저 말씀만 들어도 반갑고 즐겁다.
◆ ‘어른 공경’이 다산 선생의 ‘애민 6조’ 중 ‘제1조’인 까닭
그러고 보면 사위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아니, 사위의 이런 성심성의를 ‘센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집안 어른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은 센스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 바탕엔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이 몸에 밴 것이다.
‘효친’이란 본래 ‘제 어버이를 공경하고 떠받드는 것’을 말하고, ‘경로’란 ‘이러한 효친의 마음을 이웃 어른이나 노인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효친이나 경로는 단지 그 공경하는 대상만 다를 뿐, 공경하는 태도와 생활은 같은 것이다.
어쩌면 경찰서장이라는 한 지역의 치안을 책임졌던 고유의 직책 수행이 그런 생활 습관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과거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서 근무할 때 경찰 지휘관들의 ‘직무 철학’을 유심히 지켜본 바가 있다.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관내 경로당이나 노인정을 파악하는 경찰서장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애민육조(愛民六條)’에서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이 ‘[제1조] 양로(養老 : 어른을 공경하다)’ 정신 아닌가.
그러고 보면 동생이 바라보는 내 누님은 행복한 노인이다. 어르신을 극진히 공경할 줄 아는 사위를 둔 것만으로도 누님은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할만하다.
◆ 경찰관 아내의 소박한 생활 철학과 남모르는 사연
내 누님은 한평생 ‘경찰관 아내’로 살아왔다. 누님이 경찰관 아내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동생은 누구보다 잘 안다. 박봉의 말단 경찰 공무원 아내로서 여러 시동생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던 어려운 시절에는 구멍가게를 했다.
채소나 생선을 팔면서 억척스럽게 가계를 꾸려 나갔다. 돌과 화염병이 난무하고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격동의 시절에는 귀가가 유난히 늦는 수사과 형사 남편을 기다리면서 밤새워 뜨개질했다. 남편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뜨개질로 승화시킨 것이다.
▲ 《윤승원의 「청촌수필」》 (일러스트 이정운)
누님은 경찰 가족으로서 남편 못지않게 긴장하면서 매사 조심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공직자 아내로서 반듯한 생활 철학을 바탕으로 이웃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이어왔다.
내조를 잘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밖에서 일하는 남편과 자식들이 집안 걱정하지 않도록 알뜰하게 살림 잘하고 손주를 정성껏 보살피는 것이라는 소박한 일념으로 살아왔다.
◆ 사위에게 특별히 고마워하는 누님의 ‘진정 어린 고백’
우여곡절도 많았다. 뜻하지 않은 풍파도 겪었다. 암 투병도 이겨냈다. 그러나 이제 팔순 노년에 이르러 까닭 모를 외로움과 쓸쓸함이 밀려온다고 말씀하신다.
이 같은 노년의 허전함을 사위가 세심하게 살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비싼 고기를 자주 사다 드리고 호화로운 음식점에 모시고 가는 일만이 효가 아니다.
외로운 노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일상적인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 크고 작은 집안 소식도 수시로 전하면서 안부를 여쭙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효심은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해 드러난다. 노인이 적적하지 않도록 정서적으로 유익한 책을 골라 매달 보내드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누님이 동생에게만 살짝 전하면서 사위에게 진정 어린 마음으로 고마워하는 뜻을 뒤늦게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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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삼촌으로서 늦게나마 사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사위 효심에 대한 누님의 깊은 사랑을 뒤늦게 알고, 동생으로서 감동하여 이런 글을 쓴다.
첫댓글 효는 대물림한다고 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경로효친 정신을 그 자녀들이 이어 받고,
그 후손들은 또 아름다운 가문의 전통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겠지요.
경찰서장을 지냈다면 사회지도층인데
일상 생활에서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니,
한 가정은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경로효친 모범 사례가 될 것입니다.
'효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것'이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쉽지 않은 것이 또한 효의 실천입니다.
그러나 일상 생활을 통하여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부모님은 고마워하면서 흐뭇해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