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14,6
굼뜰 때가 있습니다. 게으름이 생깁니다. 게으름의 이유는 육의 편함에 머물고자 할 때 입니다. 이때 굼뜹니다. 굼뜸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선호하거나 그동안 별로 해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때 굼뜹니다. 또 굼뜸이 있습니다. 취향도 아니고 그것이 탐탁하지 않을 때입니다. 또 있습니다. 진리와 정의, 사랑과 평화의 일에 굼뜹니다. 이 일들은 수고하고 희생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한 피해 의식 때문에 자연히 굼뜸, 그 모드로 갑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따라 가다가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로 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굼뜸은 진리의 불참의 굼뜸입니다.
진리는 부지런함에 있습니다. 게으름은 참된 길로 가는 것을 멈추게 하고 잊게 합니다. 끝에는 그를 비참하게 합니다. 게으름을 이길 때 참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오늘 게으르고 있다면 진리의 길을 멈추고 있는 것이고, 결국은 그 길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진리는 진리의 때가 있고 시간이 있고 자리가, 그리고 만남이 있습니다.
용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굼뜸. 그 게으름에서 용서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게으른 이는 용서를 미룰려고 합니다. 용서의 게으름은 자비와 사랑에서도 거리를 둡니다.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멀리 치워놓습니다. 그러니 용서에서 먼저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에서 굼뜨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용서에서 부지런한 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이입니다. 자신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진심으로 용서함에 있어서 부지런함은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그와 풀어가는 데도 부지런합니다. 그는 게으르지 않고 굼뜨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이는 그에게 다가가고 그가 스스로 또한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용서에 부지런한 이는, 다른 사람이 자신과 그리고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하고 곧 그가 자유를 얻고 행복해 지도록 그 일에서 게으르고 굼뜨지 않습니다. 너, 상대가 그 자신과 화해하고 그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때, 또한 우리를 만날 수 있고, 다시금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용서는 부지런함입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선을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다가가고 또 그에게 다가갑니다. 그런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통해서 그 선을 이룹니다. 용서는 굼뜨지 않고 게으르지 않습니다. 용서는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금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풀어가는 것에 굼뜨지 않습니다. 화해하는 데 게으르지 않습니다. 바로 그 일,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고 만남을 통해서 일을 합니다.
주님, 오늘 화해의 길에 부지런한 자 되게 하소서. 오늘 풀어감에서 성실하게 하소서. 용서에 있어서 바로 시작하게 하소서. 주님, 나의 풀어감이 선의 이룸이 되게 하소서. 나와 형제와 모두에게 구원이 되게 하소서. 형제의 죄를 용서함이 그의 죄의 사라짐이 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