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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12-14(249) “빚 갚으며 삽시다” 2025. 12. 14.
저는 사람을 사귈 때에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많이 배웠느냐? 똑똑한 사람이냐? 전라도냐? 경상도냐? 이런 것 그리 따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계속 알고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질관을 봅니다.
쉽게 말하면 그 사람이 돈 문제를 처리하는 모습을 봅니다. 돈 계산이 명확하고 분명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까이 해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사람입니다. 조금 배우지 못했어도, 남들보다 자랑할 것이 없어도, 가정환경이나 여건이 좋지 않아도, 돈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사람이라면, 저는 그 사람을 믿고 신뢰합니다. 게다가 제가 믿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추천까지 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판단합니다.
반대로 돈하고 부딪치면, 흐릿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 있는 사람입니다.
제 아무리 많이 배우고, 제 아무리 똑똑하고, 제 아무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돈 문제가 명확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돈 문제가 명확하지 않는 사람은 내 뒤통수를 치며 나를 물 먹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돈 처리를 함에 있어서 흐릿하고 명확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과 계속 사귀다가는 마지막에는 내가 필히 큰 상처 받게 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져도 명확해야 합니다. 믿는 것 같아 다시 쳐다보면 안 믿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믿는 흉내를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3:15절에서 예수님은‘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명확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물질 문제를 분명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돈 앞에 깨끗하고, 정직하고, 물질 문제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돈은 인생을 시험하는 시금석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해서 분명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 때문에 내 신앙생활도 망치고 인생도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빚 갚으며 삽시다’입니다. ‘빚’이라는 글자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부득이 하게 빚을 지고 살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빚을 지고 살아 보셨지요? 빚지고 살아가는 느낌이 어떠합니까? 제가 이러쿵 저러쿵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빚지며 살아가는 인생은 인생 그 자체가 지옥 같은 인생입니다.
저 또한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물질로 인한 큰 빚을 지고 산 기억이 없습니다.
자존심 강한 제 성격상 친구들에게 손을 벌려 돈을 빌린 적이 없습니다. 노회에 가서 보면, 저희 교회보다도 더 재정적으로 자립된 교회가, 노회에다가 <재정 지원 청원서>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행동이 그 교회에 다니는 당회원들과 성도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기껏 도움 받아 보았자 한 달에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입니다.
진짜 힘들어 하는 목회자와 교회가 받아가야 하는 그 재정을 그렇게 챙겨 갑니다. 저는 그것을 <거지 근성>이라 판단합니다. 무엇을 해도, 오로지 받을 생각만 합니다. 이런 분은 물질 축복을 크게 받지 못합니다. 받을 생각보다는 나누어 주는 생각을 해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물질의 빚은 없어도, 달리 생각하면 다른 빚은 많이 있는 목사입니다. 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입고 있기에, 하나님에게 은혜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성도님들에게 늘 풍성한 사랑을 받고 있기에, 사랑의 빚도 많이 지고 있습니다. ‘은혜의 빚, 사랑의 빚이라는 말’은 부족한 제가 다 갚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빚은 갚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선지생도(신학생) 한 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신학생이 공부를 하는 도중에 덜컥 죽어 버립니다. 남아 있는 것은 아내와 아들 두 명과 그 동안 사용하였던 많은 빚만 남아 버립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빚은 어디까지 따라간다고 말합니까? 빚은 저승까지 따라간다는 말이 공히 있습니다. 선지생도의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빚쟁이가 와서 빚 독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협박까지 합니다.
왕하 4:1절,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빌려 쓴 돈을 당신이 갚지 못하면, 당신 두 아들을 노예로 팔아 버리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이 사실을 엘리사 선지자가 알게 됩니다. 어떻게 빚을 처리할까요? 여인의 집에 있는 모든 빈병을 가지고 오게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빈병에다가 기름을 가득 채우는 기적을 베풉니다. 그리고는 기름을 팔아다가 빚을 갚으라는 말을 합니다.
7절입니다.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적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누르는 육신의 빚, 영적인 빚에서 해방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들 두 명과 엄청난 빚 밖에 없었지만, 여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문제의 해결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기 바랍니다.
본문 12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어떤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인가요? 돈을 빌렸다는 말인가요? 본문에 등장하는 <빚진 자>라는 말은, 남에게 돈 빌려서 빚쟁이가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빚 진자라 말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에게 빚을 졌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에게 ‘너무 큰 은혜와 복을 거저 받아서 그것이 바울의 마음에 늘 빚처럼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도 바울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에게 빚진 자’라는 마음의 영적 부담을 느끼고 가지길 원합니다. 이런 영적 부담감은 신앙생활을 살아있게 합니다.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항상 돈 빌린 사람 앞에서는 기 죽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채권자(債權者-빚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와 채무자(債務者-빚을 갚을 의무가 있는 사람)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중에 빚을 져 본 분들은 절대적으로 느끼는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빚을 지고 있는 이런 채무자의 심정으로 ‘채권자인 하나님 앞에서 빚을 갚는 올바른 행동하라’고 권면합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빚 진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성도는 딴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모습을 보세요.
자기 잘난 것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도 섭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나니 견딜 수 없는 거예요. ‘죄인중에 괴수요. 살인자요 흉악자인 내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저 감사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구약 율법을 따르다가 지옥갈 사람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해 주신 것이 은혜의 빚으로 남은 것입니다.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니 너무 너무 감사한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결심합니다. ‘어떻게 하던지 내가 하나님 은혜를 갚아보리라.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를 내가 어떻게든 갚아보리라’이것이 바로 바울에게 빚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인간학에서 보면, 인간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육체와 영혼>입니다. 육체는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육체는 땅의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누구나 다 똑 같아요. 육체만 떼놓고 보면 땅의 것 좋아합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이 가진 육체의 욕망입니다. 누워도 그냥 잠시 눕는 것 보다는 아예 대자로 편하게 드러누워 긴 시간 잠을 자고 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어떡하든지 땅과 접촉이 더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육체는 더 편안해 집니다. 결국 이런 사고방식은 죽은 다음에도 땅속에 들어가 영원히 쉬는 것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런데 땅속에 들어가 영원히 쉬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인생을 누가 땅속에서 끌어 올려 하늘로 데리고 가십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부활시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값없이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늘 시편 116:12절에 나오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는 말씀을 낭송하였다고 합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말씀으로 크게 3번씩 외치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할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에게 빚진 것을 다 갚을까?”항상 이 마음으로 사셨기에, 일생동안 부귀영화 자리를 마다하였습니다. 여수에 있는 애양원에서 사회와 가족들이 버린 나환자들을 껴안고 기도해 주었고, 고름 나는 문둥이들 상처를 주저함 없이 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25년 12월의 중순에 머물고 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이 한해가 넘어가기 전에 어떻게 갚은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하지 못하였고, 맡겨진 직무에 얼마나 충성 봉사하였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복음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그 사람을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충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내가 지고 있는 이 영적 빚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요?
1. 복음 전파함으로 빚을 갚아야 합니다.
롬 1: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 이렇게 다양하게 열거했지만, <모든 사람>하나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내 마음에 든 사람에게만 빚진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고 내가 미워하고, 내가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조차도, 그 사람에게 내가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밎진 자로서 이 사랑의 빚을 갚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노력과 행동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이 사명이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도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 빚 갚은 일입니다.
부산은 전국 최저의 복음화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산 전체 인구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숫자는 7%가 채 되지 않습니다. 90%가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삼광사신도숫자 35만) 이렇게 노력해도 북음화 비율이 10%를 못 넘기니 부산은 버린 도시라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90%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으니, 전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전도의 대상자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어디에 내 놓아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 분들이라 판단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 교회에 대한 헌신, 물질로 헌금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그 무엇 하나라도 타 교회 교인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늘 기도하는 안타까운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다들 내성적이고 자신을 드러내는 분이 아니라서 타인에게 전도하는 것을 소심하게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도 전도의 은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복음의 빚진 자로서 이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2.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돈거래를 하면 꼭 주고받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차용증서>입니다. 차용증서 써 보신 분들은 아시지요~ 차용증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 이름, 돈을 빌려 간 사람 이름, 주고 받은 돈의 정확한 액 수, 그리고 빌린 돈을 언제까지 갚을지 상환 날짜를 적고, 돈에 대한 이자요율을 적습니다. 이뿐 아니지요. 돈을 제 때에 갚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도 적습니다. 그럼 이것이 끝인가요? 아니지요~
모든 것을 다 적고 난 뒤에 서로 틀린 곳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그리고 자신이 가진 도장을 꾹 찍습니다. 그리고 한 장씩 나눠 갖습니다. 돈을 빌렸다는 흔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의 몸에 빚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갈 6:17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의 흔적이 무엇이에요?
예수님 몸에는 우리를 위한 흔적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 흔적, 손과 발에는 못 박힌 흔적, 옆구리에는 창에 찔린 흔적이 있습니다. 주님 눈에는 우리를 위해 흘린 눈물의 흔적, 주님 어께에는 십자가 지신 흔적, 주님의 몸에는 채찍에 맞은 흔적, 주님 얼굴에는 우리 때문에 침 뱉음을 당한 흔적, 주님 무릎에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흔적, 예수님의 몸 전체는 우리를 위한 사랑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위한 흔적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다.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나는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일평생 동안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 갈테다. 그러니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 사랑의 빚을 이미 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백방으로 노력하며 또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 행동에, 예수님의 흔적이 아로새기길 간절히 원합니다.
몇 십 년 예수 믿었다고 자부하였는데, 내 이마에서 주님을 위해서 흘린 땀 한 방울이 없다면 잘못 믿은 것입니다. 몇 십년 교회에 출석했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성도가 지고 있는 아픔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는 헛된 걸음 한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홀로 계단 청소를 담당하시는 구집사님을 볼 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리고 일찍 오셔서 예배당을 청소하고, 강대상을 깨끗이 정리하는 두 분 권사님의 모습, 점심 식사를 위해 한 주간 동안 애간장을 끓이면서 정성으로 반찬을 준비해 오시는 권사님과 집사님의 손길들,
저는 이런 모든 수고로움이 바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는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이 아름다운 예수님의 흔적이 하나님의 빚을 갚은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바울은 로마서 10:15절에서‘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발이 아름답고, 좋은 소식만 가득 전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느끼는 여러분들이 되길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