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 청전 스님
지리산에서 히말라야까지 ‘민중’ 속으로 걷고 또 걷고
만행 중 만난 ‘눈물나게 하는’ 민초들, 그가 낳은 ‘사리’
히말라야에서 사는 청전 스님(57)은 많이 걸었다.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는 유명 산악인들의 대부분은
정해진 루트만을 다니지만 그에게 정해진 길은 없다.
히말라야는 넓다. 같은 히말라야지만
그가 사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접경 라닥까지는
비행기와 차를 갈아타고도 꼬박 3일이 걸리는 거리다.
그 길을 산맥 6개를 넘어서 걸었던 그다.
티베트에 있는 성산 카일라쉬를 순례할 때도,
석 달 동안 걸어서 도달할 만큼 그는 걷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다.
한국서 보낸 물품 싣고 오지 누비며 나눠줘
티베트의 망명 지도자 달라이라마에게 꽂혀
달라이라마를 스승으로 모시며 인도 히말라야에 산 지 22년.
그는 티베트 밀교를 수행한다지만
그가 한 진정한 수행은 순례이자 만행인지 모른다.
인도와 네팔, 부탄, 파키스탄, 티베트, 중국에 걸쳐 있는
히말라야의 곳곳을 아마도
그처럼 많이 누빈 사람도 세상엔 흔치 않을 것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한국의 지인들이 보내준
의약품과 안경, 내의를 지프차와 말에 번갈아 싣고 가서
나눠주기 위해 한 달 동안 라닥의 오지를 누비는 것 말고도
그는 틈만 나면 히말라야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런 역마살이 인도에 가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는 만행을 좋아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선 머리 깎은 출가승이 절 문 밖을 나서면
동냥중이나 걸인 취급을 받아 탁발이 사라졌지만
그는 국내에 머물던 1980년대까지도 절집만이 아니라
민가에 깊숙히 파고들곤 했다.
그렇게 화전민촌에서, 또는 길에서 만난 인연들이야말로
그의 삶이 낳은 ‘사리’였다.
그가 쓴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는
‘지리산에서 히말라야까지, 청전 스님의 만행’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국내와 히말라야에 걸친 만행기다.
광주대건신학대 3학년에 재학하면서 (가톨릭) 신부수업을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 도서관에서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발견하고
전기에 감전된 듯 송광사행을 감행했던 그는
당대의 선지식이던 송광사 방장 구산 선사로부터
“너는 천축국(인도)의 고행승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부터 잠 못 이루던 그는 15일 만에 머리를 깎았다.
그의 옷은 승복으로 바뀌었지만 실은 바뀐 것이 없었다.
유신 시절 전주교대 재학 때 긴급조치 위반자로 걸려들었을 때도,
대건신학대에 다닐 때 정의구현에 앞장서던
선배 신부들에게 열광하던 때도,
불가에 귀의한 뒤에도 그의 종교는 ‘오직 민중’이었다.
승속이 섞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출가자의 권위의식 같은 것은
일찍이 벗어던지고 민중들 속에서 살아가려는
그의 열정은 만행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묵주 갖는 게 소원이라던 할머니한테 선물
1984년. 여름 안거를 마치고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에 참배하고
화전민촌락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내린천을 따라 내려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살둔골에 이르렀다.
쓰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만큼 너와집 아래서
그을린 냄비 몇 개로 살아가는 당시 84살의 송로사 할머니로부터
그의 만행기는 시작된다. 6·25 때 월남해 화전을 일구고 살다가
남편과 자식마저 앞세운 할머니는 죽지 못해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불쌍해 5리 길을 내려가 구멍가게에서
‘청자’ 담배 한 보루를 사다주자 할머니는
“이거는 싱거워서 못 피운다”며 봉초 담배로 바꾸어왔다.
길을 나서며 무언가를 주고 싶었지만
줄 게 없어 염주를 드리려 하자 “난 천주교도래요”했다.
“꼭 갖고 싶은 게 뭐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묵주가 있으면 평생 묵주 세고 기도하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청전 스님은 라면 몇 박스를 사다 놓고
5000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고 돌아섰다.
그 뒤 고3이던 속가 조카에게 편지를 써 묵주 한 벌을 보내 달라고 했다.
훗날 그가 히말라야에 있을 때 살둔골에 살던 한 청년으로부터
편지가 날아왔다. “불교 스님이 선물한 ‘가톨릭 묵주’로
평생 묵주기도를 하던 할머니가 아흔 넘게 사시다가
올 봄에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는 편지였다.
그의 만행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렇게 평범하다 못해
‘눈물 나게 하는’ 민초들이다. 그들이 불교도이든, 기독교도든,
무교도이든 그에겐 다 같은 ‘대비 동체’일 뿐이었다.
사회적인 지위나 재산이 없으면 스님들과 마주 앉기도
힘든 세상에서 산골 노인들과 함께하는 한 청정한 비구의 모습은
가슴 한켠에 군고구마 같은 따스한 기운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가 걸었던 붓다가 2500년 전 석가모니라기보다는
거리에서 또는 집에서, 일터에서 늘 상 만나거나
그곳에서조차 밀려난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그에게 붓다는 우리의 눈물샘을 솟구치게 하는 민초이며 자비다.
청전 지음 /휴·1만2000원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