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룽의 어린 시절. 집이 가난해 부모는 청룽을 홍콩에 두고 호주에서 돈을 벌었고 청룽은 정규 학교에 가지 못하고 경극학원에 다녔다. 부모와 함께한 청룽(아래 사진). 사진 출처 청룽 홈페이지 | “生不帶來 死不帶去.”(생불대래 사불대거·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던 것처럼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세계적 영화배우 청룽(成龍·54)은 최근 “평생 모은 재산 20억 위안(약 4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還元)하겠다”고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쿵푸 액션스타인 청룽은 영화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가난을 아는 스타 청룽은 연간 750억 원을 벌지만 ‘가난의 고통’을 안다. 그는 1954년 4월 7일 홍콩에서 태어나 어릴 적 부모 친구의 도움으로 자랐다. 청룽의 부모는 외국 대사관 요리사와 청소부로 일하다 아들을 홍콩에 혼자 두고 호주로 떠났다. 청룽은 정규학교 대신 경극학원(China Drama Academy)에 입학해 연기와 노래 미술 연기를 배웠다. 청룽의 노래 실력은 이 학교에서 다져졌다. 사부 우점원에게 무술을 배워 무협영화의 스턴트맨으로 출연했다. 당시 인기배우 이소룡(브루스 리)이 출연한 영화에서 엑스트라(단역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소룡이 갑자기 죽자 청룽은 액션 스타로 떠오를 기회를 잡았다. 힘든 무명시절이 없었다면 스타 청룽도 없었을 것이다. 1970년 ‘대소황천패’의 스턴트맨으로 데뷔한 청룽은 연기에 몰입하다 다치는 일이 많았다.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과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도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도 스턴트맨으로 일하며 출연료로 1만5000원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는 1978년 주연을 맡은 영화 ‘사형도수’ ‘취권’을 통해 홍콩 최고의 무협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청룽은 1980년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해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기부천사VS엄격한 아버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청룽은 꾸준히 자선활동을 벌였다. 그는 “빌 게이츠보다 10여 년 앞서 자선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청룽은 재산의 절반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5월 중국 쓰촨 성 지진 때도 거액을 냈고 자신의 이름을 딴 ‘청룽 배 자동차 경주대회’의 수익금을 이웃돕기에 쓰고 있다. 금연, 기아퇴치, 재해복구 등 30여 개 공익 활동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많은 부자가 가족에게 부를 물려준다. 외아들 팡쭈밍을 둔 청룽의 생각은 다르다.
|
10년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한 데 이어 최근 전 재산(약 4000억 원)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청룽. 연간 750억 원을 버는 세계적 스타지만 지금도 가난의 고통을 잊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