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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할아버지
정혜진
“오늘은 논에 벼 좀 베러갑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빠가 할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저도 논에 가고 싶어요. 일요일이잖아요.”
나루가 불쑥 말을 꺼내면서 끼어들었다.
“집에 있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아빠는 뚝 잘라 거절했다.
“가을 들판 살펴보기 숙제란 말예요.”
나루가 아빠를 다시 조르자 엄마가 편을 들어줬다.
“할아버지 따라 가거라. 집에만 있으면 뭐하냐?”
나는 기가 팔랑 살아났다.
아빠는 포대를 챙긴 다음 경운기를 끌고 나가셨다. 경운기 위에는 콤바인이 실려 있었다.
“할아버지, 빨리 가요. 아빠는 벌써 나가셨어요.”
나루가 재촉했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다.
“할아버지, 일하는 거 싫으세요?”
나루가 할아버지 손을 잡아 흔들면서 물었다.
“따라서”
“일하다가 힘들면 쉬었다 하면 되잖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따라서”
“할아버지! 다른 말도 좀 해 보세요. 자꾸자꾸 따라서만 하지 말고.”
“따라서”
할아버지는 따라서 밖에 다른 말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따라서’를 하기 시작하면 계속계속 따라서를 반복한다.
나루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할아버지와 함께 걸어갔다.
들판에는 벼들이 누렇게 익어 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서 간지럼을 시키면 까르르 까르르 물결처럼 흔들거리며 웃는다.
나루는 논길을 걸어가면서 고개 숙인 벼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벼 껍질은 까칠까칠 했다. 껍질 안에 들어있는 쌀알을 입에 넣어 탁탁 씹어보기도 했다.
저만큼 떨어진 논에 아빠가 보인다.
“아빠!”
나루가 손을 흔들었다. 아빠도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루가 도착했을 때 아빠는 벌써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있었다. 콤바인 소리가 시끄러웠다.
할아버지는 콤바인을 따라가며 벼가 담긴 포대를 논둑으로 옮기셨다.
“할아버지, 군인들이 줄 맞춰서 훈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콤바인이 지나가면 착착착 벼가 베어져요.”
할아버지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나루는 다시 말을 걸었다.
“콤바인은 아주 영리한가 봐요. 혼자서 벼를 베고, 포대에 담아서 내려놓고, 짚을 줄 맞춰서 논바닥에 눕히는 일까지 다 하니까요.”
나루는 논바닥에 놓인 포대를 움직여 보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혼자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움직일 때 뒤에서 밀어드렸다.
“좀 쉬었다 하세요!”
엄마가 세참을 가지고 와서 일을 멈추게 했다. 엄마 덕분에 콤바인까지 쉴 수 있었다.
“와! 치킨도 사 왔어요?”
“특별 주문이지. 많이 먹어라.”
콩물국수도 맛있었지만 논에서 먹은 치킨은 정말 꿀맛이다. 엄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어르신, 막걸리도 한 잔 드세요. 치킨도 좀 드시구요.”
엄마는 할아버지를 챙기셨다.
가을 햇볕이 따가웠다.
새참이 끝나자 엄마가 나루를 재촉했다. 들판에 오래 있어서 걱정이 된 것이다.
“우리는 먼저 집에 가자.”
“더 있다가 갈게요.”
나루는 아빠 눈치를 살폈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콤바인 있는 데로 가셨다.
콤바인이 순서를 기다리는 벼들 옆으로 다시 다가갔다.
몇 년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품앗이로 벼를 베고, 탈곡을 했다. 지금은 콤바인 덕분에 아빠 혼자서도 척척 가을걷이를 잘 해 낸다.
“아이 더워!”
나루가 땀을 닦으며 두리번거렸다.
“할아버지 저 냇물에 가서 놀다올게요.”
나루는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는 냇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갈대랑 물풀 위로 잠자라가 날아다녔다.
물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아빠가 나루를 불렀다.
“그만 가자.”
벌써 일이 끝나고 경운기에 콤바인과 농기구까지 모두 실었다.
“아빠 먼저 간다.”
경운기에 시동이 걸리면서 희뿌연 연기가 품어져 나왔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경운기가 움직였다.
할아버지가 냇물로 들어오셨다.
“씻고 가실 거예요?”
할아버지는 세수를 하고 난 다음 진흙을 한 움큼 파서 비닐에 쌌다.
“할아버지, 집에 있는 진흙도 모두 여기서 파낸 거예요?”
나루가 진흙을 만지려 하자 할아버지는 홱 돌아서며 감춰버렸다.
“저도 좀 주세요!”
“따라서!!”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앞서 걸었다.
“진흙이 무슨 보물이라고?”
나루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진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일에 푹 빠졌다.
“조금만 주세요.”
나루가 손을 내밀자 할아버지는 머뭇거리더니 아주 조금만 떼어 주셨다.
“저는 콤바인 만들래요.”
나루는 콤바인을 대충 만들고 일어섰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정성을 다해 진흙사람을 만들었다.
나루는 그런 할아버지가 불쌍했다. 말도 못하고, 가족도 없으니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무슨 비밀이 있을까?’
‘제발 할아버지가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나루는 할아버지가 답답했다. 속 시원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오늘도 두 손을 모아 빌었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날마다 똑같은 사람만 만들어요?”
나루가 궁금해서 물어봐도 대꾸가 없다. 방안 가득 차 있는 진흙사람만 쳐다볼 뿐이다.
할아버지는 벽돌을 모아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판자를 얹었다. 책장처럼 층층이 계단꽂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진흙사람을 차례차례 세워놓는다. 방문만 빼고 벽이 온통 진흙사람으로 차 있다.
“이제 그만 만드세요. 지겹지도 않아요?”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본다. 그럴 때면 오싹 움츠러든다. 주눅이 들어 눈치를 살핀다.
“이 사람들이 다 누구예요? 모두 똑같이 생겼잖아요?”
모양도 똑같고 크기도 똑같은 쌍둥이가 백 개는 더 될 것 같다.
“할아버지, 손바닥 펴 봐요.”
나루는 할아버지 손을 쫙 펴서 진흙사람을 대 보았다.
“아하! 이제 알았다. 손바닥 키였지요?”
나루가 큰소리를 치자 할아버지는 ‘따라서’를 연발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할아버지를 찾았다.
“아빠! 웬일이세요? 할아버지 방을 다 찾아오시고......”
나루와 할아버지는 뜻밖에 나타난 아빠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응, 할아버지한테 잠깐 할 말이 있어.”
아빠는 할아버지께 여기 온 이유를 말씀하셨다.
“어르신, 민속공예전시대회가 있답니다. 공들여 만든 진흙사람 내 보냅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손과 고개를 내저으며 반대했다.
“반대만 할 일 아니요. 공들인 것이 아깝지 않소? 누가 아요? 진흙사람이 행운을 가져다줄지. 우선 신청서 낼 테니 그리 아시오.”
아빠는 끝내 할아버지를 설득시켰다.
“할아버지, 잘 생각하셨어요. 대회 나가면 꼭 1등할 거예요.”
나루는 할아버지를 치켜세웠다.
다음 날 참가 신청서를 낸 아빠가 할아버지 방을 다시 찾았다.
“어르신, 도움이 될까 해서 사 왔소. 진흙공예에 이것을 칠하면 윤기가 나고 좋다하니 한 번 써 보시지요.”
아빠는 연한 유액과 칠을 사오셨다. 진흙과 비슷한 색깔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빠의 선물을 덥석 받았다.
“천천히 준비하시오. 이제 농사일은 걱정 마시오.”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밖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진흙사람을 하나씩 만지면서 먼지를 털어냈다. 유액을 바르고 윤기 나게 닦고 또 닦았다.
한 달 쯤 날이 지나갔다.
“오늘은 포장을 해야겠소.”
아빠는 아침 일찍부터 상자를 준비해서 할아버지 방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그 많은 진흙사람을 하나씩 내려서 포장하기 시작했다. 정성을 다해 싸고 또 쌌다.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차곡차곡 상자에 담았다. 다음 날, 아빠는 마당에 차를 대놓고 진흙사람을 실었다. 할아버지 방에서 나온 상자는 봉고트럭에 가득 찼다.
“잘 전시하고 올 거니까 걱정 마시오.”
“아빠, 저도 같이 가요.”
나루는 재빨리 차에 올랐다. 그동안 할아버지가 만든 진흙사람이 전시장에 진열된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니 너무나 좋았다. 마구마구 자랑을 늘어놓고 싶었다.
전시장에는 전국에서 모인 공예작품들로 가득 찼다. 멋진 작품들이 많았지만 할아버지처럼 백 개도 넘게 만들어서 가져온 것은 없었다.
“아빠, 할아버지가 꼭 1등할 것 같지요?”
나루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온통 전시회 이야기만 했다.
며칠이 지났다.
아빠는 논에서 소에게 먹일 볏짚을 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보리갈이 준비를 했다. 경운기로 도랑을 만들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공예작품전시장입니다. 따라서 할아버지 맞습니까?”
아빠는 바짝 긴장이 되어 경운기 시동을 껐다.
“예, 맞습니다만.”
“할아버지 작품이 우수상에 뽑혔습니다. 내일 오후 2시에 시상식이 있으니 꼭 참석해 주십시오.”
아빠는 귀를 의심했다. 거짓말인 것만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하던 일을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품을 낼 때 아빠 전화번호를 써 놓았기 때문에 아빠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어르신, 좋은 일 났소. 어르신 것이 뽑혔답니다. 지금 전화가 왔소.”
할아버지는 멀뚱멀뚱 쳐다보며 듣고만 있었다.
“내일 상 받으러 오라고 합니다. 같이 갑시다.”
할아버지가 상을 받는다는 소식에 식구들은 모두 들떠있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마음이 설레었다.
“오늘 하루만 결석할 게요?”
나루는 아빠를 졸랐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잘 다녀오세요.”
나루는 힘없이 인사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온 정신이 다 할아버지 상 받는 곳에 가 있었다.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전시장으로 달렸다. 영광에서 전시장이 있는 광주까지는 꽤 먼 거리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할아버지 맞아요? 빨리 오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담당직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할아버지는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시상식이 끝나자 기자들이 할아버지께 수상 소감을 물었다.
“이 많은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정말로 혼자 만드셨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겨우 ‘따라서 따라서’ 밖에 말을 하지 못했다.
“어르신은 말씀을 잘 못하시오. ‘따라서’ 밖에요.”
아빠가 대신 기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날 밤 TV에는 할아버지가 상을 받은 사진과 진흙사람이 나왔다. 신문에도 ‘따라서 할아버지 수상의 영광 차지하다’ 기사가 실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논에 나가 보리갈이를 하고 있는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따라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제가 지금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누가 전시회를 보고 전화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있는 곳을 알려줬다.
한참동안 일을 하고나서 농기구를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까만 승용차 한 대가 논길로 들어섰다.
“제가 전화했던 사람입니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이 아빠에게 인사를 했다.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다니......”
아빠는 놀란 눈으로 인사한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진흙사람과 너무나 닮았다.
“혹시 따라서 할아버지를 보호해 주신 분인가요?”
아빠는 멍하니 서서 대답을 못했다. 그저 고개만 겨우 끄덕거렸다.
“제가 아들입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틀림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공예기능장입니다.”
“정말이요?”
아빠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사실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이걸 보십시오.”
아저씨가 보여준 것은 사진이었다. 할아버지 모습이 틀림없었다.
“아니, 아버지라면 왜 지금까지 찾지 않았소? 아들이 맞다면 어떻게 이제야 나타났느냐 말이요?”
진흙 닮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모시지 못한 탓입니다.”
아빠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증이 커졌다.
“아버지는 고향에 가시겠다고 자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이 바빠서 다음에 꼭 모신다고 미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안보였습니다. 혼자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긴 것입니다. 얼마나 찾았는지 저는 회사 일까지 그만 두었습니다.”
아빠는 어이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맸다는 말이 진짜 같기도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 찾기가 그렇게 어렵단 말이요?”
아빠가 한마디 톡 쏘아붙였다.
진흙 닮은 사람은 제발 자기를 믿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리고 명함까지 내밀었다.
“한국공예인협회 이사 김서인이란 말이요?”
“예, 맞습니다.”
“서울 사람이 왜 여기서 사람을 찾는단 말이요?”
아빠는 명함을 보면서 다시 물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사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혼자 고향에 계시게 할 수 없었지요. 장래식이 끝난 뒤 곧 바로 서울로 모신 것입니다.”
아저씨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에서야 고향에 가고 싶은 심정을 알았습니다. 서울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는지 깨달았습니다.”
아저씨 말을 듣고서야 아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저씨가 진짜 아들이라면 큰일 났구나 싶었다. 교통사고 낸 일이 번뜩 생각 난 것이다.
“용서를 빌 사람은 나요. 용서해 주시오. 내가 잘못했소. 벌을 주면 받겠소.”
아빠는 아저씨 앞에 무릎을 끊었다.
“덕분에 아버지를 찾게 되었는데 왜 이러십니까? 제가 고맙다고 해야지요.”
아저씨는 깜짝 놀라 아빠를 일으켜 세웠다.
“제가 교통사고를 내서 어르신을 다치게 했소. 그래서 집을 찾지 못하게 된 것이요.”
“교통사고라니요? 무슨 교통사고가 났습니까?”
아저씨는 깜짝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
“어르신이 내 차에 다쳤소. 비오는 날, 광주를 다녀오다가 커브길에서 차가 미끄러졌소, 그런데 하필이면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단 말이요.”
“그분이 우리 아버지란 말입니까? 많이 다쳤습니까?”
“아니요. 많이 다친 데는 없었소. 급히 병원으로 옮겼는데 웬일인지 말을 못했소. 병원에서는 충격 때문이라고 그랬소.”
아빠는 7년 전 일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말씀하셨다. 놀랐던 기억 때문인지 잠시 몸을 떨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른데 무슨 방법이 있겠소.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연락조차 없었소.”
아빠는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계신 겁니까?”
농사일을 거들면서 한 식구처럼 지냈소.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느 날부터 논 옆에 있는 진흙을 파다가 사람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요.”
“그게 바로 이번 전시회에 나온 제 얼굴이었습니까?”
“그렇소. 진흙사람과 너무 닮은 사람이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겠소.”
“아버지는 틀림없이 우리 고향 달아실을 찾아가셨을 것입니다.”
“가만! 달아실이라고 했소? 달아실?”
“예, 우리 고향은 화순에 있는 달아실입니다. 달이 밝은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왜 ‘따라서’라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르신은 ‘달아실’을 말했는데 우리가 ‘따라서’로 알아들은 것이 틀림없소. 지금까지 어르신은 ‘따라서’란 말 밖에 다른 말을 한 적이 없소. 그래서 우리들은 모두 ‘따라서 할아버지’라고 불렀소.”
아저씨는 고향에서 살고 싶어 하신 아버지께 불효를 저지른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죽을죄를 졌소. 잘못했단 말이요. 이제라도 벌을 받겠소.”
아빠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빌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무엇을 탓하겠습니까? 그리고 아버지를 지금까지 보살펴 주셔서 이렇게 찾을 수 있게 되었는데 오히려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아빠를 위로했다.
“아버지를 찾은 건 진흙사람 때문이요. 그나저나 빨리 집으로 갑시다. 아버지부터 만나야 하지 않겠소?”
두 사람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어르신! 손님이 왔소. 얼른 나와 보시오.”
아빠가 할아버지를 불렀지만 끔쩍도 않고 진흙만 만지고 계셨다.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서인이가 왔어요. 아버지!”
아저씨는 할아버지 손을 덥석 잡았다.
눈이 휘둥그레진 할아버지는 아저씨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버지, 아버지 아들 서인이요. 서인이......”
한참동안 쳐다보던 할아버지 표정이 달라졌다. 아저씨 얼굴을 두 손으로 만지더니 어엉엉엉 큰소리로 울었다.
“서- 서- 서- 이- 인--아-!”
한참을 울고 난 할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들을 부른 것이다.
“아버지,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아버지를 만난 것이 꿈만 같다고 했다.
“달아실, 달아실, 달아실에 가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눈물 섞인 소리로 달아실을 불렀다.
“이제야 좀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잘 오셨지요? 그런데 고향 가는 군내버스를 잘못 타셨군요? 그래서 중간에서 내리셨습니까? 다시 광주로 나오려고요? 외딴 곳에서 비까지 오니까 차가 잘 안 보였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운전을 잘못한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겼소. 다 내 잘못이요.”
아빠는 할아버지 앞에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아버지는 전시회에서 상까지 받았고, 저는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저씨는 지나간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나루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저씨, 진흙사람 맞지요? 꼭 닮았는데요.”
나루도 아저씨를 금방 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나루를 보자 표정이 밝아졌다.
“내 말벗이다. 고맙구나.”
할아버지가 나루를 끌어안았다.
“할아버지! 지금 말을 했어요? 이제 말 할 수 있어요? 정말로요?”
나루가 놀라서 방방 뛰는 바람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할아버지, 이제 아들 찾았으니까 가실 거예요?”
나루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런 인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들입니다. 이제부터 형제처럼 삽시다.”
아저씨는 아빠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루가 좋아서 손뼉을 쳤다.
“우리 아버지가 꿈에도 못 잊어 하신 달아실로 일단 갑시다. 아버지 소원부터 풀어드려야겠습니다.”
모두들 아저씨 차를 타고 달아실로 향했다. 달아실에 도착한 나루는 할아버지 작업실에 있는 공예품들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와아! 이걸 다 할아버지가 만들었어요?”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만든 거란다. 공예기능장이 되는 것이 내 꿈이었거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 보람이 있구나, 공예기능이 가족을 찾게 해 주었지 않았느냐?”
“맞아요. 공예기능이 있어서 진흙사람을 만들었지요. 그래서 전시회에도 나갈 수 있었지요.”
“나루 너는 요리사가 된다고 했느냐?”
“예, 할아버지,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사가 될 거예요.”
“꿈을 정했으면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한다. 그저 얻어진 것은 없단다.”
할아버지는 나루와 이야기를 하면서 먼지가 쌓인 공예품들을 하나씩 닦았다. 어른들도 공예품을 구경하느라 한참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할아버지, 우리가 달아실을 잘못 알아듣고 ‘따라서’라고 하니까 답답하셨지요?”
나루가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말을 못하는 그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 그저 답답해서 숨이 막히지.”
“이제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렇지요?”
할아버지는 허허허 소리를 내며 웃으셨다.
“아버지, 오늘은 새 식구 환영파티를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기쁜 날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저씨가 기분이 좋아서 말했다.
바로 그때, 승용차 한 대가 도착했다. 아버지를 찾았으니 달아실로 급히 오라는 전화를 받고, 며느리와 손자가 온 것이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신 막걸리, 기정떡, 생선, 과일, 고기, 음료수 등을 준비해 왔다.
두 집 식구가 음식이 차려진 상 앞에 둘러앉았다.
“오늘은 ‘따라서 할아버지’ 덕분에 새 가족이 생긴 날입니다. 우리는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 파이팅!”
아저씨가 큰소리로 건배를 했다. 손뼉소리와 웃음소리가 마당 밖에까지 퍼져나갔다.
“오늘을 기념일로 정하여 앞으로도 계속 만납시다.”
아저씨 말에 모두가 찬성했다.
음식을 드시는 할아버지 얼굴이 기쁨에 차 있었다. 달아실에 떠오른 보름달이 할아버지 집 유리창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