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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20구간 제2부
계척마을-편백숲-밤재-밤재자락
20260804
1.지리산둘레길의 생명평화 사상과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정신을 기리다
지난 해 2025년 11월 18일 지리산둘레길 전라북도 남원 주천안내센터에서 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시작하여 2026년 8월 4일 지리산둘레길 마지막 구간인 산동-주천 구간을 탐방하였다. 8개월 20일이 걸려 전라북도 남원시, 경상남도 함양군·산청군·하동군, 전라남도 구례군의 지리산 5개 시군을 잇는 289.4km 지리산둘레길 21개 구간의 종주를 마쳤다. 국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더 배워서 알고 싶었지만 보도여행팀을 따라 종주하는 탐방이어서 욕심을 채우기에 한계가 많았다. 그럼에도 지리산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능선 산행과는 결이 다른 지리산 품에 안겨 생활하는 지역의 지리산 문화를 살펴볼 수 있어 행복하였다.
지리산둘레길 마지막 산동-주천 구간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원촌리 산동면사무소 앞에서 출발하여 밤재를 넘어 전북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주천안내센터에서 마치게 된다. 지나가는 탐방 지역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원촌리와 계천리, 전북 남원시 주천면 배덕리·송치리·용궁리·장안리 지역으로 구례군 산동면 지역과 남원시 주천면 지역, 6개 리(里) 지역이다. 구례 지역의 주요 탐방지는 계천리 산수유마을 현천마을과 산수유 할머니 시목지 계척마을, 그리고 견두지맥 자락의 편백나무숲과 견두지맥 밤재 지역이다. 남원 지역은 밤재에서 밤재 능선 자락길을 따라 내려가서 꼭두마루재를 넘어가는 힘겨운 탐방길과 용궁리 정문등과 용궁마을 지역이 중심 탐방지일 것이다.
지리산둘레길 사이트에서는 산동-주천 20구간을 이렇게 개략한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을 잇는 15.9km의 지리산둘레길 산동-주천 구간은 지리산의 영봉 노고단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고, 특히 봄철이면 현천마을에서 계척마을까지 이어진 산수유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계척마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할머니 산수유나무와 정겨운 돌담길을 만날 수 있다. 편백나무숲을 지나면 밤재로 이어진다. 거리 15.9km, 예상시간 약 7시간, 난도 中, 주요 경유지별 거리는, '산동면사무소 (1.9km) 현천마을 (1.8km) 계척마을 (5.1km) 밤재 (2.7km) 지리산유스호스텔 (4.3km) 주천센터'이다. 산동-주천 구간의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2부(계척마을-밤재능선 자락) : 계척마을 당산제단에는 수령 390년의 느티나무가 하늘로 치솟아 있다. 줄기에 새끼줄이 둘러있고, 가지에는 받침목이 설치되어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 오씨와 박씨가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다는 마을유래비를 보면 당산목보다 수령이 더 오랜 느티나무가 있을 법하다. 그런데 계척마을 산수유 시목 할머니 산수유나무의 수령은 1,000년, 중국 산동성에서 시집온 아낙이 고향의 풍경을 잊지 않기 위해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산수유 시목은 계척마을 형성 시대인 임진왜란보다 500년이나 앞서 있다. 산수유 시목 유래 연대의 착오 때문일까? 마을 형성 시대의 잘못 때문인가? 아니면 마을이 형성되기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산수유나무가 자라고 있었을까? 산동면 원달리 달전마을의 1,000년 수령의 할아버지 산수유나무는 고사하고, 현재는 그 장자목 300년 수령의 산수유가 대를 이어 할아버지 산수유나무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계천리 계척마을이 형성된 뒤 마을 주민이 원달리 달전마을의 할아버지 산수유나무와 동급의 산수유를 계척마을 이곳에 이식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 계척마을에서 지리산둘레길을 따라서 밤재까지는 약 3.4km 거리이다. 계척마을 닭요리 전문점인 시목지 가든 아래의 계척길 삼거리에서 계척2길로 들어서고, 계척2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계척1길을 따라 감나무밭과 체육공원을 지나 편백나무숲 갈림길까지 이어간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와는 달리 땡볕이 퍼붓는다. 땡볕 더위를 견디며 그늘 한 점 없는 들길을 따라간다.
계척마을에서 편백나무숲 갈림길까지 이어지는 길에서는 지리산 종석대와 노고단이 시야에 들어오고, 작은고리봉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동쪽 하늘을 가른다. 남쪽으로 보이는 간미봉에서 구리재를 거쳐 지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지리산둘레길 탐방 때 넘어왔기에 더욱 반갑다. 그리고 만복대에서 갈래치는 견두지맥 능선이 북쪽을 가로막고 계척마을과 현천마을 서쪽으로 이어진다. 땡볕이 무서워도 이 풍경과 위치 확인에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편백나무숲 갈림길에서 편백나무숲 구간으로 들어서서 첫 고개까지가 조금 어렵지만 쉼터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고개를 넘어서면 그 아래부터는 그윽한 편백나무숲에서 피톤치드를 숨쉬며 편안하고 고적한 편백숲길을 즐길 수 있다. 견두지맥 동쪽 산비탈에 수령 30년을 헤아리는 수만 그루의 편백나무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번 구간의 가장 아름다운 숲길이다. 이 숲길에서 견두지맥 능선으로 올라가 능선을 타고 북진하여 밤재로 내려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리산둘레길은 편백나무숲길을 통과하여 밤재임도를 따라 국도 제19호 산업로가 통과하는 밤재터널 상단을 빙글빙글 돌아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밤재임도와 밤재에서 지리산 주능선 노고단과 반야봉, 서북능선의 작은고리봉과 만복대 등을 조망하는 기쁨은 그 지루함을 날리고도 남는다. 이 임도는 일제시대에 개척한 차량통행로이며, 한때는 구례와 남원을 잇는 국도 제19호선이었는데, 1988년 밤재터널이 뚫리면서, 현재는 옛길로 남아 지리산둘레길로 이용된다.
밤재는 견두지맥 능선의 고개로, 전남 구례군과 전북 남원시의 경계를 이룬다. 견두지맥(犬頭枝脈)은 백두대간 만복대(萬福臺, 1,433m) 북서쪽 0.5km 지점인 1,365m봉에서 갈래쳐서 전남과 전북의 경계를 따라 영제봉(1,048m), 숙성재, 밤재(490m), 견두산(犬頭山, 804m), 둔산재, 천마산(天馬山, 653.8m)으로 이어진 뒤, 곡성군과 구례군의 경계를 따라가다가 구례군으로 들어가 병방산(丙方山, 160m)을 지나 구례읍 원방리 병방마을 앞 섬진강으로 떨어지는 도상거리 37.5km의 산줄기라고 한다. 이 산줄기는 남도 오백리 역사숲길에 속한다.
정유재란 때 왜적은 1597년 8월 7일 구례를 함락한 뒤 남원으로 진격하는데, 견두지맥의 숙성재, 밤재, 둔산재에서 승리한 뒤 이들 고개를 넘어 남원에 입성하여 8월 16일 남원성을 함락한다고 한다. 그런데 4개월 전인 1597년 4월 1일(양력 5월 16일) 옥에서 나온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하여 서울 종각을 출발하여 인덕원, 수원, 아산, 공주, 논산, 삼례, 전주, 임실, 남원을 거쳐, 4월 26일 구례에 입성하였다. 장군의 모친 초계 변씨 풀려난 장군을 만나기 위해 여수에서 아산으로 올라오다가 풍랑을 만나 4월 13일 배 위에서 사망한다. 장군은 이 소식을 듣고 상중에도 백의종군하였다. 가슴이 저민다.
그래서일까? 밤재에는 지리산둘레길의 생명평화사상인 '생명평화경'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중요한 대목을 읽어 본다. "뭇 생명의 의지처인 우주 자연과 내 나라의 의지처인 이웃 나라와 내 종교의 의지처인 이웃 종교와 내 마을의 의지처인 이웃 마을과 내 가족의 의지처인 이웃 가족과 내 자신의 의지처인 그대의 개성과 가치의 존귀함과 고마움과 소중함에 대하여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존중하고 감사하고 찬탄하는 달관과 자족의 삶을 살지니라."
더불어 정유재란 7주갑 2017년 9월 26일 남원시·구례군·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세운 극일(克日)과 평화(平和)의 새로운 다짐을 위한 '왜적침략길 불망비'가 서 있다. 그 중심 내용은 이렇다. "왜적 일본에 대처하지 못한 우리 조상들의 잘못이 작지 않다. 그러나 전쟁을 비롯한 모든 침략 행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이면서 하늘을 칼질하는 인류 최악의 범죄다. 그런데도 일본은 단 한가지, 단 한번의 공식적인 반성이나 사과는 고사하고 옛 침략의 환상 속에 또 다른 침략의 칼날을 갈고 있다. 이에 일본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평화는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되새기고, 성찰과 실천을 다짐하기 위해 더럽고 잔혹한 왜적 침략의 족적이 찍혀 있는 이 자리에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 이 석비를 세운다." 평화, 생명평화, 인류가 이를 이루어내기는 불가능한 것일까?
이번 탐방의 중심지인 시목 광장과 밤재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국난을 극복하고 백성을 구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시목 광장은 남도이순신길 백의종군로의 출발지이다. 광장 축대 벽에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백의종군 발자취, 남도 이순신길 탐방안내도, 백의종군로에서 배우는 이순신 장군의 삶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벽에 새겨진 내용을 옮긴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백의종군로의 발자취. 백의종군(白衣從軍) :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조선의 운명을 새롭게 바꾸고 7년 朝·日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흰옷 입고 군에 근무하는 것'이지만, 관리가 벌을 받아 관직과 보직이 삭탈 당한 상태로 충군(充軍)하는 것임. "1597년 2월 26일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3월 4일 한성 의금부에 투옥된 이순신은 28일간의 옥살이 후 4월 1일에 풀려난다. 이후 초계(경남 합천 율곡)에 있던 도원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4월 1일부터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는 8월 3일까지 120일 동안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며, 조선 수군 재건 계획을 세워 칠천량해전의 패배를 딛고 조선의 운명을 바꿀 명량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의 구례·순천 백의종군 행적 : "이순신 장군은 410여 년 전 구례현을 지나 순천부의 권율장군을 만나러 가면서 남도 백의종군길을 나섰다. 1597년 초 이순신은 참담하였다. 4월 1일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권율은 순천부에 있었다. 이순신은 권율을 찾아간다. 백의종군길에 모친상이라는 비보를 듣는다. "부고를 받고 뛰쳐나가 둥그러지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가 이미 와 있었다. 길에서 마주하는 가슴 미어지는 슬픔을 어찌다 적으랴" (「난중일기」1597.4.13.) 이어지는 백의종군길은 상중에 서둘러 길을 떠나 이동하였다. 천안, 공주, 논산, 익산, 삼례, 임실, 남원, 구례, 순천을 거쳐 도원수가 있는 순천부에 당도한 날이 4월 27일이었으니 27일간의 긴박하고 고단한 여정에 몸과 마음은 모두 피폐해진 상태였다. 이순신의 백의종군길 중 순천은 이순신이 처음으로 도원수와 교감한 장소이다. 17일간 묵었던 순천부 백의종군길은 남해안 일대의 정찰과 지휘부와 교신을 통해 전략을 재구상한 길이었다. 구례현 백의종군길은 이순신 장군의 호남에 대한 인식이 깊게 나타나 있다. 구례에서 남원으로 간 권율의 이동을 살피고 이원익 체찰사를 만나 국난극복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순신에게 구례 백성과 구례 현감의 따뜻한 배려는, 그에게 재기의 신념을 주었던 길인 셈이다. 다시 한 번 애민의 마음으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확실한 신념을 다지게 하는 길이었다. 백의종군길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그의 모습은 구례, 순천 종군길에 나타난다.
1597년 7월 16일 원균 지휘, 조선 수군 칠천량에서 전멸. 8월 3일(양력 9월 13일)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8월 6일 석주관을 지키던 구례 현감 이원춘이 남원으로 퇴각. 8월 7일 구례 함락. 8월 16일 남원 함락. 8월 25일 전주성 함락.
2.탐방 과정
탐방 거리 : 17.2km
탐방 시간 : 5시간 58분
계척길을 따라 계척마을을 내려간다. 계척길 왼쪽에 당산 제단이 있고 중앙 아래에 마을 정자가 있으며, 그 바로 아래에 산수유시목이 있다. 맨 오른쪽 뒤에 성삼재휴게소에서 그 왼쪽의 고리봉, 왼쪽 맨 뒤의 만복대로 지리산 서북능선이 이어진다.
높이 18m, 둘레 4.9m, 수령 390년의 느티나무 당산목 앞에 당산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척마을 당산 제단을 살피고 나와 당산 제단 입구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맨 왼쪽에 지리산 종석대, 송전탑 왼쪽 뒤에 간미봉, 중앙 오른쪽에 구리재와 지초봉이 확인된다.
계척마을 당산 제단 입구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오른쪽에 지리산 종석대와 노고단, 중앙에 작은고리봉, 왼쪽 뒤에 만복대 등 지리산 서북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아래에 계척마을 유래비와 마을정자가 있고, 뒤쪽 바로 아래에 산수유 시목(始木)이 있다.
산동면(山洞面) 계천리(桂川里) 계척마을은 '계천(溪川)'이라 부르다가 '계척(桂尺)'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마을 유래 : 조선시대 선조 때 임진왜란을 피해 오씨와 박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지명 유래 : 마을 중심에 흐르는 냇물이 계수나무처럼 생겼다고 하여 '桂' 자와 베틀 바위 안에서 베를 짜서 자로 재었다고 하여 '尺' 자를 써서 '계척(桂尺)'이라 불렀다.
계천리 계척마을 정자의 현판은 전서체로 적혀 있다. 계척정(桂尺亭)의 '尺' 전서체가 특이하다.
산동 4.0km, 주천 11.9km 지점, 계척길을 따라 산수유나무가 그득한 계척마을 돌담을 지나간다.
산동면 계천리 계척마을의 산수유 시목(始木) 아래에 시목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시목 광장은 남도 이순신 길 백의종군로 출발지여서 옛 성곽과 분수대가 조성되어 있고, 성곽에 영기(令旗)가 걸려 있다.
산수유 시목 입구 앞에 산수유(山茱萸) 시목비(始木碑)가 있다.
이 산수유 나무는 1,000여년 전 중국(山東省)에서 가져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나무 시조이다. 달전마을의 할아버지 나무와 더불어 할머니 나무라고 불려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우리 군을 비롯한 전국에 산수유가 보급되었다고 한다. 산동면(山洞面)의 지명도 산수유 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며, 산수유 열매는 신장 계통에 특효가 있다.
산수유(山茱萸) 시목(始木) 앞에 보호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2001년 2월 21일 보호수로 지정된, 산수유 시목은 높이 7m, 둘레 4.8m, 수령 1,000년이라고 한다. "나무의 특징 및 연혁 : 중국 산수유의 주산지인 산동성에 살고 있던 한 처녀가 산동면으로 시집을 오면서 고향의 풍경을 잊지 않기 위해서 산수유나무 한 그루를 가져와 심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함."
산수유 시목 옆쪽에 산수유꽃 분수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산수유꽃 분수대 조형물 앞에서 1,000년 수령의 ‘할머니 산수유나무’를 바라보았다. 왼쪽 뒤에 견두지맥 산줄기가 이어진다.
정면에서 산동면 계천리 계척마을의 1,000년 수령의 산수유 시목 할머니 산수유나무를 바라보았다.
시목 광장 옆 계척길에서 산수유 시목을 다시 올려본다. 산수유 시목 뒤쪽은 산수유나무 밭이다.
계척마을은 산동면의 대표적인 산수유마을 가운데 하나다. 계척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1,000년쯤 됐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나무가 있다. 그 옛날 중국 산둥(山東)성의 처녀가 구례로 시집을 오면서 가져와 심은 산수유 묘목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전설이 있다. ‘할머니 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산수유 시목은 어느 산수유나무보다 크고 웅장하다. 지금도 젊은 나무 못지않게 활짝 꽃을 틔운다. 산수유 시목지 앞은 광장으로 조성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쉬어갈 정자가 있다. - 지리산둘레길
시목 광장은 남도이순길 백의종군로 출발지이다. 광장 축대 벽에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백의종군 발자취, 남도 이순신길 탐방안내도, 백의종군로에서 배우는 이순신 장군의 삶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탐방로 시작 지점인 시목 광장에 옛 성곽을 조성하고 영기(令旗)를 걸어 두었다. 오른쪽 성곽 아래에 공중화장실이 있고, 오른쪽 가로등 맨 뒤에 지초봉과 구리재가 보인다.
시목 광장 출입구에서 계척길을 따라 내려간다.
시목 광장 성벽 앞에 구례의 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구례의 길은 '지리산둘레길', '남도 이순신길', '섬진강길' 등 네 구간이 있다.
구례의 길 안내도 아래쪽에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 1구간 '산수유 지리산 호반길(11.7km)'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산수유시목지→ 산동면소재지→ 운흥정→ 지리산수상레저타운→ 우리밀체험관→ 광의면사무소
남도 백의종군길의 시작점이자 거점 지역인 이곳 계척마을은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람들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마을로 이순신이 남원에서 밤재를 넘어 이곳에서 구례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산수유 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곳 계척마을에서 출발하여 산동면소재지와 산동교 둑방길을 거쳐, 수상레저타운, 서시천 제방길을 따라 광의면사무소 앞에 다다르게 되는 이 구간을 걷다 보면, 산골 모습이 주는 소박한 정경에 마치 시간을 거슬러 걷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 1구간 안내도를 살피고 계척길을 따라 닭요리 전문점인 시목지 가든을 지나간다.
오른쪽에 지리산둘레길 벅수와 구례의 길 이정목이 서 있으며, 지리산둘레길은 왼쪽 계척2길을 따라간다.
산동 4.1km, 주천 11.8km 지점, 남도 이순신길은 계척길을 따라 직진하고, 지리산둘레길은 왼쪽 계척2길로 이어간다.
계척길 삼거리에서 계척2길을 따라 밤재 방향으로 이어간다.
산동 4.3km, 주천 11.6km 지점, 계척2길은 여기서 끝나고 오른쪽 계척1길을 따라 밤재 방향으로 이어간다.
계척1길을 따라 산수유나무 우거진 곳과 묘지를 지나간다.
산동면 계천리 계척1길을 따라 경주 정씨 묘지를 지나간다.
계척1길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맨 왼쪽 뒤의 지리산 종석대, 중앙의 간미봉, 오른쪽의 구리재와 지초봉을 확인한다.
계척1길을 따라가며 오른쪽 언덕의 밤재터널을 향하여 달려가는 국도 제19호선 산업로를 확인한다.
산동 4.5km, 주천 11.4km 지점, 계척1길을 따라 감나무밭을 지나간다.
산동면 계천리 체육공원 앞을 지나간다. 지리산둘레길 사이트에 "체육공원 근처에는 수령 600년의 푸조나무가 한적한 곳에서 아름다운 수형을 뽐내는데 벼락에 맞았는지 찢어진 나뭇가지가 왠지 짠하다."라고 소개한다. 수령 600년 푸조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산동 4.9km, 주천 11.0km 지점, 계천1길을 따라 체육공원 화장실을 지나간다.
계척1길은 계속 직진하여 산동면 계천리 계척골로 올라간다. 지리산둘레길은 앞의 나무 앞에서 왼쪽 산길로 이어간다.
산동 5.1km, 주천 10.8km 지점, 이곳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왼쪽 산길로 진입한다. 앞선 일행은 단축하고자 직진한다.
지리산둘레길 편백나무숲 구간은 우천시 위험하므로 19번 도로 방향으로 우회하라는 알림글이 적혀 있다.
갈림길의 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지리산둘레길 정코스 편백나무숲 구간 산길로 올라서서 갈림길을 뒤돌아보았다.
걸어온 계척1길을 돌아보면 남쪽에 구리재와 지초봉이 또렷이 보인다.
산동 5.4km, 주천 10.5km 지점을 왼쪽으로 돌아 올라오면, 고개에 쉼터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까지 오르기가 힘겹다.
서어나무 한 뿌리 세 줄기인지, 세 뿌리 세 그루가 서로 붙어 있는 것인지? 그 옆 한 그루도 함께 어울려 있다.
고개의 쉼터의자에서 서어나무를 지나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왼쪽 길은 계척골로 내려가는 길인 듯.
산동 5.8km, 주천 10.1km 지점, 산동면 계천리 견두지맥 동쪽 산비탈에 편백나무숲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계척마을에서 밤재로 올라가는 길목에 조성한 숲이다. 구례군에서 조성한 이 숲에는 수령 30년을 헤아리는 수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편백나무숲 가운데를 관통한다. 편백나무숲에는 산책로가 여러 갈래 있는데, 지리산둘레길 이정표 벅수가 잘 세워져 있어 헷갈리지 않는다. 또한 벤치와 화장실, 평상도 있어 다리쉼하기 좋다. - 지리산둘레길
산동 5.8km, 주천 10.1km 지점, 왼쪽 길은 견두지맥 능선 산비탈 길이고, 지리산둘레길은 편백나무숲을 따라 직진한다.
이 길은 견두지맥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인 듯. 견두지맥 능선으로 올라가 밤재로 내려와도 좋을 것 같다.
편백나무숲이 끝나는 곳으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돌아내려간다.
편백나무숲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편백나무숲 나들목으로 내려가 왼쪽 계곡으로 올라간다.
산동 5.8km, 주천 10.1km 지점, 편백나무숲 나들목에서 견두지맥 숙성재-밤재 능선 지하를 통과하는 밤재터널을 가늠한다.
왼쪽의 밤재 골짜기 물과 오른쪽의 숙성재 골짜기 물이 이곳에서 합수한다. 탐방객이 왼쪽 골짜기에서 탁족을 즐긴다.
오른쪽 다리를 건너와서 합수지를 뒤돌아보았다. 두 계곡 물이 왼쪽 나무다리 위쪽에서 합수한다.
산동 6.4km, 주천 9.5km 지점, 임도를 따라 밤재터널 입구로 올라간다.
임도를 따라 대나무숲을 통과한다.
대나무숲을 통과하면 안전교육장이 있으며, 정면에 견두지맥 능선이 이어진다. 지리산둘레길은 저 능선의 임도를 따라 견두지맥 밤재로 올라간다. DL E&C는 종합설계시공(EPC)과 토탈솔루션 사업자로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의 사업체이다.
양봉장 바로 뒤에 국도 제19호선 산업로가 밤재터널로 진입하고 그 위쪽에 견두지맥 숙성재-밤재 능선이 이어진다.
산동 7.1km, 주천 8.8km 지점, 임도를 따라 계천리 지역의 민가 앞으로 이어간다. 뒤쪽에 견두지맥 밤재 능선이 지난다.
민가를 지나 오른쪽 길은 밤재터널로 이어지는 길이고, 지리산둘레길은 직진하여 밤재임도를 따라간다.
갈림길인 밤재터널 출입구에서 오른쪽은 밤재터널 방향 용산로이고, 위쪽은 밤재 방향의 임도이다.
밤재 1.9km 지점의 밤재터널 갈림길에서 지리산둘레길 우회로와 재회한다. 지리산둘레길 이정목과 우회로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민가 뒤쪽 임도를 따라 밤재터널 갈림길을 가로질러 임도 나들목으로 올라왔다. 왼쪽 길은 밤재터널 방향의 용산로이다.
산동 7.4km, 주천 8.5km 지점, 임도는 구례 방향 일방통행 산업로와 남원 방향 일방통행 산업로 상단을 지나간다.
오른쪽은 밤재터널 방향에 올라오는 임도이고, 지리산둘레길은 왼쪽 밤재임도를 따라 밤재 방향으로 진행한다.
견두지맥 능선 바로 아래의 밤재임도를 따라 밤재로 이어간다.
밤재임도에서 중앙의 성삼재휴게소와 종석대, 그 왼쪽 뒤의 노고단, 왼쪽의 작은고리봉을 확인한다.
밤재임도에서 밤재터널 위 견두지맥 능선을 바라본다. 그리고 맨 오른쪽 뒤의 작은고리봉, 그 왼쪽 맨 뒤의 만복대를 가늠한다.
밤재임도는 1988년 밤재터널이 뚫리기 전에 국도 제19호선이 지났다고 한다.
힘겹게 해발 490m 밤재에 이른다.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건너편 나무계단은 견두지맥 견두산 방향의 등산로이다.
구례와 남원을 가르는 고개다. 지리산 서쪽 줄기로 동쪽으로 숙성치, 서쪽으로 견두산이 이어져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과거에는 19번 국도가 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러나 1988년 길이 800m, 폭 9.7m의 밤재터널이 뚫리면서 이 길은 옛길이 됐다. 밤재는 밤나무가 많아서 생긴 지명이라고 하며 한자로 율치(栗峙)라고도 하였다. 간이화장실이 있고 밤재 정상의 정자는 어느 해 태풍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그 옛날 밤재터널이 없었을 때 버스를 타고 넘나들던 이 고갯길은 얼마나 아슬아슬했을까. 남쪽의 구름도 재를 넘어가기 어려워 비가 되어 내리는 밤재에서 쉬어간다. - 지리산둘레길
밤재임도를 따라 밤재로 올라왔다. 오른쪽에 밤재 표석이 앉아 있다.
밤재 광장 동쪽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과 산동-주천 구간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산동 8.9km, 주천 7.0km 지점, 밤재 쉼터정자 난간에 지리산둘레길 밤재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뒤에 종석대, 그 왼쪽 뒤에 노고단, 중앙에 작은고리봉, 그 왼쪽 맨 뒤에 반야봉, 왼쪽 뒤에 만복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밤재 광장 서쪽의 간이화장실과 견두지맥 남쪽 나들목 오른쪽의 밤재 능선으로 이어간다.
밤재의 견두지맥 남쪽 나들목에서 견두산까지는 4.2km 거리이다.
견두지맥 등산로 나들목 오른쪽에 남도 오백리 역사숲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남도 오백리 역사숲길은 구례, 곡성, 화순, 영암, 강진, 해남을 잇는 338.8km의 대장정 길이다. 각 코스가 안내판 중앙에 적혀 있다.
백두대간 트레일에 국토 최남단 땅끝 연결을 통해 국토의 대종맥인 백두대간의 지맥을 잇는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전라남도는 다양한 역사와 빼어난 자연환경을 가진 길을 걷는 숲길로 조성하였다. 따라서, 남도 오백리의 역사숲길은 국토의 대종맥인 백두대간의 지맥을 잇는 상징성 부여와 남도의 오랜 역사와 문화자원, 그리고 농어촌을 체험하고 경관을 즐기며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숲길이 되도록 하였다.
남도 오백리 역사숲길 중 구례 코스 백두대간 지맥잇길은 백두대간 만복대에서 갈래친 견두지맥 산길을 이른다.
오른쪽에 종석대, 그 왼쪽 뒤에 노고단, 그 왼쪽 앞에 지리산 서북능선의 작은고리봉, 중앙 맨 뒤에 지리산 반야봉이 확인된다.
견두지맥 능선을 자르고 도로가 건설되었다. 왼쪽에 생명평화 지리산둘레길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둘레길을 열며 '생명평화' 사상을 안내한 '생명평화경'과 시 작품 '지리산둘레길'을 소개하고 있다.
생명평화경 : 나는 다음과 같이 들었습니다. 눈 내리는 한 밤중에 진리의 스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생명평화의 벗들이여!
생명평화 길의 근본이 되는 존재의 실상인 상호 의존성과 상호 변화성의 우주적 진리를 설명하리니 그대들은 귀 기울여 잘 듣고, 깊이 사유 음미할지니라. 이것이 있음을 조건으로 저것이 있게 되고, 저것이 있음을 조건으로 이것이 있게 되며, 이것이 없음을 조건으로 저것이 없게 되고, 저것이 없음을 조건으로 이것이 없게 되느니라. 상호 의존성, 상호 변화성의 진리를 따라 생성, 소멸, 순환하는 존재의 실상인 이 사실은 우주의 진리인 이 사실은 현재에도 그러하고, 과거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하느니라.
생명평화의 벗들이여!
자연은 뭇 생명의 의지처이고 뭇 생명은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 존재이니라. 이웃나라는 우리나라의 의지처이고, 우리나라는 이웃나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국가공동체이니라. 이웃종교는 우리 종교의 의지처이고, 우리종교는 이웃종교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종교공동체이니라. 이웃 마을은 우리 마을의 의지처이고, 우리 마을은 이웃마을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고향공동체이니라. 이웃 가족은 우리 가족의 의지처이고, 우리 가족은 이웃가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가족공동체이니라. 그대는 내 생명의 어버이시고 나는 그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 생명이니라. 진리의 존재인 뭇 생명은 진리의 길을 걸을 때 비로소 평화로워지고, 행복해지나니, 그대들은 깊이 사유 음미하여 실행할지니라.
생명평화의 벗들이여!
서로 의지하고 변화하며 존재하는 생명의 진리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길이니 지금 진리의 길에 눈뜨는 달관과 진리의 길에 어울리는 자족의 삶을 살지니라. 생명의 고향인 자연을 병들게 하는 우리 가족의 의지처인 이웃 가족을 불안하게 하는 진리를 외면한 내 가족 중심의 이기적 삶을 버리고 이웃 가족을 내 가족의 하느님으로 대하는 달관과 자족의 삶을 살지니라. 내 삶의 의지처인 상대를 불안하게 하는 진리를 외면한 자기중심의 이기적 삶을 버리고 상대를 내 삶의 하느님으로 대하는 달관과 자족의 삶을 살지니라.
뭇 생명의 의지처인 우주 자연과 내 나라의 의지처인 이웃 나라와 내 종교의 의지처인 이웃 종교와 내 마을의 의지처인 이웃 마을과 내 가족의 의지처인 이웃 가족과 내 자신의 의지처인 그대의 개성과 가치의 존귀함과 고마움과 소중함에 대하여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존중하고 감사하고 찬탄하는 달관과 자족의 삶을 살지니라.
존재의 실상인 진리란 상호 의존성과 상호 변화성을 뜻할 뿐 그 밖의 다른 것이 아니므로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이해하고 실현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느니라. 진리의 길은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할 때 그 실상이 드러나고 진리의 서원을 세울 때 생명평화 삶이 실현되나니 항상 깨어있도록 할지니라. 생명평화경은 지금 여기 너와 나의 삶의 실상을 비추어보는 거울이니 항상 잘 받아 지니고 기억하여 어긋나지 않도록 할지니라.
"거룩하십니다. 진리의 스승이시여! 진리의 가르침을 귀 기울여 잘 듣겠나이다. 깊이 사유 음미하겠나이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실행하겠나이다.
'지리산둘레길'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순례길로 제안되었고 지리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끈으로... 그리고 산림을 통한 치유 숲길로 화해와 상생, 뭇 생명의 안위와 평화를 위하는 길이 되고 있습니다.
"그대 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무엇에 두었는가/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몸 안에 한 그루 푸른 나무를 숨쉬게 하는 일이네/ 때로 그대 안으로 들어가며 뒤돌아보았는가/ 낮은 산길과 들녘, 맑은 강물을 따라/ 사람의 마을을 걷는 길이란/ 살아온 발자국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네/ 숲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생명의 지리산을 만나는 길/ 어찌 집으로 가는 길이 즐겁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대 안에 지리산을 맞이하여/ 모신다는 일/ 껴안아 준다는 것이지/ 사랑한다는 것이야/ 어느새 가슴이 열릴 것이네/ 이윽고 눈앞이 환해질 것이네/ 그대가 바로 나이듯/ 나 또한 분별을 떠나그대이듯이/ 그대와 나 지리산이 되었네/ 그대와 나 지리산둘레길이네" - 박남준의 '지리산둘레길'
2004년 지리산순례길 제안.(지리산 생명평화 순례단). 2005년 지리산 걷는 길 타당성 조사. 2007년 산림청의 녹색자금(복권기금)으로 지리산 한 바퀴 걷는 길 시작. 사단법인 숲길의 민간공모사업. 2010년 지리산 지자체 정비사업 참여(산청, 하동, 구례, 남원) 2012년 지리산 한 바퀴 걷는 길(지리산둘레길) 완성.
숲은 생명의 근원이며 함께 어우러지는 삶의 본보기입니다. 숲에 우리의 희망과 미래가 있습니다. 산림청자 이돈구. 지리산둘레길 전체개통을 기념하며. 2012년 5월 23일
견두지맥 밤재 능선이 잘려나간 곳에서 생명평화경 안내판과 개통기념문, 밤재 광장을 뒤돌아보았다. 지리산 능선이 희부연하다.
남원과 구례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밤재에 극일(克日)과 평화(平和)의 새로운 다짐을 위한 '왜적침략길 불망비'가 서 있다.
임진년(1592) 침략으로도 모자라 왜적 통치자는 정유년(1597)에 재침을 명하였고 다시 악귀가 된 왜적은 빼앗고, 불사르고, 베고, 찌르며 섬진강을 거슬러올라 구례를 거쳐 남쪽으로 보이는 원촌에 이르렀다. 여기, 밤재(栗峙)를 가운데로 동쪽의 숙성재와 서쪽의 둔산재를 짓밟고 넘은 침략군은 북쪽으로 보이는 남원성을 포위 공격하여 민·관을 비롯한 조·명 연합군 1만여 명을 도륙하였다. 당년 추석 전후의 일이다. 살인귀 왜적은 코베기와 노예화를 위한 인질 포획을 시도했으나 살아 있는 생명은 없었다. 약탈, 겁간, 방화, 살육의 잔재만 남았을 뿐이었다. 갑오년(1894)에도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의 토벌군이 되어 토끼몰이를 하면서 북에서 남으로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을사늑약(1905), 경술국치(1910)로 우리나라와 민족을 집어삼킨 일제는 이 고개를 약탈과 지배의 수단인 신작로로 만들었다.
왜적 일본에 대처하지 못한 우리 조상들의 잘못이 작지 않다. 그러나 전쟁을 비롯한 모든 침략 행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이면서 하늘을 칼질하는 인류 최악의 범죄다. 그런데도 일본은 단 한가지, 단 한번의 공식적인 반성이나 사과는 고사하고 옛 침략의 환상 속에 또 다른 침략의 칼날을 갈고 있다. 이에 일본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평화는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되새기고, 성찰과 실천을 다짐하기 위해 더럽고 잔혹한 왜적 침략의 족적이 찍혀 있는 이 자리에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 이 석비를 세운다. 정유재란 7주갑 2017년 9월 26일 남원시·구례군·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불망비 옆면 : 왜적 침략 <하동→ 전주> 1597년(정유년) 8월 일자. 6일 왜군 좌군과 수군이 하동·두치진에서 합류, 선발대 구례 진출. 7일 주력 소서행장군 구례 봉성산 입성. 9일 박계성 의병군, 둔산재 전투에서 패배, 순국. 11일 왜적 선발대 남원성 정찰. 13일 왜적 남원성 포위, 공격 시작. 15일 추석, 종일 전투. 16일 조·명·의병, 남원성 전투 패. 19일 왜적 남원성 출발. 21일 전주성 입성. 조경남《난중잡록》기준
남쪽 구례 밤재에서 북쪽 남원 밤재로 넘어왔다. 정면 뒤에 전북 남원 시가지가 보인다. 1597년 8월 중순, 5만여 명의 왜군이 밤재와 숙성재를 넘어 만여 명이 지키던 남원성을 침략하였다고 한다. 밤재는 왜군의 남원 침략의 길목이었다.
견두지맥 숙성재 등산로 나들목 방향에 지리산둘레길 남원 구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앞밤재 : 이곳은 지리산 서쪽 줄기로 동쪽으로 숙성치, 서쪽으로 견두산이 이어져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밤재는 밤나무가 많아 생긴 지명이라고 하며, 한자로 율치(栗峙)라고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의 명을 받아 권율 도원수가 있는 순천으로 가기 위해 남원에서 구례로 향할 때, 밤재를 거쳤다.
남원시 : 한반도의 서남부 내륙, 전라북도의 동남부 소백산맥 서사면의 넓은 분지에 위치한 남원시는 동남쪽으로는 지리산의 주능선을 경계로 경남 하동군 및 전남 구례군과 접하고, 북동부는 경남 함양군, 서쪽은 임실군·순창군, 그리고 북쪽은 장수군과 접하고 남쪽의 일부는 섬진강을 경계로 전남 곡성과 접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이름부터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인 9주 5소경의 남원경에서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쓰고 있다는 점과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흥부전>, <춘향전>의 배경도시가 바로 남원이라는 점에서, 남원시는 그 역사와 전통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견두산 3.0km, 숙성치 2.1km 지점, 지리산둘레길은 밤재 자락길을 따라 남원시 주천면 배덕리 지역을 내려간다.
앞밤재의 이정목 앞에서 남원 시가지를 내려본다. 남원시 광치동 밤재(栗峙)와 구분하기 위해 이곳을 앞밤재, 광치동 밤재를 뒷밤재라 이른다고 한다. 왼쪽 뒤의 산이 교룡산일까?
앞밤재 이정목 앞에서 견두지맥의 숙성재 나들목을 돌아보았다. 나들목 앞에 지리산둘레길 남원 구간 안내도가 있다.
밤재 자락길을 따라 남원시(南原市) 주천면(朱川面) 배덕리(盃德里) 지역을 내려간다.
산동 9.5km, 주천 6.4km 지점, 왼쪽은 청주 한씨 묘지로 가는 길, 오른쪽 밤재 자락길을 따라 내려간다.
청주 한씨 묘지 입구의 수풀 우거진 곳에 표석이 서 있다.
예전에는 차량들이 통행했던 밤재 자락길을 따라간다. 밤재 자락길 위에 소나무 줄기가 쓰러져 있다.
산동 9.9km, 주천 6.0km 지점, 밤재 자락길을 따라 국도 제19호선 산업로의 구례 방향 일방통행로의 밤재터널 상단을 통과한다.
밤재 자락길에서 덕음산과 왼쪽 뒤 고산봉, 오른쪽의 장백산과 중앙 맨 뒤의 청룡산을 가늠한다.
밤재 자락길에서 견두지맥 밤재 능선을 올려보았다.
산동 11.km, 주천 4.5km 지점, 주천면 배덕리에서 송치리로 넘어와 북당골 지역을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