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임동확
난 무법자처럼 허공을 지배하는 암컷 무당거미.
일단 먹잇감이 걸려들면 재빨리 독을 주입하곤
달콤한 골수부터 빨아먹는 잔인한 살해자,
그러나 천적인 왕잠자리나 사마귀를 겁내며
세 겹의 황금 거미줄에 몸 숨긴 비굴한 사냥꾼.
그런 내가 덫을 엿보며 집요하게 노리는 건
그러나 살진 참매미의 육즙 따위가 아니다.
정작 나의 거처가 지상의 나뭇가지라는 걸
미처 알지 못하는 청맹과니들의 두 눈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빨은 힘없는 곤충 따위에 관심 없다.
한낱 날개를 믿고 까불거리는 자들의 자유,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며 우쭐대는 날것들의 방심,
도대체 의심하거나 회의할 줄 모르는 상식,
보이지 않는 것들을 허구라고 치부하는 자들의 무지다.
제가 신앙만이 옳다고 떠드는 고집쟁이나
도대체 바뀔 줄 모르는 고정관념이 내 일용할 양식이다.
난 견고하게 쳐놓은 나의 장력(張力)을 뚫고
비상하려는 무모한 정신의 나태를 먹고 산다.
-임동확 시집『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중에서
거미라는 제목의 위 시는 암컷 무당거미가 화자입니다. 자신을 잔인한 살해자이며 비굴한 사냥꾼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루하루 돈과 권력을 쫓아 사는 자본주의 사회 속 우리들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진짜 노리는 것은 자기의 ‘거처가 지상의 나뭇가지라는 걸 미처 알지 못하는 청맹과니의 두 눈’이라고 말합니다. 청맹과니는 눈을 뜨고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하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다수의 소시민들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처지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간추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관과 객관, 궁벽한 것과 보편적인 것, 주관은 객관으로 발전하기가 쉽지 않고 객관은 주관을 기초로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주관에 기초하지 않은 객관적 입장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 서로 다른 차이들이 살아서 숨 쉬는 탈 중심의 이상적인 세계를 희망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그 곳에 시인의 고뇌가 있습니다. 지적 허영이 빠지기 쉬운 자유, 방심, 상식, 보이지 않는 것들을 허구라고 치부하는 자들의 무지, 고집쟁이, 고정관념이 거미인 화자의 ‘일용할 양식이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견고하게 쳐 놓은 거미의 장력을 뚫고 비상하려는 무모한 정신의 나태를 먹고 산다’라고 말합니다.
시의 대상인 거미와 시적 주체인 시인이 서로 겹칩니다. 소름이 끼칩니다. 거미는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장삼이사이며 시인 자신입니다. 화자인 거미의 일용양식은 시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태한 정신인 것입니다. 객관을 빙자하여 지식인들이 빠지기 쉬운 방관과 도피로부터 시인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고자 하는 자아비판이며 뼈아픈 성찰(省察)입니다.
시는 은유입니다. 은유는 쉽게 이야기하면 ‘다르게 말하기’입니다. 임동확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누군가 간절이 나를 부를 때』는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한 아프고도 슬픈 거대한 은유로 가득합니다. 「운석」, 「사월의 바다」, 「눈먼 가수의 노래」,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거미」, 「복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꼭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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