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사회를, 사회는 개인을..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사회의 발전을 초래하고, 사회의 건강한 유지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그런 사회를 이상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라고들 합니다.
이름은 사회주의지만, 정확한 표현은 개인-사회주의가 맞겠습니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문명의 출발점이니까, 기초이니까. 개인과 사회의 조화가 사회주의의 내용입니다.
개인과 사회. 그 사이에 여러가지 종류의 사회가 있습니다. 공동체라고도 할수 있겠습니다.
개인-가족-작은 공동체(마을 또는 씨족)-큰 공동체-국가-국가연합-세계
개인은 여러가지 크고 작은 사회의 중첩된 구조하에 놓여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변해왔고, 현재에는 전통적 공동체들이 깨어지고, 개인과 국가의 2중구조로 단순화 되고 있지요.
저는 여러가지 사회중에 가족이 중심이 된다고 봅니다. 최소단위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테두리로 혈연에 의한 가족이 중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혈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함할수 있습니다. 식구가 있습니다. 식구개념이 확대되면, 현대의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함시킬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개인, 그리고 사회로서의 가족.
서경을 보면 요순이 나오고, 삼강오륜이 나오고, 부부유별이 나옵니다. 원시유학인데, 읽다가 감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어린이와 여자는... 이런 남여차별의 부부유별이 아니었습니다.
성인남자는 가족을 대표하여, 더 상위 공동체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여자는 가족내의 살림, 경제적 소비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때 지주양반 남자 가장이 곳간열쇠를 가지고 끼니때마다 쌀을 퍼주었다는 그런 남여차별이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남여가 서로 분업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또 현대의 대다수 평범한 가정에서 여성들이 가정내의 소비를 결정합니다. 개인으로서는 서로 존중받고 서로 다르면서, 가족이란 사회내에서의 분업으로, 서로 같은 겁니다. 이것이 부부유별의 내용이더군요. 분업,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다는 뜻이더군요.
삼강오륜이 후대 공자유학자들의 위작이라는 설도 있지만, 공자이래 공자를 따르는 유학자들이 그 해석에 있어 왜곡에 왜곡을 거듭하여, 우리가 아는 온갖 나쁜 남여차별의 가부장제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이유는 토지사유재산권제도를 채택하였기 때문이지요: 사회가 가져야할 토지를 개인이 갖게되면, 갖지못한 사람들은 자연히 노예가 되는겁니다. 토지소유자 이외에는 양반이어도, 자기 자식이어도, 부인이어도 준노예로 취급되는 겁니다.--
정상적인 가족은 하나의 사회로서, 생산과 소비에 있어 서로 분업을 하고, 평등한 분배를 하는 겁니다. 가족내에서 자라면서, 또 가족의 행복, 발전을 추구하면서, 사회적인 가치나, 운영방법을 배우는 겁니다. 큰 공동체에서도 통용될 가장 기초적인 사회원리에 대해서 학습하게 됩니다.
물론, 더 큰 공동체가 되면, 작은 공동체와 다른 제도나 분업이 더 필요합니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문명이 발전하면서,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큰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고. 중첩적인 공동체. 사회의 일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육아, 교육, 노인의료등 가족이 담당하던 사회구성원=개인의 재생산기능이 점차 사회로 이전하게 됩니다. 분업의 확대입니다.
원래 가족이 하던일이 사회로 이전되고, 또 공동체가 커짐으로, 예전에 없는 일도 생긴겁니다.
이런 사회적 일들을, 개인과 조화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주의입니다. 내용은 개인-사회주의이지만, 사회의 몫이 커져가는 경향때문에 사회에 중점을 두어 표현합니다.
아무리 커다란 공동체: 사회를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가족이 핵심적인 사회단위이므로, 가족자체를 잘 운영하고, 이들과 더큰 공동체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는 가족에서 출발하여, 확대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개인-가족- 사회
현대사회는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눌수 있다 하겠습니다.
이세부분이 함께 발전해나가는,세부분의 관계를 잘 맺어나가는 전체시스템을 사회주의라 한다.
첨언:
정치경제학적으로는, 사회주의 정치체제에서는 토지를 공동재산으로, 임금과 이자는 사유재산으로.
토지가치=지대는 사회유지비용으로 사용하는데, 가족-작은 공동체-큰 공동체-국가-세계에 이르는 중첩된 공동체 단위별로 나누어서 사용한다. 가족이 사회중 중심단위라면, 지대의 사용에서도 가족몫이 먼저 결정되는 겁니다.
사유재산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개인의 것이다.
쪽글 총 글수 : 5
아나키 : 좋은 글이네요. 가족이 기본단위지요. 참 여성은 소비를 관장하는 것과 아울러 길쌈이라는 아주 중요한 경제활동을 하기도 했다는 점을 첨부합니다.
중추절의 길쌈대회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길쌈이라는 경제헹위를 통해 우대받았고 그 우대라는 형태가 사회적인 축제로 공인되었다는 점을 말해주죠.
토지공유제는 공자 이전의 오랑케문명 유목문명의 형태의 산물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들의 교환은 물물교환의 형태를 띠었는데 이는 아직까지 중앙집권적인 화폐권력이 나오지 않았으며. 이 중앙집권적인 깡패권력에 의한 토지 점유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아니였난 하는 생각입니다. 이 토지공유와 물물교환의 시장을 좌계라고 하고 왕 칸에 의한 국고를 충당하기 위한 교환행위를 우시라고 하더군요.
아울러 왕 칸 귀족들의 공유지에 대한 노동의무라는 형태의 강화 이 의무화된 노동에 의한 수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토지 농민 점유 투쟁이 춘추 전국시대에 일관된 지배계급의 목적 아니였을 까요.
관자가 대표적인 자이고 진시황에 의해 완결되는 이 물물교환의 질서의 붕괴와 토지 공유제의 붕괴 .. 권력자에 의한 토지 점유의 강화와 증산을 통해 강화된 수주권을 기반으로한 상업의 발달과 지배계급의 사치 등등은 시황제떄 마무리되지요.
그러나 북방과 남방의 유목해양에 종사하는 이민족들은 여전히 이 공동체적인 토지 공유제에 기초한 물물교환 및 축제화된 교육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부족 민주주의응 유지하고 있었던 같아 보입니다. 2003-06-01[x]
빵장사 : 아나키/ 오호 대단하신데여~
언제 날받아서, 고대경제에 대해 함 배워야 겠습니다. 단행본 정도로 몽고경제, 중국고대경제에 관해서 소유권제도중심으로 좀 살펴본 정도인데요. 토론하면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저는 중국 요순우, 하은주 시대에 중심으로 책을 보았는데, 현재 고고학적 유물이 쏟아지고 있답니다. 맑시스트 중국역사학자들이 당황하고 있답니다. 맑스주의 역사책에 나오는 원시공산사회가 아니라, 대규모 교환경제가 존재했기 때문이지요.
4천년전 서경에 기록된, 우임금때의 토지공유제가 원시경제때문이 아니라, 대규모 교환시장경제의 성립때문이었다는 해석을 저는 합니다.
아나키 님이 언급했다싶이, 진시황에 이르러 사회는 토지사유재산권이 우월해 집니다. 공자가 논리를 제공하고 말이지요.
고고학적 유물발굴 결과에 맞추어서, 중국고대, 몽고, 시베리아 사회에 대해, 함 같이 공부할 기회를 나중에 갖도록 합시다. 강좌안이 끝나고 나서 말이지요. 2003-06-01[x]
빵장사 : 유목경제와 정착농경경제이 가장 차이점은 경제공동체에 있어 중심지의 중요도 입니다.
유목경제의 경우, 교환이 성립조건이고,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교환이 이루어지지만, 사회공동체의 중심지 자체가 늘 이동하기 때문에..
토지공유제의 실제 내용인, 지대공유제가 미발달 합니다. 지대 공유제라는 것이, 중심지와 변두리간의 토지가치의 차이를 사회유지비용 조달에 반영하는 것이거든요
共 과 公의 차이입니다. 共의 경제적 의미는 아주 적습니다. 교환경제가 발달하지 않는 소규모 경제에 성립합니다. 公有제가 바로 토지의 공동체 소유를 지대의 사회유지비용으로 사용이라는, 발달된 공유제사회를 구성합니다.
유목경제와 정착경제, 사회와 공간간의 관계를 축으로
고고학적 최신결과물들을 결합하면, 어느정도 진전된 결과, 유의미한 토론이 가능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