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참... 순해 보이는 게 맛있게 생겼다!!! 뽑을까...’
나란히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초로의 아저씨를 흘깃거리며 고민에 빠진다. 참자.
117년 만의 폭염이 덮친 서울의 변두리 주택가, 2차선 도로에 저녁이 내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도 블럭 틈새마다, 가로수 밑둥마다 강아지풀의 전성시대다. 가로수 밑둥보다는 골목 노지에서 자라는 놈들이 더 깨끗할 거야. 호기심 어린 시선도 덜하겠지.
건널목을 지나 아파트로 오르는 퇴락한 골목에 노후 된 주택을 허물어 버린 공터가 드문드문하다. 대형 트럭이나 버스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은 공터가 바로 강아지풀의 서식지다. 길에서 벗어난 풀 섶에서 어린잎들로 선별해서 뿌리째 무언가를 뽑고 있는 내 행색이 사뭇 진지했던가 보다. 힐끗거리는 퇴근길 행인들 사이에서 드디어 호기심 많고 붙임성 좋은 아주머니가 역시나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뭘 뽑아요? 그거 몸에 좋은 거예요?”
“아... 이거 그냥 강아지풀이예요.”
“?”
“고양이들 간식이예요.”
“고양이들이 그걸 먹어요?”
“네. 제일 좋아하는 풀이예요.”
“고양이가 풀을 먹는구나!!!”
“먹는다기 보다는...” 길어질 설명이었다. 말을 줄이고 그저 웃어 보이며 한 움큼 쥐고 집으로 향했다.
이런 해프닝을 감당하면서도 나는 성하의 저녁, 또 공터 풀 섶 위로 허리를 숙인다. 몇 년 전부터 여름이면 일주일에 한 번 꽃 대신 강아지풀 다발을 화병에 빼곡하게 꽂아 고양이 스크레쳐 옆 베란다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어린 산책냥이었던 땅꼬와 봄날 뒷산으로 산책을 나가면 지체되는 첫 관문이 바로 이 강아지 풀이었다. 재촉하는 나를 아랑곳없이 오솔길에 고개를 내민 풀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갸웃갸웃 냠냠 풀 삼매경에 빠진 땅꼬를 보고 알게 된 고양이들의 식성. 어쩌면 우리한테 과일 같은... 그런 걸까? 비타민을 보충하는 건가? 그리고 또 알게 된 풀의 용도. 산책을 끝내고 하산하는 길, 그러니까 풀을 먹고 난 후 2,30분 정도 지나면 예외 없이 구역질을 시작하면서 토를 한다. 검색해 본 결과 털을 그루밍하는 고양이들이 헤어 볼을 토하기 위해서 풀이 필요하다는 거다. 집에서 키워주는 귀리싹이나 보리싹들은 그저 대용일 뿐 강아지풀에 대한 선호에 한참을 못 미치는 것 같다.
짐작건대 아주 오래전부터 야생의 고양이들에게 야생의 강아지풀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귀리밭이나 보리밭에 접근할 수 있는 고양이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흔하디 흔한 강아지풀과 야생 고양이의 인연. 순리다. 그 순리가 어쩐지 갸륵하다. 소박하고도 자연스럽구나. 가장 흔한 것이 가장 맛있는 것이니 얼마나 평화로운가? 귀한 것을 탐하지 않는 삶이라니...
하지만 이 순리가 아파트 정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아파트 화단에 뿌려지는 제초제 덕에 아파트 산책만으로는 땅꼬의 갈망을 채울 수 없었다. 무더위에 지쳐 아파트 중정으로 밤중 산책을 나갈 때면 강아지풀을 찾아 화단을 기웃거리는 땅꼬의 갈망이 안됐어서 나도 화단 틈새 틈새를 탐색한다. 그런 나를 기대감에 가득한 눈빛으로 쫓아다니는 땅꼬를 볼 때면 유독 강아지풀에 가혹한 제초제가 원망스러웠다. 흔한게 귀한 아파트 정원. 그렇다고 늦은 밤 뒷산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밤중 강아지풀 보급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아파트 중정을 한 바퀴 돌아 경사진 진입로를 걸어 내려가면 주차장 입구 차량 차단기가 놓인 도로가 있다. 도로를 건너면 다시 중정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이다. 계단 입구에서 “기다려!!!” 일러두고 나는 노지로 향한다. 꼼짝 않고 기다리다 한 움큼 가득한 강아지풀을 보고 달려오는 땅꼬는 행복하다. 행복한 땅꼬를 보는 나도 행복하다. 중정 한쪽 벚나무 아래 벤치에 펼쳐두고 오물오물 냠냠 양껏 먹는 땅꼬의 냥통수를 쓰담쓰담하면서 여름밤이 깊어 간다. 구내염으로 어금니를 발치해버려 씹어 삼킬 수는 없지만 열심히 입질을 하면서 맛을 음미하는 장군이도 맘에 걸려 쓸어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강아지풀 공수가 이제는 루틴이 되었다. 땅꼬는 제주도 여행의 여파인지, 캣휠에 취미를 붙여서인지, 나이를 먹어서인지 중정 산책에 대한 열의를 잃었다. 딱히 큰 취미가 없는 장군이도 맘에 걸려 강아지풀의 계절이 오면 나는 저녁 공터에 허리를 숙인다.
저녁의 대기, 어둑해지는 하늘의 무게가 숙인 내 등을 따라 흐른다. 그 흐름에 50년이 더 된 먼 바닷가 마을의 소금기가 섞이는 환상 속에서 어둑해진 바닷가 마을의 신작로를 울리던 아버지의 발소리와 손에 들린 종이봉투가 오버랩 된다. 신작로를 향해 들인 현관 대용의 작은 점포 문이 드르륵 열리면 양 어깨에 어둠을 앉히고 아버지가 들어오신다. 아버지를 기다리는지, 아버지 손에 들린 종이봉투 속 꿀벌 카스테라를 기다리는지... 우리 형제들은 와~~~ 아버지 손에 매달렸다. 일본에서 나서 유년기를 보낸 아버지는 카스테라를 좋아하셨다. 내가 맛본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카스테라였다. 카스테라를 기다리는 어린 것들의 행복, 그 행복에 또 행복했을 아버지의 저녁.
바닷가 작은 도시의 어떤 작은 가게. 카스테라를 맛있게 굽던 가게가 어디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귀가길 빙 돌아 미지의 가게에서 종이봉투를 채우던 아버지의 손길. 동네 공터에서 강아지풀을 뽑는 내 손길. 이제는 사라져버렸을 그 가게. 그 사람들, 어린 시절... 상실한 낙원의 저녁. 쓰릿한 공허감에 막막해지는 마음의 빈터 한 귀퉁이에 어떤 얼룩이 번진다. 강아지 털같은 얼룩들이 점점이 번져간다. 마음의 빈터를 무성하게 채워오는 강아지풀. 완전히 충만할 수는 없어도... 괜찮아.
마음의 풀밭이 자라는 서울 변두리의 저녁.
이제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