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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없잖아 원문보기 글쓴이: 비스마르크
(2015. 5. 4. 이탈리아 여행 둘째 날, 베니스 2편)
역사적으로 ‘베네치아’하면 떠오르는 것이 제4차 십자군 원정이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 서유럽 기독교 국가들은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을 감행했다. 200년 가까이 무려 8차례에 걸쳐 치른 종교전쟁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종교의 ‘성스러움’이라는 초심은 약탈과 약소국가에 대한 엉뚱한 공격으로 변질되었다. 그중 제4차 십자군 원정은 가장 악명이 높았다.
4차 십자군은 당시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인 이집트 공격을 목표로 베네치아와 병력 수송과 식량 공급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적은 병력만이 모이게 되어 비용 지급을 못하고 빚만 늘어나게 되었다. 재정적으로 위기에 처한 십자군은 지중해 동부 지역의 교역권을 독점하고자 하는 베네치아의 요구에 따라 1202년 엉뚱하게 헝가리 ‘자라’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이어서 다음해는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여 함락시켰다. 도시를 손에 넣은 십자군은 노략질에 눈이 어두워 불을 지르고 라틴 제국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베네치아는 이 원정을 지원한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아드리아해 부터 동지중해 - 콘스탄티노플 -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무역 통로를 완전히 확보했으며 피사나 제노바 같은 경쟁 도시 국가들을 완전히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그야 말로 중세 최강의 도시 국가인 베네치아의 번영의 시대가 열린 셈이었다. 베네치아는 이 기반으로 대서양 신항로 개척 시대 이전까지 강대국의 번영을 누렸다. 16세기 신항로 개척이후 부와 무역의 주도권이 대서양으로 넘어가자, 무역에 의존하는 베네치아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다가 결국 1796년 나폴레옹에게 멸망하고 만다.
사진 1) 성마르코 광장 주변 전경(인터넷 자료)
곤돌라에서 내린 우리는 비둘기가 놀고 있는 산마르코 광장 안으로 들어가 현지가이드로부터 주변 건축물 및 유적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각자 흩어져서 자유롭게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마르코 광장은 산마르코 대성당의 앞마당으로 베네치아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하던 광장이다. 한때 베네치아를 점령했던 나폴레옹은 산마르코 광장을 보고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했다고 한다.
광장은 긴 아케이드가 있는 석조 건물로 3면이 둘러싸여 있는데 대성당에서 광장을 바라보고, 오른쪽(북쪽) 건물은 1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 이 건물을 집무실 등으로 사용했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프로쿠라티에 베키에 (Procuratie Vecchie)라 부르고, 왼쪽(남쪽)은 1640년에 완공된 건물로 프로쿠라티에 누오베 (Procuratie Nuove)라 부른다. 대성당의 맞은편에서 이 두 건물을 연결하는 건물은 1810년 나폴레옹이 재건축했다하여 알라 나폴레오니카 (Ala Napleonica)라고 부른다.
이 건물들의 1층은 가게와 식당들이 차지하고 있고, 2층은 공공청사의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1층의 가게 중에는 1720년에 개업한 플로리안 카페가 유명한데, 괴테 같은 문학가들은 베네치아에 올 때면 어김없이 이 카페를 찾아 손님들과 밤새 토론하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또한 광장 서남쪽 모퉁이에 있는 해리즈 바는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지금도 그 작가들이 사용했던 테이블과 방명록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사진 2) 산마르코 광장
사진 3) 산마르코 광장에서
사진 4) 산마르코 광장의 비둘기
프로쿠라티에 베키에 건물 오른쪽 끝에는 1499년에 완공된 메르체리아라고 불리는 시계탑이 있다. 시계탑 꼭대기에 있는 청동상이 정각마다 종을 친다고 하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산마르코 성당 본채와 독립해서 광장 한편에 우뚝 솟아있는 종탑은 원래 12세기에 세워졌으나 붕괴와 복원을 거듭하다가 1912년 완전히 무너졌고, 그 이후에 현재의 종탑을 새로 건축하였다고 한다. 종탑 위에는 베네치아 전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 종탑 전망대만큼은 꼭 올라가서 베네치아의 특별한 낭만을 느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사진 5) 산마르코 광장 시계탑
사진 6) 가까이서 본 시계탑(인터넷 자료)
사진 7) 산마르코 성당 종탑 전망대(인터넷 자료)
산마르코 광장 주변 건축물중 대표적인 것은 광장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시 산마르코 대성당이다. 산마르코 대성당은 828년, 성인 마르코의 유골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 와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이 성당은 9세기에 처음 세워진 후 11세기까지 일부 소실되었다가 복원되고 그 후 점차적으로 증축이 이루어져 15세기경 오늘 날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마르코 대성당은 건물이 웅장하고 뛰어난 예술품으로 장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서양 건축의 장점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베네치아 양식이란 새로운 건축 양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다섯 개의 거대한 돔과 입구 정면의 화려한 모자이크, 여러 가지 색상의 기둥과 대리석 조각상은 콘스탄티노플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재료와 건축 기법을 이용한 것이고, 정문 위에 세워진 성 마가의 말 조각과 입구를 장식한 조각은 로마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성당 안에 장식된 여러 조각상은 로마와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에서 구입하거나 전쟁 때 약탈한 것이다.
이처럼 산마르코 대성당은 동서양의 건축 기법과 장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최고의 건축물이며, 이야기가 있는 모자이크 벽화 및 여러 모양의 조각상이 내 외부를 장식하여 볼거리가 풍부했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그냥 외관만 스치듯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1,000년이 지난 건물이라 외관의 빛이 바래고, 부분적으로 보수공사 중이어서 그런지 멀리 보아선 내 마음을 끌만큼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아내를 챙기느라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탓도 있었다.
사진 8) 산마르코 성당
사진 9) 산마르코 성당의 벽화(인터넷 자료)
사진 10) 산마르코 성당 내부 모습(인터넷 자료)
나는 광장 밖의 유료 화장실에 들렀다가 일행과 함께 부근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게에는 베네치아의 특산품이라는 유리공예제품과 여러 가지 모양의 가면들이 눈에 많이 띠었다. 베네치아에서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곳은 산마르코 광장에서 배로 40분 거리의 북쪽에 위치한 무라노 섬이다. 이곳의 크고 작은 공방에서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꽃병에서부터 여성들의 액세서리와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데, 유럽 왕족과 부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사진 11) 가게에 진열된 다양한 유리공예품(인터넷 자료)
우리는 12시 50분경에 앞서 곤돌라를 탔던 두칼레 궁전 앞 선착장으로가 수상택시를 타고 베네치아 대운하(Canal Grande)를 따라 달리며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였다. 베네치아에는 자동차가 없는 것이 특징으로 물의 도시라는 특성상 수로가 곧 도로이며 배가 자동차를 대신하여 운송수단이 된다. 육지에서 버스역할을 하는 선박이 바포레토(Vaporetto)라고 부르는 수상버스이고, 택시역할을 하는 모터보트가 수상택시이다. 노를 저어 다니는 곤돌라는 관광용 택시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리고 갈지자(之) 형태로 3.8km에 이르는 대운하는 중앙대로에, 건물사이의 폭이 좁은 수로는 이면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사진 12) 수상택시를 타고 출발
수상택시를 타고 대운하 입구에 들어서니 멀리서 보았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먼저 나타났다. 이 성당은 베네치아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며 팔각형의 바닥 위에 세운 커다란 돔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630년 페스트로 인해 베네치아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4만 700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때 페스트로부터 목숨을 보존한 시민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 이 성당이라고 한다.
살루테란 이탈리아어로 '건강, 구원'을 의미하며 내부에는 틴토레토의 <가나의 혼인(Le nozze di Cana)>, 티치아노의 <성 마르코와 성인들(Pala d’Altare di S. Marco e Cinque Santi)> 등이 있다.
사진 13) 대운하에 진입하기 직전(살루테 성당)
사진 14)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Santa Maria della Salute) 성당 전경
살루테 성당 앞을 지나 대운하에 진입한 후 계속하여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언젠가 그림으로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도심을 흐르는 강 같은 대운하의 양안으로 각각 다른 양식으로 지어진 중세풍의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즐비하여,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순간의 장면이 모두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오랜 세월에 건물이 낡고 빛이 바래서 우중충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아름다운은 여전하였다. 선두에 탑승한 가이드는 수신기를 통해 “이쪽을 보세요, 저쪽을 보세요.”를 반복하며 특정 건축물의 이름과 유래에 대해 설명하였다. 우리는 가이드가 손짓하는 방향을 따라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었지만 그 대상이 너무 많아 곧 지쳐버렸다.
사진 15) 대운하에 진입한 직후 풍경
살루테 성당을 지나자 여러 건물가운데 단층짜리 하얀 건물이 주목을 끌었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라고 하였다. 페기가 살던 별장에 소장품이었던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규모는 아담하지만, 세계 최고 현대미술관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이며 폴락(Pollock), 달리(Dali), 샤갈(Chagall), 칸딘스키(Kandinsky)등 현대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대운하를 따라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여기는 어느 유명배우의 별장이고 저기는 무슨 궁전이라고 하는 등 각각의 건축물에 대해 소개를 많이 하였는데 지나고 나니 사진을 보아도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료를 찾아보니 대운하 입구에서부터 가장 가까이 있는 목조다리인 아카데미아 다리(Ponte dell'Accademia)에 이르기까지 위에서 소개한 구겐하임 미술관외에도,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의 생가라는 바르바리고 궁전(Palazzo Barbarigo), 카발리 프란체티 궁전(Palazzo Cavalli Franchetti)등이 있고 다리 한쪽에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13~18세기 베네치아의 거장들의 뛰어난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어 유명하다. 아카데미아 다리는 길이 48m로 1854년 철제교량으로 건설되었으나, 돌다리로 개축하는 과정에서 예산이 없어 1933년 임시로 산타루치아역 앞 스칼치 다리의 설계도를 가져다가 나무다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16)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사진 17) 어느 유명인의 별장(우측은 코르네르 궁전 : 현대미술관)
사진 18) 바르바리고 궁전(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의 생가라고 한다.)
사진 19) 아카데미아 다리(스칼치 다리와 모양이 같다.)
사진 20) 카발리 프란체티 궁전(Palazzo Cavalli Franchetti)
사진 21) 수상버스 정류장(가운데 흰 건물이 아카데미아 미술관)
아카데미아 다리에서부터 대운하 중심부의 리알토 다리 사이에는 바르바로 궁전(Palazzo Barbaro), 레초니코 궁전(Palazzo Rezzonico), 카 포스카리(Ca' Foscari) 대학, 베네토주 의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발비 궁전 (Palazzo Balbi), 피사니 모레타 궁전(Palazzo Pisani Moretta), 베르나르도 궁전(Palazzo Bernardo), 베네치아 최고재판소가 있는 그리마니 궁전(Palazzo Grimani), 1818년 바이런경이 머물렀다는 모체니고 궁전(Palazzo Mocenigo) 등이 있다.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는 16세기 말에 건설되었으며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설계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 다리는 원래 목조 다리였으나 후에 하얀색 대리석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사진 22) 대운하 주변 풍경
사진 23) 레초니코 궁전(Palazzo Rezzonico) : 현재 베네치아 18세기 박물관으로 사용
사진 24) 대운하 주변 풍경(카 포스카리 대학과 발비 궁전)
사진 25) 베네치아의 카 포스카리(Ca' Foscari) 대학
사진 26) 발비 궁전 (Palazzo Balbi) : 현재는 베네토주 의회 사무실
사진 27) 대운하 주변 풍경
사진 28) 피사니 모레타 궁전(Palazzo Pisani Moretta) : 네잎 클로버 문양이 있는 건물
사진 29) 베르나르도 궁전(Palazzo Bernardo) : 15세기
사진 30) 대운하 주변 풍경(모체니고 궁전)
사진 31) 그리마니 궁전(우측 첫번째 건물) : 멀리 리알토 다리가 보인다.
사진 32) 리알토 다리(인터넷자료)
리알토 다리에서부터 대운하의 끝 부분인 산타루치아역 사이에는 15세기 베네치아 고딕건축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카 도로(Cad'Oro)를 비롯하여 카 페사로 궁, 산 스타에(San Stae) 교회, 터키 상인 회관(Fondaco dei Turchi), 벤드라민 칼레르지궁전(Palazzo Vendramin Calergi), 산 제레미아 교회(Chiesa San Geremia), 라비아 궁전, 스칼치 다리, 산 시메온 피콜로 교회(Church of San Simeon Piccolo)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옛날 귀족들이 살았던 집으로 무슨 궁전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건물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 호텔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 33) 수상버스
사진 34) 카 도로(Cad'Oro) : 황금의 집이라는 뜻으로, 1430년 완성된 베네치아 고딕건축의 걸작이다
사진 35) 카 페사로 궁 : 현재 국립 현대미술관과 동양박물관으로 사용
사진 36) 산 스타에(San Stae) 교회
사진 37) 대운하 주변 풍경
사진 38) 터키 상인 회관(Fondaco dei Turchi) : 17~19 세기에 터키 상인들이 살던 곳으로, 현재는 '국립 역사 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Museum)'으로 사용.
사진 39) 벤드라민 칼레르지궁전(Palazzo Vendramin Calergi) : 가장 아름다운 초기 르네상스 궁전이며 1883년 독일인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가 사망한 곳이라고 한다.
사진 40) 대운하 주변 풍경
사진 41) 수상교통 신호등
사진 42) 대운하 주변 풍경
사진 43) 산타루치아역 주변 풍경(앞의 다리에서 유턴하여 되돌아 나옴)
사진 44) 산타루치아 역(수상버스 정류장 뒤)
사진 45) 산 시메오네 피콜로 교회(Church of San Simeon Piccolo) : 산타루치아역 맞은편
사진 46) 산타루치아역에서 되돌아 나오면서 본 스칼치 다리(첨탑은 산 제레미아 교회)
우리를 태운 수상택시는 산타루치아역을 지나 대운하가 끝나는 부분에서 유턴하여 리알토 다리 쪽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산 제레미아 교회를 분기점으로 하는 샛길 수로를 통하여 운하를 빠져 나왔다. 수로가 교차되는 지점에는 육지 도로처럼 교통신호등도 있어 신기하였다. 운하를 빠져나오니 넓은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리베르타교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때마침 기차가 지나가며 운치를 더해주었다. 철길 다리 밑을 지나 어느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전에 배를 타고 떠났던 바로 그 여객터미널 이었다. 우리는 오후 1시 40분경에 그곳 주차장에 세워둔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을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사진 47) 산타루치아역에서 유턴하여 산 제레미아 교회 쪽으로
사진 48) 산 제레미야 교회(Chiesa San Geremia) : 11세기에 세운 교회로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St. Lucia of Syracuse)를 모신 교회이다. 현재의 건물은 18세기에 재건된 건물이며, 옆에 있는 종탑은 12세기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 탑이라고 한다.
사진 49) 대운하 주변 풍경
사진 50) 대운하를 빠져나와 베네치아 여객 터미널 선착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