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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조율하는 휴먼 컨트롤러
한국 토종뮤지컬 새 역사를 쓰다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스피치 전문가 및 동기 부여 강사. ‘김미경의 아트스피치’ 원장, ‘W.insights’ 대표. 연세대 음대 졸업,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석사. MBC ‘희망특강 파랑새’, KBS ‘아침마당’ 등 방송 출강. 저서로 ‘한 달에 한 번, 12명의 인생 멘토를 만나다’ ‘내 안의 스티브 잡스를 깨워라’ ‘2012년 자기계발을 위한 트렌드 키워드’ ‘언니의 독설’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등이 있다.
셀러(seller) 뮤지컬 감독 '장유정'
셀러 유형 컨트롤러(Controller)
컨트롤러의 셀링 포인트
1) 다양한 배움과 경험으로 ‘나다움’을 찾아라.
2) 콘텐츠는 최소 1년 이상 숙성시켜라.
3) 길거리 커뮤니케이션으로 인간관계를 배워라.
‘요즘 볼 만한 공연이 뭐 있나?’ 인터넷 예매사이트에서 랭킹 버튼을 눌렀다. 월간 차트를 보니 1위부터 10위까지 2개 빼놓고 몽땅 뮤지컬이다. 그것도 오리지널 공연인 위키드(WICKED), 라이선스 공연인 라카지(Lacage) 등 주로 외국에서 들어온 대형 뮤지컬이 대부분이다. 화려한 스케일과 유명배우, 가끔은 아이돌까지 등장하는 외국 뮤지컬의 경쟁력은 듣던 대로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조금 더 살펴보니 한국 토종뮤지컬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현재 상연 중인 작품만 10여개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 제목들에 시선이 꽂혔다.
‘형제는 용감했다’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공통점은 하나. 뮤지컬계 ‘미다스의 손’ 장유정(36) 감독이 원작자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현재 ‘형제는 용감했다’의 연출을 맡고 있지만 나머지 두 작품도 동시 공연되고 있다. 한 작품 성공시키기도 힘든 이 치열한 뮤지컬시장에서.
특히 ‘김종욱 찾기’나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5~6년 전 ‘전석 매진’의 신화를 쓰며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대형 외국 뮤지컬에 주눅 들어 있던 한국 공연계에 토종뮤지컬의 가능성과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불과 30대 중반인, 그것도 공연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감독이 말이다. 장유정 감독은 몇 년 전에도 제대로 사고 한번 쳤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뿐만 아니라 영화 ‘김종욱 찾기’까지 연출한 것이다. 배우 공유, 임수정이 출연했던 이 로맨틱 순정영화는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뮤지컬 원작자이자 감독이 영화까지 연출한 이 전무후무한 스토리의 주인공,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하지 않나?
창작자로서의 ‘나다움’ 찾는 셀프 컨트롤
대학 시절 삭발에 맨발로 학교 통학하기도
그녀가 쓰고 연출한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가 상연되고 있는 코엑스 아티움. 공연장으로 올라가자 장유정 감독이 나타났다. 짧은 쇼트커트에 씩씩한 목소리. 나이는 어리지만 소주 한잔 하면서 고민을 다 들어줄 것 같은 ‘큰언니 포스’다.
“제가 29살 때 연출 데뷔를 했거든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작품을 올리는데 모든 스태프 중에서 제가 제일 어린 거예요. 반바지 입고 무대에서 장비 만지고 있는데 한 스태프가 마이크 들고 그러더라고요. ‘아가씨, 거기 아무나 올라가는 데 아니에요!’(웃음)”
그 나이에 아버지뻘인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컨트롤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 모든 예술·기술·콘텐츠의 종합판이다. 뮤지컬 감독은 무대 위의 음악·연기·춤에 대해 전부 알아야 한다. 게다가 무대 뒤의 조명·분장·무대·음향 등에도 빠삭해야 한다.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테크니션들과도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을 컨트롤할 때는 섬세한 코칭 능력이 필요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공사판 현장소장 같은 리더십도 동시에 필요하다. 많은 콘텐츠 원작자들이 연출까지 넘보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장유정 감독은 타고난 ‘컨트롤러(Controller)’다. 그녀는 세 가지 특별한 조율 능력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셀프 컨트롤(self-control)’이다. 장유정 감독은 창작자로서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죽을 때까지 찾아 헤매는 것이 있다. 바로 ‘나다움’이다. 독창적 콘텐츠라는 것은 어느 날 머리 위에서 반짝 켜지는 전구 같은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만의 색깔, 생각, 가치관, 경험, 이 모든 것들이 조율된 어느 지점에서 탄생한다. 나다움을 찾지 못하면 콘텐츠의 원형질 역시 찾을 수 없다. 평생 누군가의 것을 모방하고 따라하는 이미테이션에 머문다.
나다움을 찾는 방법은 두 가지다. 누구에게 배우거나, 직접 경험하거나. 배운다는 것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꽤나 많은 스승을 두었다. 덕분에 참 ‘가지가지’ 한다. 모든 장르가 녹아 있는 뮤지컬 감독답게 웬만한 건 할 줄 안다. 본업인 글쓰기, 대본쓰기는 물론 뮤지컬 음악도 피아노 반주할 정도의 실력은 된다. 가야금, 플룻, 기타, 단소, 하모니카, 사물 등 다루는 악기만 6~7가지다. 어렸을 때는 판소리로 호남예술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뿐인가. 재즈댄스, 한국무용도 대충 흉내는 낸다. 이외에도 배움에 대한 욕구는 무한하다. 영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때로는 시를 배우다가 어느 날엔 범죄학을 공부한다. 새로운 스승과 만나면서 내 안에 숨겨진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다.
반면 경험은 ‘내 안의 스승’과 만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이론’으로 배운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 판단에 나를 맡기거나 해보지도 않은 채 자신을 단정 짓는다. 그러나 장유정 감독은 언제나 현장에서 스스로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그런 하나하나의 경험들 속에서 ‘나다움’을 꼬장꼬장하게 확인했던 것이다.
“대학 다닐 때는 한겨울에 삭발을 하기도 했어요. 젊은 치기가 아니라 ‘정말 머릿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밀어봤는데 다들 절 피하더라고요.(웃음) 한번은 맨발로 다녀보면 어떨까 궁금해서 학교와 집을 맨발로 통학했어요. 생각보다 해볼 만하던데요.”
남들은 한번 생각만 해보고 넘겼을 그 모든 것들이 장유정 감독에게는 일상이었다. 셀프 컨트롤러는 일단 해보고 후회한다. 그전까지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너, 그러고 다니면 미친 X 같다”고 말려도 그녀는 쿨하게 말한다. “그래? 정말 그런지 한번 해볼까?” 그녀가 20대에 뮤지컬 작가로 데뷔한 것도 바로 이 힘 때문이다. 장유정 감독은 뮤지컬 천재가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절에는 끼 넘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던 평범한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달랐던 점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나다움 찾기’에 몰입했다는 사실이다.
대학 시절 무작정 찾아가 한 달여를 눌러앉은 꽃마을에서 그녀는 수많은 치매, 다운증후군 환자를 만났다. 사람과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지만 정반대였다. 그들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했다. 당시의 경험은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뼈대가 됐다. 20대 때 떠났던 인도여행과 첫사랑의 추억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로 이어졌다. 뮤지컬이라는 컨트롤 타워에 앉아 수많은 자신의 배움과 경험을 가장 그녀답게 하나의 콘텐츠로 녹여낸 것이다.
최고의 작품 위해 스스로를 관리하는 콘텐츠 컨트롤
“10년 가는 뮤지컬 위해 적어도 1년은 숙성시켜”
그녀는 셀프 컨트롤러인 동시에 콘텐츠 컨트롤러(Contents-controller)다. 자신의 콘텐츠를 관리하고 조율하는 데 있어서도 프로다. 장유정 감독은 스스로 다작을 경계한다. 1년에 두 편 정도 뮤지컬 트리트먼트(줄거리보다 조금 더 자세한 스토리)를 쓰지만 실제 작품으로 이어지는 데까지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씩 걸린다. 처음 작품을 쓰면 무조건 1년은 ‘묵히고’ 본다. 그래서 장유정 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대본을 척척 내놔야 하는 기획 작품이 어렵다고 말한다. 콘텐츠가 무르익는 동안에는 또 다른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고 기존의 작품들을 해체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뮤지컬은 반짝 뜨는 것보다 10년 가는 작품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그런데 요즘 트렌드가 워낙 빠르잖아요. 몇 년 지나면 촌스러워져 버리는 작품이 돼서는 안되니까. 그래서 뮤지컬을 쓸 때도 1년은 두고 봐요. 연애할 때처럼 초반에는 눈이 멀어 단점이 안 보이거든요.(웃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솔직히 놀랐다. 어떻게 30대 중반에 ‘무르익음’의 가치를 알고 있을까. 나는 그 나이 때 콘텐츠를 숙성시킬 여유도 배짱도 없었다. 10년 정도 지나 내 강의를 다시 들춰보면 유치해서 들어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의 뮤지컬들은 5~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학로에서, 지방 소극장에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장유정 감독 안에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공존한다. 쓸 때는 스승이 쓴 것 같은데 1년 뒤 다시 보면 꼭 제자가 쓴 것 같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있는 사람은 스스로 여유 있게 무르익어 간다. 남을 쫓아다니면서 묻지도 않는다. 1년 뒤 성장한 자기 자신이 알아서 정답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콘텐츠 컨트롤러로서 스스로를 조율하는 법도 잊지 않는다. 연출가를 겸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작가다. 끝없이 사람들을 상대하는 감독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아티스트의 촉이 무뎌질 수 있다. 그럴 때면 적당한 타이밍에 외부와의 접촉을 줄이고 작가로 돌아간다. 남편의 동의하에 1년 중 한 달은 혼자 외국에 나간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멈출 줄 아는 것이다.
언뜻 보면 쉬운 얘기 같지만 현실에서는 의외로 어렵다. 성공과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성공하되 성공이 과하면 속물근성이 생기고 돈을 과하게 벌어도 속물근성이 생기기 쉽다. 주위를 살펴보면 똑같이 성공했어도 속물근성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내 일에 대한 의미보다는 돈과 성공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익은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고는 어느 타이밍에서 멈춰야 할지 몰라 늘 피곤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장유정 감독에게는 이런 속물근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콘텐츠 컨트롤러답게 자정능력이 강하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킬 줄 알기 때문이다.
“꿈이 되게 소박해요. 그냥 지금만큼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더 큰 집에 살고 싶다, 더 좋은 작품 갖고 싶다, 그런 욕심 없어요. 그냥 극장에 오는 일 자체가 좋고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는 과정 자체가 제게는 가장 소중해요.”
수많은 예술가와 테크니션 조율하는 휴먼 컨트롤
30개국 여행하며 사람에 대한 적응력과 태도 익혀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조율할 줄 안다. 휴먼 컨트롤러(Human-Controller)의 능력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뮤지컬에서 감독은 기업으로 따지면 임원급이다. 수많은 부서를 거쳐본 상무나 전무급 돼야 조직을 컨트롤하는 눈과 내공이 생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장유정 감독은 29살에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출은 콘텐츠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타인과 나, 타인과 타인 사이를 조율하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수많은 장르와 아티스트가 뒤섞인 뮤지컬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율의 연속이다. 음악과 춤, 대본과 음악, 조명과 음악 이 모든 것들을 중간에서 조정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밀어붙이면서 이끌고 나가야 한다.
수많은 예술가와 테크니션들을 다루는 게 처음부터 쉬웠을 리는 없다. 어디든 현장 특유의 정서와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특히 ‘김종욱 찾기’로 처음 도전한 영화판에서 두꺼운 벽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 당시 장유정 감독은 항상 들고 다니던 연출수첩에 이런 글을 썼다.
‘도전하는 자는 먼저 시작한 사람들의 편견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나조차도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데 남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차라리 솔직해졌어요. ‘죄송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카메라는 당신이 전문가니까 좀 알려주세요’라고요.”
전문가들을 컨트롤하려면 일단 그 분야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모르면 자신을 낮춰서라도 배워야 한다. 동시에 각 분야별 특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밀당’을 잘해야 한다. 어느 타이밍에 주고, 어느 타이밍에 밀어붙일 것인가. 얼마나 강하게 당길 것인가.
사람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결국 경험이다. 장유정 감독은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도 길거리에서 배웠다. 가장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딪치고 소통하는 법을 익힌 것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만 30개국. 대학 시절에는 슬로바키아에 공연을 갔다가 러시아, 몽골, 중국을 횡단해 돌아왔다.
때로는 그 길에서 범죄자도 만나고 교수, 사장, 공무원 등 다종다양한 인간군상들과 마주쳤다. 여행은 그녀에게 사람에 대한 적응력과 태도를 훈련시켰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잘못했을 때는 빨리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동시에 자신감과 당당함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라는 것도 배웠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에서는 삭제된 길거리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최고의 커리큘럼이었던 것이다.
장유정 감독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도 공연업계의 블루칩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것이다. 자기 안에 확실한 컨트롤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키우는 방법을 잘 안다. 연출자와 작가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내 작품과 나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나답게’ 커나가는 길을 이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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