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여러분이 앞으로 5년간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발생할 전기료를 미리 한꺼번에 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요? 갑자기 통장에서 큰돈이 빠져나가니 아무래도 부담스럽겠죠. 지난 14일, 우리나라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와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어요.
지난 7월, 한국전력공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앞으로 5년 동안 쓸 전기 요금을 선납(先納)하자는 제안을 건넸어요. 선납은 돈을 내야 하는 날짜보다 먼저 돈을 내는 걸 의미해요. 쉽게 말해, 한국전력공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앞으로 쓸 5년 치 전기료를 미리 내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삼성전자의 5년 치 전기료는 무려 20조 원에 달하는 걸로 여겨져요. SK하이닉스의 5년 치 전기료도 5조 원에 달하죠. 합치면 무려 25조 원이에요.
그렇다면 한국전력공사는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미리 달라고 했을까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앞으로 사용할 전기 요금을 미리 한꺼번에 내면, 그 큰돈으로 새로운 전력망을 지으려는 거예요.
우선 반도체 공장에는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해요. 특히 반도체 공장은 전기가 조금이라도 끊기면 만들던 반도체가 모두 망가지기 때문에, 24시간 전기가 계속 공급돼야 하죠.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경기도 용인에 어마어마하게 큰 반도체 산업단지를 짓고 있어요.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공장까지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한 선로나 변전소 같은 전력망을 새로 깔아야 하죠. 문제는 한국전력공사가 이런 시설을 만드는 데 어마어마한 자금(資金)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사실 한국전력공사는 지금까지 자체적으로 번 돈을 사용하거나 ‘한전채’라는 채권으로 돈을 빌려 자금을 마련해 왔어요. 그런데 앞으로 지어야 할 전력망에 들어가는 돈이 점점 늘어나자, 한국전력공사는 어차피 나중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받을 전기료를 지금 먼저 받아서 전력망을 만드는 데 쓰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겁니다. 하지만 결국 두 회사 모두 한국전력공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가장 큰 이유는 5년 뒤의 상황을 지금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현재는 반도체 산업이 호황이지만, 이 상황이 앞으로 5년 내내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반도체 판매가 줄거나 경기가 나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미리 수조 원의 현금을 내버리면 나중에 회사가 다른 곳에 큰돈이 필요해졌을 때 부담이 될 수도 있어, 제안을 거절한 거예요.
오늘의 한자
선납
先納 먼저 선, 바칠 납 영어 pay in advance; prepay 약속한 기한이 되기 전에 돈을 미리[先] 바침[納].
예문
1. 회사는 공장에 필요한 기계의 대금을 선납하고 제품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2.
자금
資金 밑천 자, 돈 금 영어 capital 사업 따위의 밑천[資]이 되는 돈[金]. ‘자본금(資本金)’의 준말.
예문
1. 창업 준비 중인 나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대출이나 정부 지원 사업을 알아보고 있다. 2.
한국전력공사(KEPCO·Korea Electric Power Corporation): 대한민국 전국 곳곳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공기업.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전국의 가정과 기업 공장으로 보내는 선로를 짓고, 전력 사용량에 따른 전기 요금을 계산해 알리고 돈을 받는 역할을 한다.
공기업(公企業):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자금을 대거나 가지고 있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닌 사회 공공의 이익과 국가 사업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기업.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조폐공사가 대표적이다.
채권(債券):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자금을 빌리기 위해 돈을 이만큼 빌렸으니[債], 언제까지 이자를 얼마씩 주고 나중에 원금을 꼭 갚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하는 문서[券]. 돈을 빌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예컨대, 나라 살림이나 큰 사업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을 ‘국채’라고 하며, 일반 기업이 공장을 짓거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을 ‘회사채’, 한국전력공사가 사업을 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을 ‘한전채’라고 한다.
호황(好況): 소비자들이 돈을 많이 써서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리고, 기업들도 물건과 서비스의 생산량을 늘려 투자도 받아 나라 경기가 좋아지는[好] 상황[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