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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의 열정으로 찾고 싶은 ‘엄지’
글‧사진 유학재 휠라스포트 고문‧협찬 휠라스포트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
별보다 예쁘고 꽃보다 더 고운 나의 친구야 / 이세상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친구야 /
네 곁에 있으면 사랑은 내 것 네 곁에 있으면 세상도 내 것 /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공포의 외인구단> 영화에 나오는 노래 가사이다. 어렸을 적 나도 이 만화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항상 우울했던 까치의 주변에 엄지라는 여자친구의 그늘이 그를 다시 서게 하던 스토리로 기억된다.
우린 산에서 위안을 찾는다. 엄지가 산을 대신 할 수 없지만 까치가 가진 열정만큼 우린 산을 향한 열정이 모여
또 하나의 세계 속에 빠져든다.
대둔산은 다른 리지등반 대상지와는 달리 접근성이 너무 좋다.
또한 초입에 즐비하게 늘어진 상가는 산과 함께 술이라는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
상가에서 가장 눈에 뛰는 것이, 아니 이곳 대둔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있다.
일명 ‘변강쇠 튀김’이라고 하는 인삼 튀김이다.
여기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나면 힘이 솟아나는 것 같지만
한 사발이 두 사발 되고 연거푸 들이키다 보면 힘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축나는지 모르고 밤을 새우고 만다.
대둔산에 오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이 일정 중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이번만큼은 이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찌감치 가게의 문을 털고 나서 비박 장소로 이동했다.
비가 안 올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새벽에 비가 온다.
빗소리는 나뭇잎을 타고 떨어지는 소리와 그냥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엉켜서 다른 영감을 잠결에 보내온다.
비몽사몽에 내일의 등반을 걱정하면서도 빗소리에 더욱 편안한 잠을 청한다.
집보다 편하다고 해야 할까?
비 오는 날 천막아래에서 천막에 부딪치는 소리가 좋아 비 온다고 하면 텐트를 들고 인수 야영장으로 올라가던 생각이 난다.
모든 소음은 차단되고 오직 빗소리를 들으며 밖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비는 곳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들려온다.
이번 등반에 같이 한 동료들은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들어가 프랑스에서 선물로 가져왔다는 치즈와 양주로 2차전을 치르고 있다.
오랜만에 모인 전국의 산쟁이들이다.
서울 찍고 대구 찍고 포항 그리고 전주 이렇게 모인 식구들의 웃음소리는 빗소리와 묘하게 합쳐져서
누워있는 나에게도 기쁨을 준다.
이번 등반은 한국산악회 전북지부와 본회 산악기술위원회에서 지방 교류 등반을 하기 위해 20여 명이 뭉친 것이었다.
4개 조로 나누어 각자의 능력에 따라 동지길, 동심길, 양파길과 엄지길 등반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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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골에 들어서니 그동안 장마로 패인 등산로가 발길을 무겁게 한다.
여기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곳이라 관리사무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골짜기는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또한 울창한 숲으로 그 시원함을 더해 주지만 지금은 흐린 날씨 탓에 피부에 와 닿는 촉감은 시원함을 벗어나 싸늘하게 다가온다. 신선암의 약수로 목을 축이고 인터넷에서 찾은 안내를 따라가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다시 신선암 암자로 돌아와 그냥 내 방법대로 찾아가기로 했다.
엄지길은 새천년리지의 오른쪽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새천년리지 스타트 지점에서 무조건 오솔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길은 점점 더 험해졌지만 사람이 다닌 길처럼 보이기에 긴가민가하면서 갔다.
그렇게 새천년리지에서 약 300미터를 오른쪽으로 계속 가니 바위에 ‘엄지’란 코스 이름이 쓰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인터넷에 나온 안내보다 이렇게 길은 험해도 찾아가는 것이 더 쉬운 것 같다.
아직 태풍이 올라오기 전이긴 하지만 비가 올 것 같이 날씨는 잔뜩 흐려 맑은 하늘을 볼 수가 없고
선선한 바람으로 리지 등반을 하기엔 아주 좋았다.
오래 만에 만나는 시원한 날씨이다. 여름 내내 취재를 하면서 더위에 약한 나는 거의 초죽음상태로 움직여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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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라고 쓰여진 바위가 첫 피치의 시작이다.
어렵지 않게 바위의 균열을 따라 올라간다.
그 동안 내린 비로 젖은 노면에서 암벽으로 올라가가지니 진흙으로 인해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바위를 오르는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제작의 흔적이 엿보이는 볼트 행거가 이채롭다.
원형 스테인리스 철판에 체인을 끊어 용접을 한 볼트이다.
기존에 제품으로 된 볼트보다 믿음은 덜 가지만
그 동안 이곳을 오르다 볼트가 문제가 있어 못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으니 나도 믿고 가기로 한다.
첫 피치를 오르고 나서야 시야가 트여 주변의 지형을 볼 수가 있었다.
리지 두 번째 마디에 오니 먼저 출발한 장기수씨가 몸부림을 한다.
보기와는 달리 슬랩이 까다롭게 그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고빗사위를 넘어선다.
나는 리지화를 싣고 있어 조그마한 턱진 홀드에 리지화가 당해내질 못해 절절 맨다.
암벽화가 그리운 생각이 듣다.
이리저리 리지화에 맞는 스탠스를 찾아 오르자니 그새 손가락이 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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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한 거다.
과거의 등반에 안주하며 몸을 숨기고 있다.
조금만 어려운 곳이 나와도 이제는 몸이 받아주질 않는다.
자업자득이다. 등반은 뒷전이고 등반을 입으로만 하는 테이블 클라이머로 전락하고 있다.
그래도 재미있는 것은 이유가 어쨌든 아직도 몸에 자극을 주는 이런 등반이 좋다는 것이다.
날씨는 환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더욱 흐려지고 바람이 불어댄다. 춥다. 슬며시 재킷을 꺼내 입고 다시 등반을 나선다.
신선암을 오르기 전에 항상 들러 가는 곳이 있다.
나의 악우였던 후배의 흔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나갈 때마다 담배 한 개비를 그의 비석 앞에 향 대신 피워 놓으니
잿빛 하늘은 골초였던 그의 담배 연기를 숨기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젊은 나이에 죽음이란 것에 항의를 하는 것인지
내 눈 속에도 촉촉한 습기로 인해 뿌옇게 시야를 흐려놓는다.
어렵지 않은 슬랩을 오르고 나니 정리되지 않은 5피치 크랙이 나온다.
비가 내린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이내 바위를 적셔버린다.
크랙 안에 큰 참나무가 버티고 있고 그 위에 잡풀이 덮여있어 이곳을 지나 크랙을 오르는데 무진 애를 먹는다.
이미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진흙과 함께 내가 디딜 곳에 묻어 있어 더욱 오르기가 힘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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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피치를 지나자 전형적인 레이백 크랙이 나온다.
한두 차례 힘을 쓰고 나니 피치가 끝난다. 바위를 돌아 마지막 피치 스타트의 홀드 잡기가 까다로운 곳에 왔다.
아니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내 키가 작아 큰 홀드를 잡지 못해 까치발을 해도 홀드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까치발로 뛰고 동동 구른다는 표현이 맞을까 모르겠다.
여기서 까치가 등장한다.
엄지를 찾기 위해, 길을 끝내기 위해 까치발을 해야 하는 마지막 과제이다.
혹시 이 코스의 이름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
비는 다시 그쳤다. 하지만 젖어버린 바위에는 나는 그 까치발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 오른다.
푸른 이끼가 살아나고 있다. 미끄러짐을 서너 번 하면서 올라가니 정상이다.
엄지를 치켜든 우리는 엄지가 어디 있는지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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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소개
대둔산에 새 코스가 열렸다. 이름은 ‘엄지길’.
충남산악연맹 등산학교 OB회 소속의 김기복, 김재웅, 조근영, 조은지(이현숙)씨가 개척했으며,
이들은 2011년 6~8월 두 달간의 작업 끝에 길을 냈다. 최고난이도 5.10c/d에 이른다.
접근로
용문골로 올라서면 외길이다.
개천을 따라 오르다 개천을 건너 산등성이로 들어서서 가다보면 근래에 새로 만든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10여 분 올라서면 신선암의 토글 암자가 나온다.
암자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가는 길을 따라 쭉 올라서면 신선암 암장이 나온다.
그 암장의 오른쪽이 새천년리지이다.
리지 초입에 보면 오른족으로 좁은 소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300미터정도 가면 엄지길의 스타트 지점이 보인다.
다소 길이 험해도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보다는 찾기가 수월하다.
장비
각 피치가 25~30미터이므로 3인 1조 기준으로 로프 한 동과 중간사이즈 캠 3~4개와 약간의 슬링이 필요하다.
시간
중급자 3인 기준 등반시간만 4시간 전후가 소요된다. 어프로치와 하산에는 약 1시간을 더하면 된다.
첫댓글 와우.. 성은이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