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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기다림(주제별 예화모음)
함박눈 추천 0 조회 263 17.12.17 09: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기다림

 

얼마 전 어느 탄광에 갱도가 무너져서 그 안에 갇힌 광부 들이 모두 질식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쉽게 생명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조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던 순간, 그 갱도의 위에서부터 구멍이 뚫려 산소를 마시면서 견디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구출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쉽게 낙심한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끈질기게 버티던 그 사람만이 살아나왔다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최후에 구원을 얻게 됩니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하기를 배우고 기다리기를 배우라." 우리는 기다리기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기다림은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시골 버스

 

한여름의 시골길을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먼지로 뒤덮인 버스는 화덕처럼 뜨거웠다. 어람쯤 달리는데 가로수 그늘 밑에서 한 젊은 군인이 손을 들었다. 버스는 그 앞에 멎었다. 군인은 커다란 배낭을 안고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버스는 떠나지 않았다. 왜 안 떠나느냐고 승객들이 소리쳤다. 운전수는 “저어기” 하면서 눈으로 창 밖을 가리켰다. 승객들은 모두 운전수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젊은 여인이 열심히 논둑을 뛰어 오고 있었다. 버스를 향해 손짓까지 하는 폼이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승객들은 여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개울가로 가서 세수도 하고 바람을 쏘이기도 하였다. 얼마 후 여인이 도착했다. 그러나 여인은 버스에 타지 않았다. 운전수가 빨리 타라고 소리쳤다.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맨 앞좌석에 앉은 젊은 군인에게로 가서 창 밖으로 내민 손을 잡고서 “몸 성히 잘 가이소” 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젊은 군인도 “걱정 마래이” 하며 여인의 손을 아쉬운 듯 놓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승객들은 너나없이 한바탕 유쾌하게 웃었다. 즐겁고 흐뭇한 웃음이었다. 버스는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여인을 뒤로 남겨둔 채 매미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로수 사이로 멀어져 갔다.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혹시 주위에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서 에너지가 넘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가? 이런 사람은 자신의 직장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주위에는 전부 재미있는 일로만 가득 차 있어 주위 사람들도 그런 열성스런 분위기에 동화된다. 자신의 가슴속에 가장 가까이 있는 분야, 즉 당신이 품고 있는 열정, 소망, 흥미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런 분야의 일을 하고 어떻게 돈을 벌지는 다음에 생각하라. - 로빈 쉬어러의 《더이상 우울한 월요일은 없다》중에서 - * 살다보면 온갖 고통과 번뇌, 없는 사람 없습니다. 다만 그것들은 다스리지 못해 자기도 남도 해치는 독(毒)으로 만드는 사람과, 자기 안에서 잘 다스리고 녹여 향기(香氣)로, 활력(活力)으로, 삶의 에너지로 만드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 향기, 그 활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월요일도 화요일도, 좋은 일도 궂은 일도 다 즐겁습니다. 

 

▣ 믿고 조용히 기다려라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말없이 그리고 조용히 기다려라. 정신을 차리고 민감하게 깨어 기다려라. 믿음이란 자동차에 기어를 넣는 것과 흡사하다. 믿음은 즉시 가동시킬 수 없다. 다시 말해 즉시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영적인 생활을 가동시킬 수 없을 때는 기어를 후진으로 하지 말고 중립으로 하라.

 신뢰란 당신이 영적인 생활을 중립에 두는 방법이다. 신뢰는 곧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것으로서 “나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또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하지만 나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 어딘가에 계신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기다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광야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그것이 결코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황무지가 변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약속의 땅을 기다리면서 끌레르보의 버나드가 드렸던 기도를 되풀이할 수 있다. “하나님,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무엇을 했기에 주께서 저를 피해 숨으시는 겁니까? 이젠 기도하기에도 지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기도하고 구하며, 계속 기다릴 것입니다. 주님밖에는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선한 아침의 은총

 

아침에 찾아드는 신선한 기쁨 속에서 생기는 만족 뒤에는 회복이 찾아온다. 지난 밤은 비록 어둡고 황량한 것으로 그러한 밤은 지루함의 여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 대개는 아주 이른 아침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피부가 차갑게 느껴지는 그때 - 하나님께서 그토록 신선한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것이 놀랍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루스컬킨은 우리의 ‘고통으로 기진함’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렇게 그려준다. “오늘 주여, 저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얻나이다. 긍정적인, 든든한 확신을.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신 그것이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임을. 그러나 오늘은 주여, 나의 병든 몸이 힘을 얻으며 저의 찌르는 고통도 가라앉음을 느끼나이다.

 내일에는 다시금 나에게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고통속에 기진하며 몸이 틀리는 고통이 찾아와 숨을 쉴 수 없고 끝내는 마지막 소망의 싹까지 고통이 삼켜버릴지라도 그때에도 믿을 수 있는, 보지 않고도 당신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붙잡고 절대 움직이지 않을 신뢰로써 당신의 아침을 기다리도록 저에게 은총을 허락하여 주소서.” 우리가 지금은 아주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캄캄한 밤 같을지라도 아침이 다가와 그것을 해결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입장이라면 기다리라. 탁월성을 키우라 / 찰스 스윈돌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기다리는 자 되기를 소원합니다. 슬프고 외로울 때도 나를 지켜보시며 기쁨으로 채우실 주님을 기대하오니 주의 구원의 날을 속히 이루소서. 

 

인생길 서두르지 말라

 

일본의 야마모리라고 하는 사람이 벚나무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벚나무의 수명은 짧다. 그 이유는 꽃을 많이 피우기 때문이다. 벚나무는 소나무나 전나무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 아마 이것이 하늘과 땅의 이치인가 보다. 한 나라나 한 집안의 영광도 오래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벚나무는 무상한 나무다” 벚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벚나무는 한순간에 활짝 피었다가 한순간에 우수수 떨어져 버립니다. 나무의 수명도 짧은 편입니다. 화려한 꽃은 나무의 기운을 쇠하게 만듭니다. 또한 병충해를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벚나무는 흥망성쇠하는 인간의 역사를 연상시킵니다. 인류의 역사는 떠오르고 가라앉는 부침의 연속입니다. 영고성쇠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한 순간의 기쁨과 슬픔에 너무 기뻐할 것도, 너무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항상 든든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 속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1시간에 걷는 속도는 4㎞ 정도 즉, 10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능력을 감안하시고 시속 4㎞의 속도로 걸어가도록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출 13:21). 마라톤 경기의 선수는 속도 조절을 잘해야 우승할 수 있습니다. 처음 경기가 시작됐을 때 힘이 있다고 전력 질주를 하면 얼마동안은 앞서 갈 수 있으나 잠시 후에는 지쳐서 낙오되고 맙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생길은 평생 가는 길입니다.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조급함은 절대 금물입니다. 인내를 가지고 내일을 위하여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로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화려하고 멋있는 장래가 보장될 것입니다. 둘째, 젊은 시절의 영화보다 노년의 영화가 더 귀한 것입니다. 전북 전주∼군산간 100리 길은 벚나무 꽃길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벚나무가 노화 상태에 있습니다. 전북도 산림행정과에 문의해보니 1975년에 전주∼군산간 40㎞ 도로에 6300여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이중에 해마다 100여 그루가 시들어 말라죽거나 교통사고로 죽고 또 도로공사 등으로 훼손돼 보식을 한다고 합니다. 불과 30여년의 짧은 세월에 화려한 벚나무가 쇠락해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해마다 꽃을 많이 피워 영화를 누린 까닭입니다.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젊어서 혜성처럼 두각을 나타내며 영화를 누리다가 어느덧 힘을 잃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잠 3:35)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세상의 영화보다 하늘나라의 영화가 더 복스러운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을 보십시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들이 허무하고 헛된 것인줄 알았기 때문에 분토처럼 버리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을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25). 세상은 벚꽃처럼 잠깐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가장 기다려지는 사람

 

얼마 전에 바보처럼 살다가 돌아가신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바보처럼 가장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었는데 소매가 닳아빠진 옷을 입었고, 가장 멋진 자동차를 탈수 있었는데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외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그 아들을 외국으로 쫓아버렸고, 한참 후배들이 통일운동을 한다면서 북한을 제집처럼 마음껏 들락날락할 때도 그분은 "고향에 못간 많은 실향민을 두고 나만 어찌 고향에 가겠는가?"고 하며 바보처럼 그분은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천국 본향으로 가셨습니다. 그분은 웅변도 몰랐고, 쇼맨십도 없었고, 그저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이 바보 같은 목사님의 이름은 바로 한경직 목사님입니다.

이 기다림의 계절에 다시 한번 얼마 전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이 그리워집니다. 그분이 가졌던 마음의 깊은 평화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한 내면의 깊은 평화를 가져야 인생의 풍랑을 잠재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금년에는 엄청난 테러와 그로 인한 보복전쟁이 있었습니다. 섬뜩하지 않습니까?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찢긴 시신 사이에서 사단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을 겁니다. 이 전쟁과 폭력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원수 사랑이 길이라고 하십니다. 원수 사랑이 무엇일까요? 힘이 있을 때 그 힘을 자제하거나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힘이 있으면 그 힘을 과시하고 싶고 그 힘 앞에 벌벌 떨면 쾌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학벌에 신경 쓰고, 연줄에 신경 쓰고, 힘이 있다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립니다. 그처럼 힘의 논리로 살아가면 우리 속에 어둠의 힘은 커지고 영혼은 뒤틀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힘이 있는 곳으로 몰리기보다 힘이 없는 곳을 찾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힘을 얻으면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서 평화를 추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칭송 받는 이유는 힘이 있어도 그 힘을 선하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싸움은 내 욕망을 위해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남을 생각지 않는 이기주의와 독점욕은 우리 속에 어둠을 키우는 평화의 적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내 욕망을 조금 덜어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손해보는 삶을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화 없는 세상이라고 느끼신다면 그런 세상에서 평화의 길을 걷기로 작정해보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길이 없어 보여도 내가 평화의 길을 걷다 보면 반드시 그 길은 생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길은 그렇게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그처럼 평화의 길을 걷기로 새롭게 작정하는 사람이 바로 오늘날 성탄절에 가장 기다려지는 사람이 아닐까요? 

 

양보와 기다림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초행길에 오던 차가 비켜서서 기다려주는 배려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이 양보하기를 강요하며 살아간다. 행복은 작은 배려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다. 기다리면 손해보는 것으로 인식되어 급행료와 새치기 문화가 한때 부정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기다리면 손해본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배려도 쉽지 않다. 기다려주는 여유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좁은 길을 서두르며 달려와 상대방보고 비켜달라고 삿대질하는 것은 한가위 명절의 기분을 망칠 수 있다. 한가위의 넉넉함을 양보와 기다려주는 배려로 시작하면 좋겠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이 들떠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수하기도 쉽다. 이럴수록 양보하고 기다리자.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는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나만 우선이라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 원수가 되기 쉽다. 마음은 벌써 고향인지라 서둘러 가려 한다. 이번 기회에 생각을 느긋하게 바꿔보자. 세상이 달라지고 가을하늘이 더 높게 보일 것이다.  

 

기도하고 기다리라

 

한 부인이 대 오페라 공연 극장의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에게 말하기를 지나간 밤 공연에 갔다가 아주 값비싼 다이아몬드 브로우치를 잃어 버렸다고 했다. 그 지배인은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수색 작업 끝에 그 브로우치를 찾았다. 그래서 그가 다시 전화기로 갔을때 그 여인은 이미 전화를 끊어 버린 상태였다. 그는 그 여인이 전화를 다시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우리는 “얼마나 이상하고 어리석은 사람인가?”라고 말하겠지만 실은 우리가 그와 같은 태도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께 고하고 나서 “수화기를 붙들고 기다리지”못하고 있다. 그 결과로 응답받을 때의 기쁨을 놓치고 끈질기게 기다리는 믿음에 대한 보상과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종종 늦추신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가 우리 마음의 소원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최선을 다했는데도 우리가 바라던 일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때문이다. 우리가 침울해 있거나 죄의 속성인 자기 연민에 빠져 있어서는 안되며 그가 완전하게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가 우리의 간구를 그의 모든 지혜 안에서 응답해 주실 것을 기쁘게 기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잠시 후면

 

본문: 요12: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 영국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가 쓴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황량하고 거친 산속에 살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 새는 자기의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산을 향해 날아가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산을 떠나면 죽을 것만 같아서 안간힘을 썼으나 그것은 허사였습니다. 폭풍을 이기고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새는 폭풍이 부는 대로 자기의 몸을 맡기고 그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폭풍을 따라 한참 날아갔습니다. 드디어 폭풍도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새의 눈 앞에는 푸른 초장과 멋진 수풀의 아름다운 산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살던 거친 수풀의 산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훌륭한 수풀과 산이었다는 것입니다. 잠시 어두움이 있다고 좌절해서는 않됩니다. 어두움이 지난 후에 반드시 광명의 빛이 옵니다. 오늘도 주님만 바라보면서 인내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다려 보는 힘

 

기다려 보는 ''어느 정도의 시간'' 속에 전부가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갈 여러분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말을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번민하게 된다면, 그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 보는 힘''을 내어 보세요!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부단히 힘을 길러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나의 나무 아래서》에서 -

 

* 안정환 선수가 경기 초반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해서 도중에 교체했다면, 연장 경기 후반의 그 기막힌, 세계를 흔들어 놓은 가히 역사적인 골든골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응원단의 큰 실망과 일부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히딩크는 그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믿고 기다려 주는 마음, 그것이 힘입니다. 기다려 보는 힘이 기적과 신화를 만듭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

 

요즘같은 여름이면 인생은 마치 광야와 같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유난히 광야가 많아 전 국토의 3분의 2가 광야다. 그 많은 광야에서 펼쳐진 이야기가 결국 성경의 역사다. 그러나 광야보다 더 무더운 것은 인생 광야다. 사무엘상 30장에서 다윗이 어느날 인생광야를 만난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마지못해 몸을 숨기고 있던 블레셋의 시글락성에 어느날 아말렉이 쳐들어왔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성읍을 불살랐고 부녀자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 중에는 다윗의 두 아내도 있었다. 백성들은 불안에 떨었고 남은 것은 패잔병같은 군사 600명뿐이었다. 그런데 이 위기의 순간에 다윗이 군사들과 함께 들어간 곳이 있었다. 브솔 시내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지중해쪽으로 흘러가는 조그마한 개천, 메마른 땅을 적시는 한 줄기 물과 땡볕을 덮어주는 작은 숲이 있는 곳으로 다윗은 들어갔다. 지금 당장 아말렉을 쫓아가도 될까 말까 한데 왜 다윗은 한가하게 브솔시내로 들어갔을까?

사람들이 바쁠 때 하는 일은 서두르는 것이다. 그러나 서둘러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모든 나쁜 것은 서두름에서 나온다. 심리학자 융이 말한 대로 “서두름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서두름 자체가 마귀”인지 모른다. 생산성과 실적을 성공의 중요한 표징으로 생각하는 현대인은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무능한 사람,바쁘지 않고 한가히 있으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깊히 박혀 있다.그래서 할 일이 없는데도 바쁜 체하고 산다. 그러나 바쁘기 때문에 생기는 단점은 들어야 할 소리를 못 듣는다는 것이다. 미국 철도 건널목에는 세 마디 말이 새겨져 있다. “Stop! Look! Listen!” 기차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달리기만 하다가 소리를 듣지 못하면 변을 당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다윗이 브솔시내로 들어간 이유는 분명하다. 멈춰야 들려오기 때문이다. 아말렉을 쫓아 달려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 날 밤 멈춰서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고 그리고 힘을 얻었다.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누구나 군급할 수 있으나 멈추지 않으면 도움을 받지 못한다. 이번 여름휴가에 우리 모두 브솔시내로 가자. 거기서 서두르지 말고 하늘의 소리를 듣자. 그래야 광야같은 세상에서 용기를 얻는다.  

 

▣ 성급한 행동

 

알렉산더 대왕이 친한 친구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물은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였습니다. 사냥을 즐겼던 대왕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어느 날 대왕은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개들은 사냥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습니다. 달아나는 토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빈둥빈둥 누워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화가 나서 사냥개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대왕은 사냥개를 선물한 친구를 불러 호통을 쳤습니다.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볼품 없는 개들을 왜 내게 선물했는가?

그 쓸모 없는 사냥개들을 내가 모두 죽여버렸다." 친구는 대왕의 말을 듣고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대왕이시여, 그 사냥개들은 토끼를 잡기 위해 훈련된 개들이 아닙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사냥하기 위해 오랜 시간 훈련받은 값비싼 개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알렉산더 대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발이 급한 사람'은 성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면 실수를 하고, 따라서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꼭 시간을 두고 신중히 생각하여 일을 생각하여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 묵상: 당신은 어떤 일을 정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십니까? 

 

▣ 믿음과 기다림

 

존은 열 살 되던 해 크리스마스에 할머니로부터 우표 앨범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다가 왔지만 우표앨범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런데다 놀러온 친구들은 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경하길 원했다. 존은 선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것은 할머니에게 받은 우표 앨범...이 건..." "존, 아직 할머니에게서 우표 앨범이 오지 않았는데, 왜 그런 말을 했니?" 존은 이상한 얼굴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우표 앨범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받은 것과 같아요." 존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믿음을 방해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개월이 지났으나 할머니에게는 여전히 아무 연락이 없었다. 존의 어머니는 왜 할머니가 우표 앨범을 보내지 않는지 마음에 강한 의심을 가지고 아들에게도 이렇게 떠봤다. "존! 할머니께서는 너에게 약속한 것을 잊으셨나보다." "엄마, 결코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께서 잊어버리시다니요." 존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존의 어머니는 아들의 신뢰에 찬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엄마, 할머니께 앨범 고맙다고 하는 편지를 보내면 어떨까요?"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구나. 자, 한번 써 볼까?"

존의 어머니는 이렇게 용기를 주었다. 순식간에 편지를 쓴 후 우체통에 넣었다. 존은 할머니를 믿으며 휘파람을 불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 후 며칠 안되어 답장이 날아왔다. "존에게... 존! 할머니는 너에게 우표 앨범을 사 준다고 한 약속을 잊은 게 아니란다. 너의 마음에 드는 앨범을 구하려고 찾아보았으나 좀처럼 없더구나. 그래서 나는 뉴욕에 주문편지를 보냈단다. 그런데 뉴욕에서 보내온 앨범은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도착한 데다 너무 좋지가 않아서 다른 것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여기 3달러를 보내니까 네가 마음에 드는 것을 그곳에서 사가지렴. 할머니로부터." 편지를 읽은 존의 얼굴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찼다. "엄마, 제가 말한 대로지요?" 존은 할머니와의 약속을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그가 믿고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노력하고 있었다.   

 

▣ 참고 기다렸더니

 

목사님 참고 기다렸더니 교회가 되네요" 얼마 전 충청도 어느 도시 변두리에서 목회하는 후배 교역자의 말입니다. 그 곳에 내려가 목회하길 5년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별 효과는 없고 가끔씩 약해지고 낙심되는 마음이 찾아올 때마다, " 아무래도 안되겠다. 우리 대전으로 나가자" 말하면서 견디길 여러 번 반복하다,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이번에는 정말 진짜다, 진짜 대전으로 나가자" 최후 결정을 한 후 이사갈 준비를 마무리하고 나니까, 새 신자가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너무 신기해서, 한 주 미루었더니 또 새 신자가 찾아오고, 또 한 주 미루고, 한 주씩 미루다가 결국 " 여보 여기서 목회하는 것이 하나님 뜻인 가봐 " 말하면서 다시 그 곳에 머물며 목회하는데 지금은 목회가 잘 되고 부흥 되어 하남의 은혜를 감사하는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진정 믿음의 사람은 인내합니다....히브리서6장에서, 아브라함이 오래 참음으로.... 사랑에도...........................고린도전서13장 성령의 열매에도....................갈라디아서5장 기도에도...........................누가복음18장 

 

▣ 기다림의 유익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운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세례 요한을 낳았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에 얼마나 굴복하며 사는지는 ‘기다림’이라는 도가니에서 시험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념 상태로 기다리거나 초조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이시요, 그 모든 것의 시간 조절에 있어서도 주님이심을 고백하기 원하신다.

 

▣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것

 

목수와 그의 제자가 함께 큰 숲을 지나갔습니다. 그들이 크고 아름다운 떡갈나무를 보았을 때, 목수가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이 나무가 이렇게 거대할 정도로 크고 마디가 있으며 아름다운지 알고 있느냐?"

제자는 스승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니오... 왜 그렇습니까?"

그러자 목수는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떡갈나무는 유용하게 쓸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 나무가 만일 쓸모가 있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베어져서 탁자나 의자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떡갈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나 이제는 이 나무의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나무가 된 것이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

 

요즘 대학교 영문과를 나온 엄마들도 영어학원에 아이를 보낼 정도로 자기 자식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아마도 엄마의 욕심이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의 진도를 확인하고 싶고, 옆집 아이와 자꾸 비교하게 되니까요. 아이는 아이대로 즐겁게 배우지 못하니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5년이 지나, 간단한 영어 단어조차 읽을 수 없던 제가 손녀 은송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이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영어든 한글이든 스스로 배운다는 것과 어린아이들의 머리는 스펀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생후 30개월이 지나자 손녀의 영어 실력은 저를 능가했습니다. 제가 해준 것은 그저 더듬거리며 동화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해준 것밖에 없었습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인내와 이해심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김신숙, 《시골 할머니의 영어짱 손녀 만들기》 중에서

 

기다리는 사람

 

본문: 눅 2:25-29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신령한 성도였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받고 사는 기다림의 사람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그리스도를 뵙고 환희에 차서 찬송한다. "하나님 이제 저를 해방시켜 주시는군요." 그의 삶은 메시야 대망으로 행복했다. 기다림이 있는 사람, 소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엿새가 주일을 위해서 있는가 주일이 엿새를 위해서 있는가" 연애를 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약속한 사람은 모든 날이 데이트를 위해서 있다. 기다리는 날들이 보람과 가치와 기쁨과 충만함으로 채워진다. 기다림은 소망이다. 소망이란 무엇일까?

 성경에서 '소망은 영혼의 닻'이라고 했다(히6:19). 닻은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정박했을 때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 소망은 우리의 시선을 끌어가는 사탄의 유혹에서 보호하여 넘어지지 않게 하고,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게 하며, 우리로 능력 있게 하고, 삼가며 살게 하며, 바람과 파도에 도전하여 극복하게 한다. 소망은 우리로 마침내 천국에 이르게 한다. 종말론적인 삶이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으로 영원한 소망의 삶이다. 언제 오실지 모르기에 항상 기다리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고 역경에서도 승리하게 한다.

 기독교인은 모두 영원한 소망의 사람이요 기다림의 사람이다. 그날을 기대하면서 역경에 도전하고 인내함으로 마침내 그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시길 바란다.

 

* 기도: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생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게 하소서. 시련에 넘어지지 않고 우리의 시선을 끌어가는 유혹을 이김으로 마침내 그 나라에 들어가고 주님을 뵙는 신령한 종으로 빚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희룡 목사, 머릿돌교회

 

중국의 '모소'라는 대나무

 

중국에 '모소'라는 대나무는 산이나 밭에 심어놓아도 5년 동안은 땅 밖으로 전혀 솟아오르지 않고 땅속에서 뿌리만 사방으로 퍼져나갈 뿐이며 그러다가 5년이 지난 다음 해부터는 하루에 한 자씩 무성하게 자라는데 불과 6주만에 15미터 이상 키가 자란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기도 하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낙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기도 제목이 이루어질 때까지 시간이 걸려도 다른 것을 또한 얻고 있는 것 입니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기쁨으로 사시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표 전, 30일을 기다리라

나는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사임하려는 최종 결정을 잠시 보류하고 기다리게 하는 것이 지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거의 언제나 당사자에게 사임 결정을 30일 동안 기다리면서 다시 생각해주기를 부탁한다. 그 30일을 기다리는 동안 화가 가라앉을 수도 있고 몸이 좀더 건강해질 수도 있고, 병이 치료될 수도 있다. 적어도 그들 중 반은 마음이 변한다. 이 말은 사임이 즉각 수리되었다면 그들은 후에 실망하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임하기 전에 적어도 30일을 기다릴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는 자신 이외에 아무도 그의 생각을 알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고용인이 그만두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대개의 고용주들은 깊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고용인이 계속 남아 있다 해도 고용주는 그 실망의 상처가 완전히 치료되지 않는다.

오래 전에 목회를 했던 친구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복을 주셔서 그의 교회는 우리 지역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아침에 그 교회 찬송 인도자가 지각을 했습니다. 피아노 반주자는 오지도 않았다. 잘못될 수 있는 일들은 다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가 일어나 강단에 섰을 때는 실망도 하고 약간 화도 났다. 그래서 그는 다음 주일이 그의 마지막 주일이 될 것이라고 광고를 해버렸다. 정말로 다음 주일이 그의 마지막 주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 곳에서의 사역과 같은 일을 하지 못했다. 그는 아마도 그때의 결정이 평생의 실수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도 감정적으로 사임을 해서는 안된다.

 

참고 기다리십시오

 

어느 날 달팽이가 사과나무를 천천히 집을 지고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더듬거리며 한 시간 불과 몇 센티미터를 움직이며 놓은 나무위로 기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틈새에 있던 벌레가 말했습니다.

<이 느림보야! 너는 쓸 데 없는 시간을 낭비하고 쓸 데 없이 힘을 쏟고 있다. 저 나무에 올라가야 소용이 없어. 사과가 열리지 않았어> 그러나 달팽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올라가면서 혼자 말했습니다. <저 꼭대기까지 기어 오르느라면 사과가 열릴 거야>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승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기다림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금이 면제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언제나 월요일 아침이 되면 기숙사로 가기 위해 짐을 챙깁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때에 절은 손으로 차비 몇 푼을 겨우 쥐어 주곤 돌아앉아 속앓이를 하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기숙사로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뜻밖이라 왜 오셨냐고 말도 못하고 서 있는 아들에게 몇 번을 접었는지 모르게 꼬깃해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미안하구나,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서..."

아들은 어머니의 그 손이 부끄러워 얼른 방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몇 년 뒤, 그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수갑을 찬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은 비로소 다짐했습니다.

"죄송해요 엄마... 조금 기다리시면 제가 호강시켜 드릴게요."

"그, 그래... 기다리마, 기다리고 말구."

출소 후 아들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돈을 모을 때까지는 어머니 앞에 나타나지 않으리란 결심으로 명절 때도 찾아가지 못하고 견뎠습니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고 설을 앞 둔 어느 날, 그가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이젠 찾아갈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큰아들이 돈 벌어 호강시켜 준댔다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전갈이었습니다. 그날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가슴에 안은 채 아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 왜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셨습니까? 하루를...."

어머니 가슴에 박힌 못을 끝끝내 뽑아드리지 못한 아들은 눈물만 흘렸습니다.

 

명시: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몸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음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마냥 섭섭해 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본문: 사 11:1-10

 

기다림이란 소중한 것으로 꿈을 가져다 주고, 소망을 가져다 준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과 하박국, 다니엘이 그랬다. 기다림이란 인생의 동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기다림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기다림의 대상이다. 기다림의 종류는 각양각색이다. 그 다양함 속에서 대상을 바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헛된 것이나 불순한 것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기다림도 있는 것이다. 기다림의 종류도 많으나 그 동기도 목적도 순수하지 못한 많은 기다림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본문 말씀은 주님 오시기 7백년 전 하나님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남쪽 유다에 주신 말씀이다. 분단된 현실에서 남쪽 유다왕 아하스는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지혜를 의지하다가 결국은 정치적으로 앗수르의 속국이 되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 거기다 소수 부유층의 지나친 낭비와 사치풍조, 그리고 국가 관리들의 횡포로 인해서 일반 서민들의 원망과 불신은 깊어져가고, 사회의 무질서와 도덕의 타락으로 말마암아 나라의 기강은 어지러울대로 어지러워진 그런 때였다. 이 국가존망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환상을 보여주신다. 모든 것이 뒤엉켜있는 혼란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이 메시야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평화의 왕 그분이 오시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기에!

 오늘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이 땅의 모든 한을 풀어주고, 선악 간에 분별하여 올바른 심판과 판단을 내리시고,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그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케하실 것이다.

* 기도: 주님과 함께 한 아름다운 과거를 통해 소망이 넘치고 오늘이 알차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근호 목사 구미영락교회 시무

 

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이스라엘 땅은 석회질이 많아 비가 오지 않으면 시멘트처럼 딱딱해집니다. 우기가 되어 이른 비가 내려야 딱딱한 땅이 부드럽게 되어서 농부들이 밭을 기경해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농부가 아무리 수고해도 늦은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은 열매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인내를 배웁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참된 인내입니다.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은 강하고 굳은 마음으로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주 앞에서 인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믿음을 지키고 주 앞에서 인내하면 축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안심할 수 있습니다. 결말을 알면 인생은 쉽습니다.

고난의 최고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흠 없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온갖 수치와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영광을 아셨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부활의 역사는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바로 부활의 주님이고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여,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최선이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 「세상을 이기는 온전한 믿음」/ 반태효

 

주의 오심을 기다림

 

본문: 말 3:1-6

 

교회력에서 대림절(Advent)은 한 해의 출발을 알리는 명절입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네 주 전의 주일부터 시작되는데 대개 11월 말에서 12월 초입니다. 서양에서는 이미 이때부터 성탄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곧 손님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공항이나 기차역에 손님을 마중 나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느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래 기다려온 사람일수록 설렘과 초조함, 그리고 반가움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대림절에 맞춰 우리는 자신을 정리하고 빚을 청산하며 새해 결심을 한 달 앞서서 미리 실천하기도 합니다. 작심삼일이라지만 실패도 여러 번 겪어야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새해를 희망의 선물로 준비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성탄절맞이입니다.

근래의 성탄절은 백화점이나 상가를 중심으로 성탄의 의미보다는 상품으로 치장되고 있다. 여기에 선물을 주고 받기에 급급한 그리스도인들까지 편승해 성탄의 본래 의미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한해의 마무리로 성탄절과 연말을 보내고 있지만, 기독교에서의 성탄절은 모든 것의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실제로 교회력의 시작은 성탄절 전 4주부터 즉 대림절로부터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의미에서 A.D4세기경부터 지키게 되었다고 추측하는데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초점을 기념하는 절기로, 의미는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밝히 전한다는 것이다. 즉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하나님 자신이었던 바로 그분이 인간의 몸으로 인간 역사 속에 오심을 알리는 것이다.

 둘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고 영접하는 의미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의 강림을 기다리고 바랐던 것처럼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기간이다.

 셋째, 강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신자의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한다는 의미 있다. 즉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와 순종으로서 겸손하게 자기의 심령을 살피고 주님의 자리를 마음속에 마련하는 것이다.

 넷째,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의미이다.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잡이가 되었던 것처럼, 신자도 재림하실 주님의 길잡이로서의 각오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오실 언약의 주님을 언제나 깨어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을 환영하고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간절함과 성결함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기다림

 

결혼 15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5년의 결혼생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아내의 모습을 한가지만 말해보라고 한다면,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신혼 초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12시에 퇴근을 하는 남편을 옥상 위에 올라가서 목을 빼고 기다리던 모습입니다. 밤이라서 골목길로 마중 나갈 용기가 없었던지 옥상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오는 골목길을 바라보며 만삭의 몸으로 서 있던 그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어느 때는 한밤중인 1시에 집에 오기도 하고 2시에 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한 시간 두 시간을 옥상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냥 집안에서 기다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단 1초라도 빨리 남편의 모습이 보고 싶어 옥상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아내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핑 돌며, 평생 변함없이 아끼고 사랑해줘야지 다짐했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그렇게 옥상에서 나를 간절히,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어서 빨리 주님께 달려가 그분과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제 발걸음이 더욱 다급하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최용우

 

대망과 기다림

 

70, 80년대 직장인들의 필독서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대하소설이 있었다. 대망이라는 일본 소설인데, 여기서 대망이라는 말은 일본 통일의 꿈을 말한다. 대망은 1950년부터 1967년까지 17년간 일본의 신문에 연재되었는데, 원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100여 년 간 일본 전역에는 300명의 군웅들이 자웅을 겨루던 전국시대가 있었다. 그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들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인데, 대망에서의 주인공은 일본을 통일하고 15대, 260년에 걸친 에도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도쿠가와는 1542년 지방 성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인질로 잡혀 무려 14년 동안 2중, 3중의 속박을 당하며 인질생활을 했다. 갖은 수모와 생명의 위협 속에 그는 극한의 인내심을 배웠다. 그 후, 오다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섬기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머리를 숙이지만 마음속에 품은 대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7살 때,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한다.

당시, 일본의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한 오다 노부나가는 도쿠가와의 충성도를 시험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도쿠가와의 아내와 장남을 처단하라고 요구한다. 그는 자신의 힘이 아직 부족하고, 또 대망을 포기할 수 없어 전쟁 대신 노부나가의 요구에 따른다. 대망과 아내와 아들의 목숨을 바꾸는 비정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대망에는 이렇게 그에 상응하는 희생이 요구된다. 그 사건이 있은지 3년 후, 1582년 신복에 의한 혼노사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자결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데, 도쿠가와는 히데요시에게 맞서지 않고 자신의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

1598년 히데요시가 6살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기다림의 대가인 도쿠가와는 히데요시 가문을 그때 바로 무너뜨리지 않고 패망 공작을 벌이며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1615년 그의 나이 74세 때, 드디어 오사카 성을 공격해 히데요시 가문을 완전히 멸망시킨다. 사실 도쿠가와는 천재적인 자질을 갖춘 것도 아니고, 시대가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천하를 통일하고 에도 막부 시대를 열게 된 데는 남이 견디지 못할 일을 견디고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그의 기다림에 있다. 대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의 성격을 적절하게 묘사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새가 울지 않을 때 그들은 각각 어떻게 반응하는가’, 오다 노부나가는 다혈질에다 성미가 급하기 때문에 즉시 죽여 버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꾀가 많고 적극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새를 기어코 울게 만든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오다가 떡살을 찧고, 도요토미가 반죽하여 맛을 낸 천하라는 떡을 도쿠가와가 힘 안들이고 먹었다고 풍자한다.

대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도 인류 구원이라는 대망을 이루시기 위해 아담의 범죄 후에 오랜 기간을 기다리셨다. 그 기다림 끝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그 대망을 이루셨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냉혹한 결정이었지만 대망을 위해 아내와 아들을 희생시켰다. 우리는 과연 주님의 대망인 영혼구원을 위해 그런 희생을 감수할 자신이 있는가. 또 복음의 열매를 위해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릴 수 있는가. 희생과 기다림 없이 대망은 결코 이루어 지지 않는다.

- 최요한 목사(본지 이사장, 남서울비전교회 담임).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오랫동안 기다리던(찬송가 105장)

 

1.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님 강림하셔서 죄에 매인 백성들을 자유얻게 하시네 주는 우리 소망이요 힘과 위로 되시니 오래 기다리던 백성 많은 복을 받겠네

2. 모든 백성 구하려고 임금으로 오시니 영원토록 우리들을 친히 다스리시며 죄로 상한 우리 맘을 은혜로써 고치고 주의 빛난 보좌 앞에 이르도록 하소서 아멘

 

▣ 기다림, 인내, 오래 참음에 관한 성경 말씀

 

0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3)

0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0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0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0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 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

0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2)

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0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0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딛2:2)

0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12)

0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

0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12:1)

0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3-4)

0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 랑을 공급하라(벧후1:5-7)

0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라(벧후3:9)

 

▣ 기다림, 인내, 오래 참음에 관한 금언

 

0 형통한 날에도 역경의 날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메튜 헨리)

0 삶의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에서도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가 있다.(니체)

0 참으면 모든 문이 열린다. 참는다는 것은 괴로우나 열매는 달다.

0 훌륭한 인간의 특징은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끈기 있게 인내하는 것이다.

0 정신이 늘 육체의 요구를 이겨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많이 참을수록 그대에게 덕이 있을 것이다. 천재라는 사람들은 별종의 인간이 아니다. 그 들은 보통이상의 참을성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0 어느 날 갑자기 착한 사람이 되거나 악인이 되는 사람은 없다.

0 삶의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에서도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가 있다.

0 비록 자기가 올바를 지라도 끝까지 침묵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큰 힘이 있다.(카토)

0 수모를 당하고도 앙갚음하지 않고 태연히 수모를 참아 넘길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세상사에 있어 위대한 승리를 거둔 사람이다.(제네비오 란)

0 참으로 위대한 일은 모두 느릿느릿한 눈에 띄지 않는 성장에 의해서 이뤄 진다.(류시 말로리)

0 인내와 기다림은 희생 이상의 큰 일을 한다.(영국격언)

0 인내와 신앙은 산이라도 움직인다.(W. 벤)

0 인내는 목적을 달성시키지만 서두름은 패망으로 줄달음치게 한다.(사디)

0 인내, 금전, 시간은 만사를 해결한다.(영국격언)

0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그가 바라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프랭크린)

0 기꺼이 기다리는 것은 거룩한 예술이고 기술이며, 인간은 그것을 하나님께 로부터 배운다.(토마스 만톤)

0 인내는 성공의 비결이요, 절망은 실패의 근원이다. 잘 견디는 자가 승리한다.

0 재앙이 와서 견디기 어려울 때는 참고 또 참으라. 그러면 그것이 전환하여 도리어 유익이 되리라.(세익스피어)

0 위대한 일은 강인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내와 기다림에 의해서 이루어진다.(사무엘 존슨)

0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앙의 힘이다.(토마스 와트 슨)

0 신(神)과 복(福)은 기다리고 참는 자와 더불어 있다.(고란)

0 별을 보는데도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낮에는 별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0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 모든 것은 돌아옵니다.(F. 라볼레)

0 자연과 시간과 인내는 3대 의사다.(H.G. 보운)

0 어떠한 일이든지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

0 기다림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미덕이기도 합니다.(마틴 루터)

0 인내 없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은 없고, 겸손과 온유의 정신이 없는 곳에 인내는 없다. 겸허와 인내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해지는 확증이다.(J. 웨슬리)

0 대사업은 역량(力量)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인내에 의해 이룩되는 것이다.(s. 존슨)

0 너는 인내하고 하나님을 기다려라. 하나님은 너를 정직한 형태로 주조하리 라.(마르틴 루터)

0 인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고 끝나는 바로 그곳에서 성공하기 시작한다.(에드워드 이글스톤)

0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자는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벤자민 프랭클린)

0 기다림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믿는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다.(하인리히 퀘르퍼)

0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당신과 나의 행복입니다.(에르빈 그로스)

0 형통한 날에도 역경의 날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메튜 헨리)

/한태완 목사 360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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