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본문 : 이사야 42장 1- 7절/ 18- 22절
앞장인 41장에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예언하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 오늘은 42장입니다. 오늘 본문에선 ‘포로생활로 절망 중에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호와의 종을 보내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원의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과 함께,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우매한 자들을 책망하신다’는 것이 42장 전체 내용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여호와의 종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는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지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로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위로하시기 위한 대안으로 여호와의 종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1차적으로는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한 포로로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시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붙드시는 종,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는 자,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7절에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말씀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 땅에 참된 진리인 복음이 선포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재림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정의로 심판하실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선민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자신들만 구원받을 수 있고, 이방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저들의 생각을 깨신 것입니다. ‘이방인에게도 공평하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선포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3절에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하실 것이며” 말씀하고 있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상한 갈대와 같았고,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았습니다. ‘외부의 힘에 의해 꺾어져서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비참한 상태, 그냥 내 버려두어도 저절로 꺼지고 말 상태’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그들에게 “정의를 시행하실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정의’는 히브리어로 ‘체다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로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 뭐에요? 저들이 범죄하였고, 끝내 돌이키지 않아 징계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제불능의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선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저들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가 아니라 건강한 갈대로 회복시켜 주시고, 꺼져가는 등불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등불로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요?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상한 갈대야, 꺼져가는 등불과 같아 소망이 없다’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선 우리로 하여금 다시 기회를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싱싱한 갈대와 같이 또한 활활 타오르는 등불로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자 보십시오, 4절에 뭐라고 하십니까?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도 ‘그’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고 했어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는데도 듣지 아니하다가 결국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온 저들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스럽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선 실망하시지 않으시고, 저들을 포기하지도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실망도 하시고, 포기하실 만도 하실 텐데, 예수님께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정리를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붙드신 종이요,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이십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까지도 복음을 전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실망하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하나님께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6절을 읽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여기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가 있었는데, ‘바사 왕 고레스’였습니다. 고레스 왕이 의로워서 부르셨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의를 이루기 위해 그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손을 잡아 보호하시며, 이방의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오직 목적은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시고, 그것을 본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를 불러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을 불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김장원 집사님을 부르셨고, 임승남 권사님을 부르셨고, 정권사님과 임집사님을 불러 주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6절 말씀을 이렇게 읽어야 할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김장원을 불렀은즉, 내가 김장원의 손을 잡아 김장원을 보호하며, 김장원을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김장원 집사님과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에수 믿고 천국에 가라고 부르셨을까요? 물론 그 말도 맞습니다. ‘백성의 언약’ 즉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구원하시려는 언약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이방의 빛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 말의 뜻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전도하는 사명’입니다. 둘째는 ‘이방인들에게 빛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믿는 자로써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뭐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요, 또 ‘예수 믿는 우리들이 믿음의 본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습니까? 하여 여러분 모두 이 일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우리는 절대 맹인이나 귀먹거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절망 중에 있는 백성들을 위해 여호와의 종을 보내 구원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여호와의 종으로 인해 구원함을 받았다면,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18절에서 “들으라. 밝히 보라”고 말씀하는 것을 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요? 못 듣는 자들과 맹인들입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우리 함께 1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 여기서 ‘내 종’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남 유다 백성’을 말합니다. 분명 저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이요, 사자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충성하기로 맹세한 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선민이요, 제사장 나라로 세워 주셨건만, 이를 깨닫지 못하는 영적 귀먹거리요, 영적 소경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저들이 듣질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으로 보여주셨건만, 저들이 소경과 같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엉뚱한 짓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22절에 “이 백성이 도둑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들 중에 이런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에요? ‘맹인과 귀머거리’입니다. 분명 저들은 그동안 수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적인 것을 보았습니다. 문제는 20절에 나오는 말씀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영적인 것을 많이 보여주어도 무관심하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셨건만, 저들이 맹인이요, 귀먹거리가 되는 바람에 결국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여 오늘 우리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맹인이나 귀머거리가 되지 말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 많은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고, 영적인 귀가 열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도 할지라도, 순종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영적인 귀와 눈이 열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한편,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자들의 손을 놓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축복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서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여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기뻐하는 자요, 하나님께 택하신 종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우리를 예전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묻지도, 따지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영육간으로 회복시켜주시고, 이방의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과 함께 ‘이방인들에게 믿는 자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는 영적인 맹인이나 귀머거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