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하는데 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돌을 조그만 지석(支石; 고임돌)으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식[남방식]이 있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강화읍 서쪽에 있는 고려산(高麗山)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시루메산이 평야와 만나는 지점에 수십 기가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점면 삼거리・부근리, 양사면 교산리 일대에는 고인돌이 40여 기쯤 있는 것으로 최근에 조사되었다. 그 가운데 흔히 부근리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가장 규모가 큰 무덤 1기를 1964년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현재는 남아 있는 2개의 지석이 개석(蓋石; 덮개돌)을 받들고 있는 형태로 마치 통로와 같은 모양이다. 즉 입구 역할을 하는 양끝의 마감돌이 없어진 것을 뜻한다. 지석의 크기는 서쪽의 길이가 4.5m・두께는 0.6m이며, 높이는 1.4m이고, 동쪽 지석은 길이가 4.64m・두께 0.8m・높이 1.4m이다. 개석은 장축의 길이 6.5m・너비 5.2m・두께는 1.2m이며, 전체 지석묘의 높이는 2.6m이다. 지석묘를 이루고 있는 개석의 석질은 강화도에 흔한 화강편마암이다. 이 지석묘의 주변에 이러한 규모의 석재가 없는 것으로 볼 때 돌산이나 해안 등지에서 바위를 운반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예로 마니산(摩尼山)에는 자연 판상석(板狀石)을 떼어 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대형 판석의 채취와 운반 기술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으로 남고 있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 곁에는 파괴된 또 하나의 지석묘가 있는데 지석은 없어지고 판석의 뚜껑만 남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지석묘의 전후 300m 내에는 많은 지석묘가 존재하는데 남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도 이 부근의 지석묘 군 가운데 하나로 현재 지석 하나만이 남아 있다. 또한 동북으로 300m되는 거리에는 2기의 지석묘가 있다. 하나는 북방식 지석묘로서 앞서 설명한 2기의 지석묘와 개석의 놓인 방향이 동북 60도로 동일하다. 그 옆에 있는 지석묘는 남방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화도 전체에는 44기의 북방식 지석묘가 있고, 35기의 남방식 지석묘가 확인되고 있어 강화도의 지석묘 군은 남방식과 북방식이 절반씩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기 사항; 발굴 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인근 삼거리에 있는 지석묘에서 무문토기 조각과 마제 석검[간 돌검], 방추차[돌가락 바퀴]를 비롯한 유물들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삼거리 유적과 비슷한 유물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2000년 12월 고창, 화순 고인돌 유적과 함께 강화 고인돌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11년 7월 28일 강화 지석묘에서 강화 부근리 지석묘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의 조사가 있기 전까지는 이 대형 지석묘만이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사에 의해 여러 기의 지석묘가 더 확인되었고, 당시 이 지역의 사회상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상당한 수의 대형 지석묘가 비슷한 장소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경제・정치적 권력의 집중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일대에 강대한 권력 집단이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 기의 지석묘를 만드는 데에 당시의 수준으로 약 2,300명의 인부가 동원되며, 이러한 지석묘가 반경 4㎢ 이내에 약 80여기라는 수가 발견된다는 것은 당시에 큰 사회 조직이 존재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야기; 지석묘는 고대 사회의 대표적인 묘제의 하나로서 전 지역에 분포되고 있다. 대략 2만기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석묘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청동기시대의 인류들이 즐겨 사용하던 돌무덤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북방식과 남방식 두 가지 형식으로 분류되고 있다. 북방식은 지상에 네 개의 지석을 세운 다음 평면이 장방형의 묘실이 형성되도록 석관(石棺; 돌널)으로 축조하고 그 위에 평편한 개석을 얹은 형태를 말한다. 남방식은 대개 지하에 묘실을 구축하고 지표면에 별개의 큰돌이나 자갈돌을 깔고 그 위에 개석을 얹는 형식을 일컫는다. 그러나 남방식에는 지하에 아무런 시설이 없이 움만 있는 경우와 석관을 시설한 경우가 있다. 지석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만주 지방에도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강화의 북방식 지석묘는 한반도의 서북부인 황해도・평안도 지방과 만주 랴오둥[遼東] 반도 일대에 연결되고 있어 이들과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강화에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고려산 주위의 강화읍・송해면・하점면・양사면・내가면 등 1개읍 4개면에서 무려 110기에 가까운 지석묘가 발굴 조사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40여 기가 확인되어 지금까지 강화에서 알려진 지석묘는 대략 150여 기 정도이다. 이 가운데 약 2/3가 북방식 지석묘이고, 약 1/3이 남방식 지석묘로 확인되었으며, 형식이 분명하지 않은 지석묘의 석재들이 묻혀있거나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도 다수 발굴되었다. 특히 강화에 상당수의 남방식이 북방식과 함께 섞여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