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가 열리기 전의 분주한 모습들에서 두한(안재모)과 김영태(박영록)가 막 시장안으로 들어온자 상인들은 반갑게 달려나와 이들을 맞는다. 뭉치(정소영)와 그의 부하들은 김두한이 돌아왔다는 말에 화득짝 놀라 자리에 일어나지만, 두한은 어느새 사무실의 문을 거칠게 열며 뭉치 앞에 선다. 그리곤 뭉치에게 우미관으로 돌아가라 경고한다. 뭉치는 이 말을 듣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지만, 두한이 노려보자 차마 공격할 엄두 조차 내지 못한다.
번개는 두한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듣고 사무실로 찾아가는데, 두한을 보고 감격하지만, 이내 구마적과의 대결이 사실이냐며 걱정스럽게 물어본다. 이에 두한은 자신을 믿는다면 아무말하지 말라며 토닥인다. 뭉치는 구마적에게 두한을 박살내겠다며, 20명만 붙여달라며 부탁하지만, 구마적은 버럭 화를낸다.
구마적과의 대결을 하루 앞둔 저녁 두한일행은 종로회간에서 모임을 갔게되는데, 양코는 거지패들을 모두 끌고와 구마적패들이 쳐들어 올지 모른다며 두한을 보호한다. 마침 뭉치는 두한을 치려고 하지만, 거지패로 인해 물거품에 그치고 만다. 한편, 김무옥과 문영철은 두한을 만나기 위해 대성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건달 패거리들과 맞달들이게 된다.
다음날 구마적(이원종)과 두한의 대결장소에서 둘은 마주보고 서있다. 두한은 입술을 꾹 다문채 구마적을 노려보는데......
씬 1 종로 시장통 (밤)
야시가 열리기 전의 분주한 모습들이 보여온다. 상인들은 이곳저곳에 서 초롱불을 준비 하며 난전을 벌이고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행인들을 향해 목정을 높인다. 두한과 김영태가 막 시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들의 뒤, 저 멀리로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고깃집 주인(상인1)이 두한을 보고 반색한다.
진다. 두한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인사를 건넨다.
무심코 그곳을 지나가던 뭉치의 똘마니가 두한을 보고는 기겁을 해서
달아난다.
상인2 : 그런데 두한아, 자네와 구마적이 한 판 붙는다는 소문이 사실 인가?응?
두한 : 네, 그렇습니다.
모두들: ....(웅성거린다)
상인2 : 아이구 어쩌려구 그랬는가? 그 괴력을 어떻게 당해내려구.
상인1 : 이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초저녁부터 왠 헛소리야. 재수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저리
물러서. 다들 길 비키라구. 자, 우리 가게로 들어가서 요기나 좀 하게.
두한 : 아닙니다. 먼저 사무실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인1 : 그래두 잠깐만 들렀다 가...
두한 : 이따가 뵙겠습니다.
상인1 : 그래, 그럼 그렇게 하세나. 아예 종로회관에 자리를 마련해 놓음세.
두한 : 고맙습니다. 그럼....
두한과 김영태가 상인들을 뒤로 하고 그곳을 빠져나간다.
씬 2 동 시장 사무실
뭉치가 책상에 발을 올린 채, 거만하게 앉아있고 부하들은 화투가 한참인데, 뭉치의 똘마니가 급하게 들어온다.
부하1 : (헐떡이며) 크..큰 일 났습니다, 형님. 노..놈이 나타났습니다.
뭉치 : 뭐가...?
부하1 : 기..김두한 말입니다. 그 놈이 지금 시장바닥에 나타나서..
뭉치가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뭉치 : 두한이라니...? 두한이가 확실해?
부하1 :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분명히 김두한입니다.
뭉치 : (바싹 긴장해) 몇 명이나 오고 있어? 두한이 말고 다른 애들 말이야.
부하1 : 김영태와 단 둘이었습니다.
뭉치 : 단 둘?
부하2 :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큰 형님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거 말입니다.
뭉치 : 이 놈이 겁도 없이...(부하1을 향해) 그 자식 지금 어딨어?
부하1 : 지금 이 쪽으로 오는 걸 보고...
그때 문이 세차게 열치며 두한과 김영태가 모습을 드러낸다. 부하들이
벌떡 일어나며 본능적으로 공격자세를 취한다. 두한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뭉치를 노려본다.
두한 : 오랜만이군..그런데 여기서 뭘 하는 있는 거지?
뭉치 : 여긴 이미 우리가 접수했어.
두한 : 아직은 아니야. 우미관으로 돌아가라.
뭉치 : 뭐야?
두한 : 돌아가라고 했다.
뭉치가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부하들도 뭉치의 눈치만 살피며 공격기회만 엿보는데...
두한 : (무섭게 둘러보며) 한 번 해보겠다는 건가?
뭉치 : .....(차마 공격할 엄두를 못내고)
김영태: 이봐, 뭉치. 섣부른 짓은 안하는 게 좋아. 이런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우리를 상대할 생각은
아니겠지?
뭉치 : (두한을 향해) 어쩔셈이냐, 김두한?
두한 : 알고 있을 텐데...난 내일 너희 오야붕과 승부를 겨루기로 되어있어.
뭉치 : 스스로 무덤을 파다니..넌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어.
두한 :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뭉치 : 좋아..오늘은 이곳을 잠시 비워주지. 하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을 거야. 내일이 지나면
네 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까...가자.
뭉치가 험악한 표정으로 두한을 노려보다가 밖으로 나간다. 부하들이
조심스레 그 뒤를 따른다.
씬 3 동 종로거리
뭉치가 가면서 중얼거리고 있다.
뭉치 : 간뎅이가 부은 놈이야. 제 정신이 아니야, 저 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다구. 다시 돌아오다
니.. 미친 놈.
씬 3-1 사쿠라
나미꼬가 놀라 되묻고 있다.
나미꼬: 김두한이 돌아 왔다구요? 언제요?
시바루: 조금전에 야시장을 지나 예전에 있던 사무실로 갔다고 합니다
나미꼬: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구마적하고 결투를 벌인다는 거 말이예요. 설마했는데..
시바루: 무모한 도전이지요. 지난 번에 당한 부상이 채 낫지도 않았을 겁니다.
나미꼬: 영웅은 그렇게 탄생하는거 아닌가요? 시련과 역경이 없다면 진정한 영웅도 없지요.
김두한 그 사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시바루: ...........?
나미꼬: ........(묘한웃음)...
씬 4동 시장 사무실
두한이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시장을 바라본다.
두한 : 여길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꼭 몇 년이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돌아오니 고향
처럼 푸근하군요.
김영태: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게.
두한 : 제가 구마적을..이길 수 있을까요?
김영태: .....?
두한 : 솔직히 두렵습니다. 시장 상인들을 만나고 나니 뭔가 육중한 것이 제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습니다.
김영태: 두한이 자넨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싸움꾼 중에서 최고였어.
자넨 지금 조선 상인들의 희망일세.. 그 기대와 염원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걸로 믿네..
두한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데...잠시 후 문이 활짝 열리며 번개가 들어온다.
번개 : (감격해) 형님! 두한이 형님!
두한 : (돌아보며) 번개로구나...
번개 : 정말 돌아오셨군요. 영태 형님두요...
김영태: 그래..살아있는 것 보니 잘 숨어 있었구나. 그 동안 고생이 많았지?
번개 : 고생은요..(울먹이며) 형님들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요..
두한 : 번개답지 않게 왜 그래? (어깨를 감싸안으며) 이제 됐어.
이렇게 다시 만났잖아?
번개 : ...(눈물 춤치고) 그럼요. 이제 형님들이 돌아오셨으니까 이 번개도 어깨를 펼 수 있겠습니다.
두한 : 짜식..자 앉자..(앉으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소식 좀 아는 거 있냐?
번개 : 삼수하고 병수는 저하고 같이 있구요. 무옥이 형님하고 영철이 형님은 경성땅을 뜬다고
하셨어요.
두한 : ...(끄덕이며) 그랬구나..
번개 : 저 근데 형님..
두한 : ...?
번개 :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정말 구마적하고 맞장을 뜨시는 거 예요?
두한 : (끄덕인다)...
번개 : 어쩌시려구요? 구마적은 인정사정 없는 사람이라구요. 지난 번에도..
두한 : (자르며) 번개..
번개 : 예, 형님.
두한 : 너 나 믿지?
번개 : ...그야..
두한 : 그럼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번개 : ...(영태를 보면)...
영태 : ....
두한 : ...
씬 5 우미관 외경
극장 간판 위로 불이 훤히 켜져 있는 구마적의 사무실 창문이 보여온다.
상하이(E): 무시해 버리십쇼, 큰형님. 놈의 도전을 받아 주시면 안됩 니다.
씬 6 동 사무실
구마적을 중심으로 상하이, 평양 박치기, 제비 등이 앉아 있다.
구마적은 생각이 많다.
상하이: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쇼. 이번엔 확실히 놈의 명줄을 끊어놓겠 습니다.
구마적: ...
평양박: 하지만 소문이 퍼질대로 퍼졌어. 우리 선에서 해결하기엔 이미 늦은 것 같다.
상하이:그래서, 큰 형님께서 그런 핏덩어리를 상대하셔야 한다는 거야?
평양박:인정하긴 싫지만 두한이는 큰형님에 버금갈 만큼 커버렸어. 더구나 사람들은 지난 번
우리의 기습 공격이 비겁했다고 비 아냥 거리고 있어.
상하이:무슨 소리야? 우리가 언제부터 남의 눈치나 보고 살았다고 그래?
평양박:이건 큰형님의 체면과 위신이 달린 문제야. 경성내의 모든 주 먹들이 지켜보고 있어.
구마적:...(무거운신음)...
평양박: 큰형님, 도전을 받아주십쇼. 이번 기회에 깨끗하게 매듭을 짓 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마적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 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면서
노크소리와 함께 다급한 뭉치의 소리가 들려온다.
뭉치 : 큰형님, 저 뭉칩니다.
구마적: 들어와.
뭉치 : (안으로 들어와) 큰형님, 두한이 놈이 돌아왔습니다.
구마적: ....?
뭉치 : 김영태하고 단 둘 뿐입니다. 제게 이십 명만 붙여주십시오.
지금 돌아가 박살을 내버리겠습니다. 영철이나 무옥이들이 모 이기 전에..
구마적: 닥쳐! 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뭉치 : ...(찔끔)...
구마적: 다들 나가라...어서!
상하이들이 주춤주춤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구마적 : 처음부터 내가 나섰어야 했어. 내가 그 놈을 그렇게 키워준 거야.
어쨌든 일이 더럽게 꼬여버렸어.
씬 7 사쿠라 앞
하야시의 승용차가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달려와 그 앞에 선다.
조수석의 미우라가 급히 내려 뒷문을 열어주면 하야시가 내린다.
천천히 차에서 내리는 하야시.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씬 8 동 홀
하야시가 들어와 홀을 둘러보고 있다. 나미꼬가 급히 다가와 반겨 맞는다.
나미꼬 : 어서 오세요, 형부..오실 거면 연락이라도 좀 주시지 그러셨어요?
하야시 : 총독부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잠시 들렀어. 장사는 잘 되는 것
같구만..
나미꼬 : 아직 멀었어요. 이 정도로 만족할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안했을 거예요.
하야시 : (빙긋 웃고) 차나 한 잔 주지.
나미꼬 : 그럼요. 안으로 모실게요. 이 쪽으로..
나미꼬의 안내로 하야시들이 별실로 간다.
씬 9 동 별실
하야시가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그를 중심으로 양편에 나미꼬와 미우라가 앉아있다.
하야시 : 차맛이 좋구만..그래, 애로사항은 없나?
나미꼬 : 지금까지는요..손님도 조금씩 늘고 있고, 무엇보다 구마적 오야붕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형부, 소식 들으셨어요?
하야시 : ...?
나미꼬 : 아직 못들으신 모양이군요. 전 그 일 때문에 오신 줄 알았는데..
하야시 : 허허..무슨 일인데..?
나미꼬 : 김두한이 종로로 돌아왔어요.
하야시 : ...?(순간 안색이 굳는다. 그러나 여전히 여유있게) 그랬구만..
나미꼬 : 더 놀라운건 구마적 오야붕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거예요.
하야시 : ...그야 당연한 수순이겠지..
나미꼬 : ...? 알고 계셨어요?
하야시 : (도리질) ...처제에게 처음 듣는 얘기야.
나미꼬 : 그런데..?
하야시 : 왜 남의 일처럼 얘기 하느냐 이 말인가? (커피잔을 든다) 어차피 예상됐던 일이야. 생각보다
김두한이 빨리 돌아오기는 했지만..
나미꼬 : (절래절래) 형부한테는 못당하겠어요.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꿈쩍도 안하실 분이예요,
형부는..
하야시 : 우린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일이야. 구마적이 잘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지..
나미꼬 : 만약 김두한이 이긴다면요?
하야시 : ....우리에겐 매우 불행한 일이지.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종로 진출 사업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야.
나미꼬 : 물론 그러시겠죠. 어쨌거나 전 벌써부터 내일이 기대되는데요. 그 김두한이라는 사람,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말이예요.
하야시 : 처제야 말로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구만..?
나미꼬 : 그럴 리가 있나요? 저 역시 형부의 사업이 잘 되는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라죠, 하지만 왠지..
김두한이라는 사람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예요.
하야시 : .....
씬 10 종로회관
그 안에는 두한을 환영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만원이다. 상인들 두한에게 한 마디라도 건네보려 북새통이다. 상인1 (고기집 주인), 김이 오르는 접시 하나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두한에게 다가온다.
상인1 : 두한이..이거 한 점 들어보게. 막 잡은 소의 생간일세. 내일 구마적과 싸우려면 몸보신을 해야
하지 않겠나?
두한 : 고맙습니다.잘 먹겠습니다.
상인1 : 이겨야 하네. 우린 자네만 믿고 있어.
두한 : ..(미소)..
상인2 : (좌중을 향해) 자자..중구난방으로 떠들게 아니라 우리 김두한 오야지한테 종로로 다시 돌아온
소감 한 마디 들어 보는게 어떻겠습니까?
상인들 : 아 좋지..좋아..
여기저기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온다.
상인2 : 두한이 한 말씀 하게.
두한 : ...(난감한데)..
김영태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한은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다시 박수가 터져나온다.
두한 : 고맙습니다. 그 동안 상인 여러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너무도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저 김두한, 아직은 죽지 않았습니다. 종로2정목을 쌍칼 형님께 물려받을 때 저는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종로2정목과 야시장을 지키겠다고 말입니다.
저 김두한, 배운 것도 없고 무식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이 야시장을 지키겠습니다.
상인들 환호하며 열렬하게 박수를 친다. 두한, 통증이 오는 듯 가슴팍을 만지며 힘겨운 듯 자리에
앉는다. 그의 얼굴을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영태, 그런 두한을 부축한다.
김영태 : 두한이 ..괜찮겠나?
두한 :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마십쇼.
상인2 : 두한 오야지를 위하여 건배 한 번 합시다. 자 건배!
두한도 웃으며 잔을 든다. 김영태는 고통을 참는 두한을 걱정스레 보는데,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웨이터 : 지금 장난하냐? 두한 형님이 어떻게 너희들하고 친구야? 어서 꺼지지 못해!
양코 : 진짜라니까 그러네..두한아!두한아!
번개 : (다가와) 야 이 거지 새꺄..어디서 함부로 우리 형님 이름을 부르는거야? 너희들 죽고 싶어?
양코 : (찔끔해) 아 우리는 ..
정진영:우린 두한이 친구야. 두한이한테 볼 일이 있다구.
번개 : 친구?야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어떻게 우리 두한 형님이 너희 거지 새끼들하고 친구냐?
양코 : (다가와) 헤헤헤. 두한아, 우리 왔어.
두한 : 어서 와라. 이 쪽으로 앉아. 제 어릴적 동무 들입니다.
상인들 : ...(웅성거리며 뭔가를 서로 이야기 한다)..
양코 : (상의 음식들을 보고) 우와..대단하구나..
정진영 :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몸은 괜찮니?
두한 : 응..너희들한테 어려운일을 시켜서 미안하다. 수고해줘서 고마워.
정진영: 고맙기는..별로 한것두 없는데..
양코 : (벌써 입에 음식을 미어지게 넣고) 한 게 왜 없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느라 우린 발바닥에
불이 다 났다구.
김영태: 맞네. 아우들이 없었다면 두한이가 많이 힘들었을 거야. 정말 수고가 많았네.
양코 : 아, 아닙니다. 형님..그냥 해본 말이예요. 두한이가 돌아온다니까 신바람이 절로 나던걸요.
정진영: 맞습니다. 저희들보다는 형님하고 설향아씨가 고생이 많으셨죠.
양코 : 두한이 너 재주 좋더라. 어디서 그렇게 이쁜 색시를..흐흐흐...
두한 :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아는 사람일 뿐이야.
잔을 집으려다가 다시 통증이 오는지 움찔한다.
정진영: 왜 그래? 어디가 안 좋은 거야?
두한 : 아니야..별 거 아니야..(애써 웃으며) 자 들자..
김영태 : ....
걱정스레 두한을 본다. 그러나 두한은 태연하게 맥주를 마신다. 그 모습에서..
씬 11 권번 어느 방
설향이 경대 앞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앉아 있다. 그 옆의 아이란은
부지런히 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아이란 : 벌써 다 끝낸 거야?
설향 : ....
아이란 : (대답이 없자 돌아보며) 설향아..설향아!
설향 : (그제서야)응? 뭐, 뭐라고 했어?
아이란 : 어디다 그렇게 넋을 팔고 있니? 곧 나가야 할 텐데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니?
설향 : 모르겠어..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가 않아.
아이란 : 그만 좀 해.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 두한 오라버니는 잘 하실 거야.
너무 걱정 하지 마.
설향 : 불안해..아직 몸이 성치도 않은데..
아이란 : 니 맘 다 알아..하지만..
설향 :(경대를 덮으며)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아이란 : 어딜 가려구? 어머니 한테 무슨 경을 치려구?
설향 : 어머니깬 니가 잘 말씀을 드려줘.
아이란 : 설향아!
설향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밖에서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진다.
권번선생 : 이 시간에 어딜 가겠다는 게냐!!
설향 : ....!
문이 열리고 권번 선생이 안으로 들어선다.
설향 : 어, 어머니..?
권번선생:고연 것..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설향 : 제발..허락해 주세요.잠깐이면 됩니다.
권번선생 : 닥치거라. 기생에게 손님을 맞는 일보다 급한 것은 없느니라. 어서 나갈 채비하거라.
설향 : 어머니..?
권번선생: 이 년..그래두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구나. 회초리를 들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설향 : ...(글썽이며) 어머니...
설향이 털썩 주저 앉아 그예 눈물을 흘린다.
권번선생: 못난 것..사내에게 정주지 말라고 내 그리 일렀거늘.. 큰 기생 되기는 다 틀린 것 같구나..
차갑게 돌아서 나간다. 설향은 그렇게 계속 흐느끼고 있다.
씬 12 종로 회관 앞
상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두한이 나오고 있다.
상인1 : 마음 같아서는 밤을 새워 마시고 싶네만..어쩌겠나,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푹 자두게..
두한 : 예,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상인1 : 고맙기는..자네 덕분에 우리가 잘 마셨지.
상인2 : 두한이 자네 뒤에는 우리 상인들이 있다는 걸 명심하게. 우린 자네를 믿네.
두한 : 고맙습니다. 그럼 들어들 가십쇼.
오늘밤에 무슨 짓을 꾸밀지 어떻게 아냐?
두한 : 그럴 거 없어. 어서 보내.
양코 : 두한아...
김영태: 이 친구 말이 맞네. 미리 방비해서 나쁠 건 없어.
정진영: 그렇게 해, 두한아..
두한 : ...좋다. 같이들 가자.
양코 : 헤헤헤. 진작 그럴것이지. (거지패들을 향해)자 모두들 아까 연습한대로 하는 거야.
어서 두한 대장을 보호해.
거지패들 제법 일사불란하게 두한의 둘러싸여 포진한다. 두한이 미소를 짓는다.
그들 그렇게 사라져 가면..
씬 12-1 명월관 외경 (첨가)
가야금 소리와 함께 기생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씬 12-2 동 어느 방
경성의 부호들이 모여 술자리를 갖고 있다. 기생들의 교태스런 웃음소리에 술자리는 더욱 무르익는데...그런 분위기와 동떨어진 듯 처연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설향. 부호들 사이에 앉아 있는 젊은 사업가 정운경이 그런 설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부호1 : 이보게 정사장...내 잔 한 잔 받게.
정운경: 아 예....
정운경이 부호1의 잔을 받아 들면 설향이 술을 따른다.
부호1 : 자네 소식은 계속 듣고 있었네. 사업이 날로 번창하고 있다지?
부호2 : 아 번창하다 뿐이겠는가?이번에 일본에 까지 사업을 확장했다하지않나? 우리같은 얼치기
장사꾼들하고는 격이 다른 사람일세.
정운경: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부호1: 허허허..그래, 장가는 언제쯤 들 생각인가? 사업도 좋지만 자네도 이제 평생의 반려자를
찾아야지 않겠나?
정운경 : ...(미소)...
부호3: 허허 저 사람..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었구만..아직 시집 안 간 딸이
있다고 하더니..허허허..
부호1: 아 그야...딸 있는 부모라면 정사장 같은 사위감이 왜 탐이 나지 않겠습니까?
부호2: 아 그럼...게다가 동경제대를 졸업한 수재중의 수재가 아닌가?욕심이 날만하지..(기생들을 향
해)너희들, 이 분을 잘 모셔야 한다. 너희들처럼 웃음이나 파는 계집들이 아무 때나 대면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아이란 :호호호. 저희들은 벌써부터 알아보았는 걸요. 그야말로 닭 속에 봉황이 아니신가요?
부호2: 뭬야?허허허..이거야..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더니, 내가 네년에게 한 방 먹었구나. 하하하...
모두들 웃음을 터트린다. 그 사이에도 정의 눈길은 계속 설향에게 머물러 있다.
부호3: (설향에게) 아..뭘하고 있는 게야. 우리 젊은 사장님 잔이 비어 있질 않느냐? 어서 한 잔
올리거라.
설향 : 예
설향이 예를 갖춰 잔을 따르는 사이에 부호들은 다시 왁자해지며 술잔이 오간다.
몇몇 기생들은 정운경을 향해 흠모의 눈길이다.
정운경: 고맙소. 내 잔도 받으시오.
설향은 잔을 받아 가볍게 입에 가져갔다가 뗀다. 아이란은 이상한 듯 그런 정운경과 설향을 살피고
있다.
부호2: 자..술도 좋지만 풍류가 빠질 수야 있겠오. (아이란에게)애들아, 가야금 한 곡조 들어보자꾸나.
부호들 : 아 좋지..
아이란 : 가야금이라면 여기 설향이 솜씨가 제일이지요. 우리들 중에서도 단연 일품이랍니다.
부호2: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들어보자꾸나..
아이란 : 설향아..
설향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쪽에 앉는다. 곧이어 시작되는 애절한 가야금의 곡조.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끓는다. 고관들과 부호들은 모두 넋이 빠진 듯 설향을 보고 있다. 그러나 설향의 얼굴엔 여전히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씬 13 관철여관 외경
거지패들이 문앞에 우르르 몰려있다. 양코, 문턱에 올라서서 거지패들을 쭉 훑어본다.
양코 : 한명도 빠짐없이 모였겠지?
거지패들 : 예
양코 : (귀를 후비며) 왜 이렇게 소리가 작아, 이 거지새끼들아. 이래 가지구 두한 대장을 지킬 수
있겠어? 다시 한 번 묻겠다. 다들 모였나!
거지패들 : (악을 쓰듯) 예!
양코 : 좋다. 이 정도는 돼야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오늘 우리는 두한 대장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와 있는 거다. 그냥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게 아니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이거야.
(심각하게) 아니, 어쩌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막아야 할 상대가 바로
우미관의 구마적 패거리들이기 때문이다.
거지패들 : ...(두려운 얼굴들이다.)
양코 : 그렇다고 미리부터 겁먹을 거까진 없어. 우리 뒤에는 신마적을 박살낸 김두한 대장이
있으니까...
하지만 구마적 패거리들이 쳐들어오면 우리도 힘을 모아서 함께 싸워야만 한다. 뭐 어려울
것도 없어.
동냥할 때처럼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면 되는 거야. 한 사람 앞에 다섯몇씩 족수로 밀어붙이란
말이야. 알겠나?
거지패들 : 예!
양코, 무슨 큰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근엄하게 문턱에서 내려와 거재패들을 하나 둘 주위에 배치 시킨다. 길 모퉁이 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뭉치의 똘마니, 뒷걸음질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씬 14동 여관방
두한이 몸이 불편한 듯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김영태, 번개, 정진영이 함께있다.
김영태:구마적은 근접전의 명수야. 한 번 붙들리면 그걸로 끝이지.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박치기를
조심해야 하네. 예전에 쌍칼 형님이 당한 것도 바로 그 박치기 때문이었어.
두한 : ...(끄덕인다)...
김영태: 문제는 자네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데 있네. 솔직히 그 몸으로는 비관적이야. 우리가 기대
를 거는 건 자네의 놀라운 정신력 뿐일세.
정진영:두한이는 잘 할 겁니다. 전 그렇게 믿습니다.
두한 : ....
그때 문이 빼꼼히 열리고 양코가 고개를 내민다.
양코 : 저...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김영태: 그럼..어서 들어오게. (양코, 들어오면) 수고가 많구만..
양코 : 헤헤헤, 뭘요.
김영태: 어떤가, 두한이.. 이 참에 이 친구들을 우리 식구로 맞아 들였으면 좋겠는데...
번개: ...?
양코 : 저..정말이십니까?
두한 : 양코는 몰라도 진영이는 안됩니다. 진영이는 따로 갈 길이 있습니다.
김영태: 그래?
정진영: ...미안하다. 두한아..
두한 : 무슨 소리야? 이번일에 널 끌어들여서 내가 얼마나 미안했는데..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정진영 : .....
양코 : 그럼 난 받아주는 거야, 두한아?
두한 : 그렇게 주먹패가 되고 싶냐?
양코 : 그럼..허락한 거지? 그렇지?
두한 : (미소)...
번개 : 저기요 형님..
양코 : 이야..드디어 이 양코가 주먹패가 되는구나..고맙다, 두한아..고맙습니다. 형님..
김영태: (미소)...
번개 : (떨떠름한)....
씬 15 어는 선술집
뭉치와 제비가 술을 마시고 있다.
뭉치 : 이 돌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 신마적이 비참하게 종로에서 쫓겨난걸 형님께서 벌써
잊으셨다구.
제비 : 설마 구마적 형님이 그렇게 되게씁니까?
뭉치 : 이 멍청한 자식아, 신마적이 그러다가 당한거여. 달리 그런 줄 알아.
제비 : (안주를 집어 먹으며) 걱정도 팔자십니다, 형님. 두한놈이 날고 긴다하고해도 큰형님 상대는
아닙니다.
뭉치 : 그러다가 당하기라도 하면 어쩔래? 만에 하나 오야붕이 두한이한테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도 끝장나는 거야. 영영 종로 바닥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신세가 된단 말이야.
제비 : ....
뭉치 : 이대로 앉아서 구경만 할 수는 없어. (사이) 야, 제비..그냥 우리끼리 해치워버리는게 어떻겠냐?
제비 : 예?
뭉치 : 우리 애들 데리고 가서 쓸어버리잔 말이야.
제비 : 또 무슨 사고를 칠려구 그러쇼? 큰 형님 말씀 벌써 잊었소?
뭉치 : 임마, 지금 그런 거 따지게 생겼어? 잘못하면 우리도 함께 날아가게 생길판국에...
제비 : 좀 참으쇼. 잘못하면 형하고 나하고 큰형님한테 초상 치러요.
뭉치 : 뒷일은 내가 책임질테니까 넌 그냥 따라오기만 해.
제비 : 아 참...
그때, 염탐을 보낸 부하가 안으로 들어온다.
부하1 : 다녀왔습니다, 형님.
뭉치 : 그래..(다그치듯) 그쪽 분위긴 어때?
부하1 : 저 그게...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뭉치 : 뭐야?
부하1 : 거지새끼들 수십명이 그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뭉치 : 뭐, 거지새끼들..? 그 자식들이 왜?
부하1 : 그건 잘...아무튼 김두한이를 보호하러 온 것은 분명합니다.
뭉치 : 얼마나 되는데..몇명이나 모여 있냐말이야?
부하1 : 족히 삼십은 넘어 보였습니다.
뭉치 : (탁자를치며) 빌어먹을..갑자기 어디서 그런 새끼들이 나타난거야?
제비 : 술이나 마십시다. 들어보니 다 틀린린 같소.
뭉치 : ....
씬 16 사쿠라 별실
자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구마적과 평양 오랜 시간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구마적은 겨우 입을 뗀다.
구마적 : 내 꼴이 아주 우습게 됐어.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평양박 : 저희들이 형님을 잘못 모신탓입니다. 용서하십쇼.
구마적 : ...
평양박 : 두한이는 아마 정상이 아닐 겁니다.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아무래도
김영태가 무리수를 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구마적 : 김영태가 아니야. 김영태라면 이런 싸움은 하지 않을 거야. 두한이겠지. 신마적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아마 그럴 게야.
평양박 : ...?
구마적 : 내가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두한이 편에 서 있어. 그게 불쾌한
거야. 이제껏 수많은 싸움판을 전전했지만 이번 만큼 기분이 더러웠던 적은 없었어.
평양 : 그러실 거라 짐작은 했습니다.
구마적 : 난 절대 지지 않아. (잔을 비우며) 설사 두한이놈이 다치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야.
평양 : ...
구마적 : 하지만..하지만 말이야 이긴다고 해도 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겠지. 그게 서글프단
말이야. (다시 잔을 비운다) 술이 떨어졌군.
평양 : 이미 많이 드셨습니다.
구마적 : 괜찮으니까 더 시켜.
평양 : 하지만 내일 일도 있는데..
구마적 : 됐어.. 오늘 밤은 실컷마셔야겠어. 그래야 이 기분을 떨칠 수 있겠어. 어서 술 가져오라고 해.
술 말이야. 술.
평양 : ....
씬 17 인써트
어두운 방안. 두한이 팔베개를 한 채 무언지 모를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옆에는 진영과 양코가 곤히 잠들어 있다. 두한은 잠이 오지 않는 듯 계속 몸을 뒤척인다. 그 얼굴 위로 슬픈 가야금 곡조가 흐른다.
씬 18 명월관 (수정)
설향이 슬픈 표정으로 가야금을 뜯고 있다. 고관들과 부호들은 무릎 위에 손은 얹은 채, 그 가락에 맞춰 손장단을 맞추고 아이란은 날렵한 춤사위를 펼쳐보이고 있다. 그렇게 분위기가 고조될 즈음, 갑자기 곡조를 놓치고 마는 설향.
아이란과 손님들은 행동을 멈추고 설향을 본다. 정운경 역시 의아해 있다. 설향의 그 슬픈 표정에서..
씬 18-1 개성 여관 외경 (첨가)
씬 18-2 동 여관 안
김무옥이 주인 방 문턱에 걸터앉아 전화를 받고 있다. 문영철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김무옥:두한이가 돌아왔다고라우? 아니 은제요?(사이)아따 글면 바로 연락을 혀주셔야제. 아 까마귀
고기를 잡수셨다요?(사이 놀라며) 뭣이요?구, 구마적하고 라우? 내일이요? 음마 환장허겄네.
아직 몸도 성치 않을턴디...(사이)으쨌든 알았소. 전화비 많이 나온께 끊으씨요. 야..야..
김무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몰아쉰다.
문영철 : 어떻게 된거야? 두한이가 종로로 돌아왔다구?
김무옥 : 그려..근디 큰 일 나부렀다. 두한이가 내일 구마적하고 맞장을 뜬단다.
문영철 : 뭐, 맞짱?
김무옥 : 다친 지 을매나 지났다고..아따 영태 성님은 말리지 않고 뭣허고 있었다냐?
문영철 : (미소) ..역시 두한이다..과연 우리 오야붕답다.
김무옥 : 음마, 그것이 뭔 소리다냐, 시방?
문영철 :두한이 성격에 가만히 앉아서 몸이 회복되길 기다릴 수는 없었을거다. 그럴 줄 알았어. 가자, 무옥아..
김무옥 : 으딜?
문영철 : 오야붕이 돌아오셨으니 우리도 경성으로 올라 가야지.
김무옥 : 지금 말이냐? 이 밤중에?
문영철 : 밤기차라도 타야지.(주인에게) 아저씨..지금 가면 경성가는 기차를 탈 수 있겠습니까?
주인 : 글쎄..있을 것 같기두 하고..
문영철 : 서두르자. (그대로 나가면)
김무옥 : 아따..번갯불로 콩궈먹을 놈이구만잉..(잡히는 대로 돈을 꺼내주며) 옛씨요. 잘 쉬다 갑니다
잉. 아 같이 가..
김무옥은 허둥지둥 쫓아나간다.
씬 18-3 저자 거리
김무옥과 문영철이 빠른 걸음으로 그 곳을 지나쳐 오고 있다. 두 사람은 한 눈 팔 사이도 없이 그곳을 빠져나가는데, 서성거리던 개성 패거리 하나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한참 보다가 잽싸게 어디론가
달려간다.
씬 18-4 개성역 대합실
매표소 작은 구멍으로 표 두장이 나온다. 받아드는 문영철.
문영철 : 서두르길 잘했다. 내일 새벽에는 경성에 도착 할 수 있겠어.
김무옥 : 막상 경성으로 돌아간다니께 어째 막 가슴이 뛰고 그러는디..
문영철 : 나도 그래..그 동안 얼마나 갑갑했냐? 저기 가서 앉자.
그들 긴 나무의자로 가는데..
씬 18-5 그 밖 길
멀리 어둠 속으로 개성역이 보인다. 개성의 주먹패들이 두목을 위시하여 여남은 명의 사내들이 몰려
오고 있다. 몇몇은 각목을 들었다.
두목 : 역쪽으로 간게 확실해?
패거리1 : 예, 형님..아마 여길 뜨려는 모양입니다.
두목 : 감히 이 개성바닥에서 내 부하들한테 손을 댔단 말이지..
그들 그렇게 무서운 기세로 몰려가면...
씬 18-6 동 대합실
봇짐을 배고 자는 사내들, 뭔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아낙들..바깥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무옥과 영철도 무료하게 앉아 있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리며 개성패거리들이 몰려들어온다.
패거리1 : (가리키며) 형님, 저놈들입니다.
무옥,영철:....?
두목 : (다가와) 너희 두 놈이 우리 애들을 때렸냐?
김무옥 : (힐끗 보고는) 잉..느그들이냐? 근디?
두목 :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무사히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햇냐?
김무옥 : 긍께...이 썩을 놈들의 오야붕이시구만?
두목 : 뭐야?
김무옥: 오야붕이면 말이 쪼까 통하겠구만..(일어서며) 나 종로의 김무옥이란 사람이요.
두목 : 종로? 김무옥?
김무옥 : 그렇소. 당신 부하들이 쪼까 실수를 허길래 나가 그러믄 안된다고 버릇을 좀 고쳐줬소. 근디..
두목 : 닥쳐, 이 자식아! 니가 뭔데 우리 아이들 버릇을 고쳐?
김무옥 : 음마..참말로 환장 허겄네잉..자식이라니..나가 당신 자식이여?
그때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플랫폼으로 빠져 나간다.
김무옥 : 허는 꼴을 본께 우덜 한테 볼 일이 있는것 같은디..기차가 와부러서 우덜도 아쉽게 됐구만..
가자 영철아..
문영철 : ....
문영철이 그들을 노려보며 일어선다. 그러자 개성패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두목 : 그렇게는 안된다고 했잖아.. 좋은 말로 할 때 따라 나와.
김무옥: 아다 이러믄 안되제..
김무옥과 문영철이 짧은 순간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그들을 박차고 나간다. 순간 아수라장이 되는
대합실. 그러나 두목의 솜씨가 만만치 않고 중과부적이다. 그렇게 한동안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다가 어느 순간 문영철이 두목을 걷어차고 소리친다.
문영철 : 뛰어..기차를 타자!
무옥 : (싸우다 말고) 그려...
그들 그렇게 개찰구를 넘어 플랫폼 쪽으로 달려간다.
두목 : 따라 붙어. 놓치면 안돼!
두목과 패거리들이 두 사람의 뒤를 쫓는다.
씬 18-7 플랫포옴
기차가 출발하고 있다. 김무옥과 문영철이 기차의 꽁무니를 잡으려 계속 달린다. 패거리들이 아슬아슬하게 김무옥의 뒤까지 따라 붙는다. 가까스로 기차에 오르는 문영철과 김무옥.
열차에 따라 오르는 패거리들을 걷어차 떨어뜨린다. 그제서야 두 사람은 숨을 돌린다.
김무옥 : 조금만 늦었어도 못 탈 뻔했구만잉..(고개를 내밀고)
잘 있거라, 이놈들아..
문영철 : (화가 나) 그러길래 사고치지 말랬지?
김무옥 : 아따 왜 그냐? 어쨌거나 기차를 타지 않았냐?
문영철 : 타면 뭐해? 이건 신의주로 가는 열차야.
김무옥 : 뭐, 뭣이여...? 근디 왜 이걸 탄 거여?
문영철 : 그럼 계속 그 놈들하고 싸우자고?
김무옥 : 아 그려도 그렇지..글면 인자 어쩌냐? 막차를 놓쳐부렀으니...
문영철 : 할 수 있냐..다음 역에 내려서 아침까지 기다려야지..
김무옥 : 내일 오포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문영철 : 어떡하든 가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야해.
김무옥 : .....
씬 19 관철여과 외경
문앞을 지키는 거지패 아이들 몇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씬 20 관철여관 방안
창밖으로 보름달이 밝다. 두한이 일어나 앉아 주머니에서 뭔가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 옛날 아버지 김좌진으로부터 받은 회중시계다. 두한은 차분하게 뚜껑을 열고 시계를 본다.
정진영 :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구나.
두한 : ...(보면 진영이 일어나 있다)
정진영 : (다가와) 두한이 너도 그럴 때가 있구나.
두한 : ....
진영 : 그 시계..기억난다. 아버지가 주신 거라고 했었지. 옛날에 넌 그 시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왕초의 그 모진 뭇매를 견뎌냈었어. 아마 나라면 그냥 내주고 말았을 거야.
두한 : ....
진영 : 그리고 넌 그 못된 거지 왕초를 쓰러뜨렸ㅈ. 그래 그랬었어. 난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해.
그때부터 넌 나의 우상이었어. 두려워서 차마 한 번도 대들어보지 못한 무지막지한 상대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에 나도 용기를 얻었거든. 네가 아니었으면 난 이제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거야. 그 왕초한테 맞아 죽었거나 아니면 굶어 죽었을 거야.
두한 : ....
진영 : 두한아, 넌 할 수 있어. 아무도 널 이기지 못해. 청산리에서 일본놈들을 물리친 장군님의 끓는
피가 네 몸에도 흐르고 있어. 그걸 잊어선 안돼. 절대로 잊어선 안돼, 두한아..
정진영이 힘을 주어 두한의 손을 잡는다. 두한은 결의가 굳은 눈빛으로 회중시계를 내려다본다. 달빛에 어린 두한의 얼굴에서..
씬 21 종로 경찰서 외경(아침)
미와 : 긴또깡이 돌아왔다고...?
씬 22덩 경찰서 고등계
미와가 채찍으로 손바닥을 치며 꼿꼿히 서있는 문달영의 주위를 맴돈다.
문달영 : 예, 미와 경부님. 방금 사법계 형사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어제 저녁 무렵 다시
종로로 돌아온 모양입니다.
미와 : 그거 다행이구만...혹시나 만주행 열차를 탔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우리
고등계 정보망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고등계의 요시찰 인물
근황을 잡범들이나 취급하는 사법계에서 전해 들을 수가 있느냔 말이다?
문달영 : 그게...
미와 : 긴또깡이 무슨 사고라도 친 건 아니겠지?
문달영 : 그런 건 아닙니다만 사법계에선 혹 있을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고 했습니다.
미와 : 사고? 무슨 사고...?
문달영:오늘 긴또깡과 구마적이 공개적으로 대결을 벌인다고 합니다. 해서 혹 패싸움으로 번질까
우려하여 순사들을 배치하려는 모양입니다.
미와 : 긴또깡과 구마적이..
문달영: 그렇습니다.
미와 : 구마적이라면 조선 최고의 주먹이라는 자가 아닌가? 그런 자가 긴또깡과 겨루어...?
문달영 : 김두한의 건달 생활도 이제는 끝난 것 같습니다.
미와 : ...?
문달영 : 사법계 형사들 모두가 그렇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미와 : 음..하지만 만약 긴또깡이 이긴다면..?
문달영 : ...예?
미와 : 그렇게 된다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말이다. 긴또깡이 누군가? 그런 녀석이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등극한다면 우리로서는 아주 아주 골치 아픈 일이다.
문달영 : 듣고 보니...그런것 같습니다.
미와 : 그렇지 않아도 종로2정목의 상인들이 긴또깡을 떠받들고 있다는데, 구마적을 물리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놈이 날개를 다는 격이 된단 말씀이야. 좋지 않아. 아주 좋지가 않아.
형사들: ....
씬 22-1 삼청동 방안 (첨가)
오씨가 외출복 차림으로 들어온다.
조모 : 어딜 ..가려는 게냐?
오씨 : 예..시장엘 좀 다녀오려구요. 장도 좀 봐야겠고, 아범의 제수 준비도 미리미리 서둘러야 할 것
더 있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오씨 : 괜찮습니다, 어머님.
조모 : 아니다. 오랜만에 바깥바람도 쐘 겸해서 나가보고 싶구나.
오씨 : 예...그럼 그리하시지요.
조모 : 조금만 기다리거라. 곧 채비를 하마.
오씨 : 예...
씬 23 관철여관 밖
여전히 양코와 거지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설향이 그 곳으로 오고 있다. 양코가 알아보았다.
양코 : 헤헤헤...설향씨 오셨군요? 들어가 보십쇼. 안에 있습니다.
설향 : 네...
양코 : (신이 나서 거지들에게) 곧 우리관으로 갈 거다. 우리 거지들도 당당하게 김두한 오야붕의
부하들로서 결투를 보게 되는 거야. 잘 새겨둬라. 우리는 김두한 오야붕의 부하들이라구.
씬 24 관철여관 방안
활짝 열어젖힌 방문으로 들이치는 세찬 바람, 바람...두한,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겨 있다. 그의 상체에는 깊은 부상의 흔적처럼 하얀 붕대가 감겨져 있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어 두한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다.
말끔한 정장차림의 영태가 안으로 들어온다.
영태 : 출발해야할 시간이 됐어. 준비를 하게.
두한 : ...(끄덕인다)
두한은 모든 것을 털어버린 듯 평온한 눈빛이다. 그렇게 몸을 일으키던 두한, 갑작스런 통증에 가볍게 흔들린다. 영태가 한 발 다가서 도와주려하지만 두한은 괜찮다는 듯 웃어보인다. 영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옷을 두한의 어깨에 걸쳐준다. 두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하나 둘 단추를 채운다.
씬 25 그 밖 마당
두한과 영태가 마루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그곳에는 조금전에 들어온 설향이 망부석처럼 서있다. 두한은 설향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구두를 신고 마당으로 내려온다. 두한, 그대로 설향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설향 : 꼭 가셔야하나요?
두한 : ...(멈춘다)
설향 : 제 말은....지금이라도 ...한번 더 생각하시는게...
두한 : 이미 그럴 수가 없게 되었어요...많은 사람들에게 약속한 일입니다. 죽더라도 거기 가서 죽어야
합니다..
설향 : 역시 그렇군요. 그러실거라 생각했습니다만..
두한 :....(가려는데)
설향 : 꼭 그래야 한다면..이기세요. 반드시 이겨주세요. 저는 기다리고 있겠어요.
두한이 그렇게 한참동안 말없이 서있다. 설향은 차마 두한을 쳐다보지 못한다.
두한 : (걸음을 옮기며) 고맙소.
두한이 밖으로 나가면 영태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 (번개, 삼수, 병수, 정진영 등등이다) 그의 뒤를 따라 모두 나간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곳을 빠져나가자 설향이 뒤돌아 본다. 그 처연한 얼굴에서...
씬 26 우미관 광장
구마적의 부하들이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며 주변을 정돈하고 있다.
씬 27 동 사무실
우미관의 오야붕들이 모두 모여있다. 구마적이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태우고 있다. 흔들리는 벽시계의 추소리가 따갑게 느껴질 정도의 적막. 그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데...
평양 : 큰형님, 시간이 됐습니다.
구마적:...
평양 : 곧 두한이가 도착할 겁니다.
구마적:얼마나 남았지?
평양:십분쯤..남았습니다.
구마적 :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군.
중천으로 해가 높다. 거리는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다. 떼를 지어 우미관으로 향하는 사람의 표정들이 벌써부터 흥분으로 가득 차 있다. 요란한 종소리를 내며 전차가 지나치는 그 뒤로 두한과 영태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뒤로 진영, 양코들이 결연한 모습으로 따르고 있다.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 모두가 길가로 비켜선다. 두한, 그들을 지나쳐 멀리 우미관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나간다.
씬 28-1 그 일각 (첨가)
오씨와 조모가 전차에서 내리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다. 오씨와 조모는 의문스러운 듯 그들을 본다.
오씨 : 무슨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조모 : 글쎄다..그런 것 같구나. 어서 가자.
오씨 : 예.
오씨와 조모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반대편 시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계속에서 몰려가는 사람들의 모습. 오씨는 알 수 없다는 듯 뒤를 돌아본다.
씬 29 잡지사
최동열이 어느 직원 옆에 서서 원고를 교정해 주고 있다. 직원은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인다. 최동열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최동열 : 내가 받지. (수화기를 든다) 예, 상롭숩니다.
김이수:날세, 동열이. 김이수야.
최동열:자네가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나?
김이수 : 이런 친구를 보았나? 종로가 다 아는 사실을 자네만 모르고 있구만 그래.
최동열 : 뭐 큰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지?
김이수 : 두한이 그 아이가 구마적에게 도전장을 냈어.
최동열 : ....
김이수 : 오늘 정오에 오포가 울리면 우미관 앞에서 결투가 시작 된다네. 이제야 알겠나?
최동열 : 두한이가 말인가?
김이수 : 그래 이 사람아.
최동열이 전화기를 내려 놓고 잠시 생각하다가 급히 밖으로 나간다. 두 직원이 어리둥절해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씬 30 잡지사 앞
최동열이 빠르게 걷다가 근처를 지나가던 인력거를 잡아탄다.
최동열 : 우미관 앞으로 급히 좀 갑시다.
인력거꾼 : 예.
인력거가 달리기 시작한다.
씬 30-1 종로서 정문 (첨가)
미와와 오무라가 밖으로 나온다.
미와 : 날씨가 좋구만..
오무라 : 그렇습니다. 아주 화창한 날입니다.
미와 :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너무 안에만 쳐박혀 있었어. (사이) 앞장서게 오무라 형사.
오무라 : 예? 어리도 가시려는 것이신지...?
미와 : 오늘 우미관 앞에서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 하지 않았는가?
오무라 : 아 예..
미와 : 가세..
씬 30-2 종로 시장통
오씨와 조모가 건어물점 앞에 선채 명태를 고르고 있다. 이곳 시장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몇몇 상인들은 아예 가게 문을 내리고 있다.
오씨 : 오늘 무슨 일이 있습니까 다들 어딜 젛게 간답니까?
주인 : ...? 종로에 사시는 분들이 아니시지요?
오씨 : 예..
주인 : 그럼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조모 : 얼마나 큰일이길래, 장사도 팽개치고 저리들 급하단 말이오?
주인 : 종로의 주인 자리를 놓고 엄청난 싸움이 있으니 그러는 거지요.
조모,오씨 ...?
가게주인 : 주먹의 왕을 가리는 싸움말입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여기 시장을 맡고 있는 젊은 친구가
종로의 오야붕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들 난리랍니다.허허허..
오씨 : 허면 조선 사람들끼리 싸움을 한다는 것입니까?
가게주인 :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이상합니다만..뭐 좌우간 그렇습니다.
조모 : 쯧쯧쯧...참으로 한심한 노릇이구나. 만주에서는 독립군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같은 조선 사람끼리 싸움을 하다니....
주인 : (주위를 돌아보며 화들짝 놀라며) 아이구..도..독립군이라뇨..무슨 경을 치시려고 그런 말씀을
입에 올리십니까?
주모 : 이 명태나 몇 마시 싸주구려.
주인 : ...예..여기 있습니다.
조모 : 많이 파시오. (오씨에게)그만 가자. 괜한 이야기를 들어 귀만 더러워졌구나.
오씨 : 예, 어머님.
오씨와 조모는 시장통을 빠져나간다.
주인 : 거 참..행색은 초라해 보이는데..참으로 대담한 노마님일세.
씬 31 전차길
전차가 달려와 서면 문영철과 김무옥이 전차에서 내려 우미관으로 뛰기 시작한다.
김무옥 : 벌써 시작한 건 아니겄제?
문영철 : ...
그들 그렇게 달려가면...
씬 32 우미관 전경
우미관 간판이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다.
구마적의 부하들이 소란스럽게 밀려드는 군중들의 접근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그 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소리 : 김두한이다. 김두한이 온다!!
군중 사이로 길이 열린다. 두한이 그 한복판으로 걸어와 선다. 구마적의 부하들이 그 모습에 침을 삼키며 긴장한다. 최동열이 막 인력거에서 내려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김영태, 문영철, 김무옥, 정진영, 양코, 나미꼬, 아이란, 미와 등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스쳐 지나간다.
최동열 : (사람들 사이에서)두한아..
그러나 두한에게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곧 정오를 알리는 긴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면 우미관에서 구마적이 부하들을 이끌고 나온다. 구마적은 괜시리 옷깃의 먼지를 가벽게 털면서 터벅터벅 두한을 향해 걸어와 마주선다.
군중들,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의 모습에 숨을 죽인다.
구마적 : 김두한이...감히 나에게 도전을 하다니..너 그 동안 많이 컸구나.
두한 : ...
두한은 대꾸없이 고개를 들어 구마적의 눈을 직시한다. 서로의 심중을 읽어내려는 듯 그렇게 굳어있는 두 사람. 거센 바람이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