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시작하면서>
다시 일주일 만에 갖는 대간길이었다.
이번 회 차 구간은
빼재에서 시작하여 갈미봉, 백암봉을 거쳐
동업령에서 안성탐방센타로 이어지는 북덕유산 구간이었으나
기상악화로 인해 덕유산 일부 구간이 아쉽게도 출입통제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지난 17회 차 산행 시에,
기상조건으로 불가피하게 미처 끝내지 못했던 구간을
이번에 대신(땜방) 하는 것으로 산행일정이 급하게 변경이 됐다.
지난 회 차가 남덕유산 대간 길이었지만 실제로 남덕유산을 보지는 못했다.
이번 기회에 남덕유산의 참 모습을 기대하면서 산행에 임한다.
덕유산(1615) 관련자료를 찾아보니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한라산(1950), 지리산(1915), 설악산(1708)에 이어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리고 덕유산은 능선이 아름다워 덕유평전으로 이름나있다.
또한 덕유산은
북덕유산(1615m)과 남덕유산(1,507m)으로 나뉘는데
장수에서 시작되는 봉우리를 남덕유산(1507m)이라 하고
무주에서 시작되는 봉우리를 북덕유산(향적봉)이라 한다.
매스컴에서는 며칠 전부터
중요뉴스를 매일 속보 중계하듯 기록적인 한파 소식을 전해준 가운데 시작한 18회 차 대간 길.
온 나라를 꽁꽁 얼게 한 극심한 추위 속에서 시작 된 이 대간 길이기에
이 또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눈이 있는 풍경,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고
사람 또한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그곳,
눈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겨울은 여느 계절보다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눈 길에서 발견하는 어느 님의 발자국은
그가 누구일까? 하고 문득 궁금하고 설레는 이유다
오늘도 그 길을 떠난다.
만산홍엽이 아닌 만산설경이라.
★ 산행기록 거리 : 16.3Km 소요시간 : 9시간 ★
<육십령 734m>
지난 초여름 무렵,
4회 차(2010/07/03) 육십령~영취산~무녕고개 구간의 들머리이었던 곳이
오늘 또한 들머리가 됐다.
그때 당시 그린3기 대간 일정은 남진이었고 오늘 일정은 북진이다.
그때 대간 길은 비와 함께했던 기억이 새롭다.
육십령은 26번 국도가 통과하는 곳이었고
여기에서부터 실질적인 덕유산 줄기가 시작이 되는 부분이 바로 이 곳이었다.
버스가 육십령 휴게소에 도착하자,
추위를 잠시 가늠하고자 버스에서 내려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몸이 섬뜩할 정도로 날은 예상대로 역시 차가웠다.
산행준비를 마친 새벽 3시20분경,
산행 동안 오늘은 얼마나 많은 추위와 칼바람을 맞을까? 하는 걱정을 안고
드디어 장도에 오른다.
★ 우리가 갔던 길 그리고 가야 할 길 ★
육십령이라 부르게 된 유래는
함안의 감영에서 이 고개 까지가 육십리(24km)이고
장수 감영에서도 육십리(24km)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육십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으나
가장 유력한 것은 옛날에 육십령고개에는 산적들이 많아서 함부로 넘나들지 못했는데,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육십 명의 장정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떼를 지어 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인용글-
★ 잠들어 있는 육십령휴게소 ★
<할미봉(1026)>
오늘 산행거리는 그렇게 길지는 않으나
혹한의 추위와 눈길 그리고 남덕유산까지 꾸준히 고도를 높여가야 하는 구간으로써
결코 쉽지만은 않은 구간이다.
산행 중 잠시 쉬는 동안 어느 산우님 등산가방에 매달려 있는 온도계를 보니
이 산중 밖은 영하 2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혹한의 추위에 나 자신이 노출이 된 경우는 지금껏 처음인 듯하다.
새벽 4시30분경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 20여분 됐을까?
우린 첫 번째 봉우리인 할미봉에 도착했다.
육십령에서 산행을 하면서 처음 맞닥뜨리는 곳이 바로 이 할미봉이다.
극심한 추위에 장갑을 벗기 싫지만 늘 하던대로 할미봉 표지석을 디카에 담는다.
할미봉 도착 전부터 발이 시리고 손끝이 시려왔다.
버프를 했으나 내뱉은 콧김과 입김으로 입 주위 및 코 주변은 이미 서리가 되고
그 서리는 다시 얼어붙었다.
할매의 사나운 기를 닮았는지 할미봉에서 맞는 추위는 한층 더 사나운 느낌이다.
그래서 겨울산행은
무소의 뿔처럼 오직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내 몸이 그걸 원한다.
★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덕유산, 동이 틀 무렵이다 ★
<서봉(장수덕유산)>
할미봉을 지나 서봉으로 올라가면서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저 산 아래 불빛에 마을이 잠겨있었다.
불빛이 평화로워 보이는 그곳은 어느 동네일까?
할미봉을 내려서자 거의 직벽에 가까운 암릉지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그 암릉구간 통과하면 또다시 급경사 철계단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몇 번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아찔하게 지나치면
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서봉이 가까워지자
어느덧 덕유산 자락에도 아침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동녘을 바라다보니 붉은 기운이 감돈다.
동이 트고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약 4시간,
아침 7시20분경 드디어 서봉에 도착한다.
서봉 정상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니 운해가 저 멀리 산자락에 걸려 있었다.
마치 저 산 아래 구름을 만드는 공장이라도 있듯이………
매서운 추위 앞에서 경관을 보는 일도 잠시,
내 눈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을 한가롭게 바라다 볼 수가 없어 참으로 안타깝다.
굽이치는 산맥을 바라다 보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기도 하고 또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짚어보기도 하면서
백두대간 산세의 아름다움을 바라다 보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디카를 꺼내 힘들게 사진 몇 장을 담는 것으로 만족하고 갈 길을 재촉한다.
신의 작업이라고 흔히 말하는 일몰과 일출.
우리들이 그것을 바라다 보는 일은,
우리 자신도 그 신의 작업에 참여하는 거라 하는데
그 작업에 우리들이 함께 참여하지 못해 정녕 아쉬울 뿐이다.
★ 잠에서 깨어난 덕유산 ★
<남덕유산1507m>
서봉을 뒤로하고 남덕유산으로 향한다.
남덕유에 도착하니 아침 8시가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남덕유산은 영각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오는 길목이기도 하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극심한 추위로 인해 자리를 잡고 아침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추위는 허기를 삼켜버리고 배고픔의 생각까지도 얼어버리게 만든다.
별 수없이 우린 삿갓골재대피소까지 가야만 한다.
남덕유산 정상에 올라가 카메라를 꺼내 표지석을 사진 찍으려고 하니
날이 워낙 추워 카메라 밧데리 기능이 저하되어 렌즈가 잠깐 열렸다가
카메라 액정에 ‘전지를 교체를 하라’는 메시지만 뜬다.
이럴 땐 응급조치로
카메라 디카 밧데리를 꺼내 손으로 비벼 열을 가해주면
카메라 기능이 일부 회복이 되기도 한다.
아니면 디카 밧데리를 분리해서 따뜻한 품속에 넣어두었다가
사진을 찍을 때 밧데리를 장착해도 된다.
어찌됐든 날이 워낙 춥다 보니 사진 찍는 일조차 귀찮다.
사진 한번 찍으려면 그 과정이 무척 번거롭다.
잡고 있는 스틱을 놓아야 하고 끼었던 장갑을 벗어야 하고
그리고 디카를 꺼내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는다.
물론 그런 일이 잠시 벌어지는 일이지만 극한 추위에 노출이 된 손은 무척 시리다.
그리고 잠깐 얼었던 손을 원상회복을 시키는 데에 또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좋은 풍경을 마주보고도
때로는 그런 일련의 작업이 귀찮고 손이 시려 그냥 지나칠 때도 사실 많다.
★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을 남덕유산의 정상 표지석 ★
남덕유산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으로 의미가 크다 한다.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이 백두대간에서 비켜나 있는 반면
남덕유산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어 백두대간 종주자에겐
오히려 향적봉보다 더 의미가 있는 산이라 한다.
남덕유산 봉우리는 하봉, 중봉, 상봉으로 나누고
상봉은 다시 동봉과 서봉으로 분류를 하고 있었다.
남덕유산은 3대강의 발원샘을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육십령은 금강(錦江)의 발원샘이 있고,
정상인 동봉 남쪽기슭에 있는 참샘은 진주 남강(南江)의 첫물길이 되고,
북쪽 바른 골과 삿갓골샘은 낙동강(洛東江)의 지류 황강(黃江)의 첫 물길이다. -인용글-
<삿갓봉, 삿갓골재대피소>
월성재에서 삿갓골재대피소로 가는 길은
삿갓봉을 오르지 않고 삿갓골재대피소로 직접 내려가는 길도 있으나
9시35분, 우린 삿갓봉에 올랐다.
올라서자 눈이 부시도록 날이 맑다.
이 곳에서도 주위 조망이 상당히 좋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서봉과 남덕유산, 그리고 대간길이 뚜렷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지리산도 보였다.
봉우리 모양이 삿갓처럼 생겼다 하여 삿갓봉인가 보다.
삿갓봉이라은 지명은 우리나라 여기저기 흔히 등장하는 이름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한다.
★ 많은 대간꾼들이 그냥 지나쳐 가는 삿갓봉이지만 조망에 있어 여기 또한 뺴놓을 수가 없다 ★
내려오는 길, 눈길에 미끄러졌다.
동심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에 미끄러진 김에 눈 썰매를 타듯 미끄럼을 타본다.
이럴 때 비료포대 하나쯤 있으면 좋으련만..
10시10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삿갓골재대피소에 도착했다.
배도 고프고 심신이 지쳐 쉬고만 싶다.
이번 대간길……….
혹독한 동계훈련이나 하듯이 지나온 길이었다.
다시는 이런 혹한에는 산행하지 않으리라 맘을 먹으면서 12시를 넘긴 시간에 날머리 황점마을에 도착했지만
조금 전 굳게 먹은 마음과 악전고투 상황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지나온 길을 다시 나는 그리워하고 있었다.
2011.01.19 청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