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도기
- 한설야
1
창선이는 사 년 만에 옛 땅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니보다 몰려왔다. 되놈의 등쌀에 간도에서도 살 수 없게 된 때에 한낱 광명과 같이 생각혀지고 두덮어 놓고 발끝이 향하여진 곳은 예 살던 이 땅이었다.
그러나 두만강 얼음을 타고 이 땅에 밟아 들어 보아도 제서 생각던 바와는 아주 딴판이다――밭 하루 갈이 논 두어 마지기 살 돈만 벌었으면 흥타령을 부르며 고향으로 가겠는데――이렇게 생각던 터인데 막상 돌아와 보니 자기를 반겨 맞는 곳이라고는 없었다. ‘고국산천이 그립다. 죽어도 돌아가 보리라’ 하던 생각은 점점 엷어졌다. 그리고 옛 마을 뒷고개에 올라선 때에는 두근두근한 새로운 생각까지 났다.
――무슨 낯으로 가족들과 동릿사람을 대할까! 개똥밭 하루 갈이 살 밑천이 없지.
“후―” 길게 숨을 도았다. 그래도 가슴은 막막할 뿐이다. 그는 하염없이 턱 서며 꾸동쳐 지었던 가장집물을 내려놓았다. 한숨 쉬어 가지고 좀 가뿐한 걸음으로 반가운 고향을 찾을 차였다. “여보, 그 어린애 좀 내려놓고 한숨 들여 가우.”
“잠이 들었는데…… 새끼두 또 오줌을 쌌구나. 에그, 척척해.”
아낙은 ‘달마’같이 보고지를 한 어린것을 등에서 내려놓았다. 오줌에 젖은 그의 등에서는 김이 누엿누엿 일어났다.
“여보! 이거 영 딴판이 됐구려!”
그는 흘깃 아낙을 보며 눈이 둥그래졌다. 고향은 알아볼 수가 없게 변하였다. 변하였다니보다 없어진 듯했다. 그리고 우중충한 벽돌집 쇠집 굴뚝――들이 잠뿍 들어섰다.
“저게 무슨 기계간인가?”
“참 원, 저 거먼 게 다 뭐유? ……아, 저쪽이 창리(그들이 살던 곳)가 아니우?”
아낙은 설마 그래도 고향이 통채로 이사를 갔거나 영장이 되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어디든지 그 근방에 남아 있을 것 같았고 아물아물 뵈는 것 같기도 했다.
“저― 바닷가까지 기계간이 나갔는데, 원 어디가 있다구 그래……가만있자 저기가 형제바우(바닷가에 있는 두 바위)고 저기가 쿵쿵(파도가 심한 여울)인데…….”
“글쎄…… 저게 다 뭔가.”
아낙도 자세 보니 참말 마을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최면장네랑 박순검네도 다― 어디 갔는지!”
“그런 사람이야 국록을 먹는데 어디 간들 못 살라구.”
“그래도 우리처럼 훌훌 옮기겠소. 삼백 년인지 오백 년인지…… 어느 님군 적부터라던가…….”
겨울해는 벌써 서산머리에 나불거린다. 검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짜디짠 바람이 살을 에는 눈기운을 머금고 휙휙 분다. 그들은 걸을 힘이 나지 않았다. 간도 땅에서 한낱 태산같이 믿고 온 고향이요 구주와 같이 믿고 온 형의 집이 죄다 간곳없으니 어디를 가면 좋을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가봅시다. 저기 가서 물어 보면 알겠지.”
아낙은 아직도 무엇을 믿기만 하는 모양이다. 가보면 무슨 도리가 혹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원, 땅과 물어 본담, 바다와 물어 본담.”
창선은 다시 짐을 걸머지었다.
“점심밥이 좀 남았던가?”
“웬 게 남아요…… 줄 게 없는 밥이 암만 먹어야 배가 일어서야지.”
그들은 턱도 없는 곳으로 향하여 걸어갔다. 길쭉길쭉한 벽돌집(관사)이 왜병대같이 규칙 있게 산비탈에 나란히 섰다. 평바닥에는 고래 같은 커다란 공장들이 있다. 높다란 굴뚝이 거만스럽게 우뚝우뚝 버티고 있다.
이쪽에는 잘방게(蟹) 같은 큰 돌막이 벽돌집 서슬에 불려갈 듯이 황송히 짜그리고 있다. 호떡집에서는 가는 연기가 난다.
검퍼런 공장복에다 진흙빛 감발을 친 청인인지 조선사람인지 일인인지 모를 눈에 서투른 사람이 바쁘게 쏘다닌다. 허리를 질근질근 동여맨 소매 길다만 청인들이 왈왈거리며 지나간다. 조선사람이라고 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감발을 이고 상투를 갓 자르고 남도 사투리를 쓰는 패뿐이다. 옛날같이 상투 짜고 곰방대를 든 친구들이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창선은 그런 패를 만날 때마다 무엇을 물어 볼 듯이 머뭇머뭇하곤 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러 패를 그저 지나 보내었다. 입에서 금시 말이 나갈 듯하다가는 혹 예 보던 사람이 있겠지 하며 딴 데를 휘휘 살펴보았다.
얼마 가다가 그는 저 멀리서 흰 옷 입은 사람이 하나 오는 것을 보았다. 역시 멀리서 보아도 예 보던 사람같이 흙 냄새 고기 냄새 나는 텁텁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혼자서 오는 것이 어떻게 정이 들어 보였다.
“원, 모두 험상궂은 사람들뿐이지…… 사람조차 변했는지…… 공연히 나왔지. 이거 어디 살겠소.”
아낙은 근심스러운 푸념을 한다. 와보면 무슨 수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덜어졌다.
“저―기 오는 사람과 물어 보면 알겠지. 설마 산 사람 입에 거미줄이 슬라구…… 노동이라도 해먹지 뭘.”
창선은 인제 막다른 골목에 서는 듯한 생각이 났다.
“여보――”
그는 문득 앞에 오는 흰 옷 입은 사람을 부르며 주춤하였다.
“여기 저― 바닷가 창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소?”
“창리요?”
그는 창선이의 내외를 아래위를 훑어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한다.
“저 고개 너머 구룡리로 갔죠. 벌써 언제라구――”
“구룡리요?”
창선은 숨이 나왔다. 구룡리는 잘 아는 곳이다. 고향은 아니나 사촌 고향쯤은 되는 곳이다. 집이 몇이 있고 길이 어떻게 난 것까지 머리에 남아 있다.
“저 구룡리 말이지요. 그래 창리 집들은 죄다 그리로 갔나요? 혹 창룡(그의 형) 씨라고 모르겠소.”
“그걸 누가 아오.”
흰 옷 입은 노동자는 공연히 서슬이 나서 지나간다. 창선은 그 사람 가는 편을 흘깃 바라보고는 아낙을 향하여 애오라지 웃음을 보였다.
“구룡리로 갔다는구려. 원, 웬 판국인지 이놈의 조화를 누가 안담.”
“그 ×들 해필 창리라야 맛인가…….”
“거게가 알장이거든. 너르고…….”
두 내외는 바로 구룡리 뒷재를 향하여 걸어갔다. 좀 기운이 나는 듯했다. 짐을 진 남편의 등판도 좀 가뿐해진 것 같고 아낙의 보퉁이도 얼만큼 가벼워지는 듯했다.
2
구룡리 뒷재는 끊어졌다. 철도길이 살대같이 해변으로 내달았다. ‘후미기리’에 올라가서 ‘레일’이 남북으로 한없이 늘어져 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까지 갔는지 끝간 데가 아물아물 사라진다. 놀라웁고 야단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만치 눈에 서툴고 인정모가 보이지 않았다. 소수레나 고깃배가 얼마나 정답게 생각혀지는지 몰랐다. “풍…… 왕―― 왕――” 하는 기차 소리는 귀에 야즈라웠다.
그는 꿈인 듯 옛 일이 새로워졌다. 산비탈 고개 남석 다방솔 그늘 아래 낮잠 자는 그 옛 일이 새로워졌다. 두세 오리 전선줄에 강남제비 쉬고 가는 그 봄철에 밭 갈던 기억이 그리워졌다. 구운 가재미(물고기)에 참조 점심을 꿋꿋이 먹고 ‘엉금엉금’ 김매던 그 밭이 정다워 보였다.
동리 아이들, 처녀 총각――검둥이 센둥이 앞방네 뒷방네가 첫 새벽부터 숫소 암소들 척척 거넘겨 타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소먹이러 다니던 것도 이 근방이다.
“개똥네야, 소먹이러 가자.”
이렇게 부르면,
“쩡냥(뒷간)니냐. 그래라, 나간다. 짱돌이 헛간쇠 안 왔니.”
이렇게 대답하며 소를 몰고 나선다.
“야, 네 쇠는 양주머리가 감추었구나(살이 찌면 양지머리가 불쑥하게 된다).”
“우리 쇠사 숫쇠니까 그렇지.”
“야, 숫쇠는 암내〔獸慾〕를 내서 봄이면 여빈단다.”
이렇게 얘기들 하는 사이에 소먹이는 아이들은 네다섯…… 십여 명씩 모인다. 그러면 아리랑타령이 나온다.
꿀보다 더 단 건 진고개 사탕
놀기나 조키는 세벌 상투(총각이 머리채로 짠 상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넴겨라
시냇가 강변에 돌도 많고
이내 시집에 말도 많다
노래와 얘기로 해 가는 줄을 모른다. 때때로 소를 말뚝에 매어 놓고 수수께끼 서울 목돈(돌유희), 삿도 놀음, 소경 놀음, 각시 놀음, 말 놀음도 한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면 바닷가에 나가서 고기그물에 고드름같이 줄 달린 고기도 뜯는다. 이 고장은 대개 절반 농사로 절반은 고기잡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도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다. 고기 잘 잡히는 해면 어린아이들도 하루 수삼십 전 벌이를 한다. 그 때문에 처녀 총각이 만나는 도수가 많고 또 예사로 얘기들을 한다.
이러한 중에서 창선이도 지금의 아낙을 맛들였던 것이다. 시체말로 하면 연애를 하였던 것이다.
“야, 이거 안 먹겠니. 뉘―?”
창선은 개눈깔사탕을 사가지고 와서는 소를 먹이다가 일부러 순남이(그의 아낙) 곁에 가까이 가서 개눈깔사탕을 쥔 손을 번쩍 들며 “뉘―?” 하고 소리를 친다.
“내―”
“내다.”
아이들은 연방 이렇게 나도 나도 소리소리 외친다.
“옜다, 순남이 첫째다.”
창선은 누가 먼저 “내―” 했겠든지 그건 아잘 것 없이 애초의 예산대로 한두 알 순남이에게 주고는 남은 것은 제 입에 모두 쓸어 넣는다.
“야 순남아, 씹어 먹지 말고 녹여라. 누가 더 오래 녹이나 내기할까.”
그러면 여러 아이들은 부러워서 침을 꿀꿀 넘긴다.
“저 간나새끼 사(私)를 쓴다. 내가 먼저다.”
“옳다, 저 애가 먼저다. 그 담에 낸데…… 니 무슨…… 순남이 네 각시냐.”
“내 순남이 에미와 이르지 않는가 봐라.”
이렇게 철없는 불평이 터진다. 그러면 멋모르는 순남이는 신이 나서 악을 쓴다.
“야 이 종간나새끼, 각시란 기 무시기냐…… 야 이 간나야, 너는 울 어머니와 무스 거 이르겠니. 너는 언제 쌍돌이 꽈―리를 가졌니.”
“이 간나, 내 언제 가졌니.”
이렇게 싸움이 터진다. 그러나 이런 것이 모두 소박한 그들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뿌리를 내리었다.
나이 먹을수록 창선이와 순남이는 서로 내외를 하게 되었다. 어떤 때는 외면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내외를 하고 외면을 하니만치 이면의 그 무엇은 커질 뿐이었다.
김을 매다가도 순남이가 메(먹는 풀뿌리)나 나시나 달뉘(모두 먹는 풀)캐러 나온 것을 있기만 하면 사람 보지 않는 틈을 타서 그리로 간다.
“뭘 캐니? 메냐?”
“메를 캐는 기 별로 없거든…… 깊이 파야 모랫속에 있는데.”
순남이는 흘깃 보고는 고개를 반쯤 돌린다. 말씨도 전보다 한결 점잖아지고 하는 태도도 매우 숫처녀다워졌다.
“내 캐주지…… 오늘 기녁에 먹으러 간다, 응.”
“누가 오지 말라는기…… 오늘 기녁 메떡을 하겠는데.”
“야 정말…… 나 꼭 간다. 그러다가 너어 집에서 욕하면 어쩌겠니.”
“언제 욕먹어 쌌는기…… 와보지도 않고…….”
이리하여 순박한 맘과 맘은 풀 수 없게 맺어졌다.
겨울이 되면 해사(海事) 소식이 짜― 퍼진다. 은어(도루메기)가 잡히고 명태 배가 들어오면 고기 풍년이 났다고 살판을 만났다고 남녀노소 없이 야단들이다. 아낙들은 함지를 이고 남자들은 수레를 끌고 고기받이를 다닌다. 해변에 몰린다. 순남이도 해마다 그리로 다녔다. 늘 창선이네 배에 가서 사오곤 하였다. 창선이는 자기 집 고깃배만 포구에 들어오면 부리나케 나가서 고기팔이를 한다. 가장 기쁜 생각으로――그것은 날마다 순남이가 오는 까닭이다. 그 일 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기쁨이 되었다. 은근한 희망이 따르는 까닭이다. 그는 새벽부터 신이 나서 고기를 세어 넘긴다.
“한 드럼에 얼마요?”
고기받이꾼이 이렇게 물으면,
“석 냥(육십 전) 어치면 목대가 부러지오.”
“알〔卵〕이 잘 들었소?”
“알이라니…… 고지애만 떼 먹어도 큰 장사죠.”
“석 드럼만 세어 놓소.” …… “세어 주오.”
이렇게 아낙네와 수레꾼이 나도나도 째도루며 사들 간다.
“하나이요, 둘이에…… 열이요…… 이런나니 한 드럼……자아, 세 마리 넘어가오.”
창선은 아직 나이 젊고 고기 다루는 데 익숙지 못해서 흔히 아낙네 것만 세곤 하였다. 한 차례 세고 이마에 땀이 추루루해서 느른한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들면 그을거리는 아낙네 틈에는 순남이가 끼여 있다. 고기 세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순남이는 똑바로 그의 앞에 함지를 내려놓지 못하고 그저 그의 앞 비슷하게 비스듬히 내려놓고는 발끝도 내려다보다가는 가없는 너른 바다에 말없이 시선을 주기도 한다. 그의 얼굴은 어쩐지 좀 붉어지는 듯했다. 창선이는 비쭉 웃고 명태 중에도 알 잘 든 놈을 골라 가며 쪼개로 척척 찍어 그의 함지에 세어 놓는다. 어물어물 한 드럼에 네일곱 마리씩은 더 넘겨 준다.
이렇게 애든 이 고장이요, 이렇게 친한 이 바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산도 그렇고 물도 그렇다. 철도길이 고개를 갈라 먹고 창리 포구에 어선이 끊어졌다. 구수한 흙냄새 나는 마을이 없어지고 맵짠 쇠냄새 나는 공장과 벽돌집이 거만스러이 배를 붙이고 있다. 소수레가 끊어지고 부수레(기차)가 왱왱거린다. 농군은 산비탈 으슥한 곳으로 밀려가고 노가다(노동자)패가 제노라고 쏘다닌다. 땅은 석탄 먼지에 꺼멓게 절고 배따라기 요란하던 포구는 파도 소리 홀로 쓸쓸하다. 그의 눈에는 땅도 바다도 한결같이 죽은 듯했다. 기계간 벽돌집 쇠사슬 떼굴뚝이 아무리 야단스러워도 그저 하잘것없는 까닭 모를 것이었다.
내외는 철도둑을 넘어 고개턱에 올라섰다. 새로 이사 간 고향이 보인다. 저― 바닷가에――
그러나 옛날 구룡리 마을은 아주 말 아니다. 철도길 바람에 마을 한복판이 툭 끊어져 버렸다. 마을 어구를 파수 보던 솔나무들이 늙은이 앞니같이 뭉청 빠져 버렸다. 기차 굴뚝에서 나온 조그만 석탄불이 집어삼킨 불탄 두세 집이 보인다. 나직나직한 곤돌초막은 무서운 듯이 쪼그리고 있다. 작고 더 쪼그릴 것 같다. 그리 되면 그 속의 식구들이 모조리 깔리고 말 것이다. 창선의 머리에는 낮꿈 같은 야릇한 상상이 그려졌다――기운찬 사나이만 쪼그라진 그 지붕을 뚫고 머리를 반쯤 내민 것이 보인다. 늙은이 아낙네 어린것이 그 밑에 깔려서 숨이 팔딱거리는 것이 보인다――
창리에서 이사 간 집들은 생소한 그 서슬에 정떨어진 듯이 저― 바다 한가에 물러가 있다. 그러나 사정없는 바닷물이 삼킬 것 같다. 그래도 바닷가 사람에게는 낯선 기차에 비해서 바다가 정다웠던 모양이다.
“저기 가서 원밀석〔海嘯〕이 무섭지도 않나!”
“바다가 가까워서 고기받이는 제일이겠소. 그래도――”
아낙은 고기받이할 것만 생각하였다.
“되놈의 땅에서 생선을 못 먹어 창자에 탈이 났는데.”
“돈만 있어 보지. 되 땅이 아니라 생국〔西洋〕가도 태평이지.”
내외는 이런 얘기를 하며 형의 집을 찾으려고 물어 볼 사람을 찾으나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면 더 사람이 많이 나다닐 터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고기만 잘 잡힌다면 벌써 오는 길에서 고기받이 아낙네와 수레꾼들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못 보았다.
3
창선이가 길가 어떤 아이와 물어 가지고 형의 집에 찾아온 때는 좀 어두컴컴했다. 어머니는 누더기를 쓰고 가맛목에 드러누웠고 조카 남매는 희미한 등경불 아래에서 감자떡을 치고 있었다.
“어머니, 창선입니다.”
“어머니…….”
내외는 바당문을 열고 들어서자 성큼 정주에 올라서며 어머니 앞에 절을 넙석 하였다.
“아니, 창선이라니…….”
어머니는 너무도 놀라고 반가웠던 것이다.
“어머니, 그새 소환이나 안 계셨습니까…… 택내가 다 무고한가요.”
“응…… 원…… 이 추운데 그래 살아 왔구나.”
어머니는 곱이 낀 눈을 슴벅거리며 자세히 쳐다본다. 어머니 아니고는 날 수 없는 눈물이 고였다.
“죽잖으면 그래도 만나는구나…… 아들이 났다지. 어디 보자…… 이름은 무엇이라고 지였니?”
“간도에서 났다고 간남이라고 했습니다…… 추위에 감기를 만나서…… 영 죽게 되었어요.”
아낙은 젖에서 어린것을 떼어 어머니에게 안겨 드렸다.
“아이구, 컸구나…… 이런 무겁기라구…… 작년 구월에 났다지…… 원 늙은것은 얼른 가고 너희나 잘 살아야겠는데…….”
어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그래 그곳 사는 일이 어떻더냐. 예보다는 좋다더구나.”
“말 마십시요.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되놈들 등쌀에 몰려다니기에 볼일을 못 봅니다. 우리 살던 고장에서도 쉰아무 집 되는 데서 벌써 열 집이나 어디로 떠났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땅을 떼고 몰아내는 데야 어찌합니까…… 우리 동리 아랫동리 영남 사람은 한 집이 몰살을 했답니다.”
“저런…… 몰살은…… 끔찍도 해라.”
“늙은 어머니와 아낙과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가장이 벌이를 갔더라나요. 한 게 뜻대로 되지 못해서 한 스무 날 만에야 돌아와 보니 늙은이가 방에서 얼어죽고 아낙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더래요.”
“저런…… 청인이 차갔나? 원…… 사람은 못 살 데로구나.”
“그런 게 아닌데. 가장도 처음은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칼을 들고 찾아 나섰대요.”
“죽일라고, 원 저런…… 치가 떨리는 일이라구는.”
“남편이 미친 사람같이 두루 찾아다니는데 눈얼음 속에 사람 같은 것이 보이더래요…… 그래 막상 가보니 아낙이 옳더라지요.”
“아, 그래 살았어?”
“아니…… 눈 속에서 얼어죽었는데 머리에는 강냉이(옥수수) 한 되를 이고 어린애는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앞에 안은 채 얼어붙었더래요.”
“원, 하늘도 무심하지. 그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구.”
“그뿐인가요. 남편까지 죽었답니다. 발광이 나서…….”
“사람은 못 살 데다. 말도 마라. 원, 끔찍끔찍해서 그걸 누가 듣는단 말이냐…… 그래도 재대비(창원의 형)는 정 안 되면 그리로 간다구…… 원, 하느님 맙소사.”
“소문만 듣고 갔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렇게 죽고 몰려다니는 사람이 부지기수랍니다. 여북해서 이 겨울에 나왔겠습니까.”
“앤들 여북하겠니. 생불여사다…… 오늘도 어쩌면 살아 볼까 몰려들 가더라만――”
“참, 형님 읍으로 갔대지요. 아주머니까지…….”
“설상가상이다. 사다사다 안 되니 오늘 감사라던지 난 모른다만 그리로 온 동리가 몰려갔다더라.”
“감사? 무슨 때문에요?”
“원, 세월이 없구나. 보지 못하니 태평이지. 모두 굶어죽는다고 야단들이다.”
“글쎄, 그렇다기로 도장관이 살려 주겠습니까.”
“사흘 굶은 범이 원을 가리겠니. 죽을 판인데…… 고기가 잡혀야 살지. 무얼 먹고 산단 말이냐.”
“고기가 안 잡히는데 누구를 치탈하겠습니까. 세월 탓이지요.”
“세월 탓이 아니라는구나. 포구가 나빠서 그렇단다. 배도 못 뭇고 무트면 바사진다는구나…… 시월에 모래 언덕집 유새네 은어(도루메기)배가 바사졌다. 사람이 셋이 고깃밥이 되었단다. 그 집 맏사람이 분김에 회사에 가서 행렬을 하다가 ×××한테 몰려나고 술이 잔뜩 취해서 바사진 뱃조각을 두드리고 통곡하다가 얼어죽었단다. 원――”
“그런데 회사는 무슨 회삽니까.”
“저게 그 창리바닥을 못 봤니…… 그 ×××란다. ×야, 원――”
“어째서요?”
“이리로 온 게 누구 때문이냐. 글쎄 창리야 좀 좋았니. 운수가 고단하면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글쎄 그 터를 내준 게 잘못이지.”
어머니 말만 들어 가지고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체 어지간한 일이 아닌 것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온 동리가 쓰러져 간다는 것은 암만해도 의심쩍은 일이다.
의혹도 의혹이려니와 그러나 배가 더 고팠다. 그래서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형의 내외를 기다리는 감자밥으로 우선 요기나 했다.
“이게 무슨 재단이 났구나. 갈 때에도 말이 많더니 왜 여태 못 오는지…….”
어머니는 오래간만에 만난 기쁨이 점점 엷어지고 잠시 잊었던 근심이 다시 시작되었다.
“글쎄요, 날씨가 별안간 추워져서…….”
창선이 내외도 저으기 근심되었다.
“날씨도 날씨지만…… 온 별일이더라. 동리에서 몰려나서기만 하면 어쩐지 ××이 부득부득 못 가게 한다더구나…… 그래 오늘 아침은 장날 핑계를 대고 새벽부터 장으로 갑네 하고 패패 떠났다…… 이제 무슨 일이 났다, 났어…… 원.”
“오겠습지요. 누우십시오.”
창선이는 어머니를 안심시킬래도 사정을 몰라서 할 말이 나서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쪽 저쪽으로 돌아누우며 끝끝내 맘을 놓지 못하는 모양이다. 조카 남매는 새 동생을 가운데 놓고 노전가지에 불을 붙여 팽팽 돌린다, 감자떡을 떼어 준다, 손장난을 맞친다 하더니 그만 자는 체 없이 곤드러지고 말았다. 아낙도 어린것을 끼고 노그라져 버렸다.
4
창선의 형 창룡이 내외가 집에 돌아온 것은 밤이 매우 이슥한 때였다.
“온 어쩌면 이렇게 변하였습니까. 영 딴세상 같습니다.”
피차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인사가 끝나자 창선은 간도 형편을 대강 말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말 말게. 냉수에 이 부러질 노릇이지…… 한둘도 아니요 온 동리가 기지사경이네…… 그래 이 소식도 못 들었나? 신문사라고 신문사는 다 왔다 갔네.”
“글쎄 어머니에게서 대강 들었습니다만…… 아주 금시초문이지 들을 길이 있습니까.”
창룡이는 처음 ××××××가 될 때 형편을 얘기하였다. 이 근방 토지를 매수하며 ……든 말과 그 사이에 소위 ××유력자들이 나서서 춤을 추던 야바우를 말하였다.
“이리로 옮기기만 하면 여기다 인천만한 항구를 만들어 줄 테요. 시장 학교 무슨 우편소니 큰길이니 다 내준다고…… 야단스러운 지도(地圖)를 가지고 와서 구룡리를 가리키며 제이의 인천을 보라고…… 원, 산 눈 뺄 세상이지.”
“그래서요?”
“그래도 이천 명이나 되니 그리 얼른 ×겠나. 해서 구룡리에다 창리만한 설비를 해주면 간다고 했지…… 그리고 우리도 한 집이라도 먼저 가면 ……인다고 온 동리에서 말이 됐지. ……했더니 ……에서도 아주 능청스럽게 그렇게 하라구 호언장담을 하더니…… 온 이런 놈의 야바우가 있나. 그렇게 말해 놓고는 뒤로 한 사람씩 파는구만.”
“파다니요?”
“파는 놈이 병신이지. 저 우물녘 집 개수경이 있지 않나. 사람이 불어야 하지. ××에서 꾀군을 그리로 보냈더래. 커다란 봉투에 무엇을 수북이 넣어서 맽기여 장차 장자가 되는 봉투라고…… 위선 구룡리로 옮기기만 하면 그 봉투를 줄 텐데 잘 간수했다가 떼어 보면 알조가 있다구.”
“무슨 봉투래요. 사실이던가요?”
“무얼 사실이야. 엊그제야 떼어 보니 십 원짜리 한 장인가 들었더래…… 그래도 그 바람에 신이 나서 동리 약속을 깨트리고 먼저 옮았네그려. 죽을 심 쳤겠지. 그러나 동리터에 그걸 죽이나 어쩌나…… 하더니 구수한 풍설에 한 집 두 집 설비도 해주기 전에 그만 다 옮아 버렸네그려.”
“집값은 다 받았겠지요?”
“그야 받았지만 그걸 가지고 뭘 하나. 고기가 잡혀야 말이지…… 워낙 금년은 어산이 말 아니네.”
“아주 그렇게 안 잡힙니까.”
“아따, 이 포구를 못 봤나…… 축항인지 무언지 해준다던 게 그래 논 꼴만 보게. 큰 집 마당만하게 좌우쪽에 쉰아무 발씩 방축을 쳐쌓다네. 거게 무슨 배를 매며…… 벌써 일년도 못 돼서 마흔다섯 척 중에서 아홉 채가 바사졌네. 저 류관청네와 모래언덕집과…….”
“그건 들었습니다만 사람까지 상패가 났다니…….”
“글쎄 여보게, 서호에 가서 받아 오면 명태 한 바리에 스무 냥(사 원)은 더 주어야 하네. 한데도 서호 다니는 길은 돌강스랭이가 되어서 많이 이고 다닐 수도 없고 수렛길이 없어서 수레도 못 다니고…… 게다가 해풍이 심해서 고기받이꾼이 얼마를 얼어죽을지 모르네. 그래 누누이 회사에 말을 했건만 영 막무가내하구만.”
“저런 ……는 ……그걸 ……두어요.”
“애초에 도청에서 설계를 했느니 저이는 그대로만 했으니 모른다는 게지…… 그래 오늘은 ××× 있는 데로 가보았네…… ××× 나와서 가라구만 하지 어디 꼴이나 볼 수 있나.”
“그래 못 만났어요.”
“석양에야 겨우 만나긴 했네. 잘 해준다고 하게 다지고 왔지만…….”
“그런데 아낙들까지…… 난립니다. 바로――”
“제 발등이 따그니까 가지 말래도 가는 게지. 또 그래야 관청에서도 알아주네. 여기 번영회라는 게 있어 가지고 대표가 사오 차 나가도 돌아가서 기다리라고만 하지 어디 하나나 해주나. 해서 이번은 대표도 소용없다 모두 가자 하고 간 걸세.”
“그럼 인제는 잘될 모양입니까?”
“말만은 고맙데…… 한데 워낙 이제부터는 바다가 깊어서 한 간에 몇만 원씩 든다네그려.”
“그래도 회사에서 으레 해놓아야지 별수 있습니까. 안 해주면 우리 동리를 도로 달라지요.”
“원, 가당치도 않은 …………가 우리말은 고사하고 ××도 네뚜리만히 안다네. 원, 영의정을 업고 다니는지 그 ×× 등쌀은 갋는 장수가 없데그려. 돈이면 그만이야. 정승이 부럽겠나 ××× 무섭겠나. 무에 무서울 게 있어야 말이지…… 저 관사만 보게 …………명함도 못 들이겠데 뿡―― 하면 자동차라고.”
자리에 누워서까지 이런 얘기를 하는 사이에 창선은 그만 곤해서 어느새 코를 골았다. 그러나 창룡이는 이 궁리 저 궁리에 새날이 오도록 잠이 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무거운 짐 한 짝이 더 얹히었다.
5
창선이는 한심스러운 생각이 더쳐 왔다. 제 고장이라고 그리워하였고 제 친족이라고 찾아는 왔으나 생각던 바와는 아주 천양지판이다. 조선 가면 아무 일이라도 해먹으려니 했으나 막상 와보니 그 ‘아무 일’이란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일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고 힘을 쓸래도 쓸 곳이 없고 고기도 잡아먹을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다. 대대로 전하여 오던 손익은 일 맛들인 일은 이리하여 얻어 만날 수 없고 눈이 멀개서 산 송장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든 옛 일이나 그네가 같이 밀려간 자리에는 낯선 새노릅(고장 기계)이 주인같이 타리개를 틀었다. 검은 굴뚝이 새 소리를 외치고 눈 서투른 무서운 공장이 새 일꾼을 찾으나 그것은 너무도 자기 몸과 거리가 먼 것 같았다. 그만치 할 일이 있고 할 뜻이 있는 옛 일에 대한 애착이 아직까지 뿌리 깊이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 그런데 그 일은 어디 가고 꿈도 안 꾸던 뚱딴지 같은 일터가 제맘대로 벌어져 있다. 게트림을 하면서 턱으로 사람을 부른다. 없는 사람을――그러나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천하없어도 후려 넣는 절대명령이요 울며불며라도 가잖을 수 없는 그곳이언만――이리하여 망설이는 과도기의 공포와 설움이 그의 가슴을 쑤시었다.
구룡리 백성의 살림은 더욱 말 아니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사이에 쌀독의 낟알은 죄다 없어졌다. 겟덕(물고기 말리는 말뚝)은 부엌이 다 집어먹었다. 그래도 잘해 준다던 소식은 찾아오지 않았다. 포구에는 배따라기가 떠보지 못하고 산야에는 격양의 노래가 끊어졌다. 다만 들리느니 저녁놀이 사라지는 황혼의 노동자 노래뿐이다.
장진물이 넘어서 수력 전기 되고
내호바닥 기계 속은 질소 비료가 되네
아―령 아―령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겨넘겨 주―소
논밭간 좋은 건 기계간이 되고
계집애 잘난 건 요리간만 가네
헙스럽고 까라진 아리랑이보다――사자밥을 목에 단 배꾼의 노래보다 씩씩한 노래다. 옛 살림을 빈정대고 새 살림을 자랑하는 노래다.
그 후 얼마 못 되어서 이 고장 백성들은 상투를 자르고 공장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그렇게 함부로 써주는 것이 아니다. 맨 힘차고 뼈 굵고 거슬거슬하고 나 젊은 우둥퉁하고 미욱스럽게 생긴 사람만 뽑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까불여난 늙고 약한 사람이 개똥밭 농사나 짓고 은어 부스러기 고기잡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없던 사람은 온 가장을 보따리에 꾸동쳐 지고 영원 장진으로 떠나갔다.
화전(火田)이나 해먹을까 하는 것이다.
창선이는 요행 공장노동자로 뽑혔다. 상투 짜고 감발 치고 부삽 들고 콘크리트 반죽하는 생소한 사람이 되었다.
출전:조선지광84(19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