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를 기다리며, 하늘에서 보내는 편지
- 경부고속도로 옆 옥천나들목 부근, 고공투쟁 현장에서
이정훈(해고자.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유성기업은 1959년 8월 15일 서울 오류동에서 선반 몇 개 놓고 자동차 부품 피스톤링을 가공하는 작은 공장으로 출발하여 현재에는 자동차 부품 가공 국내 1위를 자랑하는 유성기업이 되었습니다. 아산공장, 영동공장, 대구공장, 남동공장을 두고 있고,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국내 계열사 7개 회사를 두고 있고, 중국 공장까지 두고 있기도 합니다. 자동차 엔진 심장부를 가동하는 내연기관 일체를 가공하고 있으며, 납품 업체는 국내 완성차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기아, 지엠대우, 쌍용, 삼성 등이 있습니다. 선박, 농기계, 2륜 오토바이 내연기관 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며 노동조합은 야간노동에 대하여 많은 고민과 전문연구인으로부터 조언을 받으며 고민하였습니다. 조합원들이 야간노동에 시달려 산재사고가 다량 발생하고, 1년에 한두 명씩 죽어 갔습니다. 야간노동을 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야간노동에 오래 종사하면 평균수명이 13년 단축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습니다. 또한 식물도 야간에 잠을 자야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가로등 밑에는 식물들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따라서 노동조합에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야간노동을 없애고 조합원의 건강권을 챙겨야 되겠다는 사업을 중점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많은 관련분야 전문가 분들의 자문을 받아 드디어 2009년 노사 합의를 맺었습니다. ‘야간노동 철폐를 노사가 준비해서 2011년 실시를 한다. 실시에 관한 제반 문제는 교섭을 한다.’라는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10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은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도 내지 않고 약속을 파기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노동조합은 쟁의행위 절차를 밟고 2011년 5월 18일 조합원 총회에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해서 78%의 높은 찬성률로 가결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합법적인 과정이었고, 일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날 저녁 8시경에 사측은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다음날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말도 다 할 수 없는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당시 대포차로 조합원들을 덮쳐 13명이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분노한 조합원들이 자연스레 아산공장으로 집결해 직장폐쇄를 풀고 성실교섭을 할 것을 촉구하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파업 5일만에 헬기까지 동원한 공권력 4천명이 무자비하게 난압해서 530여명의 전조합원을 경찰서로 연행하기도 했습니다. 일터를 빼앗긴 우리는 근처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밥을 해먹으며 사태 해결을 사회적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정된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따른 것임이 곧 밝혀졌습니다. 당시 현대자동차 영업총괄이사 승용차에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발견되었습니다. 청와대, 국정원, 경찰, 노동부, 경총, 원청인 현대차 등의 긴밀한 협조 하에 진행된 일이었습니다. 민주노조를 죽이는 일은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가장 큰 근거지 하나를 말살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당시 온 국민, 야당 정치인까지 유성 조합원을 응원하고 지지, 연대하였지만 유성 자본은 이런 큰 계획과 지원 속에 있었기에 무응답이었습니다. 그 뜨거운 팔복 더위에 장대 같은 장마를 이기며 비닐하우스 숙박생활을 하며 죽은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전국을 뛰어 다니며 호소하였으나, 유성자본과 정권-공권력은 유성 문제를 다루는 역대 최대의 특별수사본부를 차리고 우리를 탄압했습니다. 과정에 16명이 구속되었고, 3년여가 지난 지금도 두 사람이 감옥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정말 눈물겨운 시간들이었습니다.
3개월여만에 천안법원에서 직장폐쇄 철회 가처분 관련한 조정 과정에서 그해 8월 22일부터 8월 31일까지 3단계로 나누어 30여 명씩 단계적으로 복귀하는 합의가 나왔습니다. 또 다른 탄압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체 조합원 복귀가 완료되는 시점부터 유성 사측은 조합원들의 성향을 분석해 차별 교육을 시키고, 동시에 전원 징계를 단행하였습니다. 해고자 27명, 출근정지 60여명이었습니다. 나머지 정직, 견책 등 징계 조합원은 출근시켜 굴욕적으로 대민봉사 고구마 캐기, 낙엽 쓸기, 하수도 청소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인격까지 판 것이 아니었는데, 사측은 조합원들의 인격까지를 자신들의 소유물처럼 다루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2012년이 되어서야 유성 문제가 국회청문회에서 다루어졌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창조컨설팅 노조 파괴 문건이 공개되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문이 일어났습니다. 여론에 놀란 노동부와 검찰 등이 그제야 특별근로감독과 2번의 압수수색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증거 자료가 1톤 트럭으로 본다면 반 트럭 분량이나 나왔다고도 했습니다. 이후 국정감사를 3년에 걸쳐 실시하기로 했고,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산업안전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어 벌금 10억원이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 근거를 가지고 노동부는 유시영 사장 등 경영진을 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유성 경영진을 봐주기 위해 3회에 걸쳐 재수사 및 자료 보강 요청을 하며 2년여를 지연시키다가 2013년 말에 여론이 잠잠하자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다시 11명의 조합원들이 해고되고, 수십 명이 출근정지를 당해야 했습니다. 국정조사와 국회청문회를 통해 사실이 다 밝혀졌는데도 당하는 건 우리 힘없는 노동자들뿐이었습니다. 12억의 손배가압류가 떨어졌고, 별도로 국가가 나서서 우리 노동자들을 상대로 1억 2천만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를 걸어 왔습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 유성 경영진 구속을 촉구하며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 부근 광고철탑에 오른지 벌써 140일째입니다. 두개골이 함몰되고, 갈비뼈가 부서지고, 콧등이 함몰되는 등 다친 조합원들 병원 치료비만 그간 3억이 넘게 나왔습니다. 창조컨설팅 노조 파괴 문건 수만 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이미 창조컨설팅 법인은 노동부에서 인가 취소를 받았고, 사측의 사주를 받아 움직인 심종두 노무사는 노무사 자격이 정지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노동부에서 사실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한 몸통들인 유성기업 사장과 최성욱 영동공장장, 이기봉 아산공장장 등 임원들, 그 뒤에 있던 더 큰 세력들은 아무런 책임도 반성도 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는 바보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이 센 줄을 모르는 바보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옳다지만 되지도 않을 일로 삶을 망치는 바보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바보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미 더 오를 곳 없는 하늘 가까이까지 와 버렸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조금은 믿고 살만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이 모든 부당노동행위를 자신을 위해 수십년씩 일해 온 ‘가족’에게 행사한 유성기업 책임자들은 구속되어야 합니다. 그날까지 나는, 우리는 고공농성을 풀 수가 없습니다. 저 오염된 땅으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사업주들에 의해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없게 하기 위해, 일벌백계해야 합니다. 맨날 노동자들만 맞고 끌려가는 게 아니라 기업주도 잘못했을 때는 그 책임이 물어져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확인되어야 합니다. 민주노조는 헌법에 보장된 핵심적 국민의 권리입니다. 이런 권리가 부당한 일부 권력층과 국가기관들, 재벌 집단들에 의해 함부로 침해당하는 순간 우리 사회 1700만 노동자 가족들의 삶의 평화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 몸에 암 덩어리가 있다면 그 암 덩어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 암 덩어리를 그냥 두고 봉합한다면 그 암세포는 계속 번져 결국 생명 전체를 해칩니다. 한국 사회의 건강을 위해 나는, 우리는 내려가거나, 이 투쟁을 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013년 10월 13일이었습니다. 참 많이 외롭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140일이 다 되었는데도 지금도 바람만 불면 멀미가 나기도 합니다. 수없이 지나가는 고속도로의 차들을 보며 저와 홍종인 아산지회장도 가족들과 함께 어디 여행이라도 가보면 좋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밤이 오면,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새해 첫날이 오면, 구정 명절엔 내려갈 수 있을까 마음들이 싱숭생숭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에 이곳 옥천 광고철탑에 올라와 눈보라치는 겨울을 보내고 이제 들판에 농부가 농사를 짓기 위해 들녘에 나와 있는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더위와 싸워야 하는 여름이 오겠지요. 저는 아무런 죄 없이 평 조합원으로 있다가 2011년 10월 해고를 당하고,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20개월만에 복귀하였지만 2013년 10월 같은 내용으로 다시 재해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탄압 속에서도 굿굿이 버텨준 저희 조합원분들 때문이었습니다. 3년에 걸쳐 진실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싸우고 있는 저희 조합원들을 누군가 한번씩 꼭 껴안아준다면 너무나 고맙겠습니다.
그러던 중 너무나 크고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사회의 희망이기도 했던 희망버스가 3월 15일날 이 철탑으로 와주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산공장으로 가서 함께 목소리 높여 저희 유성기업을 비롯해 발레오만도, KEC, SJM, 보워터코리아, 만도, 상신브레이크, 콘티넨탈 등에서 자행되었던 민주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검을 요구해 주시겠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주인은 평범한 노동자 민중,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시겠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간 잊었던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아, 이렇게 진실이란 살아나는 것이구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3월 15일날 희망버스에 오르는 한 분 한 분의 발걸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 뜨거운 마음들 받아 200일이고, 300일이고, 동지들이 됐다 하는 순간까지, 우리 김진숙 동지가 그렇게 버텼듯, 현대차비정규직 최병승, 천의봉 동지가 그렇게 버텼듯, 쌍용차 한상균, 복기성, 문기주 동지가 그렇게 버텼듯, 저 역시 지지 않고 잘 지내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힘내라, 이정훈! 힘내라, 민주노조’ 유성기업 희망버스
■ 일시 : 2013년 3월 15일(토) - 16일(일), 1박 2일
■ 구체 일정 및 내용
- 3월 15일 오전 10시 : 전국 희망버스 출발
- 3월 15일 오후 1시 : 옥천IC 고공농성장 <힘내라, 이정훈! 힘내라, 민주노조> 연대마당
- 3월 15일 오후 5시 : 유성기업 본사(아산공장) 도착
순배가압류 없는 세상, 노동탄압 없는 세상 쟁취(가칭) 결의마당
- 3월 15일 오후 7시 이후 : 희망버스 연대마당
- 3월 16일 오전 8시 :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기원탑 쌓기
- 3월 16일 오전 9시 : 폐회
* 유성기업 노조는 3월 4일부터 8일까지 전국순회 투쟁에 나섭니다.
* 당일, 전해투에서는 ‘전국해고노동자 연대의 날’을 함께 진행합니다.
* 당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은 확대간부 전원이 희망버스에 탑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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