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광복을 위해 말할 수 없는 땀과 눈물을 바친 또 하나의 인물은 얼마 전 작고한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준엽이다. 그 역시 학도병 출신이었고, 당시 학도병으로서는 일본군 탈출 1호였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 만주에서 일본군에 소속되어 훈련 받던중 탈출하여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때 학도병 탈출자 장준하와 그 외 몇몇이 김준엽이 있는 곳에 찾아오자 그들과 같이 중경의 임시정부까지 장장 6천리를 걸어 가합류했고, 그 후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을 위한 광복군 장교로 활동했으니, 그 역시 지사의 용모를 갖춘 인물이다. 그로부터 이 두사람, 장준하와 김준엽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로서 살아생전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장준하가 김준엽 보다 나이가 4살 위였으므로 김 총장은 평소 장준하를 “장형” 이라 부르며 조국독립이나 해방 후 독재투쟁에 연대감을세우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김준엽은 해방 후 귀국하여 있다가 다시 대만에 가서 중국정치사를 연구하고, 그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5·6 공화국 시절 여러차례 총리직 제의를 받았지만, 국민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지 못한 군사정권의 수인이 되는 불명예를 안고 싶지 않았고, 또 자신의 제자들이 민주화 운동하다 감옥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총리가 되어 학생들의 민주화 열기를 짓밟을 수 있는가 하여 고사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총리직 거절 에피소드는 불법으로 정권 잡은 자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지조곧은 선비적 신념이라 말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권에 눈이 어두운 정치 소인배들과는 궤를 같이 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나타낸 일이라 할 수있다. 결국, 군사정권의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해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만다. 사실,김준엽은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물인데, 군사정권에서는 그를 총리로 내세워 자신들의 정권의 취약성을 가리려는 수법을 쓴 것이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에서도 총리직 제의를 연이어 받았지만, 학자로서의 뜻을 세워가겠다는 의지를 지켜 정중히 고사하기도 했다. 배신과 변심이 심한 인간사회에 지조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것이다.
왜 역대정권에서 그를 한 나라의 총리로 모시려했겠는가? 광복군으로서 애국자의 면모를 보았기 때문이며, 권력이나 이권에 따라 자신의 소신이나 신념을 좌지우지 하지 않는 큰 자로서의 곧은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며,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인격적 도량을 가져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존경받는 인품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최근 출판된 자서전 '장정' 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 하나하나를 볼 수 있다.
21세기 과학문명의 시대, 도덕이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질서가 파탄난 시대에 국가나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그들의 섬세한 민족적 정신이 참으로 아쉬운 시대라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너무 잘살게 되다 보니 장준하와 김준엽 같은 애국 독립지사들의 정신이나 업적, 또는 삶의 자세가 무슨 관심거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갖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에서 그들의 삶의 정신이나 업적이 멀어 진다해도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무관심하거나,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미 그런 유형의 삶을 축복하고 있다. 바빌론의 침략으로 포로의 몸이 되었던 다니엘은 구약시대에 이미 곧은 자의 삶을 살았고, 그러한 사람들이 얻을 영광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다니엘 12:3). 예수님 역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고,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장준하와 김준엽이 보여준 삶이 왜 역사에 소중한 지 그 교훈을 두고 두고 배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