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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27일 (일), 맑고 더움
사랑하는 아들아 ! 일요일인 오늘 새벽에 일찍 눈은 떴는데, 피로가 겹쳤는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찍 절에 가겠다고 시계를 맞춰 놨었지만, 어머니도 요즘 며칠째 편찮으셔서 누워만 계신다. 차마 어제 너에게 답장을 써 보내는 편지에 이 사실을 그대로 쓸 수가 없었다. 멀리 객지, 무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네게 마음 아파할 소식을 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곧 회복이 되기야 하겠지만. 누나는 낮 12시경 집으로 향해 출발한다는 전화를 했었고 5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 도착했단다. 재미있게 잘 지내고 왔다니 고마울 뿐이다. 오늘 편안한 시간 좀 보냈느냐? 너무 더워서 힘들지? 내무반에 선풍기가 있다니 다행인데, 밖에서 작업을 했는지도 모르겠구나. TV를 보다가도 군인이 나오는 장면이면 유난히 집중해서 보게 되고 너를 떠올리곤 한단다. 어제 편지속에 2만원과 전화카드를 알려준대로 잘 봉해서 보냈는데, 빠르면 화요일(29일)에 받아 보게 될런지....? 너는 오천원 짜리 2장을 보내라고 했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구나. 하여튼 1만원짜리 2장을 넣었는데, 교육이 끝나면 PX에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혹시 먹고싶은 것이라도 사먹으라고 그렇게 했지만, 그 돈 가지고 뭘 그리 사먹을 수 있겠니? 그리고 “주말 간담회”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2,000원 씩 개인 부담이라면 보낸 돈도 써볼 것이 없겠구나. 그리고 아들아, 너의 편지 말미에 “군대까지 와서 이런 부탁을 드리니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라고 한 것을 보고 이 아버지는 오히려 찡한 마음이 든다.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네가 입대하던 날도, 아버지는 혹시 비라도 흠뻑 맞으며 교육을 받는 경우라면 젖을까봐서 얇은 비닐 봉지에 오만원을 1,000원짜리, 오천원짜리, 1만원짜리로 섞어서 넣어 주었을때, 굳이 그렇게 많이 필요없다며 2만원만 달라고 하고, 나는 그래도 1만원을 보태서 3만원을 주려고 했어도 너는 끝내 2만원만 챙겨갖고 입대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구나. 그 돈에서 예방접종비며, 간담회때 개인 부담을 했다면 무슨 돈이 남았겠니? 부모의 심정은 무엇이든 있으면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게 부모의 마음이란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저절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또한 부모의 심정을 알게 되는 것이란다. 부모의 소중한과 형제간의 소중함, 이 모든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철없었던 한 때의 나의 생각들이 얼마나 허황되고 얕은 생각들이었으며, 사려깊지 못했던가를 깊이깊이 반성하게 되고, 또한 그런 과정이 있으므로 해서 성숙되고, 인간미 넘치는 참다운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다음에 아들도 좋은 아내를 맞고 자식을 낳아 생활해 보면, 그때 그 자리에서 지금 이 아버지의 생각과 느낌을 체험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장한 아들아 ! 언제나 정신을 맑고 바르게 해서 허망된 생각이나 공상, 잡념 등에 사로잡히지 말고 냉철하고 현명한 사리 판단으로 위, 아래 인간 관계 원만히 하여 무사히 제대하고 부모형제 곁으로 아니 사회에 복귀하여 네가 꿈을 키워 왔던 그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는 건전하고, 건강하고 예절 바른 국민의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고생도, 그리움도, 아쉬움도 모두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이란다. 그런 가운데서 야망을 키우고 목적과 목표를 향해 일보일보 전진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이 아버지가 지켜보아온 봉연이는 무슨 일이든 상황에 관계없이 능히 잘해 나아갈 것이란 확신이 선다. 믿음이 있고 든든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 내무반원이 49명이라니 개성이 틀린 인간들의 집합체이다. 너의 말대로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처세하면 무난할 것이다. 내일부터는 5주차 교육이 시작되는구나. 파이팅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 내길 기원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99. 6. 27 (일) 22 : 40 - 집에서 아버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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