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랫다리 : 사당패들은 전국 풍물굿의 판도를 웃다리와 아랫다리로 구분했는데, 경기.충청 일대를 제외한 호남 좌.우도 영남 등지를 아랫다리로 불렀다.
- 아리랑 : 아리랑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민요다. 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전국 어디를 가도 아리랑 정도는 누구나 노래할 수 있고, 심지어는 해외에서도 널리 퍼져 이른 바 , 등이 있으니 이를 보아도 아리랑은 가히 우리민족 전체의 노래임이 틀림없다. 특히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진 오늘날에 와서는 아리랑은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우리민족을 대표하게 된 아리랑이지만, 그 유래나 또는 언제부터 부르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쉽게도 지금껏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의 기원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주장들이 있는데, 우선 이들을 통해 그 연원을 추측해 보고자한다.
아리랑이 언제부터 우리민족에게 애창되었는가에 대한 견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삼국시대에 이미 아리랑이 형성되었다는 설이며, 둘째는 대원군이 경복궁의 중건공사를 시작한 1870년 즈음에 아리랑이 형성되었다는 설이다. 셋째는 이와는 달리 정확한 시기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밀양의 영남루에 얽힌 아랑(阿娘)의 전설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다.
삼국시대부터 아리랑이 불리워졌다는 주장은 역사적인 사실 또는 옛 지명을 국어학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통해 그 기원을 찾고자 하였다. 먼저 역사적 사실에서 아리랑의 기원을 찾는 것은 신라의 왕비인 알영(閼英)과 관련이 있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비(妃)인 알영은 알영천이란 우물에 살던 용의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알영은 왕비가 되어서도 왕과 함께 국내를 다니면서 농작과 양잠을 장려했다고 한다. 이러한 알영의 행위를 백성들이 칭찬하고 노래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이때의 알영을 칭송하는 노래가 오늘날에는 아리랑으로 변하여 전승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알영'과 '아리랑' 사이의 음의 유사성을 그 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반면 국어학적 분석으로 아리랑의 유래를 밝힌 사람은 양주동 박사이다. 그는 전국의 지명에 나타난 '아리랑 고개'의 예를 찾아 아리랑은 곧 '아리령(嶺)'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때 '아리'는 '밝음·광명'의 뜻으로 북방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오던 우리 조상들이 높은 산을 넘어오면서 세상이 환하게 내려다보이는 고개를 '아리嶺'이라고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령'을 넘어 오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노래로 담아 부른 것이 곧 오늘날의 아리랑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어쨌든 이러한 주장들에 따른다면 아리랑의 유래는 신라 시대를 넘어 고대로까지 소급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아리랑의 역사를 근대로 잡는 경우도 있으니, 이들은 한결같이 아리랑의 유래를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공사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대원군은 국위를 선양하기 위하여 임란 때 불탄 경복궁의 중건을 계획하고 고종 2년(1865) 4월 13일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국가 재정은 극히 빈약하여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원군은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의 백 배에 해당하는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하기도 하였고, 전국의 부호를 조사하여 이들에게 강제적으로 헌금을 징수하였다. 한편 헌금을 낼 수 없는 백성들은 강제로 부역에 동원되었는데, 이로 인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였다. 그래서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 "차라리 내 귀가 먹어서 아무 것도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아이롱(我耳聾)'이란 말이 식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당시 부역에 동원되었던 백성들의 처량한 신세와 맞아 떨어졌고, 그 결과 '아이롱'으로 널리 불려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오늘날의 아리랑으로 바뀌어 전승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아리랑을 '아이랑(我離娘)'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즉 매일같이 반복되는 노동에 시달린 백성들은 오랜 고독으로 인하여 고향에 두고 온 처자를 몹시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妻)와 떨어져 살기 힘든 자신"들의 심정을 '아이랑'으로 표현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아리랑으로 변하여 불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경복궁에 동원된 백성들이 가정을) 떠나 있기가 어렵다"는 뜻의 '아난리(我難離)'가 "아라리가 났네"의 '아라리'로 변하여 전승되었다는 설도 있다.
밀양의 아랑전설과 관련지어 아리랑의 유래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 젊은이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밀양 사또의 딸인 아랑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아랑아랑"하고 부른 것이 오늘날의 아리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많은 수의 이 영남루의 아름다움과 아랑각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 아쟁 : 활을 쓰는 악기로 고려시대에는 당악에만 편성되었고 조선초기 이후로는 당악과 향악에 함께 사용되었다. 국악기 중 가장 낮은 음역에 속하는 현악기로 일곱줄이다. 공명통은 거문고와 같이 상자 모양으로 짜고 초상이라는 받침대 위에 올려 놓고 개나리의 껍질을 벗겨 송진을 칠한 활대로 문질러서 소리를 낸다. 조금 거칠지만 장엄한 음빛깔이 특징이다.
- 안바탕 : 판굿의 한 틀은 은 겉바탕과 안바탕으로 나뉘어지는데 안바탕은 판굿의 도입부분이 겉바탕이 끝나고 난 후 호허굿되드름에서 마지막 인사굿까지를 말한다. 겉바탕과는 달리 안바탕에서는 주로 놀이와 상쇠의 판제력에 힘입고 가름새에 대한 식견이 있어야 하므로 상쇠가 꼭 참여한다.
- 앉은반 : '앉은반'은 풍물이 갖고 있지 않은 많은 것 중에서 음악적 요소가 가장 두드러진 것들만을 뽑아 실내연주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는 음악의 가장 기본요소이자 주된 요소인 리듬을 위주로 짠 것으로 몇몇 잽이의 뛰어난 기량과 호흡으로 그 자신들이 몸담았던 전문예인집단의 풀어진 가락을 정리하고 다듬어 보다 현대적인 극적 진행을 위해 취했던 연주 형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앚은반이 너무나 가락이주, 스피드 위주, 테크닉위주로 흘러감에 따라 본래 우리 가락이 지니고 있던 푸짐하고 넉넉한 맛이 없어지고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반)선반
- 앞치배 : 풍물패 가운데 주요악기인 쇠.징.장고.북과 법고 등을 든 치배(잽이)들을 일컫는 말.
- 약 : 고려 예종 11년(1116) 대성아악(大晟雅樂) 들어올 때 문무(文舞)의 무구(舞具)로 들어왔다. 지공이 세개 밖에 없으나 12율을 내야 하기 때문에 반구멍 보다 더 막는법, 반구멍 막는법, 반구멍이 안 되도록 짚는 법 등 어려운 운지법을 쓰고 있다. 현재 문묘 즉 공자묘의 제례 음악에 쓰이며 그 주법에는 변화가 없다. 이 악기는 가락이 복잡하고 속도가 빠른 음악에는 사용할 수 없고 단음으로 한없이 길게 뻗는 고대아악에 한하여 편성된다.
- 양금 : 철현을 사용하고 채를 쳐서 연주하는 악기. 서양금, 구라철현금, 천금, 번금 등으로도 불린다. 양금은 원래 회교(回敎) 음악에 쓰인 악기인데 십자군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어 중세 이후 유럽 각지에 보급되었다. 덜시머(Dulcimer), 쳄발로(Cembalo), 팀파논(Tympanon) 등으로 불리던 양금은 1580년경 중국에 소개되어 영조 때에 조선에 소개되었다. 부정 사각형의 판면 위에 긴 괘를 두개 세우고 그 위에 4줄의 철줄을 한벌로 하여 14벌 즉 56선이 있으며, 대로 깎아 만든 채로 줄을 찾아 친다. 금속성의 맑은 음색을 가지고 있으나 거문고,가야고같은 농현(弄絃)이 불가능하므로 독주악기로는 쓰이지 않는다.
- 양사(양상모·양상모놀이) : 왼편, 오른편 RYEI로 한 바퀴씩 상을 돌리는 상모놀음.
- 양산도굿 : 양산도굿은 경기민요 「양산도」에 아주 잘 맞는 세마치 장단이므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경기풍물굿에는 없는 세마치 장단이 왜 전라도 우도풍물굿에만 있는가? 「양산도」.「도라지」.「아리랑」.「진도아리랑」.「밀양아리랑」등은 우도풍물굿으로만 반주할 수 있다. 경기민요라고 말하지만 경기민요를 싹틔울 예술의 '거름기적 박자문화'가 팽배한 곳이 우도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양주별산대놀이 :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의 일종. 옛부터 탈놀이의 명칭을 황해도지방에서는 탈춤으로, 낙동강 서쪽 지방에서는 오광대(五廣大)놀이로, 낙동강 동쪽 지방에서는 들놀음(야류, 野遊) 등으로 불러왔는데, 경기도 지방에서는 산대놀이라는 명칭이 쓰여왔다. 산대놀이에는 양주 이외에도 송파산대놀이.파주산대놀이.포천산대박첨지놀이.등촌산대박첨지놀이 등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들 중 양주.송파 이외에는 이미 전승이 끊어져 그 실제의 모습을 확인할 길이 없다.
- 어 : 대 위에 엎드린 호랑이 형상의 악기. 등줄기에 톱니모양으로 생긴 27개의 톱니가 있다. 어를 긁는 채를 견죽이라고 하는데 통대 끝을 9조각으로 갈라 만든다. 어는 서쪽에 놓여져 고려 이후 주로 제사음악에 사용되어왔다. 호랑이 목덜미를 채끝으로 세번 친 다음 등줄기의 톱니를 '드르륵'하고 세 번 내려긁은 뒤 박을 세번 치면 음악이 끝난다.
- 어요 : 고기를 잡기 위해 출어를 하기 전에는 그물을 수선하든지 배를 고치든지 하는 준비를 하는 데 이 때에 그물에 연결할 밧줄을 꼰다. 여기에서 밧줄을 꼬며 부르는 내왕 소리를 한다. 모든 준비가 다 되면 출어를 하는데 먼저 모래밭 위에 올려 놓았던 배를 끌어 내려야 한다. 이 때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기 위해 배내리기 소리를 한다. 모래밭에 배를 올려 놓는 것은 작은 배의 경우이고 큰 배는 밧줄로 묶어 두기만 한다. 고기가 있는 어장으로 가기 위해 노를 젓는데 처음에는 느릿하게 저어나간다. 고기가 있는 근처에 오게 되면 그물을 내릴 곳으로 빨리 가야하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에 따라 노를 저으며 부르는 소리도 느린것과 빠른 것이 있다.
- 얼림굿(어림굿) : 농악에서 농악대들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얼르는 쇳가락이나 판굿의 명칭. 농악을 시작하기 전에 상쇠가 농악대들을 모아 놓고 정해진 장단없이 "덩덩덩덩……"라고 연타하면 다른 잽이들도 이와 같이 따라치는데, 본래 서낭대나 영기(令旗)를 세워놓고 신(神)을 받는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 엇모리 : 판소리 등의 민속악에 쓰이는 장단의 하나. 중중모리보다 빠른 장단(♪=180∼240)으로 구음(口音)은 "떵 쿵딱 쿵 딱쿵"으로 한다. 구조적으로 볼 때, 5박자 두 개가 하나의 장단 틀을 이루고 있으며 액센트는 8박에 있다. 그 5박자는 다시 3+2의 혼합형을 이루고 있는데, 2분박(Duple Rhythm)과 3분박(Triple Rhythm)이 한데 어우러져 형성된 장단은 옛날 악보에서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엇모리 장단은 3.2.3, 3.2.3이라는 6대강(六大綱)의 리듬 형태가 2.1.2.2.1로 가락덜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엇모리는 판소리 뿐만 아니고 전라도 무가의 신임장단과 그 구조가 같고 동행안 무가에 나타나고 있어서 그 뿌리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산조에는 신쾌동(1907-1978)류 거문고산조와 김병호(1910-1968)류 가야금산조에 쓰이고, 보통 산조에는 잘 쓰지 않는다. 판소리에서 엇모리장단으로 짜여진 유명한 대목은 심청가와 흥부가 중의 내려오는 대목과 적벽가의 한 장수 나오는 대목 등이다.
- 엇부침 : 장단을 하나 먹고 들어가는 것. 따라서 장단과 장단 사이에 노는 것을 말할 때 이렇게 말한다.
- 역진 당산굿 : 농악꾼들이 문굿을 하려고 입동(入洞)할 때 뒷걸음으로 들어가는 것.
- 연봉놀이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운 다음 발짓, 고개짓으로 부포를 놀려 부포가 마치 연꽃 봉오리가 피었다 오무렸다 하는 모습과 같이 하는 재주.
- 연풍대 : 좌우로 도는 춤사위. 검무와 승무 같은 춤에도 쓰인다. 농악에서는 매우 빠르게 도는 사위를 쓴다. 판굿에서 법고잡이 또는 장구잡이가 연풍대를 많이 한다.
- 연희굿 : 연희굿은 걸립굿에서보다 발전한 형태이며 조선후기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전문연희패가 생기면서 장시를 기반으로 하여 독자적인 공연 형태로 발전한 것을 말한다. 이런 전문 연희패의 발생은 두레굿이나 마을굿 속에 담겨 있는 소박한 예술성을 고도로 발전 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문 예인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풍물의 형태를 창출한 것이다. 이러한 연희굿의 발전은 예술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과 마을굿을 보다 풍성하게 살찌우는 역할을 수행하여 마을굿과 연희굿이 같이 발전하는 즉 풍물의 전성기를 이룰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연희굿은 당시 민중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예술로 발전하는 단점도 갖고 있었다.
- 12발상모 : 채상의 길이를 매우 길게 만든 상모를 12발이나 길다 해서 12발상모라 부른다. 상모에 긴 줄을 달고 엽전을 붙여서 축복을 유인하고 창호지(백지) 한 장을 전부 테이프로 만들어 돌리며 앉아서 돌리기.누워서 돌리기.서서 돌리기.뛰어 돌리기.옮겨가며 돌리기 등이 있다. 상모돌리기 기능은 어깨와 발의 움직임으로 하는데 머리로 돌리면 보기도 흉하고 힘이 든다.(참고:상모놀이) 12발상모가 달린 상모는 고사굿이나 길굿에서는 쓰지 않고, 판굿의 개인놀이 중 12발상모놀이에서만 쓰인다.
- 열채 : 장구에서 있어서 오른쪽의 높은 음이 나는 채.
- 영고 : 북통에 노란칠을 한 여덟 개의 작은 북을 원형으로 묶어 틀에 달아 놓아 팔면으로 만들었다. 영도와 함께 지신(地神)의 제사인 사직(社稷)의 강신악(降神樂)에 편성되었다. 이 북의 8면은 지신제 가운데 영신악의 8성(八成)과 일치하는 숫자이다.
- 영도 : 북통에 노란 칠을 한 네개의 작은 북을 엇갈려 세워 팔면을 치게 하였다. 영고와 함께 지신(地神)의 제사인 사직(社稷)의 강신악(降神樂)에 편성되었다. 이런 악기들은 조선 말기에 사직제가 폐지됨에 따라 사용되지 않고 악기만 전한다.
- 영산 : ①호남풍물굿에 쓰인 쇳가락의 하나. 길군악·품앗이굿·된삼채·일자신굿·인사굿과 함께 우도굿의 들당산굿에서 사용되었으며, 좌도굿에 쓰인 영산이란 가락은 연주되는 속도에 따라서 늦인영산·자진영산·조른영산으로 나뉜다. 좌도굿에서는 영산가락에 맞추어 농악대원들이 노는 놀이를 영산이라고도 하는데, 이 놀이에서 상쇠와 부쇠가 소쩍새가락을 연주하면서 서로 교대로 춤을 춘다. 앉은영산·돌림영산 같은 농악 놀이도 연주되는데, 이때 상쇠는 늦은삼채를 치면서 상쇠와 부쇠는 마당의 중앙에서 멋진 가락을 주고 받을 때 다른 농악대원들은 환진(環陳)으로 돌며 춤을 춘다. 그리고 상쇠가 소쩍새가락을 치면 부쇠가 춤을 추고, 부쇠가 소쩍새가락을 치면 상쇠가 춤을 추는데, 이때 소고잽이는 나비상을 하면서 논다. ②경남풍물굿에 쓰인 쇳가락의 하나. 황일백의 연주에 의하면 풍물굿 12차 중에서 열두번째의 가락이름으로 쓰였다.
- 영산다드래기 : 경상도 남부지방 쇳가락의 하나. 또는 판굿의 한순서, 박자. 굿거리 장단에 맞는다 , 판굿에서 영산다드래기 순서는 우물놀이 다음에 행하여지는데 집이들이 영산다드래기가락을 치면서 상쇠와 소고수들이 외상쇠놀음·양산쇠놀음·사사놀음·전치기웃놀음·쌍전웃놀음 등 여러 가지 상모놀음을 하고 반다드개기가락으노 쇳가락을 치다가 자진다드래기가락으로 더욱 모아쳐서 마친다.
- 영산회상 : ① 관.현합주곡의 하나. 연주의 형태에 따라 관악영산회상.현악영산회상.편조회상의 세 종류가 있다. ② 세 종류의 영산회상 중 현악영산회상을 일컫는 말. 현악기를 중심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현악영산회상 또는 거문고회상이라고도 한다. 일명 중광지곡(重光之曲). 모음곡(組曲)처럼 9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주 소요시간은 약45분이며, 각 곡을 끊지 않고 이어서 연주하는 것이 통례이다. 현재 연주 되고 있는 영산회상은 상령산(上靈山, 本영산, 긴영산) 4장, 중령산(中靈山) 5장, 세령산(細靈山.잔영산) 4장, 가락덜이 3장, 삼현도드리(三絃還入) 4장, 타령(打令) 4장, 군악(軍樂) 4장으로 구성된다. 악기편성은 거문고를 비롯해서 가야금.해금.세피리.젓대.장고의 여섯악기가 단잽이로 편성되며 양금과 단소를 첨가하기도 한다. 현악기와 관악기의 선율선이 서로 똑같지 아니하며 상령산과 같은 느린 곳에서는 젓대나 단소가 음꼬리를 올리거나 내려서 박자가 끝난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일반 사랑방에서 애호를 받던 곡목으로 템포가 아주 느리게 시작하여 조금씩 빨라지게 되는데 비직업 연주인들이 사랑방에 모여 마음의 수양을 위해 연주하던 음악이기도 하다. 변천 15세기의 악곡을 수록한 「대악후보(大樂後譜)」나 1493년(성종 24년)에 만들어진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의하면 원래 이 곡은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普薩)이란 불교 가사를 노래 부르던 음악이었다. 중종때 가사가 수만년사로 개작되어 세속화되었으나 차츰 가사를 상실하여 기악곡화하고, 불교음악에서 세속음악으로 변화였다. 19세기 초(1801-1834)의 「유예지(遊藝志)」에서는 가사를 상실한 기악곡으로 나타나지만 한 걸음 나아가 새롭게 파생된 곡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이 밖에도 많은 고악보(古樂譜)들에 영산회상의 악보가 전한다. 가사를 가졌던 원래의 영산회상은 현행 영산회상의 상령산 중 제4장 제3각(刻)까지인 14장단에 해당한다. 즉 현행 상령산의 매 2각이 본래 있었던 영산회상불보살이란 가사의 매 1자에 해당한다. 현행 상령산은 모두 17장단으로 4장 후반 3장단은 상령산과 중령산의 단층을 이어 주는 구실을 한는 일종의 돌장(回章)기능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악화된 후의 영산회상은 상령산에 이어서 중령산.세령산.가락덜이의 세 가지 변주곡이 추가되었다. 즉, 중령산은 상령산으로 부터 변주되었으며, 중령산.세령산.가락덜이의 세 곡은 동일곡으로서 세령산은 중령산보다 가락덜이는 세령산보다 가락을 던 곳으로 보고 있다. 다시 이 네 곡에 이어서 삼현도드리와 그 변주곡인 하현도드리 그리고 염불도드리와 불교음악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령과 군악 등 다섯 곡이 첨가되어 모두 아홉 곡의 모음곡으로 변화 증대되어 현재에 이른다.
- 오광대놀이 : 경상남도 낙동강을 분계로 하여 주로 서편에 분포되어 있는 오광대놀이는 현재 통영 오광대, 고성 오광대의 두 종류만이 중요 무형문화재 6, 7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바로는 이들 오광대 놀이들은 경상남도 낙동강 상류 초계라는 곳에서 비롯된 탈 놀음의 한 분파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것은 산대놀이 계통의 영남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오광대란 이름은, 다섯광대 즉 다섯의 가면을 쓴 등장인물이 연희하는 놀이란 뜻이며 여기서 다섯을 뜻하는 '오'는 오행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진주 오광대, 마산 오광대, 가산 오광대 등의 첫 과장에 오방신장무가 있어 악귀를 쫓고 복을 기원하는 벽사진경의 관념에서 연유한 것을 짐작케 한다. 오방신장은 원래 중국 고대의 오방오제설에 따른 도교계의 신으로서 우리나라 민간신앙에 받아들여져 방위를 제압하고, 귀신을 쫓고, 복을 부르는 강력한 방위신으로 섬겨졌다. 이 오방신장의 다섯에 맞추어 양반과장에 오양반을 등장시켜 오광대라 부르기도 하고, 문둥 과장에서 문둥이의 수를 다섯으로 하여 놀이하기도 하며,심지어 통영과 고성에서는 놀이의 구성을 다섯 과장으로 하기도 한다. 원래 오방신장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민간 신앙적인 의의에서 생긴 '오'가 오락적인 탈놀음으로 변하여도 등장 인물의 수를 상징하면서 존속되어 이 놀음의 이름을 계속 오광대라 불러 온 것이다.
- 오방진 : ① 우도풍물굿의 진풀이 중에서 동.서.남.북.중앙에 동그랗게 시계방향으로 또아리(멍석.용말이.팽이)를 말았다가 반대 방향으로 푸는 진을 말한다. 좌도풍물굿의 방울진과 놀이대형은 거의 같으나 우도의 경우 더 여유가 있고 길다.② 오방진을 짜면서 치는 네박자 장단으로 ♩ ♩ ♪♪ x x 박자가 기본이다.
- 오채질굿(우질굿) : 호남 우도농악 판굿의 첫머리에만 연주되는 쇳가락으로 징이 다섯 점 들어가는 행진가락이란 뜻. 오른편으로 돌며 쇳가락을 치기 때문에 우질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우 빠른 3박과 2박의 혼합박으로 형성된다. 이때 첫 강박에만 징이 들어간다. 그리고 매 첫 강박을 징만 치고 꽹과리가 치지 않고 쇠게 도리 때는 벙어리오채라 한다.
- 올림채 : 경기도 한강이남 지방의 무무(巫舞)반주에 쓰이는 장단의 하나. 조상굿.군웅굿과 같은 거리에서 무당이나 창부가 추는 춤의 반주에 쓰이며, 이 춤은 흔히 반설음장단이나 부정놀이장단에 이어서 추는 경우가 많다.
- 와공후 : 목이 굽은 모양이 봉황의 형상과 같다고 하여 봉수공후라고도 한다. 고구려악에 이 악기가 사용되었고 그 뒤로는 쓰이지 않았다. 현재 국립국악원에 보관되어 있는 와공후는 1937년 북경에서 사들인 것으로 연주법도 전하지 않는다. 참고) 공후.
- 외양간굿 : 마굿간에서 치는 고사굿. 경기도에서는 '매었네 매었네 금송아지 매었네', 경상도에서는 '신농임 본을 받아, 대오임 본을 받아 연년 농사 잘짓기를 소원 성취 비나이다'하고 고사반을 부른다.
- 용고 : 북통 양면에 고리를 박고 끈을 단 후 그것을 어깨에 메고 두손에 채를 치며 연주한다. 능행도에 보이는 대취타 등에 편성되어 있다.
- 용기 : 용을 그린 기를 용기 또는 용당기, 용둣기라 부른다. 두레패의 대기, 동제 굿패의 대기에 용기가 쓰이며 군기에도 용기가 있다.
- 용마놀이 :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남원 지방에서는 '용마놀이'라는 민속 놀이한마당이 신명나게 펼쳐진다. 용마놀이는 악귀를 쫓아 재앙을 막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는 뜻에서 행해지는 놀이이다. 남원 사람들이 사는 곳에 따라 남-북으로 편을 가르고 남쪽은 '황룡',북쪽은 '청룡'으로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얼굴에 탈을 쓴 장정들이 공격부대를 만들어 함성을 지르면서 상대편 용마에 덤벼들어 힘을 겨룬다. 이 힘겨루기에서 남쪽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북쪽이 이기면 흉년이 드는걸로 여겼다고 한다. 용마놀이는 남북의 유지들이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섣달 그믐까지 한 달 동안 준비 작업을 마친 다음,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동안 연습을 한 후 정월 대보름날 승부를 겨룬다.
- 용솟음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우고 발짓, 고개짓으로 부포를 놀려 연봉놀이처럼 부포를 폈다 오무렸다 하는데, 이 부포를 힘있게 늘였다 당겼다 해 용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모습과 같이 하는 재주.
- 용트림 : '之(지)'자로 걸어가면서 춤추는 것. 호남농악에서 쓰이는 말.
- 원각사 : ① 절 이름. 처음에는 대전과 동서쪽으로 신당뿐이었던 것을 대전의 서쪽 신당에 관습도감(慣習都監), 동쪽 신당에 예장도감(禮葬都監), 북쪽으로 중학(中學) 유생들의 집회장을 두었으나, 1464년 이를 전부 철거한 뒤 다시 대가람(大伽籃)을 창건하고 절 이름을 원각이라 함. 이 절의 전신은 원래 고려시대 때부터 있어온 흥복사(興福寺)로서 조선초기에는 조계종 본사로 지정되었으나 1504년에는 원각사를 폐하고 장악원(掌樂院)을 둔 적이 있고, 연산군.중종.명종을 거치는 동안 사고와 화재 등 기타 이유로 차츰 그 건물이 없어졌다. 현재 전하는 원각사의 탑은 1467년에 완성되었고, 3층의 기단 위에 10층의 탑신을 세운 대리석의 비석에는 '대원각사지비(大圓覺寺之碑)'라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은 김수온이 짓고, 글씨는 성임이 썼으며, '비음기(碑陰記)'는 서거정이 짓고, 글씨는 정란종이 쓴 것임. 현재 파고다공원 앞에 있는 비각은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곳이고, 1902년 최초로 설치된 시위연대국악대가 시민을 위한 야외공연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② 원형극장 협률사의 옛 자리에 들어섰던 관인구락부 자리에 1908년 7월 세워짐. 이인직 창설. 이인직의 신연극 상연을 위한 경비조달을 목적으로 판소리를 무대화한 창극을 무대에 올림. 판소리 명창 김창환.송만갑.박기홍.김정열.이동백 등이 중심이 되어 이화중선.김초향.신금홍.박녹주 등 그외 여러 사람이 활약했다. 우리나라 각종 연예가 여기서 공연되었는데, 주요 종목으로 충향가.심청가.흥부가.화룡도.수궁가 같은 판소리 다섯마당 배역을 나누고 무대를 갖추어 창극형태로 공연하였다. 원각사는 1909년 11월 폐쇄되었다.
- 우질굿 : 호남 우도풍물굿가락. 오채질굿에 이어서 잽이들이 오른쪽으로 돌며 치는 가락에 붙여진 이름. 오채질굿.좌질굿과 마찬가지로 2분박과 3분박이 함께하는 혼합박자이다.
- 운리 : 고정음률을 가진 금부(金部)의 타악기로 운오, 구운라라고도 한다. 놋쇠로 만든 둥근 접시 모양인 열개의 징을 열칸의 틀에 매달고 작은 나무망치를 쳐서 연주한다. {악학궤범}에는 보이지 않고 조선왕조 말엽에 그려진 평안감사 도임환영도(到任歡迎圖)에 운라가 취타에 편성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지금 국립국악원에 있는 운라는 1937년 중국에서 사들인 것이고 최근에는 이 악기를 많이 제작하여 여러 곳에 보급하고 있다.
- 웃다리 : 사당패들은 전국 풍물굿의 판도를 웃다리와 아랫다리로 구분했는데, 경기.충청일대를 웃다리로, 그 이남인 호남 좌.우도 영남 등지를 아랫다리로 불렀다. 웃다리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고 서울로 통하는 길목이라서 전국의 풍물패들이 이곳을 지나다니게 되는 지역적 특성으로 다양한 풍물가락을 접할 수 있는 곳이고, 또한 뛰어난 예능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 웃다리풍물 : 경기.충정일대의 풍물굿을 사물놀이용으로 재배열해서 다시 짠 것. 웃다리풍물은 쇳가락이 발달하였고, 가락이 오밀조밀하고 무속적 가락이 많이 배여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웃다리풍물의 장단은 쩍쩍이가락, 허튼가락, 길군악7채, 6채, 자진가락, 짝드름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갈채를 받는 것은 짝드름이라 할 수 있겠는데, 본디 짝드름은 호남좌도풍물굿에서 유래했다. 그것이 웃다리풍물의 끝에 배치해 오늘날은 탄성을 자아내게끔 하는 백미가 되었다. 숨가쁘게 몰아가는 장고와 북의 소리를 바탕으로 암쇠와 숫쇠가 가락을 나누어 치는 것이 짝드름이다.
- 월금 : 공명통이 달처럼 둥글기 때문에 월금이라 하며 또한 완함 진비파 진한자라고도 불리운다. 고구려 삼실총의 벽화, 악학궤범 일본 정창원에 보이는 월금은 모두 4현이고 무용총의 것은 5현이다. 중국에서는 목이 짧은 것을 월금, 목이 긴 것을 완함이라고 하였다. 원래는 당악기였으나 악학궤범이 이르러 향악에만 사용되었으며 연주방법과 제작법은 당비파와 같다고 한다. 현재는 악기만 전해진다.
- 윗놀음 : 말뜻 그대로는 상체(上體)놀음이나, 실제로는 꽹과리나 소고잽이들이 하는 고갯짓(상모놀이)이다.
- 을(乙)자진 : 풍물굿에서 진을 짤때 풍물패의 대형이 한문 '乙'의 모양으로 진행된다 하여 붙여진 진법의 이름이다. 불 빛 앞에서 이 대형을 정면으로 보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듯한 모양이 된다.
- 음양성 : 음양의 소리.
- 응고 : 마침을 조화시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응비라고도 한다. 건고, 삭고와 함께 전정헌가(殿庭軒架)에 편성되었다. 응고는 삭고와 거의 같으나 틀 위에 달 모양을 그리고 붉은 색을 칠하는 점이 다르다. 먼저 삭고를 한번 친 다음 응고를 한번 치고 고축삼성(鼓祝三聲)이 있은 후 합주를 시작한다.
- 이슬털이 : 산치기로 부포를 세우고, 다시 제쳐서 풀잎이 이슬을 털어내는 시늉을 내는 재주.
- 일광놀이 : 호남 북부 및 경기지역과 영남의 오광대놀이 같이 탈놀이가 없는 전북지방에서 탈춤의 관객이 없기 때문에 막간을 이용하여 탈없이 재담으로 꾸며대는 연극이 일광놀이이다. 상쇠.대포수.설장고가 약식 도둑잽이굿으로 엮는데 정읍의 '떼쇠'(이봉훈)라는 대포수가 지었다고 한다. 내용은 풍물굿이 끝나 땅에 놓은 꽹과리를 숨긴 대포수를 수상히 여겨서 쇠채로 대포수의 배를 때려 '쾅쾅' 소리가 나게 하여 대포수가 도망치는 줄거리이다. 풍물굿을 오방진굿 대형으로 치면 또아리 대형의 사이에 숨고 도둑(대포수)을 찾아내는 놀이이다.
- 일사(외사·외상모·외상모놀음) : 부포상모·채상모·상모를 한 방향으로 돌리는 상모놀음. 상모놀이를 배울 때 먼저 배우는 기초적인 동작이다.
- 일진(一進)·이진(二進)·삼진(三進) : 완도(莞島)농악에서 쓰이는 말로, 陣을 싼다는 뜻이다.
- 입동(入洞) : 걸립패가 마을로 들어간다는 뜻. 걸립패가 한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마을 어귀에서 정돈한 뒤 입동의 신호로 나발을 세 번 분다. 들어가려는 마을에 실력을 선보이기 위해 들당산굿을 치거나, 영기를 교차하여 세우고 그 앞에 3열로 서거나 앉아서 문굿을 치며 마을의 대표와 교섭한다. 이때 그 마을에서 빗자루를 주면 그만두라는 뜻이고 갈퀴를 주면 들어오라는 뜻이다. 문굿.들당산굿 후에 입동하여 마을 당산에서 당산굿을 치고 지신밟기-판굿-날당산굿 등을 친다.
- 입장단 : 일명 구음. 풍물을 배울때 악기 없이 입으로 장단을 배우는 방법. 입장단은 기본가락의 장단에 맞추어 의식개발을 위한 경구나 구호용으로 개발되어 사용되었으며 상투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말이나 격언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예) 삼채 : 땅도 땅도 내땅이다 // 조선 땅도 내땅이다
● 도움받는 자료
○ 뉴욕풍물패 한누리 풍물사전, 1999
○ 충남대 농과대 풍물패 '아리랑' 풍물용어사전
○ <풍물굿에서 사물놀이까지>, 김헌선, 귀인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