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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용학스님
매화꽃 흐드러진 4월에
선원의 큰스님방에는 이미 여러 분의 스님들께서 가득히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큰스님은 ‘통도사의 중진스님이 이렇게 오시니 모양이 좋다’라고도 하시고 ‘전국의 선방에서 다 강의하신 강사스님’이라고도 인사를 오시는 스님을 소개하셨다.
‘말은 안했지만 모두 다 한 칼씩을 하는 스님들이 앉아계신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느 비구니 스님에게 “내가 보기에 스님은 바라춤을 아주 잘 출 것 같은데? 언제 한 번 보여줘요.” 하고 부탁하신 다음에였다.
구참이신 스님이 새로 오신 스님들께 ‘비구니 스님들이 많이 오신다’는 이야기와 ‘화엄경 부터는 빠지지 않고 오시는 분이 더 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다른 스님께서 ‘그야말로 세주묘엄’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근래 한국 불교사에서 화엄경을 한자도 안 빼놓고 강의 하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큰스님께서 덧붙이셨다.
진해에서 벚꽃이 유명한 절에서 오신 스님에게 큰스님은 벚꽃소식을 물으셨다. 아직 절정은 아니고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새로 오신 두 분 스님은 한참을 담소 나누시고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공부에 참여하기로 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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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연꽃사진을 가져오신 스님이 혼자 오셔서 인사를 하셨다.
“예. 여기 우리 재사스님, 최고의 재주를 가진 스님” 하고, 대중스님 중에 제일 재주가 많으신 스님이라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진은 눈에 보이니까 조금 알지만 눈에 안보이는 재능을 너무너무 가졌어.”
“지난 시간에 그거 하면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정도에 너무 멀리 벗어나면 안 맞다.”
“예 스님” 스님이 합장을 하시고 문득 큰스님께 간곡히 말씀하셨다.
“저는 스님께서 저희 절에 법회 때 오셨는데 요새 이야기하는 프로필, 약력을 제가 다 감히 소개를 못했습니다.”
“내가 스님 재주를 자랑 못하는 것과 같애. 하하 약력 그거 시명약력이지.”
큰스님께서 얼른 말을 자르셨다. 두 분이 마주보고 껄껄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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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상강례가 있기 전, 문수경전연구회 임원스님께서 대중스님들께, 새로 나온 시디를 소개하셨다. 지난 시간까지 큰스님이 강의하신 세주묘엄품을 담은 시디인데 3장이 케이스 하나로 묶였다.
“어때 마이크 소리 좋지? 여기 스님들이 해줬어.”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계시다가 안내가 끝나자 큰스님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새로 마름한 팔각등이 걸리고, 새 음향시설을 갖추고, 새롭게 시작되는 여래현상품을 기다리는 선원 안에는 신선함이 가득했다. 한 줄기 바람만 불어온다면 탁 탁 탁탁 매화꽃처럼 꽃들이 피어날 것만 같았다. 팽팽하고 기분좋은 설레임이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유인물>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 7 (제14강, 11년 4월 4일)
唐 清涼山 大華嚴寺沙門 澄觀(淸涼國師)撰
제10門, 명제를 간략하게 해석하다[略釋名題]
1, 경과 품의 제목을 표하다[雙標二目]
題稱大方廣佛華嚴經者는 即無盡修多羅之總名이며 世主妙嚴品第一者는 即眾篇義類之別目이로다
제목을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한 것은 다함이 없는 경전의 총명이며, 세주묘엄품 제1이란 곧 여러 편으로 의미를 나눈 다른 이름이다.
2, 경의 제목과 품의 제목을 해석하다[雙釋二目]
大以曠兼無際요 方以正法自持요 廣則稱體而周요 佛謂覺斯玄妙요 華喻功德萬行이요 嚴謂飾法成人이요 經乃注無竭之涌泉이로다
대는 드넓고 끝없음이요, 방은 정법을 스스로 가짐이요, 광은 체에 합하여 두루함이요, 불은 현묘함을 깨달음이요, 화는 공덕만행을 비유함이요, 엄은 법을 꾸며 사람 이룸을 말함이요, 경은 다함이 없이 솟아나는 샘물을 댐이다.
貫玄凝之妙義하고 攝無邊之海會하며 作終古之常規하니 佛及諸王을 並稱世主요 法門依正을 俱曰妙嚴이라 分義類以彰品名하야 冠群篇而稱第一이라
깊고 깊은 미묘한 뜻을 꿰뚫고, 가없이 드넓은 회중들을 포섭하며, 아주 먼 옛날의 항상한 법규를 지으니, 부처님과 여러 제왕을 아울러 세상의 주인이라 일컫고, 법문과 의보와 정보를 함께 미묘한 장엄이라 한다. 뜻의 종류를 나누어 품의 이름을 드러내어 여러 편의 첫머리에 두어 제일이라 일컫는다.
3, 경과 품의 제목을 결론짓다[雙結二目]
斯經이 有三十九品하니 此品이 建初라 故云 大方廣佛華嚴經 世主妙嚴品第一이라하니라
이 경이 39품이 있으니 이품이 처음에 있다. 그러므로 대방광불화엄경 세주묘엄품 제일이라 한다.
참으로 날씨가 화창한 전형적인 봄날이다. 산하대지에 만물이 소생하고 곳곳에 매화꽃 벚꽃이 활짝 피어서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이런 정경을 보니 새삼스럽게 화엄경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아름다운 보살행으로 우리들의 삶에 수놓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엄(華嚴) 꽃으로 장엄하다, 우리들 삶의 꽃은 아름다운 행위, 보살행이다. 보살행으로 인간 세상의 모든 삶을 아름답게 꾸며갈 때 화엄이 아니겠는가,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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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왕복서(往復序) 일곱 번째, 마지막 유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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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문(門) 약석명제(略釋名題) :명제를 간략하게 해석하다.
1, 쌍표이목 (雙標二目) :경과 품의 제목을 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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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칭대방광불화엄경자(題稱大方廣佛華嚴經者)는: 제목으로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말한 것은
즉무진수다라지총명(卽無盡修多羅之總名)이며 : 삼장을 포함한 수많은 경전들, 무진수다라를 한마디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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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불교 경전을 팔만대장경이라고 한다. 이것을
분류하여 9부나 12부로 나누는데 그 속에 수다라(修多羅)가 들어 있다. 경이라고 번역하는 수다라의 정확한 번역은 계경(契經)이다. 계합할 계(契)자를 쓰는데 계리계기(契理契機)라 하여 이치에 계합하는 것이고 중생의 근기에 계합하는 것이다.
불교 경전에는 물론 진리에 안 맞는 방편설이 많다. 그러나 궁극으로는 이치에 맞아야 한다. 아무리 중생들을 구제하는 방편이 뛰어나도 진리에 안 맞으면 곤란하다. 또 아무리 우수한 진리라 하더라도 중생의 근기에 안 맞으면 쓸모가 없다.
수다라(修多羅)는 이치에도 맞고 중생을 구제하는 근기에도 맞는 학설이고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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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전은 경(經) 율(律) 론(論) 3장(三藏)이 기본이 되고, 뒤에 또 선장(禪藏)이라고 하는 것이 첨가된다. 그래서 삼장 대신 4장(四藏)이라는 말을 써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선장은 엄격히 따지면 삼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는 선불교 전적들이 다른 어떤 분야의 불교 책보다 훨씬 더 많다. 특히 한국 불교는 선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선장을 소홀히 생각할 수가 없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다 함이 없는 수다라가 무진수다라(無盡修多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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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하는 이 화엄경은 경문이고 원문이다. 청량스님께서는 그 원문을 가지고 소(疏)라고 하는 이름으로 해석을 했는데 이것이 너무 간략하므로 다시 해석을 붙인 것이 초(抄)이다.
청량스님의 소초(疏抄)를 가지고 지금 저처럼 나름대로 해석을 붙이게 되면 그 또한 소(疏)가 되고 초(抄)가 되고 논(論)이 된다. 그러한 것이 끝없이 펼쳐나간다. 이렇게 불교는 가면 갈수록 불어나고 그 가르침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첨가가 된다. 누가 경전을 해석하거나 논문을 써도 전부 불교의 전적으로 포함한다. 경, 율, 논 삼장의 역사가 그랬고, 선장의 역사가 그랬다. 그러므로 수다라는 무진(無盡)이다.
기독교는 이와 반대다. 기독교 역시 초기에는 경전이 많았지만 기준을 정해서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 깎아내고 깎아내어 배제하였다.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이 지금의 신구약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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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스님은 화엄경이야말로 모든 불교전적의 총명이라고 하였다. 밀교 경전, 현교 경전, 선불교 저술, 그 어떤 불교의 가르침도 단 하나의 경전으로 이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바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라고 하였다.
천태지자스님 같은 이들은 화엄경 공부도 많이 했지만 법화경을 우선으로 하는 스님이다. 그런 분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좀 섭섭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듯이 ‘화엄경을 만나서 내가 죽을 곳을 얻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 아닌가’ 라고 한 청량스님의 안목이다.
감히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 반기를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각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원각경이 제일인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고, 능엄경 좋아하는 사람은 ‘능엄경이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청량스님의 안목으로는 ‘화엄경이야말로 전체 경전의 대표 이름이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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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묘엄품제1자(世主妙嚴品第一者)는 :세주묘엄품 제1이라고 하는 것을
즉중편의류지별목(卽衆篇義類之別目)이로다: 약찬게에도 나와 있듯이 화엄경은 39품으로 나눈다.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39편으로 나누어서 세주묘엄품, 여래현상품, 보현삼매품, 화장세계품, 세계성취품 등등 낱낱이 다른 제목을 붙이게 되는데 세주묘엄품은 그중에 하나라는 뜻이다.
2, 쌍석이목(雙釋二目) : 경의 제목과 품의 제목을 해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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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고 할 때의 경의 제목과 품의 제목을 해설한 것이다. 화엄경 첫 시간에도 간략히 말씀드린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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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광겸무제(大以曠兼無際)요 : 대(大)는 무한히 큰 것을 말한다. 화엄경은 널리 두루두루 전체를 다 겸했는데 제한이 없고 끝이 없고 한계가 없이 겸했다. 한계 없이 넓고 넓은 것이 대방광불화엄경의 대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경허스님은 ‘大라! 대들보도 大요, 댓돌도 大요, 대가사도 大요, 세숫대야도 大요, 담뱃대도 大니라!’라고 하였다. 처음 제가 경허스님이 화엄경 제목을 해석한 것을 만나고는 ‘이런 해석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경허스님 아니고는 이런 해석을 할 수가 없다. 아마 청량스님도 이렇게는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하고 놀랐고,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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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정법자지(方以正法自持)라 : 방(方)은 정법을 스스로 가진 것, 정법을 다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아주 모범일 때 방정(方正)하다고 한다. 방은 ‘아주 정확하다. 절도 있다. 흐트러짐이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신을 정리한다든지 방석을 정리하는 것도 절도 있게 정리를 잘 해 놓는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 할 때의 방자 안에 세상의 진리, 참되고 바른 이치를 다 담았다.
경허스님은 ‘方이라! 큰방도 方이요, 지대방도 方이요, 질방도 方이요, 동서남북 사방도 方이니라.’라고 하면서 대방광불화엄경의 방만 방이 아니라 방자가 붙은 것은 다 방이라고 하였다. 화엄경의 깊고 넓은 뜻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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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즉칭체이주(廣卽稱體而周)라 : 광(廣)은 진리의 본체에 칭합해서 두루한 것이다. 진리의 본체라고 하는 것은 있지 아니한 곳이 없기 때문에 두루하다. 모든 곳에 다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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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위각사현묘(佛謂覺斯玄妙)라 : 불(佛)은 아주 깊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띄워 읽는데 이것은 4.3조로 읽는 한국 사람들의 언어습관에 의한 것이다. 정확하게 읽으려면 ‘대방광/불화엄경’으로 읽어야 한다. 이 원칙을 지켜서 꼭 ‘대방광/ 불화엄경’이라고 읽는 스님이 있다. 불자들은 이러한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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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유공덕만행(華喩功德萬行)이다 : 불교에서 꽃[華]이라고 하면 식물로서의 꽃이 아니라 공덕만행을 비유한 것이다. 아름다운 몸짓, 아름다운 말씨, 아름다운 마음씨, 신구의(身口意) 3업(三業)을 통해서 꽃처럼 아름다운 행위를 할 때 그것이 진정한 불교의 꽃이다.
그러한 행위로써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옆 사람이 좋아하고 이웃 나라가 좋아한다. 척박한 땅에 산다 하더라도 그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이다.
그것이 공덕만행이다. 공덕은 그저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남이 잘 되도록 하는 것,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무조건 남을 배려하는 일, 남을 중심으로 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에 세상 물질로 비유하자면 꽃이다. 꽃으로 장엄 해놓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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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위식법성인(嚴謂飾法成人)이라 : 엄(嚴)이라고 하는 것은 법을 장식하여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식(飾)이라고 하는 말도 엄(嚴)이나 다를 바 없다. 꾸미고 장식한다는 뜻이다.
수많은 성인이 나와서 그렇게 가르쳤건만 지금도 이 세상은 삭막하고 험하기 이를 데 없다. 뉴스에는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잘못하는 일들만 쏟아져 나온다. 만일 이 세상에 성인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았을지 모른다.
가르침을 통해서 사람을 만들어 간다고 하는 식법성인(飾法成人)이라는 말은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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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주무갈지용천(經乃注無竭之涌泉)이라 : 경(經)이라고 하는 것은 다 함이 없는, 끝이 없는 샘물을 대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가 강원에서 경학을 공부하는데 경이라고 하는 글자 속에는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과 선불교 전적을 포함하여 불교의 모든 전적들이 다 포함된다. 그래서 경을 한마디로 불교의 고전이라고 한다.
우리가 불교 안에서 산다면 그 기본사고의 틀도 경에서 나와야 된다. 선배 스님들로부터 구두로써 불교를 배웠다고 해도 그 근본은 경이다. 건물을 하나 세워도 그렇다. 속인들이 지어놓은 절들은 스님들이 지어 놓은 절과 다르다. 스님들의 근본 사고가 이미 경이라고 하는 과거의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훈습이 된 것이다.
여러 스님들이 일선에서 포교를 하시든지 법문을 하시든지 간단하게 일대일로 신도님들을 만난다든지, 관광객에게 전각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그 근거는 결국 경에서 나온다. 경이 기본이 되고 근거가 되어 이렇게 저렇게 활용되는 것이다. 설법이나 강의, 연구, 미술, 조각 등등 불교 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근거와 기본이 바로 불교의 고전들이다. 그래서 이 기본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어디에 가서 교수를 하든 포교를 하든 설법을 하든 주지를 살든 항상 그 밑천이 딸린다. 마치 한 1년치 세금을 못낸 장사꾼 같은 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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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보면 경은 무갈지용천이라고 했다. 아무리 퍼내고 퍼내도 다함이 없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샘과 같은 것이 경이다. 이것을 우리가 중요시 여기고 평생 늘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경이 기본이 되고 바탕이 되어서 써도 써도 다함이 없다. 불자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근거가 모두 경을 통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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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응지묘의(貫玄凝之妙義)하고 : 아주 깊고 깊은 미묘한 뜻을 꿰뚫고.
화엄경이 너무 깊고 깊은 의미라서 우리가 제대로 이해를 못한다. 이해를 못하다 보니 설명 역시 다 못한다. 그래서 이 화엄경 강의에서도 아쉬움과 부족함이 있다. 그러나 화엄경 자체는 미묘한 뜻을 다 꿰뚫고 있다.
섭무변지해회(攝無邊之海會)하며 : 끝없는 대중의 모임을 다 포섭하고 있다.
회해라고 하는 것은 대중의 모임이고 법회이다. 세주묘엄품에서 보았듯이 화엄경은 의미도 깊지만 그 등장하는 인물들, 세주 세간 주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야말로 무변이다.
작종고지상규(作終古之常規)하니: 아주 먼 옛부터 내려오는 떳떳한 규칙이며 항상하는 법규이다.
화엄경은 우리가 의지해야 할 법규 역할을 하고 있다.
불급제왕(佛及諸王)을 : 그동안 세주묘엄품에 등장했던 부처님과 많고 많은 신장들과 왕은 얼마나 많은가.
병칭세주(並稱世主)요: 이런 이들을 모두 합해서 세상주인이라고 한다.
법문의정(法門依正)을 : 법문과 의보(依報)와 정보(正報)가
구왈묘엄(俱曰妙嚴)이라: 화엄경에는 다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 오히려 너무 많고 너무 아름답게 갖추어져 있지 않는가 싶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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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인 의보(依報 환경세계)와 우리들 자신인 정보(正報 우리들의 심신)와 부처님, 부처님의 세계, 부처님의 법문 이런 모든 것이 이 화엄경에는 다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다 무르녹아 있으니 함께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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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의류이창품명(分義類以彰品名)하야 : 뜻의 종류를 나누어서 품의 이름을 드러냈다. 세주묘엄품, 여래현상품, 보현삼매품, 등등 여러 품의 제목들이 그런 것을 뜻하고 있다.
관군편이칭제일(冠群篇而稱第一)이라 :그 여러 품들 중에서 제일 위에 두었기 때문에 제일이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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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쌍결이목(雙結二目) : 경과 품의 제목을 결론짓다
사경(斯經)이 유삼십구품(有三十九品)하니: 이 경이 39품이 있다.
차품(此品)이 건초(建初)라 :세주묘엄품이 앞에 있다.
고운(故云)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그러므로 대방광불화엄경
세주묘엄품제일(世主妙嚴品第一)이라하니라 :세주묘엄품 제1 이렇게 되어 있다.
왕복서라고 하는 이 화엄경의 서문이 끝나고 바로 들어가는 구절이 ‘대방광불 화엄경 세주묘엄품 제1’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 한문방식으로 쓴 것이고 요즘으로 치면 ‘대방광불화엄경 제1 세주묘엄품’ 이라고 해야 맞고,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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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왕복서를 그야말로 대충 수박 겉핥기식으로 살펴보았다. 제가 혼자서 읽을 때는 참 깊고 오묘한 맛을 느끼는데 설명하려니 해놓고도 ‘영 이게 아닌데’하고 부족함을 느낀다.
‘왕복서 서문 속에 화엄경의 내용이 다 포함이 되어 있으니 강의 전에 한 번씩 읽자’고 스님 한 분이 좋은 제안을 하셔서 우리가 늘 강의 전에 왕복서를 읽는다.
오늘도 읽어보니 새삼 맛이 나고 좋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六
[正宗分]
如來現相品 第二
一, 雲集衆의 請法
1, 疑念請法
(1) 德用圓滿
爾時에 諸菩薩과 及一切世間主가 作是思惟하사대 云何是諸佛地며 云何是諸佛境界며 云何是諸佛加持며 云何是諸佛所行이며 云何是諸佛力이며 云何是諸佛無所畏며 云何是諸佛三昧며 云何是諸佛神通이며 云何是諸佛自在며 云何是諸佛無能攝取며
그때 모든 보살과 일체 세간의 주인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지위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경계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지(加持)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행이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힘이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이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삼매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신통이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자재(自在)며,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포섭해 취할 수 없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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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분(正宗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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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품 여래현상품부터는 화엄경의 본문에 해당된다.
전통적으로는 경의 본문을 정종분(正宗分)이라고 하는데 풀어서 정진종지(正陳宗旨) 혹은 정설종지(定說宗旨)라고 도 한다. 경의 근본취지인 ‘종지를 바로 편다’‘종지를 바로 설한다’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군더더기 없이 화엄경의 근본 취지에 들어가서 화엄경이 설하고자 하는 중심내용을 이야기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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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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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39품 중에 제2품 여래현상품은 ‘여래가 모습을 보이다’라는 뜻이다. 여래의 모습이라고 하니까 얼핏 부처님의 키나 얼굴 같은 외모를 떠올릴 수가 있다.
그런데 화엄경에 대면 중학생급 밖에 안 되는 금강경에서도 ‘만약육신의 모습으로 또는 설법하는 소리로써 나(여래)라고 이해한다면 그 사람은 사도를 행한 것이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라고 하였다. 형상으로 여래를 보려 한다면 외도가 되고 미신이 된다는 것이다.
또 금강경 제1사구게에는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다[범소유상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 라는 구절도 있다. 하물며 화엄경이겠는가.
‘여래가 모습을 드러내다’ 할 때의 여래의 모습이 어떠할 지가 이제 곧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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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집중(雲集衆)의 청법(請法) :모든 보살과 대중들이 생각으로 법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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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3개월에 걸쳐 화엄경 서론을 보았는데 서론만 해도 다른 경전 몇 권의 분량이었다. 거기에서는 법회에 참여한 수많은 대중을 소개하였다. 구름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운집이라고 한다. 절에서는 ‘대중운집’이라는 말이나 ‘운집목탁’이라는 표현을 쓴다.
구름처럼 모인 수많은 대중들이 이제부터 네 단락에 걸쳐 40가지 질문을 하며 청법을 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치아가 40개이다. 치간방광(齒間放光)이라는 말도 곧 나오는데 ‘부처님의 치아 사이로 광명을 놓았다’는 뜻이다. 이런 것이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화엄경의 구성은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되어서 자로 재어도 0.00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구성이다.
그 40가지 질문을 하나씩 소개하는데 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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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념청법(疑念請法) :궁금해 하는 마음으로 법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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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분인 세주묘엄품은 마치 올림픽의 선수입장과 같았다. 세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온갖 풍악을 잡히고 갖가지 깃발을 들고서 입장하는 것과 같이 세간주들이 한참을 걸려 모여서 모두 다 자기표현들을 한껏 하였다.
이제 다 제자리에 정돈되고 조용하다.
그런데 사람의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뭔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대중들이 모두 생각으로써 부처님께 청법을 한다.
40문으로써 청법을 하는데 대중 중에 누군가가 ‘질문 있습니다’라고 일어나 묻는 것이 아니다.
법회에 모인 대중들 곧 세간주들의 마음에 저절로 우러난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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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용원만(德用圓滿) :덕(德)의 작용이 원만함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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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爾時)에 :그 때에
제보살(諸菩薩)과:모든 보살과
급일체세간주(及一切世間主)가 : 그리고 일체 세간주들이. 앞에서 등장했던 그 많고 많은 세간의 주인들이
작시사유(作是思惟)하사대 : 이러한 사유를 지었다. 생각을 하였다. 법을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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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지(云何是諸佛地)며1 : 무엇이 제불의 지인가.
요즘 같은 봄에 확실히 느낄 수 있듯이 땅은 모든 것을 생성시킨다. 그리고 유지시킨다.
우리가 땅을 밟고 있다. 이 건물도 그렇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도 땅을 차고 올라간다. 땅이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地)자가 맨 앞에 있다.
그런데 이 지(地)라고 하는 것은 땅의 의미도 있지만 근본이나 경지, 지위라는 뜻도 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그래서 이 불지(佛地)라고 하는 낱말 하나만 가지고 설하는 불지경(佛地經)이 있고, 또 그 경전을 부연 설명하는 불지론(佛地論)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뒤에 가면 더 나오게 되지만 좀 더 제대로 알고 싶으면 불지론을 포함한 불지경을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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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경계(云何是諸佛境界)며2: 무엇이 제불의 경계인가. 부처님 경계의 덕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이것은 뒤에 가면 여래출현품이나 보살문명품, 불부사의품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다.
특히 불부사의법품에는 ‘부처님의 경계는 뛰어나고 수승한 것이다’ 라고 해서 열 가지 비교할 수 없는 경계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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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념청법의 40가지 질문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이 앞으로 전개될 방대한 양의 화엄경이라고 봐도 좋다. 그래서 제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질문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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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가지(云何是諸佛加持)며3 : 무엇이 제불의 가지인가. 가지는 부처님의 수승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가피(加被)와 같은 뜻이다. 그 힘이 우리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에 가피라는 표현을 쓰는데, 경전에서는 가지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이것도 불부사의법품과 십지품의 법운지에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입법계품 바로 앞에 있는 이세간품에도 나온다.
전부 이 40문을 근거로 해서 화엄경을 공부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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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소행(云何是諸佛所行)이며4 : 무엇이 제불의 소행인가. 부처님의 행위, 부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도 역시 불부사의법품이나 여래출현품에 자세히 나와 있다.
‘부처님의 소행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결국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부처님의 소행은 걸림이 없는 행인 무애행(無碍行)이다’‘ 대자비로써 중생을 섭수하는 대비섭생(大悲攝生)이다’하는 말이 뒤에 가면 나온다.
대비섭생(大悲攝生)이라는 말은 좋은 표현이다. 부처님에게는 딴 사업이 없다. 부처님이 하시는 일은 그저 큰 자비심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다.
또 부처님이 하시는 일은 큰 지혜로써 인연을 지어가는 것이라고 해서 대지조연(大智造緣) 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역시 좋은 말이다. 큰 지혜로써 인연을 지어가는 것도 결국은 그 취지가 중생제도에 있다.
이런 것들이 여래출현품이라든지 불부사의법품에 자세히 설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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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력(云何是諸佛力)이며5 : 무엇이 부처님의 힘인가. 이것은 지난 시간에 배웠던 십력에 관한 것이다.
부처님이 갖고 있는 열 가지 특별한 힘이 있었다.
불부사의법품에도 ‘부처님의 광대한 힘이 열 가지가 있다’ 라고 하면서 설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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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무소외(云何是諸佛無所畏)며6 : 무소외라는 말이 대승 경전에 잘 나온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이 많다. 내가 여기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이 대중 가운데 어떤 실력자가 있는지, 어떤 안목을 가지고 있는지, 글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불교의 안목도 나 보다 더 높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또 세상경험도 나보다 많은 분이 얼마든지 계실 것이다.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나도 역시 늘 두렵다. 몸이 사려지고 큰 자신이 없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문제를 다 넘어선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외라고 하였다. 두려워하는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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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부처님이 두려운 바가 없다고 하는 무소외가 뭐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인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알고 보니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사실은 항상 두려워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려워 할 줄 아는 것이 사실은 중요한 일이다.
어디에 있든 그렇다. 예를 들어 차를 몰 때도 안전하고 익숙한 길이라 해도 항상 조심하고 관세음보살을 놓치지 말고 불러야 한다.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어떤 자리에 가서 누구를 만나도, 설령 어린 아이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성질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유치원생,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함부로 다루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그것을 깨닫자 ‘아, 그래서 부처님은 어떤 분야 어떤 면에 있어서도 두려움이 없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무소외에 관해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네 가지 두려움이 없다고 하는 사무소외(四無所畏) 라는 표현도 있고, 이세간품에 들어가면 열 가지 두려움 없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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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삼매(云何是諸佛三昧)며7 : 부처님의 삼매, 사자분신삼매, 10종삼매, 해인삼매, 화엄삼매 등등 우리가 얼마나 삼매라는 말을 잘 쓰는가. 선정이라는 말도 잘 쓴다.
이 삼매는 십정품(十定品)이라고 하는 하나의 품을 가지고 있다. 불부사의법품에도 많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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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신통(云何是諸佛神通)이며8 : 십정(十定) 십통(十通) 십인품(十忍品) 이라고 우리가 외우는데 십통이라는 것은 열 가지 신통을 말한다.
여기 나오는 질문들이 앞으로 나올 품품마다 광장설로 대답이 될 것이다. 불신통에 대해서도 십통품 내지 불부사의법품에 자세히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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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자재(云何是諸佛自在)며9 : 부처님은 자유자재하신 분이다. 부처님은 당신 뜻대로 아무 걸림없이 모든 것을 다 성취했다.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해도 장애가 많다. 공부를 해도 장애투성이고, 불사를 해도 장애투성이, 포교를 해도 장애투성이다. 코딱지만한 절을 하나 운영해도 장애투성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하는 것마다 이미 걸림 없이 성취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런 것들도 이세간품, 불부사의법품에서 자세한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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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시제불무능섭취(云何是諸佛無能攝取)며10: 아무도 부처님을 어떻게 할 수 없음이 무능섭취이다. 다른 사람이 부처님을 조복하지 못하고 포섭하지 못하고 취하지 못한다.
어떤 게송에는 무능제복(無能制伏)이라는 말을 썼다. 제복은 섭취와 같은 말이다. 제어할 제(制)자 조복할 복(伏)자를 보면 섭취라는 말의 뜻도 알 수가 있다.
누가 부처님을 제어하고 조복하겠는가. 역사적인 부처님만 하더라도 성난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 와서 꼼짝을 못했다. 그 유명한 앙굴리말라 같은 이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앙굴리말라는 훌륭한 종교인이었다. 그런데 삿된 스승을 만나서 그 스승이 앙굴리말라를 파멸로 이끌기 위해 일부러 오도(誤導)하여 가르쳤다. 이 순수한 종교인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사람을 하나씩 죽여서 손가락을 잘라 염주처럼 목에 걸고 다녔다.
부처님은 그런 사람들까지도 꼼짝 못하게 하였다.
보통 우리가 대승경전에서 알고 있는 부처님에게서 천 미터 만 미터를 다운시켜 보더라도 역사적인 석가모니가 그런 분이었다. 그런 예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누구도 부처님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다. 누가 무너뜨리고 헐뜯으려 해봤자 오히려 그것이 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될 뿐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수승한 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러한데 화엄경에서 표현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경지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도 불부사의법품에서 우리가 또 자세히 만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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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용원만(德用圓滿)이라고 하는 열 가지 질문이 일단 끝이 났다. 내용을 간추리자면 부처님의 결과에 대한 질문이며 그 중에서도 덕의 작용이 원만한 내용들을 열 가지로 요약해서 질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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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_()()()_
부처님의 소행은 걸림이 없는 무애행(無碍行)이다. 대자비로써 중생을 섭수하는 대비섭생(大悲攝生)이다. 大方廣佛華嚴經...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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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화 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_()()()_
헤명화님 넘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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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혜명화님,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大以曠兼無際요 方以正法自持요 廣則稱體而周요 佛謂覺斯玄妙요 華喻功德萬行이요 嚴謂飾法成人이요 經乃注無竭之涌泉이로다
대는 드넓고 끝없음이요, 방은 정법을 스스로 가짐이요, 광은 체에 합하여 두루함이요, 불은 현묘함을 깨달음이요, 화는 공덕만행을 비유함이요, 엄은 법을 꾸며 사람 이룸을 말함이요, 경은 다함이 없이 솟아나는 샘물을 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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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 _()()()_
팽팽하고 기분좋은 설레임.. 화엄경 시간마다 느끼게 되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십니다.
<아무리 퍼내고 퍼내도 다함이 없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샘과 같은 것이 경이다.>
세간의 주인들이 부처님에 대한 40가지의 질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화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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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화 님, 그저 죄송하고 고맙고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우리가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경이 기본이 되고 바탕이 되어서 써도 써도 다함이 없다. 불자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근거가 모두 경을 통해 나와야 한다.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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