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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환(46세, 5단) 씨는 1988년 4월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당시 나날이 반복되는 무료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무언가 돌파구를 찾던 중 검도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부산중앙도장에 문을 두드렸고 당시 지도사범이었던 도재화, 김윤화 사범으로부터 지도를 받게 되었다. 부산중앙도장은 당시 부산시검도회 소속의 경기인들이 훈련하던 전용도장이었는데 선수들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수련생을 모집하게 되었다. 박상환 씨는 1기생으로 검도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서른 살에 시작한 검도수련이었기 때문에 모든 정열을 바쳐 검도수련에 매진하였다. 당시 그의 생활은 학교와 도장사이를 시계추 오가듯 반복하며 검도수련에 푹 빠져 들었다. 또한 부산중앙도장 내의 ‘월검회’라는 사회인들이 주축이 된 동호회에 가입하여 그해 12월 대구에서 처음 개최되었던 제1회 사회인검도대회 단체전 선봉으로 출전하였다. 그는 이제 막 검도의 걸음마를 시작한 겨우 8개월 정도 수련한 상태에서 선봉으로 출전하게 되어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수석사범이었던 도재화 사범에게 자신이 맡은 선봉의 자리를 다른 사람과 바꾸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선봉은 우리 도장의 얼굴입니다.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른 검도를 하는 사람이 맡아야 하지요. 비록 패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수련을 해야 합니다.”라고 도재화 사범은 일축하였다. 그는 첫 출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 큰칼 하나를 선사받았다. 그 이후로도 그는 줄곧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선봉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당시 부산중앙도장에서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두 사범의 검풍은 좀 달랐다. 도재화(현 여명관 관장, 교사 7단) 사범의 칼은 동작이 크고 힘이 넘치는 한 마디로 호쾌한 모습이었고, 김윤화(현 해심관 관장, 교사 7단) 사범의 칼은 아담하면서도 깔끔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두 사범 모두 기본기를 매우 중시하여 1년이 지나도록 경기에서 볼 수 있었던 멋진 기술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당시 7~8명이었던 동기생들 중 성급한 몇 사람은 함께 훈련 중이던 선수들에게서 또는 다른 사범에게서 시합에 유용한 기술들을 배워 검도의 매력을 한껏 즐기고 있었으나 그들 중 현재까지 계속 검도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우직하게 기본기만 계속하였음으로 익히지 못한 다양하고 화려한 기술에 대한 미련이 남았고, 만약 그가 이기는 것에만 욕심을 내어 포인트 위주의 검도를 하였다면 아마 지금은 검도를 그만 두었을지도 모른다. 병마와 싸우다 - 급성백혈병 그 후 박상환 씨는 3단까지 부산에서 수련하다가 양산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의 집에서 지척에 있는 양산중앙도장(유직열 관장 운영)에서 보조사범을 병행하며 수련을 계속하였다. 1996년 4단 승단을 하고 얼마 후 갑자기 병마가 찾아들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와 도장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잠을 뒤척이다가 보니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는데 도무지 지혈이 되지 않아서 병원응급실로 향했다. 지혈이 되지 않아 피를 많이 흘렸음으로 수혈을 받고, 병원에서는 단순 빈혈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불과 4개월 전에 종합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음으로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그 후 빈혈치료를 위해 부산대학병원을 몇 차례 오가는 사이 혈액검사에 대한 결과가 나왔는데 미성숙 백혈구가 검출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성숙 백혈구가 하나라도 발견되면 백혈병을 의심해야 한다. 서울 성심병원에서 재차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결국 급성백혈병이라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백혈병하면 영화 속에서나 가끔 등장하는 갑자기 죽는 병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가 백혈병에 걸렸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매일 운동을 하며 나름대로 모범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살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으며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내가 죽으면 아내와 두 아이는 누가 돌본단 말인가?” 가슴이 미어지고 하늘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백혈병의 증상은 몸속에 일반 세균이 들어오면 그 병균들과 싸울 수 있는 항원 항체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면역체계가 형성되지 않음으로 결국 작은 세균에 감염되어도 회복되지 못하고 빠른 시일 내에 쉽게 죽음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병이다.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대개 3~6개월 내에 사망하게 된다. 그의 병은 거기에다가 급성백혈병이라 더욱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 무렵 감기에 걸려 바로 폐렴으로 이어지며 더욱 속도가 빠르게 그는 죽음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는 이제 병원에서도 더 이상 회생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포기한 상태였는데 어느 날 기적적으로 병세가 호전되어 3개월 만에 위험수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 그가 병마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꾸준히 수련해온 검도로 단련되었던 정신력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게 일단 사지에서 돌아오고 완전한 치료를 위해서는 골수 이식을 해야 했다. 마침 그와 염색체가 비슷한 남동생의 골수(척추 속에 있는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이제부터는 돈이 문제였다. 그 당시 백혈병을 고칠 수 있는 병원은 서울의 성모병원이 유일했고 그곳을 정기적으로 다녀야 하는 문제(치료하는 과정에서 서울에 비행기를 타고 100회 이상을 다녔음), 고가의 항암제, 병실은 무균실이기 때문에 하루 병실료가 30만원 정도였으며, 골수 이식 수술에 필요한 수술비 등 이 모든 것이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집을 팔아 병원비로 쓰고, 주변의 도움도 받았다. 또한 골수 이식수술에는 건강한 사람의 혈소판을 수혈 받아야 하는데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서울 성북구경찰기동대 전경대원 40여명이 자원하여 그 중에서 그의 염색체와 적합한 16명으로부터 1인당 320cc의 피를 수혈 받았다. 이렇듯 백혈병은 병 자체가 남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병이다. 골수 이식 수술은 그 자체가 과학적이고 섬세한 수술이었다. 일반적으로 암에 걸린 환자에게 쓰는 항암제보다 10배나 강한 약을 투여하여 몸속의 면역체를 모두 죽이고 무방비 상태를 만든 후 새로운 골수를 흘려보내 착상을 시키는 어려운 수술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이겨내려면 무엇보다도 환자의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또한 강한 항암제의 투여로 심장에 부담을 많이 느끼게 되므로 심폐능력은 성공과 실패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평소에 검도수련을 했던 그는 심폐능력이 매우 좋아 골수 이식수술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혈액형이 O형에서 AB형으로 바뀌었다. 그후 1년 정도 요양하면서 서서히 회복하게 되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그는 투병기간 동안 백혈병에서 낫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두 가지의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가 검도 5단 승단에 도전하는 것과 두 번째 보이스카웃 지도자로서 교수과정을 이수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1999년 골수이식수술 후 2000년 회복단계를 거치고, 2001년 다시 죽도를 잡고 5단 승단심사를 목표로 자신의 체력을 투병 이전의 상태로 서서히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2002년 5단 승단 심사에서 두 번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2003년 춘계 중앙심사에서 드디어 5단에 승단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 또 하나의 계획이었던 보이스카웃 부교수과정을 밟았다. 보이스카웃 역시 남을 위한 순수봉사 정신이 그 밑바탕이므로 그가 백혈병 투병생활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것을 앞으로의 새로운 삶에서 남들에게 봉사하며 살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긴 실천이었다. 금년 4월이면 그가 백혈병에 걸린 지 만 5년이 된다. 그사이 다시 발병하지 않으면 이제 완치판정을 받게 된다. “검도는 내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라고 그는 말하며 오늘도 수련에 임한다. 나에게 검도란 무엇인가? 현대 의학의 발달로도 백혈병은 자력으로 완치될 수는 없다. 치료 과정과 또 완치까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남의 도움이 없으면 치료는 불가능하다. 나는 내가 무관심했던 보이지 않는 이웃의 소중함을 투병생활을 통해 깨달았다. 검도도 마찬가지다. 검도가 아무리 기능적, 기술적, 정신적인 면에서 좋은 무도이지만 그 깊은 맛은 상대와의 겨룸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상대가 없으면 검도는 즐길 수 없다. 나에게 검도란 무엇인가? 지금도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나는 한창 검도에 빠져있을 때(검력 11년째 4단) 찾아온 급성백혈병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고 말았다. 좋아했던 지리산 연봉의 푸름도, 검도장의 호쾌한 기합소리도, 가까운 친구들과의 밤새 기울이던 술잔도, 맥주집에서의 짙은 담배 연기도, 공중목욕탕의 따뜻한 물 등 일상의 모든 것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을 때 나에게 정말로 의미가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과 무기력,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말 앞으로 내가 평생을 같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지나온 인연들을 하나씩 정리했을 때 검도는 나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검도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검도를 3단계로 나누어 보았다. 첫 번째의 단계는 검도를 좋아하는 단계이다. 이때는 모든 것의 1순위를 검도에 두고 어떻게 하면 검도를 할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틈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검도의 좋은 점을 알리고 자랑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는 검도를 잘하는 단계이다. 검도의 기본기를 잘 익히고 남들로부터 검도를 잘한다는 인정도 받고 스스로도 검도가 적성에 맞다고 인정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는 이른바 검도를 즐기는 단계이다. 하면 할수록 검도의 새로운 멋과 맛이 배이어 나와 상대방과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검도를 통해서 상대를 인정하고 공경하여 사이좋게 화합하는 단계이다. 대개의 경우 위의 순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검도계의 대 선생님들의 이력을 보면 그렇다. 그러면 나의 검도는 내가 정한 단계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아프기 전에는 첫 번째 단계에 있었다. 병마와 투쟁을 통해서 어느 정도 회복되어(물론 이전의 체력의 70% 정도에 불과하지만) 검도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 지금은 시건방진 망상인지 모르나 세 번째 단계에 있다고 본다. 그에 대한 어설픈 변명은 이렇다. 첫 번째 단계는 정서적인 측면이다. 잘은 못하지만 무작정 검도가 좋고 그래서 열심히 하는 감정적인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기능적인 또는 기술적인 측면이다. 이 단계에서는 검도는 잘하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단계이다. 세 번째의 단계는 정신적인 측면이다. 검도를 통해서 상대와 사이좋게 지내는 단계이다. 백혈병은 나에게 두 번째 단계를 거치지 못하게 하고 세 번째 단계로 건너뛰게 하였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도 백혈병은 자력으로 완치될 수는 없다. 치료 과정과 또 완치까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남의 도움이 없으면 치료는 불가능하다. 나는 내가 무관심했던 보이지 않는 이웃의 소중함을 투병생활을 통해 깨달았다. 검도도 마찬가지다. 검도가 아무리 기능적, 기술적, 정신적인 면에서 좋은 무도이지만 그 깊은 맛은 상대와의 겨룸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상대가 없으면 검도는 즐길 수 없다. 이제 검도를 하면서 상대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다. 맞으면 맞아서 좋고, 내가 성공하면 성공해서 좋다. 나이에 비해서 너무 일찍 조로(早老)했다고 남들은 말하지만 검도가 없으면 죽고 못 사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검도는 나만 가지고 보는 작은 비밀의 꽃밭과 같다. 혼자 작은 꽃을 보는 것도 좋고, 잡초도 좋아 보이고, 남들이 보아 칭찬해주면 더욱 기분이 좋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크고 화려한 보기 좋은 꽃을 피워보려는 욕심도 가끔 생긴다. 어째든 검도가 좋고, 검도를 하는 사람이 좋아서 검도를 통해 사이좋게 지내고자 한다. 칼을 맞대고 있는 눈앞의 상대 단 한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밖의 많은 사람과 화합하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는가? 상대와 기세를 겨루고 나아감과 물러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운을 주고받는 검도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도장으로 향한다.
승단(5단) 도전기 _ 검도인생 나의 인생에서 검도는 소중한 부분을 차지했고, 즐거운 추억이 되었기에 검도 인생(?)이란 말을 써도 될 것 같다. 30세에 검도와 인연이 되어 이제 46세가 되었으니 처음에 취미로 시작한 검도가 중간에 그만둘 뻔 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으나 검도가 좋아서 또 함께하는 사람이 좋아서 검도와 함께 한 세월이 16년이 지났다. 취미로 시작한 검도였기에 승단에 연연하지 않았으나 98년 가을 생존율 20%라는 급성백혈병 진단과 고용량 항암치료-골수이식수술이라는 생사의 투병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한 가지 염원을 세웠다. 그래! 이 싸움에서 살아난다면 5단에 도전해보자. 검도 5단이 된다는 것은 이 싸움에서 내가 이겼다는 증거가 되니까! 독한 항암 치료와 골수이식 수술 후 1년간은 부작용과 감염 때문에 꼼짝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된 2001년부터 가끔씩 도장에 나가 모두의 격려와 염려 속에 수련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심한 운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떨어진 체력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이렇게나마 조금씩 다시 검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승단 도전과정 1년의 회복훈련을 거친 후 2002년 춘계중앙심사에 응시하여 점심도 굶고 응시하였으나 연격 실기에서 탈락하였다. 5개월을 다시 준비하여 추계심사에 응시하여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의 연격 실기까지 보았으나 최종 합격에는 탈락하였다. 2003년 춘계심사에 다시 도전하였다. 4월26일 중앙연수원에 도착하여 1박을 하였으나 옆자리 응시자가 심한 가려움에 밤새 긁어대는 소리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거리인 괴산 속리산 국립공원지역내의 각연사 라는 고찰에 들러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심사 경과 1차 심사는 전체적으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승단보다는 탐색과정이 주요 목표였다. 먼저 연격 실기 합격자에 한해 2차 시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연격은 대·강·속·경의 원칙에 입각하여 크고 강하게 하였으나 빠르고 부드럽게 되지는 못하였다. 또 파트너와 호흡이 맞지 않아 후퇴 시 거리감을 살리지 못했다. 1차 연격에서 응시자의 2/3가 탈락하였다. 2차 심사에서는 비교적 만족하게 1차 시험을 통과하여 2차 시험까지 보았으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는 들지 못하였다. 높은 벽을 실감하였다. 3차 심사에는 전북의 이광원 사범과 파트너가 되었다. 소도 2본에서 작은 실수가 있었으나 전체적인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고 무리 없이 진행하였다. 연격에서도 호흡이 잘 맞아 적절한 거리와 타격을 행하여 좋은 결과를 예감하였다. 심사 시 유의점 검도 전공이 아닌 사회인 중년 사범인 경우 5단 승단은 그 문이 상당히 좁다.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는 최소 1년 이상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심사준비 과정에서 습득한 나름의 유의점을 참고로 적어 보았다. 첫째, 심사는 크게 본, 연격과 실기, 본국검법, 학과의 4부문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본과 연격과 실기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 생각되었다. 둘째, 본은 대부분의 응시자들이 잘하고 있었으나 본에 대한 이해(검리)가 부족한 경우가 눈에 많이 띄었다. 순서만 익혀 본의 효과인 거리감을 살리지 못하고 죽은 본을 행하는 경우도 눈에 보였다. 5단인 경우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므로 검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무엇보다 필요하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중년 이상의 사회인 출신의 경우 승단 심사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연격이다. 연격의 요령은 잘 알고 있지만 운동량이 부족하여 평소 버릇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승단 심사에서의 주안점은 빨리 행하는 것보다 정확한 자세로 바르게 행하는 것에 있는 것 같았다. 넷째, 고단자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결과를 참고로 제시한다.
1. 왼손은 신체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2. 타격 시 왼손은 이마 위까지 올리고, 타격 후에는 명치에, 오른팔은 수평을 유지한다. 3. 타격 시 칼끝의 위치는 눈높이까지 내린다. 4. 좌우타격 시 멈추지 않고 칼을 즉시 들어 올려 움직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한다. 5. 좌우머리를 정확하게 타격한다.(죽도를 치지 않도록) 6.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타격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7. 팔이 아닌 허리가 중심이 되는 타격을 한다. 8. 밀어걷기를 정확하게 한다. 9. 몸받음을 정확하게 허리힘으로 행한다.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승단은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두 달 해서는 되지 않고 1년 정도는 신경을 써서 행해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3번에 걸친 심사도전에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고단자 선생님께 지도 점검을 받는 것이 좋다 둘째,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5단 심사는 검도기본을 정확하게 행하는가가 심사 포인트인 것 같았다. 기본은 하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바른 자세의 연구 꾸준한 연격 연습을 행해야 한다. 셋째, 지도자 연수에 자주 참가하여 유의점, 착안점 등 최신 정보습득에 귀기울여야 한다. 넷째, 파트너를 잘 만나는 운도 따라야 한다. 끝으로 승단 준비기간 중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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