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차 백두대간출진 구간은 강원도 평창군과 강릉시 경계인 진고개를 출발하여 노인봉-소황병산-매봉-곤신봉-선자령-대관령으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총 거리는 24.3km(대간 24.3km)이고, 소요시간은 10시간, 참여대원은 18명이었다.
이번 구간은 영동과 영서지방의 경계를 이루며 한강과 연곡천 등 동해안으로 흐르는 군소하천과의 분수령 역할을 하는 대관령-진고개 구간을 탐험하게 된다. 5월10일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다음 주가 스승의 날이 끼어 있어 매년 해오던 대학원 실험실 사은회에 참석하였다. 20여년을 한결같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키우느라 애쓰는 스승님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세월의 무상함은 어쩔 수 없어 교수님도 어느덧 머리에는 하얀 백발이 성성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지내던 선후배들이 모여 간만에 서로의 안부도 묻고 스승님과 사제간의 정이 무르익어 갔지만, 나는 백두대간 총무로서 부득이 1차로 마무리하고 내년에 만남을 기약하고 발길을 돌려 집에 들려서 배낭을 꾸려 부랴부랴 청사로 향했다.
10시에 청사를 출발한 버스는 어둠을 뚫고 강원도를 향해 달렸다. 달리던 버스가 평창휴게소에 들려 배고픈 회원들은 간단하게 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오늘 출발지인 진고개에 1시50분경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모자가 날라갈 지경이었다. 이곳은 아직 통제구간이라 준비 체조도 없이 곧바로 오대산국립공원의 노인봉을 향해 올라서는데 '입산통(제자는 꺼져서)'이라는 붉은 엘이디 불빛이 우리를 반기는 듯 했다.
노인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어제 비가 와서 먼지도 안나는 흙길로 발에 닿는 촉감이 부드러웠다. 달도 안뜨고 별빛 희미한 칠흙같이 어두운 길을 헤드렌턴과 손전등으로 비추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진고개에서 노인봉까지는 3.9km로 지속적으로 고도를 높이며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약간의 돌계단과 나무계단이 연속으로 이어져 등에서는 촉촉하게 땀이 차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마루금을 걸을 때 세차게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감싸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었다.
3시20분경 드디어 오늘의 첫봉우리인 해발 1338m 노인봉에 올랐는데 황병산의 아우격인 봉우리란다. 황병산과 오대산의 중간 지점에 있으므로 청학동 소금강 등산로의 분기점이 되기도 하며, 산 정상의 바위가 멀리서 보면 노인의 하얀 머리와 같아고 하여 노인봉이라 불리우게 되었단다. 노인봉 정상에서 어둠속이지만 카메라 후레쉬를 터트려 단체 인증샷을 찍었다. 밝은 날 노인봉 정상에 오르면 백마봉, 주문진, 소금강, 경포대, 매봉, 삼양목장 풍력발전기, 소황병산, 황병산, 용평리조트 등이 한눈에 펼쳐지는 멋진 조망을 볼 수 있지만 밤이라 다음을 기약하며 소황병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노인봉 꼭대기에서 내려와 바로 밑에 위치해 텅비어 있는 노인봉대피소에 들려 막걸리 한잔씩하며 땀을 식혔다. 잠시 휴식한 후에 소황병산으로 가는데 이곳도 막혀 있어 할 수 없이 담을 넘어 통과하였다. 등산로는 푹신한 흙길로 약간 내리막으로 가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이어졌다. 깜깜하던 동녘하늘에 붉은 기운이 보이더니 4시40분경부터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5시경 멀리 소황병산이 보이는 언덕에 오르니 어스럼 여명과 함께 주변 산하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소황병산은 정상으로 하기에는 어색하게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는 육산이었다. 아직 풀들이 자라지 않아 연초록 빛만 띠고 짧아 자란 풀들이 물결치듯 출렁이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광활한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져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었고 주변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아름다운 초원에서 멋진 해돋이를 기대했지만 해가 구름에 가려져 아쉬웠다.
6시20분경 소황병산 정상에서 대관령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흘러내린 구릉지에 도착하니 눈앞에 살짝 낀 안개속에서 푸른 초원과 풍력발전기인 풍차가 그림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들 환상적인 경치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빳다. 푸른 초지 위를 거닐고 뜀박질하며 마치 영화속 주인공이 된 듯 기쁨이 충만한 모습들이었다.
멀리 동해바다와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휘파람도 불고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여 발걸음도 저절로 옮겨졌다. 7시경 매봉(1173m) 정상에는 조그마한 표지석이 놓여져 있었고, 이곳에서 아침 밥을 먹었다. 새벽부터 산행을 해서 모두들 허기지고 지쳤겠지만 오늘은 다른날보다 코스가 멋져서 그런지 한결 여유로웠다. 각자 싸온 반찬을 꺼내 놓고 둥글게 둘러 앉아 산상의 뷔페로 꿀맛인 아침밥을 먹었다.
드넓은 초원 위에 우뚝 솟은 풍력발전기는 슁슁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은 온몸을 감싸 안아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풍력발전기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줄지어 군데 군데 세워져 있었고, 우리는 임도와 목장길을 따라 신나게 내달렸다. 8시 40분경 동해일출과 동해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명소인 동해전망대에 도착했다. 동해전망대는 드넓은 목초지인 곤신봉과 매봉 중간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본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고, 황병산, 소황병산, 대청봉, 주문진, 경포호, 강릉, 정동진, 선자령, 발왕산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바위에 새겨져 있어서 이들을 조망 할 수 있었다.
9시경 바람의 언덕을 지나고,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촬영 장소를 거쳐 마침내 9시30분 곤신봉(1136m)에 도착했다. 곤신봉은 봉우리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어색하게 그냥 언덕길에 볼록 나온 곳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듯 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과 하얀풍차, 파란하늘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 대한민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명품길로 인정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목장길을 뒤로 하고 잠시 산길을 따라 올라서니 10시 20분경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선자령이 우뚝 솟아 있었다.
선자령은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를 잇는 고개로 높이는 1157m이다. 예전에는 대관산 혹은 보현산이라 불렸고, 보현사에서 보면 마치 떠오르는 달과 같다고 하여 만월산이라고도 불렸단다. 선자령 정상에는 강아지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지만 딱히 내키지는 않아 인증샷만 찍고 종착지인 대관령으로 향했다. 대관령으로 하산길은 그동안 보지 못하던 등산객들이 넘쳐났다. 11시경 이상철수석총무님의 제안으로 하산길에 널부러진 쓰레기를 주워 자연보호 활동을 하여 각자 한 봉다리씩 쓰레기를 담아 배낭에 매달고 내려왔다. 큰일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뿌듯하였고, 모든 산을 찾는 이들이 산에서 각자 가지고 간 쓰레기는 다시 가져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비행접시처럼 생긴 무선표지소를 지나 12시경 마침내 오늘의 종착지인 대관령에 도착했다. 새벽 2시부터 시작해서 꼬박 10시간을 걸었지만 너무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광과 함께 해서인지 아직도 기운이 남아 있었다. 뒷풀이는 버스를 타고 12시30분 대관령 맛집인 황태회관에 도착해서 황태구이와 황태해장국으로 하산주인 막걸리로 오늘의 피로를 날려 버렸다. 뒷풀이 비용은 오늘 오랜만에 출진하신 조용환 전심판원장님께서 내 주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이번 구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풍경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코스인 대관령 목장 길로, 수천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초원와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 하얀 풍차, 가을하늘처럼 높고 푸른 하늘빛과 어울어져 탄성이 절로 나 지루한 줄 모르고 걸은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