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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헴] 이경희
1. 철기네 마당앞 수돗가
화면 밝아지면 얼굴에 비누칠을 한 강노인, 눈이 매운지 눈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윗옷 앞섶은 수건을 둘러 빨래 집게로 고정했다.
철기(E) 와? 눈에 비누 드갔나?
강노인 (아이처럼 찡그린 채 고개를 주억거린다.)
카메라 빠지면, 철기 마당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철기, 치매든 강노인의 얼굴을 씻기고 있는 중이다. 힘이 든지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철기 (답답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세수대야의 새 물로 강노인의 얼굴을 씻기며) 그라이께 내가 가마이 쫌 있으라 안카더나? 와 사람 말을 안 듣노?
강노인 (버럭 소리 지르는) 눈, 따갑다!
철기 알았다. 퍼뜩 씨꺼주께. (고사리 손으로 열심히 얼굴을 씻기는)
강노인 (눈을 그대로 뜬채) 눈, 따갑다!
철기 아, 돌아뿌겠네 진짜...
철기, 환장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위로 마음의 소리 들린다.
철기NA 우리집에는 얼라보다도 몬한 어른이 서이나 된다.
철기 (이내 마음을 달랜다. 아이 어르듯) 누가 할배 니 눈을 따갑거로 했노?
강노인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비누곽의 비누를 가리킨다.) 즈기! 즈기 그랬다!
철기 비누가 그랬나? 내가 확 밟아 직이뿌까?
강노인 (아이처럼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철기 (벌떡 일어서더니 비누를 땅바닥에 부소 발로 짓이기기 시작한다.) 이 나쁜 비누 새끼! 니 와 우리 할배 눈을 따갑거로 하노?
강노인 (아이처럼 좋아라 웃으며 박수까지 친다.)
철기 (강노인을 흘끗 돌아보고 더 열심히 비누 짓이기며) 담부턴 그랄래? 안 그랄래?... 그랄래? 안그랄래?!! 이 나쁜 놈아... (하다가 강노인 돌아보며) 알배야! 비누가 담부터는 절대로 할배 니 눈 따갑거로 안한단다.
강노인 (히죽 웃는다.)
철기 댄나?
강노인 (흡족한 미소) 댔다, 오빠야.
철기 (긴장이 확 풀어지며 깊은 한숨을 푸후 내뱉는다.)
철기NA 첫 번째 얼라는 노망이 걸 리가 손자가 되는 내보고 오빠아 오빠야가는 할배고.
이때, 방안에서 할머니의 목소리 들려온다.
할머니(E) (숨이 넘어갈 듯 힘이 든 목소리) 철기야... 철기야... (기침하며) 철기야...
철기 (한숨을 미처 다 내뱉지도 못하고 방쪽으로 고개 돌려본다.)
2. 할머니방
방 한쪽에 요강 놓여있고, 어두침치마고 퀘퀘한 방.
시커먼 얼굴의 할머니, 죽음이 바로 발치에 온 사람 마냥 눈만 퀭하게 뜨고 누워 있다. 내뱉은 숨이 몹시 가파보인다.
철기, 방안으로 들어선다.
철기 (별대수롭지 않게) 와? 똥 쌌나?
할머니 (힘겹게 호흡하며) ...
철기 (쪼그리고 앉으며 할머니 아랫도리쪽에 고개를 내밀고 큼큼거려 보며) 똥 냄새 안나는데?
할머니 (있는 힘을 다해 말하는) 할매... 아마캐도 안되것다. 철기야.
철기 머가 안되는데?
할머니 할매... 곧 죽을랑 갑다.
철기 (늘 있어왔던 일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다.)
할머니 천지 분간도 몬하는 니한테 짐띠들만 냉기고 가서... (눈물이 그렁해서) ... 우짜노?
철기 (무표정)
할머니 .... 할매가... 죽기전에 니한테 꼭 말해주야 댈끼 있는데...
철기 ....
할머니 먼고 안 물어보나?
철기 .....먼데?
할머니 ....사실은... 사실은... 아이다. 죽어도 말 몬한다, 내는.
철기 (그럴줄 알았다는 식으로 보는)
이때, 밖에서 강노인 오빠야! 오빠야! 오데 있노?하며 애타게 부르는 소리 들린다.
철기 할배가 찾는다. 나가바야 되것다. (하며 일어서는데)
할머니 (O.L) 할매가... 죽기전에 하고 싶은 말이 먼고 안 궁금하나?
철기 먼데?
할머니 ... (잠깐 망설이다가) 안댄다. 말 몬한다. 내는.
철기 (보다가 나가려는데)
할머니 철기야.
철기 (돌아보는)
할머니 진짜 먼고 안 궁금하나?
철기 할매 솔직히 지금 안 죽을끼다 아이가?
할머니 ... (자신없다.) 지금... 죽는다.
철기 죽어바라. 그라모
할머니 (노해서) 저 빌어물 새끼가 할매보고 죽어라카나 지금>!!
철기 (답답하다) 이니이, 그기 아이고...
할머니 (O.L) 아이긴 머가 아이라? ... 그래, 할매, 안죽는다! 개씸해서라도 내가 베루빡에 똥칠할때꺼지 살끼다! 댔나?
철기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 푹 쉬는)
철기NA 두 번째 얼라는 지난 겨울부터 방에만 꼼짝도 안하고 들눕어가 맨날 주는다 준는다 꽁까는 할매고,
3. 경찰서앞
철기, 한쪽에 두부 봉지 놓고 땅바닥에 노트와 책 펴놓고 엎드려서 숙제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 경찰서에서 민, 씨씨거리며 껄렁한 폼으로 나오다가 철기를 발견하고는 이내 표정에 장난스런 웃음이 번진다.
민기, 철기가 있는 쪽으로 살금살금 철기 모르게 걸어오더니 그대로 사정없이 철기에게 똥침을 놓는다.
철기, 윽! 비명소리도 크게 못내고 사색이 되어 휙 민기를 돌아본다.
민기, 푸하하 웃음 터뜨리며 개구쟁이처럼 낄낄거리고 웃는다.
철기, 인상 찌푸리고 그런 민기를 한심하게 본다.
철기NA 세 번째 얼라는 지금 내한테 똥침놓고 좋다꼬 웃고 있는 우리 헴 강민기다.
민기 (킥킥 웃고) 아푸나? 아푸재?
철기 (엉덩이를 문지르며 한심하게 보며 책과 노트를 가방에 넣다가 참 하며 한쪽에 놓인 두부 봉지를 내민다.) 무라.
민기 아, 새끼... 촌시럽거로 먼 두부고? 내가 교도소 갔다 왔나 임마?
철기 교도소나 갱찰서나 똑같은 데 아이가?
민기 (놀랍다는 듯) 니 안죽 교도소 갱찰서 구밸도 몬하나? 야아... 아무리 촌에 학교라꼬 아아들한테 그런것도 제대로 안 갈치주나? ... 헴이 낼 당장 느그 담임 샘 한번 찾아 가까?
철기 (버럭) 퍼뜩 두부나 무라!!]
민기 (지지 않고 버럭) 안 물란다!... 와?!!
철기 ... (답이 없다) 헴! 니 또 죄 없는 사람 패고 그라끼가?
민기 내는 죄 없는 놈은 안 팬다. 딱 팰 놈마 패지!
철기 담번에 또 사람 패몬 교도소 집어넣는다 캣다, 김순갱님이.
민기 집어 넣으라캐라! 겁나나?!! ... (경찰서를 향해) 느그뜰이 암만 낼로 햅박해도 내는 팰 놈은 팬다!! (투사처럼 주먹까지 휘두르며) 닭에 모가를 비틀어도 새백은 온다꼬!! 댄나!!
철기 (대화가 안통한다.) 바지 자꾸나 잠가라.
민기 (머쓱한 표정으로 바지 자크를 잠근다... 그래도 기백은지지 않고) 내는 바지 짜꾸도 잠구고, 팰 놈도 팬다!
철기 (할말이 없다.)
민기 (자크를 잠그로 철기를 스윽 보며) 두부 보이까 아이스께끼 묵고 싶다. (앙큼한 애교)께끼 사도.
철기 ....
4. 가게앞
가게 앞에 아이스크림 냉장고 놓여 있다.
민기, 냉장고를 헤집으며 아이스크림을 이것저것 꺼내고 있다.
철기, 못마땅하게 옆에 서서 민기를 노려본다.
철기 한 개만 골라라! 돈 엄다!
민기 아, 짠돌이 새끼! 이기 돈이 얼매나 댄다꼬... 내가 난중에 열배로 다 갚아준다. 댄나?!!
철기 (삐죽거리며 얄밉게 보고)
민기 .... 나도 니꺼 골라바라.
철기 댔다. 안 묵는다. 내는!!
민기 (픽 웃고) 주라카기만 해바라, 새끼.
가게앞 파라솔 의자에 앉은 민기, 대 여섯 개의 아이스크림을 놓고 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혀로 햟으며 철기를 약 올리고 있다.
철기, 주인아줌마에게 아이스크림 값을 치르고 있다.
철기NA 만약에 내꺼지 안죽 철이 안 들고,
이때, 철기만한 남자아이, 엄마 손을 잡고 오며 아이스크림 사죠!!하며 보채고 찡얼거리며 철기들 앞으로 지나간다.
아이엄마, 알았다, 사주께하며 아이를 달래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으로 간다.
철기, 그 모습을 허허로운 눈길로 본다.
철기NA 점마맨치로 저래 아홉 살 묵은 얼라거치 굴었으몬
철기, 다시 민기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민기, 아이스크림을 가득 입에 물고 철기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는 혀를 쏙 내밀어 약을 올린다.
철기, 그런 민기의 모습을 표정없이 본다.
철기NA 우리집은 우째 됐을꼬?
이때, 오빠야!! 부르는 미숙의 목소리 들린다.
민기와 철기, 동시에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들의 시선에 길 저 앞으로 다방 스쿠터 딸딸거리며 오는 미숙의 모습이 들어온다. 한눈에 천박함이 줄줄 흐른다.
미숙 (민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대며) 오빠야!.... 민기 오빠야!!
민기 (얼른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하... 웬수겉은 가시나... (철기에게 소곤거리는) 철기야, 헴 다섯 개 새고 토낀다! 아이스께끼 챙기가꼬 온나.
미숙, 헤벌레 웃으며 민기앞으로 스쿠터 몰아오는데, 민기, 벌떡 일어나 잽싸게 뛴다는 게 그대로 의자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철기, 한심하게 보고,
민기 앞으로 다가온 미숙, 놀라서 스쿠터 밀쳐놓고 민기를 부축한다.
미숙 옴마야.... 오빠야... 괘안나? 안 아푸나?
민기 (씨씨거리며 미숙의 손을 쳐낸다.) 니 겉으몬 안 아푸것나, 가시나야?
미숙 (움찔하다가) ... 벌써 나왔나? 갱찰서로 오빠야 니 마중가는 길인데 지금...
민기 니가 몬데 낼로 마중 나오노?
미숙 머긴 머꼬? 장차 오빠야 니 마누라 댈 사람이지.
민기 (어이없어) 미친나, 이기?!! 누 맘대로?!!
미숙 하이튼 오빠야 니는 낼로 책임지야댄다.
민기 (어이가 없다) 내가 가시나 낼로 와 책임져야 되는데? ... (억울하다는 듯 버럭) 니, 내하고 잠도 안 잤잖아!!
미숙 잠은 안 자도 키스는 했잖아!!
민기 (버럭) 내가 했나? 니가 덮칫지!!
미숙 하이튼!!
철기 (표정없이 보고 있다.)
민기 키스한거 가꼬 따지모 우리 나라 가시나들 반은 내가 다 데꼬 살아야 댄다.
미숙 (눈에 불꽃이 튄다.) 내 말고 키스한 가시나가 눈데? 대바라.
민기 내가 뭐 한다꼬 니한테 그거를 대노?
미숙 꽁이재?
민기 꽁 아니다.
미숙 꽁 아이모 대바라!
민기 대라카몬 내가 몬 댈 줄 아나? 썬 가라오께 박맹자, 로타리 다방에 미쓰민, 서울에서 만난 갱실이, 부산에서 만난 순영이...
미숙의 눈에 질투의 불꽃이 튀고, 민기, 태연한 표정으로 여자들의 이름을 읊어준다.
철기, 또 시작이다 싶은 한심한 눈길로 본다.
철기NA 사실은 내만 아는 비밀이 한 개 있다.
철기, 기가 막힌 듯 보다가 아이스크림을 챙겨 들고 돌아서서 간다.
철기 뒤로는 여전히 입씨름을 그치지 않는 민기와 미숙의 모습이 보인다.
철기NA 저 뒤에서 똑 아홉 살 묵은 얼라거치 싸우고 있는 저 어른은... 사실은 우리 ,헴이 아이다.
미숙에게 계속 자신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읊어주는 민기위로.
철기NA 우리 아부지다.
철기, 걸음을 멈추고 민기를 한심하게 돌아 본다.
철기NA 우리 할배가 노망들기전에 술 묵꼬 하는 소리 내가 다 들었다.
5. 골목길
철기,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들고 번갈아 쪽쪽 빨며 간다.
철기NA "그라모 민기가 닐로 열여덟살에 낳았단 말이가? 그기 말이 대나?
철기, 갑자기 소변이 마려운 것을 느낀다. 한쪽 손으로 바지를 잡고 엉거주춤 걷다가... 휘청휘청 다리를 꼬며 점점 힘겹게 걷는다.
철기NA 그래 머라칼 사람이 있을 거 겉애서 하는 말인데... (사이) 말이... 댄다.
이때, 누군가의 손이 철기의 머리통을 탁 때린다.
철기, 휙 돌아보면 민기가 히죽거리고 웃으며 서 있다.
민기 니 지금 오줌 싸고 싶재?
철기 .... 어.
민기 널린 기 밴손데 만다꼬 참고 있노? 이리 와 바라 (철기의 손을 꼴고 골목한 쪽으로 가는)
철기 나라... 집에 가서, 화장실 가서 싸몬 댄다.
민기 땅콩만한 새끼가 먼 인생을 그래 골 아프그로 사노?
민기, 철기를 골목 한켠으로 끌고 가더니 누군가의 집 담벼락을 가리킨다.
민기 욧다가 싸라!
철기 (눈이 동그래져서) 실다아!
민기 지나가는 사람도 엄는데 머... 쪽 팔리모 헴도 니랑 같이 싸주께 (하며 바지 벨트를 푼다.)
철기 (기함을 하며) 오줌은 밴소에다 싸고 길바닥에다 싸지 마라 캤다. 우리 샘이!
민기 아, 새끼! 느그 샘 모리거로 싸몬 대지! ... 보자 ... (하며 철기의 바지와 팬티를 훌러덩 벗겨버린다.) 바라! 꼬치에 오줌이 한 그슥 차 있다, 임마!
철기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놀라 아랫도리를 가린다.) 헴!!!
민기 (자크를 내리고 벽을 향해 돌아서 장난을 하며 휘파람까지 오줌을 누기 시작한다.)
철기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오줌을 누기 시작한다. 눈치를 보며)
민기, 철기를 향해 장난스런 웃음을 다시 보내고, 철기,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눈을 질끈 감는다.
철기NA 우리 헴은 벨맹이 학집통포다.
민기, 오줌을 누고 자크를 올리려는데 담벼락집의 대문이 열리며 날카로운 인상의 아주머니가 쓰레기 봉지 들고 나오다가 눈빛이 마주친다.
민기 토끼자!! (하며 철기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다.)
철기 (엉겁결에 바지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울상이 되어 뛰기 시작한다.)
아주머니, 오줌싼 흔적을 보며 이 빌어묵을 놈들! 거 서라!! 하며 따라 뛰어온다.
철기NA 학집 통포란 학교하고 집하고 통네에서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6. 마을길
민기와 철기, 열심히 도망가기 시작한다. (철기는 한손으로 부지런히 바지를 올리고)
철기NA 학집동포가 먼 일을 몬하겠노? 열 여덟살에 알라 세 명도 낳을 수 있다는 사람이 다, 우리 헴믄.
7. 다른 길
보리밭이 양옆으로 펼쳐진 시골길. 민기, 숨을 고르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다.
민기 니, 바지에 오줌쌌재? ... 큭큭큭....
철기, 가픈 숨을 헐떡거리며 울상이 되어 그런 민기를 본다.
철기NA 근데, 이 아이씨(아저씨)는 내가 그런 비밀을 알고 있다카는 걸 모른다.
민기, 얼레리 꼴레리! 처얼기는 바지에다 오줌 쌌대요! 얼레리 꼴레리!하며 놀리며 간다.
철기, 씨씨거리며 민기를 노려 본다.
철기NA 아이모 지가 내 아버지라 카는 거를 옛날에 이자묵었뿟던지...
민기, 철부지 어린애처럼 손동작까지 하며 철기를 약올리고 있다.
8. 민기집 앞/민기집 마당
민기, 철기는 빤스에 오줌쌌대! YO!"하며 제 멋대로 가사를 만들어 랩을 하고, 춤을 추며 온다.
시뻘건 얼굴의 철기, 민기를 찢어져라 노려보며 뒤따라온다.
철기를 놀리며 가던 민기, 뭔가를 발견하고 얼굴에 장난기가 가시며 걸음을 딱 멈춘다. 그동안 민기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수줍음으로 얼굴까지 빨개져 있다.
철기도 민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응시한다.
마당에서 현정이 강노인을 앉혀 놓고 미용 가위로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있다.
민기의 시선에 비친 현정,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모습처럼 고고하다.
민기, 차마 다가서지도 못하고 긴장하고 있는데, 강노인, 먼저 민기를 발견한다.
강노인 (활짝 웃으며) 오빠야!
현정 (그제서야 돌아보고 민기를 발견하고는 금새 수줍은 표정되어 목례한다.)
민기 (수줍은 소년처럼 깍듯하게 목계하고) ... 저희 집에는 우짠 일이세예? (현정과 대화할때는 되도록 서울말처럼 하려 애쓴다.)
철기 (뒤에서 약간 긴장되어 보고)
현정 저희 미용실에서 한 달에 한번씩 동네 어르신들한테 봉사 활동을 하는데... 오늘이 그 날이예요.
민기 ... 정말 이쁜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시네예, 현정씨는.
현정 아우, 왜 그러세요?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다시 강 노인의 머리를 손질한다.)
철기 (민기와 현정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스파크를 감지하며 둘 기분 나쁘게 번갈아 본다.)
현정 ... 며칠동안 안 보이시던데,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민기 (잠깐 당황) 예?
철기NA 사람을 쫌 패가 경찰서에 들갔다 나왔는데요.
민기 예에... (느끼한 목소리로 변조) 바람따라 구름따라 발길 닿는대로 여행 좀 하고 왔심니다.
철기 (경멸하는 표정으로 민기를 보는)
현정 (홀린 듯 보는) ... 너무 멋있게 사시는 거 같애요.
민기 멋있기는요... (씨익 가오 잡으며 웃고) 오늘 혹시... 시간 있으세예? 현정씨?
철기 (흘끗 보는)
9. 현정집 대문앞
철기,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운동화 뒷축을 돌려 땅을 파며 현지를 기다리고 있다. 표정이 어둡다.
이때, 담너머로 현지, 마당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공주처럼 차려입은 현지, 잠깐 멈춰서서 손거울 꺼내 머리도 쓰다듬고, 이쁜 척 미소도 연습해보고, 핀도 다시 찌르고 대문앞으로 나온다.
현지, 뒷모습을 보이고 선 철기앞으로 수줍게 다가온다.
현지 철기야!
철기 ... (생각에 잠겨 미처 소리 듣지 못한)
현지 강 철기!
철기 (그제서야 돌아본다.)
현지 생각하구 있었어?
철기 어.
현지 무슨 생각?
철기 고마... 생각.
현지 (여우처럼 웃으며) 내 생각 했지?
철기 (잠깐 당혹스런 표정 짓는데)
현지 (철기의 팔짱을 끼며) 우리 강에 수제비 뜨러 가자.
철기 강에서 느그 언니하고 우리 헴하고 데이트 하고 있는데?
현지 뭐?! (인상이 일그러지는)
10. 섬진강
민기와 현정, 나룻배를 타고 있다. 민기, 노를 젓고 있고, 현정, 수줍게 웃으며 손을 뻗어 무을 찰방거리며 장난하고 있다.
민기 서울서 사시던 분이 이 촌구석에 와 가꼬... 억수로 답답하지요?
현정 아니예요... 공기두 맑구, 사람들도 다 친절하고.. 이사 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기 ... 근데, 참말로 애인 없어요? 현정씨?
현정 (수줍게 웃고) 없어요... 누가 저 같은 여잘 좋아하겠어요?
민기 현정씨가 우때서요?
현정 얼굴두 별루구... 몸매두 별루구.. 배운 것두 없구, 가진 것두 없구...
민기 하기는 뭐... 그거는 그렇네요.
현정 (흠칫... 약간 기분이 상했다.)
민기 그래도 짚신도 짝이 있다카는데... 내가 현정씨하고 잘 어울리는 남자 한 놈 소개시키 주까요?
현정 (기분이 점점 더 상하는)
민기 글마도 배운 것도 엄꼬 가진 것도 엄는데,.. 현정씨한테 첫 눈에 반해가 안죽도 밤에 잠이 안 온다카는 자석이 있거덩요.
현정 (완전히 기분이 상했다. 야속하게 보다가 눈물까지 글썽해서 고개 돌린다.) 됐어요. 신경쓰지 마세요.
민기 **면 **리에 사는 (자기를 엄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강 민기라꼬 직이는 놈이 하나 있는데.
현정 (흠칫하며 본다.)
민기 (씨익 웃으며) 소개 시키주까요?
현정 (감동 받았다. 눈물이 한방울 툭 흐른다.)
민기 (사랑스럽다는 듯 보며 활짝 웃는다.)
이때, 멀찍이서 이들을 지켜 보는 어떤 시선.
11. 일각 둑방
철기와 민지. 둑방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철기, 굳어서 무표정하게 보고 현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모른다.
현지 (호들갑) 웬일이니? 웬일이니?
철기 (현지를 스윽 보는)
현지 너네 형, 진짜 여자 보는 누 없구나.
철기 잉?
현지 우리 언니 완전히 울트라 캡숑 짱 내숭이거든, 진짜 재수 밥맛인데.
철기 (의아한 표정으로 보는)
현지 너네 형, 이쁜 여자 좋아하지?
철기 응.
현지 성형 미인도 좋아하니?
철기 엉?
현지 우리 언니 성형 미인이다? 서울 살 때 눈두 하구 코두 했어.
철기 (놀라서 눈이 동그래지는)
현지 니네 형이 정말 아깝다.
철기 (저도 모르게 정색하고) 하나도 안 아깝다. 우리헴... 느그 언니가 더 아깝지.
현지 (기분상한) 그게 무슨 뜻이야, 강 철기? 넌 그럼, 저 두 사람이 잘됐음 좋겠어?
철기 .....
현지 (눈물이 그렁해지며) 넌 그럼 우리 언니가 니네 형이랑 결혼이라두 했음 좋겠어?
철기 (당황하는) 니... 우나?
현지 그럼 우린? ... 우린 어떡해?
철기 (당황)
현지 나두 너 좋아한단 말이야, 나두 너랑 결혼하구 싶단 말야.
철기 현지야...
현지 (울음 터뜨리며) ... 넌 내가 별루구나? 내가 별루구나, 넌? 엉엉...
철기 아이다... 니 별로 아이다, 핸지야.
현지 거짓말 마... 난 니가 배용준 오빠보다 더 멋있는데... 용준이 오빠보다 백배는 더 머있는데... 넌 내가 별루구나아... 엉엉..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운다.)
철기, 당혹스럽게 현지를 보다가 민기들이 있는 강쪽을 본다.
12. 섬진강
민기, 현정과 물을 튕기며 장난하고 있다.
13. 일각 둑방
철기, 민기들쪽과 엉엉 소리내어 우는 현지를 곤혹스럽게 번갈아 보고 있다.
이때,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철기 야, 비온다! 최 핸지!
현지 오든지 말든지.. 엉엉엉...
철기 (당혹스럽다. 입고 있던 윗도리를 벗다가 문득 민기들쪽을 보는데... 그만 흡! 숨이 멎을 듯 충격을 받는다.)
14. 섬진강
나룻배에 탄 민기와 현정, 입 맞추고 있다.
15. 일각 둑방
철기, 놀라서 어쩔 줄 모르다가 얼른 현지가 못 보게 가려서며 윗도리를 들어서 현지의 머리가 비에 안 젖게 해준다.
윗도리를 잡고 있는 철기의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16. 민기집 외경(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17. 민기방 (철기와 함께 쓰는)
철기, 상 펴놓고 숙제하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푸후 한숨을 쉬는데,
민기(E)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다꼬 말한 사람이 누고?
철기, 고개를 들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민기의 뒷통수를 본다.
민기, 현정과 채팅을 하고 있다.
민기 (돌아서 철기를 보며) 그 유명한 사람 모르나, 니?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다꼬 한 사람?
철기 (퉁명한) 모린다.
민기 전교에서 일등하는 아가 그것도 모리나? 새끼...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해쌌더만...
(하며 다시 돌아앉아 열심히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 자판을 친다.)
철기 (어이없어 보는데.)
컴퓨터 모니터에 민기가 쓴 글이 올려지고 있다. (아이디: 디카프리오 정도, 현정의 아이디는 캔디정도)
<어떤 유명한 철학자가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갔다고 한 말이 떠오름니다.> (철자법이 엉망이다.)
뒤이어 현정의 글이 올려지고 있다.
<그게 철학자가 한 말이었군요. 난 유행가 가산 줄 알았는데>
민기 (당황하는) 그기 유행가 가산가?
다시 뒤이어 현정의 글이 올려진다. <민기씨는 참 박식하신 거 같애요.>
민기, 당혹스러운 표정 짓다가 다시 글을 쓴다.
<어째든 참 아름다운 밤입니...>라고 쓰는데..
이때, 민기야.. 철기야....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 들린다.
철기 헴아! 할매 부른다!
민기 (여전히 컴퓨터에다 시선을 둔 채) 헴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나?
철기 (버럭) 내도 바쁘다!! 점심때는 내가 할매 똥 치았으니까 은자 헴 니 차례잖아!
민기 (휙 노려보며) ... 니 지금 내한테 성깔 부리나, 임마?
철기 (노려보다가 그대로 숙제하는)
민기 (때릴 듯 손을 쳐들며) 확 고마! 콩만한 기 머 저런기 다 있노?
할머니, 계속 애타게 민기야.. 철기야... 불러댄다.
민기 (밖에다 대고 소리치는) 알았다, 할매! 간다, 지금!!
민기, 자판으로 <잠깜만요>하고 써놓고 일어서서 나가다가 휙 돌아서 철기 머리를 꽁 쥐어박고 나간다.
철기, 외마디 비명 지르며 민기쪽을 노려보다가 다시 숙제를 한다.
숙제를 하던 철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문득 연필을 멈추고 컴퓨터를 본다.
18. 현정방
현정, 컴퓨터앞에 앉아 있다. 홍조띤 얼굴 가득 미소가 절모 번진다.
현정, 낮에 민기와 입맞춤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만히 입술에 손을 대보던 현정, 모니터를 보다가 의아한 표정 짓는다.
모니터에 <디카프리오: 사실은 제가 거짓말 한 것이 있습니다.>라고 뜬다.
19. 민기방
비장한 표정의 철기, 자판을 열심히 두드려 대고 있다.
20. 현정방
현정, 어이없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다. 모니터에 다음과 같은 글이 뜬다.
<디카프리오: 지금까지 전 키스한 여자만 해도 우리나라 여자 반 정도 됩니다.>
21. 할머니방
민기, 물수건으로 할머니를 닦아주고 있다.
철기(E) 대라면 댈 수도 있습니다. 몇 사람만 말하면 축복 다방에 미숙이, 썬 가라오께 박명자등입니다.
22. 민기방
열심히 자판 두드리고 있는 철기, 컴퓨터 화면에 다음과 같은 글이 뜬다.
철기(E) 전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됩니다.
23. 현정방
현정, 하얗게 질려서 모니터 화면을 본다. 뒤이어 다음과 같은 글이 뜬다.
<아마 축복다방에 미숙이와 결혼을 할 가능성이 제일 많습니다.>
24. 민기방
철기, 다시 자판을 두드린다.
<왜냐하면 미숙이가 제일 예쁘기 때문입니다.>
25. 현정방
모니터를 보다 눈물이 그렁해진 현정, 그만 컴퓨터를 꺼버린다.
26. 민기방
철기, 모니터 화면을 비장하게 보는데, 이때, 벌컥 문 열리며 민기, 들어온다.
철기, 놀라서 벌떡 일어서 모니터를 가린다.
민기 (의아한) 머꼬?
철기 ... 아무것도 아이다.
민기 (고개짓하며) 비키바.
철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민기 비키바, 임마! (하며 철기를 휙 밀쳐낸다.)
철기 (한쪽으로 나동그라지고)
민기, 모니터를 본다. 민기를 모함한 철기의 만행의 흔적들이 모니터에 그대로 남아 있다. 현정이도 로그아웃한 상태다.
민기, 새파래져서 부들부들 떨다가 휙 고개 돌려 철기를 노려본다.
철기는 이미 도망가고 없다.
27. 할머니방
철기, 잠든 할머니와 강노인 사이에 쏘옥 들어와 눕는다. 후우 한숨 내쉬는,
철기 (꿍얼거리는) 씨이... 아이씨(아저씨)가 미숙이한테 한 말 그래로 말해줏다 머?
28. 마을 길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민기, 빗길을 뚫고 현정의 집으로 달려간다.
29, 현정집앞
민기, 집앞으로 달려오지만 차마 더 이상 발결음을 떼지 못한다.
현정의 이름을 부르려 하다가 차마 불러보지도 못하고 집 앞을 서성거리는 민기... 애가 탄다. 그렇게 밤이 깊어간다. F.O.
30. 민기집 외경 (새벽)
비는 그치고 맑게 개었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31. 민기집 마당
할머니방 문 열리고, 철기, 살그머니 조심스럽게 기어 나온다.
자기 방쪽으로 시선을 주던 철기, 쪽마루에 걸터앉아 동터오는 하늘을 보며 하품을 한다.
철기NA 사실은 내만 아는 비밀이 한개 더 있다.
철기, 조심스럽게 댓돌을 보는데, 젖어 있는 민기의 신발과 자신의 헌 운동화가 나란히 놓여 있다.
철기NA 핸정이 누나는... 최 핸정씨는 민기 헴 니보다 내가 먼저 좋아했다.
댓돌에 놓여 있는 철기의 헌 운동화, 빗소리와 현정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와 함께 O.L. 되며,
32. 처마밑 (회상, 겨울)
새 운동화(댓돌의 운동화가 닳기 전)를 신은 철기 (지금의 모습과 조금 다른), 비를 피해서 서 있다.
철기, 문득 시선을 돌려 옆을 본다.
역시,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선 현정,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손에는 빨대를 꽂은 소주병 하나가 들려 있다.
노래를 하던 현정, 잠깐 노래를 멈추고 소주를 빨대로 빨아먹다가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철기와 시선을 딱 마주친다. (술이 많이 취했다.)
철기,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버린다.
현정 얘! 꼬마야!
철기 (하는 수 없이 조심스럽게 고개 돌려 현정을 본다.)
현정 잘 생겼네? 너 정말 잘 생겼다, 얘!
철기 (내심 기분은 좋다.)
현정 난 되게 못 생겼지?
철기 ... 아, 아니예... 안 못 생깃는데예?
현정 거짓말 하지마... 나 못 생겨가지구 애인한테 채였다, 오늘?
철기 .... (그러게요...얼떨떨한 상황이지만, 자기도 의아하다.)
현정 아니다, 내가 찼다. 내가 찼구나.
철기 ?
현정 그 사람 마누라두 있구, 자식두 있는 사람이었거든... 날 속였어... 그래서 내가 찼구나.
철기 ....
현정 (눈물이 그렁해) .. 넌 그러지 마.
철기 .....
현정 넌 여자 가슴에 못 박구 상처주구 그러지마.
철기 ... 예.
현정 .... (소주 빨대로 먹고 다시 철기 보며)... 내가 정말 이쁘니?
철기 예... 정말 이뼈예.
현정 그 사람은 나보구 이쁘단 말 한번두 안해줬는데... 고마워. (눈물이 툭 떨어진다.)
철기 ....
현정 니가 말 안해줬음 난 내가 이쁜 줄 몰랏을 거야... 고마워.. 내가 이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눈물을 참으며 환하게 웃는다.)
철기 (정말 아름답다... 현정의 모습이 가슴 떨리게 각인된다.)
33. 민기방
민기, 감기가 들었는지 얼굴에 식은 땀 가득해서 바들바들 떨며 잠들어 있다. 자면서도 계속 콜록거리며 기침을 한다.
철기NA 우리 헴은 학교와 집과 동네에서 포기한, 수운 나쁜 놈, 바람둥이다.
철기, 빼꼼 문을 열고 그런 민기를 표정없이 본다.
철기NA 현정이 누나예! 절대로 쏙으몬 안됩니다.
34. 현정집 앞
철기, 현정집 앞으로 걸어온다.
까치발을 하고 담 너머로 보면 현정, 쓸쓸한 표정으로 나와 화분의 꽃을 만지고 있다. 철기, 그런 현정을 애틋하게 본다.
철기NA 나는 핸정이 누나가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진짜로 바랍니더.
이때, 현지, 머리를 긁으며 나오며 언니! 엄마가 밥 안치래!하며 나온다.
철기, 현지한테 들킬까봐 얼른 몸을 낮추고 숨는다. 못 이룰 사랑에 표정이 슬프다.
철기NA 내거치 이래 멋진 남자랑 갤혼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진짜로 바람니더.
35. 섬진강 (낮)
재첩잡이가 한창이다. 철기와 강 노인도 열심히 재첩을 잡고 있다.
36. 현정집 앞
민기, 현정집 앞으로 와 선다. 잠깐 망설이며 서성대다가 용기내서 불러 본다.
민기 핸정씨... 핸정씨...
집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다.
민기 핸정씨이... 핸정씨예...
잠시후, 방문 열리고, 현지, 마당으로 나오더니 대문 열고 민기 앞으로 와 선다.
현지 (쌀쌀) 우리 언니 없어요.
민기 어데 갔는데?
현지 몰라요.
민기 미장원에 가바도 엄고, 핸드폰도 꺼지가 있던데?
현지 몰라요.
민기 안에.. 있재?
현지 없어요.
민기 내가 언니를 꼭 좀 만내야 댈 일이 있거든. 만나서 오해를 쫌 풀어야 댈 일이 있거든.
현지 무슨 오해요?
민기 있다. 그런기.
현지 뭐가 있는데요?
민기 알라들은 몰라도 댄다.
현지 (OL) 저 알라 아니예요!
민기 (약간 짜증나서) 아 진짜, 이 집이고 저 집이고 콩만한 것들이 와 이라노, 요새?.... 느그 언니 오데 있는데, 임마?
현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보다가 휙 돌아서 들어가려는데)
민기 (현지를 탁 잡으며 부드럽게) 지난번에 채팅할 때 그거는 우리 철기가 장난친다꼬 거짓말한 거거덩. 그라이께 오해하지 말고 일단 내 쫌 마난자꼬 언니한테 전해 도. 응?
현지 .... (거만) 봐서요.
37. 마을길
민기, 힘이 쑥 빠져 털레털레 걸어가고 있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돌부리를 힘껏 걷어차다가 발이 아파 어쩔 줄을 몰라한다.
38. 하동 시외 터미널
철기, 재첩국 파는 아낙네들 사이에 강노인과 함께 앉아 재첩국을 팔고 있다.
철기 재치국 사이소! 재치국!
강노인 (옆에서 재첩국 먹으며 따라한다.) 재치국 사이소! 재치국!
애때, 배달을 다녀오던 미숙, 철기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철기앞으로 온다.
미숙 아이구, 우리 철기 도련님이네!.... (강노인에게도 인사하는) 할배도 안녕하세예?
강노인 (무표정하게 보는)
철기 (무표정하게 보는)
미숙 개교 기념일이라서 학교 안갔는가배?
철기 예.
미숙 (쪼그리고 앉으며) 아홉 살뿌기 안 묵은 기 대갠하기도 하지! 느그 헴이 니 반만 닮았으몬 예인데, 고마.
철기 재치국 묵으낍니꺼?
미숙 ... 예, 한 그릇 주 보이소, 소련님!
철기 (국자로 재첩국을 푸는데)
현정(E) 재첩국 한 그릇만 줄래?
철기, 고개 들어보면 현정이 햇살을 등지고 눈앞에 와 서 있다.
강노인, 현정을 알아보고 언니야다하고 반갑게 웃고,
철기, 굳은 듯 보는데,
현정 (연하게 웃으며 강노인에게 인사하고 미숙 옆으로 쪼그리고 앉는다.)
철기 (다 푼 재첩국에 부추를 뿌려 미숙에게 주고, 다시 떨리는 손으로 재첩국을 푼다.)
현정 .... (망설이다가) 니네 형... 어딨어?
미숙 (흠칫하며 현정을 본다.)
철기 (당황)... 모르겟는데예.
현정 ...민기씨보면 나한테 전화 좀 하라구 전해 줄래?
철기 (당황)
미숙 (눈에 불꽃이 튄다.)
현정 (혼잣말처럼)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지.. 민기씨가 장난친 거 가지구 내가 오핼 한 거 같애... (철기 보고) 민기씨 만나면 현정이 누나가 미안하다 그랬다구... (하는데)
미숙 (기분이 팍 상했다.) 니 머꼬?
현정 (어리둥절)... 저요?
철기 (식은 땀이 흐른다.)
미숙 니 머냐꼬?
현정 그러는 댁은 누구신데요?
미숙 내가 먼저 물었잖아! 니가 몬데 우리 오빠야를 민기씨 민기씨 니 서방 부르듯이 불러 쌌냐꼬?
현정 (황당) 철기야! 이 아줌마, 누구야?
미숙 아줌마? ... 할무이 눈엔 내가 아줌마로 보입니까, 이 가시나야? (하며 재첩 국그릇을 현정의 얼굴에 확 끼얹어 버린다.) 아나, 눈까리 좀 제대로 씨꺼라.
현정 야!!... (하며 벌떡 일어섰다가) 철기야! 이 기집애 누구야?!!
철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미숙이 누난데예.
현정 뭐?
철기 .....
현정 축복 다방에 그 미숙이? (하얗게 질리는)
이때, 저 앞으로 민기가 이쪽을 향해 절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39, 민기집 화장실 (재래식)
철기, 냄새 때문에 한쪽 손으로 코를 막고 화장실에 고민스런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다. 다리가 저려오는 침을 찍어 코에 바른다.
이때, 밖에서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철기 (잔뜩 쫀 표정이 되고)
현지(E) 나야! 철기야.. 인제 나와두 돼.
철기 (그제야 안심하는)
40. 민기 마당
철기와 현지, 나란히 앉아 새우깡 먹고 있다. (철기는 새우깡 하나를 손에 들고 멍하니 앉아 있다.) 강노인도 현지 옆에 앉아 같이 새우깡 먹고 있다.
현지 니네 형한테 맞을까봐 화장실에 숨어 있었어?
철기 ... (고개 끄덕이는)
현지 걱정하지 마... 인제 내가 왔잖아. 내가 지켜줄께.
철기 (그래도 걱정스럽다.)
이때, 할머니방에서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 들린다.
할머니(E) 철기야... 철기야...
철기 (일어서며) 우리 할매 똥 쌌는갑다.
41. 할머니방
철기, 들어서면 할머니,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철기, 익숙하게 이불을 걷고, 할머니의 고쟁이를 벗기려는데,
할머니 ... 똥 안 쌌다.
철기 ... 와 불렀는데, 그라모?
할머니 ... 할매가 아마캐도 곧 죽을 거 겉다.
철기 맨날 죽는다 캐놓고 안 죽어 놓고 머...
할머니 ...진짜다, 이번에는.... (힘겹게 정말 죽기라도 할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철기 (할매의 상태가 심상찮음을 느낀다) 할매... 할매...
할머니 (힘겹게 숨 몰아쉬고)
철기 할매... 와 그라노? 진짜 죽으끼가?
할머니 (가뿐 숨이 잦아들며 힘겹게 말하는) 할매가... 죽기 전에... 니한테 곡 말해주야 댈끼 있는데... 말해 주야 댈끼 있는데... (몹시 힘겨워 보인다.)
철기 .... 머?
할머니 니도 알아야지..니도 알거는..알아야지..
철기 .....(할머니가 걱정스럽다)
할머니 ....(결심한 듯) 철기야.
철기 와?
할머니 사실은 느그 헴이... 그라이까네 민기가.... 느그 헴이 아이고...(한숨 깊게 내쉬고 어렵게) 느그 아부지다.
철기 (별로 놀라지도 않는 표정)
할머니 할매 말.. 몬 알아들었나?... 민기가.. 느그 아부지라꼬.
철기 (여전히 놀라지 않는 덤덤한 표정)
할머니 (의아한) 안 놀래나?
철기 어.
할머니 와 안 놀래노?
철기 알고 있었다. 옛날에.
할머니 (세상에... 정신이 번쩍 든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아 옆에 놓인 박카스를 마신다. 아이러니하게도 충격으로 완전히 기력을 회복했다.) 누가 갈키주대?
철기 할매가 노망 들기전에 술 묵고 와서.
할머니 ... 관세음 보살, 나무 아미 타불... 망할 놈에 영감탱이... 구신은 머하노? 내보다 저 영감탱이부터 좀 안 잡아가고?
철기 ....
할머니 (철기의 고사리 손을 가만히 잡으며 눈물 그렁해서)... 기특한 자슥... 다 알고 있었음시롱 그래 암 표도 안내고 있었띠나?
철기 내는 민기 헴이 우리 헴인기나 아부진기나 다 똑같다.
할머니 머가 똑같노? 헴은 헴이고, 아부지는 아부지지.
철기 똑같다, 내는.
할머니 그기 와 똑같노?
철기 왕 재수 밥맛인 거는 다 똑같다.
할머니 진작에 말해 줄거로, 그라몬... 할매는 이거를 니한테 쏙카고 있다고 생각한께 저승도 내 맘대로 몬가것더라.
척기 내한테 와 쏙캈는데?
할머니 민기 자슥 장개 못갈 거 같애서 쏙캈지.
철기 장가를 와 몬가는데?
할머니 니도 생각을 해바라. 니 겉은 아들이 있다카몬 어떤 여자가 시집을 오노?
철기 (진지하게 생각하는)
할머니 니 사람한테 절대 말하몬 안댄다. 안 그래도 동네서 내 놓은 개망나인데 알라꺼지 낳았다는 거 알몬 느그 헴 인생은 끝장이데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 보이며) 쉿!
철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할매! 물 좀 묵고 와도 대나?
할머니 .... 목 마리나?
철기 어, 물 묵고 올때꺼지 죽지마라, 할매
42. 민기마당
철기 마당으로 나오며 수돗가로 가서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마신다.
현지, 의아한 표정으로 본다. 강노인이 계속 새우깡을 먹는다.
43. 할머니방
할머니, 다시 죽을 듯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철기, 들어온다.
철기 할매! 와 그라노?
할머니 철기야! 할매... 인자 암 걱정도 안하고 간대이.
철기 할매...
할머니 (힘겹게) 민기 그 망나이가 그래도 니 겉은 세근더이를 낳아서... 할매... 암 걱정 안하고 간대이.
철기 .....(목울대로 울음이 꽉 차오르는 것 같다.)
할머니 할매... 가도 대재?
철기 .....
할머니 가도... 대재?
철기 (눈물이 그렁해진다) ... 가도 댄다.
할머니 (쓸쓸하게 웃고 천정을 보며) 됐심니더. 가입시다, 저승사자님... 은자 고마 데꼬 가 주이소. (눈을 감는데)
철기 (문득 생각이 들어서) 할매... 잠깐만... 잠깐만, 할매!!
할머니 (힘겹게 눈을 뜬다) 와?
철기 물어볼끼 있다.
할머니 몬데?
철기 .... 우리 옴마.
할머니 ... 느그 옴마?
철기 ... 우리 옴마? 아나?
할머니 ...안다.
철기 (마른 침 꼴깍 삼키고) 우째... 생깃노, 우리 옴마?
할머니 ... 느그 아부지하고 같은 반에 댕기던 가시난데... 발랑 까지가꼬 딱 뱅야씨거치 생깃다.
철기 ...이름이 몬데?
할머니 ...김...숙...머라 카던데... 모르겠다.
철기 잘 생각해바라
할머니 ... 생각이 안난다.
철기 잘 생각해바라
할머니 몰라...생각 안 난다...(기운이 빠져 눈을 감는데)
철기 이름 생각날 때꺼지 죽지 마라, 할매!
할머니 (기운없는 표정으로 철기를 보는)
44. 민기마당 (노을녘)
철기, 평상에 앉아 넋나간 사람처럼 앞을 보고 있다. 현지, 그런 철기의 표정을 의아하게 살피며(갑자기 과묵해진 철기의 모습에 말도 못 붙이고) 강노인과 경쟁적으로 새우깡을 먹고 있다.
철기NA 아! 치사하다, 진짜!.... 장개 몬 갈까 겁이 나서 아들인 낼로 동생이라꼬 쏙칸기가, 그라몬?
철기는 여전히 깊은 고민에 빠져 있고, 현지와 강노인의 모습은 철기와 관계없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현지, 강노인이 손을 집어 넣어 가져가려 하자 봉지를 탈탈 털어 입속에 넣는다.
강노인, 실룩이며 울듯한 표정이다.
철기NA 아, 강민기! 진짜 치사 빤스다!
45. 민기마당(밤)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철기, 그대로 바위처럼 앉아 있고, 현지, 꾸벅거리며 졸고 있다가 철기의 어깨에 기대 잠든다. 강노인도 현지에게 기대어 잠들어 있다. 철기, 그래도 미동도 않는다.
이때, 민기, 한쪽 볼에 일회용 밴드 붙이고, 잔뜩 술에 취해서 집 안으로 들어선다.
민기 강 철기!!
철기 (민기를 잔뜩 원망이 묻은 표정으로 노려보는)
민기 (술에 취해 빙글거리고 웃으며) 니 덕분에 내 인생, 완전히 황 됐다.
철기 .....
민기 미숙이 가시나 손톱에 긁히가 이 잘생긴 얼굴에 기스도 가고, 우리 사랑하는 핸정씨는 이 밴태 바람둥이 새끼 카문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 카더라.
철기 .....(노려보는)
현지 (두 사람을 불안하게 본다.)
민기 니 지금 내 째리보나?
철기 (더욱 적의를 담아 노려보는)
민기 눈까리 똑바로 몬뜨나?
철기 .....
현지 (겁 먹고 오히려 철기에게 그러지 말라고 쿡쿡 찌르는)
민기 니가 지금 잘했다, 이기가?
철기 (그래로 지지 않고)
민기 (팔을 걷어부치며 마당을 가리킨다.) 욜로 엎디리 뻗치!!
46. 민기마당
강노인, 현지, 평상에 드러누워 아예 코까지 작게 골며 잠들어 있다.
철기, 이 앙물고 벌 받는 자세로 엎드려 있다.
민기,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다.
민기 니가 와 맞는고 알겠나?
철기 (입술을 깨문다.)
민기 와 맞는고 맞차바라... 맞추몬 오십 프로 디스카운트 해가 때리주께.
철기 .....
민기 맞차바라.
철기 (버럭) 맞추기 싫다! 고마 때리라!!
민기 (어이없어) 머 임마?
철기 패 직이뿌라, 고마!
민기 (어이없는 웃음 허!)... 알았다! 소원이모 내가 패 직이주께... 내가 패직이 줄테이까 유언이나 남기라, 그라모.
철기 .....
민기 유언 남기바라, 임마!
철기 ....
민기 오냐오냐 해주이께 짜슥이... 어른을 알기로 지 발톱이 때만큼도 안 여기고 새끼가! 야모 아거치 굴어, 임마! (하며 다시 엉덩이를 때리고)
철기 (눈물이 나려 하지만 독하게 참는)
민기 니 이래 건방지게 커서 머가 댈래? 이래가꼬 난중에 사회생활 똑바로 하것어?!! (다시 엉덩이 때리고)
철기 ....(이를 악 문)
민기 내가 임마! 니 장래가 걱정대서 요새 잠이 안온다, 새꺄! 아나? (다시 엉덩이 때리고)
철기 ....아아..
47. 민기집 외경(밤)
민기(E) ....핸정씨, 그기 아님니더...핸정씨...핸정씨..
48. 민기방
스탠드 불만 켜진 방.
민기, 베개를 껴안고 술주정에 가까운 잠꼬대하고 있고, 철기, 상 펴놓고 숙제하며 그런 민기를 어이없다는 듯 노려보고 있다.
민기 핸정씨... 핸정씨... 가지 마이소... 가지 마이소... 핸정씨...
철기 .....
철기NA 사람들은 낼로 보고 이런 말은 한다.
민기 (아이처럼 입술까지 실룩이며 울먹이는) 이잉... 핸정씨... 핸정씨이이...
철기, 맞은 엉덩이가 아파서 인상 찌푸리며 민기를 뚫어져라 노려 본다.
철기NA "철기 절마 저거는 애린 기 어른 열이도 찜쪄 물 놈이다. 아아가 아이다, 아가.
49. 민기 마루
철기, 마루로 나온다.
철기NA 맞다. 내는 아아가 아이다.
철기, 쪼그리고 앉아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본다.
철기NA 나이만 아홉 살이지. 생각하는 거는 대학교 교수님만큼 높다꼬, 내도 그래 생각한다.
50. 민기집 외견 (새벽)
뿌옇게 동이 터 오고 있다.
51. 민기방
철기, 엎드려 잠들어 있고, 민기, 철기의 바지를 조심스럽게 벗긴다.
야구 방망이로 맞은 흔적이 아직 벌겋게 남아 있다.
숙취로 머리를 싸잡은 민기, 그런 철기의 엉덩이를 착잡하게 바라보며 가만히 손으로 쓸다가 입김을 불어준다.
52. 민기마당 (아침)
강노인, 평상에 앉아 레고 맞추고 있다.
53. 민기방
철기, 의자를 딛고 올라가 장롱 위에 손을 뻗어 앨범 두개를 힘겹게 꺼낸다.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는 앨범... 민기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앨범 사진이다.
철기, 민기의 고등학교 앨범을 뒤져본다.
앨범을 넘겨가 보면... 고등학교 시절 민기의 사진이 보인다. 철기, 얄밉게 흘겨 보다가 다음장을 넘기는데, 사진 하나가 동그랗게 오려져 있다.
오려져 나간 사진 밑의 이들을 보면 김숙진이라고 씌여 있다.
철기의 표정이 굳는다.
철기(E) ...이름이 몬데?
할머니(E) ..김...숙...머라 카던데... 모르겠다.
철기, 잠깐 멍해 있다가 다시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앨범 뒤쪽에 주소록이 나와 있다. 철기, 숨이 멎는 것 같다.
54. 민기마당
강노인, 여전히 레고 하고 있고, 철기, 기운이 쑥 빠진 표정으로 가방 메고 방에서 나온다.
이때, 가방을 맨 현지, 다급하게 들어온다.
현지 철기야... 강 철기!
철기 (보는)
현지 (호들갑스럽게) 야, 니네 형... 웬일이니? 웬일이니?
철기 .....(의아한)
55. 현정집 앞
민기, 현정집 대문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다.
철기, 현지의 손에 이끌려 와 숨어서 지켜본다... 기가 막힌다.
현지 우리 언니가 용서해줄때까지 저러구 있을 거래
철기 (묘한 배신감이 든다.)
현지 니네 형 왜 저렇게 멋있니?
철기 ....
현지 안되는데... 우리 언니 저러면 금방 용서해 주는데...
철기 (보다가 조용히 돌아서서 간다.)
현지 철기야.
56. 마을길
아이들 등교하고 있다.
철기, 털레털레 걸어가다가 주머니 속에서 종이 쪽지를 꺼낸다. 주소 하나가 적혀 있다. 자신의 엄마일지도 모르는 김숙진의 주소다.
이때, 철기옆으로 우체부 아저씨 자전거 타고 지나간다.
척기, 고개 돌려 우체부 아저씨 보는,
57. ** 마을 (몽타쥬)
철기, 주소가 적힌 쪽지들고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나물 고르고 있는 아주머니들 보이자, 주소를 보여주며 위치를 묻는다. 아주머니들, 의논하다가 어딘가를 가리킨다.
철기NA 만약에 내가 강민기씨거치 철이 없었으몬 벌써 핸정이 누나한테가서 내가 강민기씨 아들인데에! 다 일라 바쳤을끼다.
56. **일각
철기, 땀을 뻘뻘 흘리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한 아저씨가 지나가자 다시 쪽지를 보여주며 위치를 묻는다.
철기NA 하지만, 내는 강민기씨거치 그래 치사한 남자가 아이다. 내는 진짜 괘안은 남자다.
59. 숙진집앞 (다른날)
철기, 긴장된 표정으로 집 앞으로 온다.
대문 열려져 있다.
철기 계십니꺼? (안으로 들어선다)
60. 숙진집 마당
마루엔 오이 팩을 붙인 한 사람이 자고 있다.
철기, 마당안으로 들어선다.
철기 계십니꺼?
이때, 부엌에서 50대의 아낙네, 누룽지 들고 나온다.
아낙 누고?
철기 (꾸벅 인사하고) 사람을 좀 찾으로 왔는데예.
아낙 누구?
철기 김숙진씨예.
아낙 김숙진? 그런 사람 요게 안 사는데?
철기 (실망) ...그라모 김숙진씨 사는 집이 오뎁니꺼?
아낙 그거를 내가 우찌 아노?
철기 (기운이 쭉 빠진다... 아낙에게 인사하고) 안녕히 계시이소. (하며 돌아서는데)
남자(E) 숙진일 와 찾는데?
철기 (돌아보면)
오이팩을 하고 있던 30대 남자(농촌 총각), 일어나 앉는다.
남자 숙진일 와 찾냐꼬?
철기 (표정이 상기 되고)
아낙 나 김숙진이 아나?
남자 옛날에 이 집에 살다 서울로 이사간 가시나 안 있나? 가가 숙진이다... 민자랑 서울에서 악세사리 가게 동업하고 있다카던데...
아낙 아, 가가 가가?
철기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아낙 아, 그래! 생각난다. 고등하교 졸업도 하기 전에 아로 낳아가꼬 즈그 아부지가 서울로 이사가뿐기라매?
철기 (안색이 하얗게 변한다.)
아낙 알라 아부지가 누던고?
남자 모르지...
아낙 아는 우째 댔다카데?
남자 몰라... 죽었다는 말도 있고, 고아원에 보냈다는 말도 있고.
철기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오는 것 같다.)
남자 그란데... 니는 눈데 숙진이를 찾노?
철기 .....
남자 (의아한) 꼬마야.
철기 ....(힘겹게 간신히 입을 떼는) 김숙진씨 서울 오데 사는데예?
남자 니가 눈지 그것부터 말해바라.
철기 ....김숙진...아들인데예.
61. 강 둑방
아이스크림을 문 채 굳어버린 현지, 씁쓸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현지 옆에 선 철기, 무표정하게 현지가 응시하는 곳을 함께 응시한다.
62. 강가
민기와 현정, 물 수제비 뜨며 즐겁게 데이트하고 있다. 정말 민기의 무릎꿇음에 현정이 바로 용서했는지 두사람, 여느 연인들처럼 다정하고 행복해 보인다.
63. 강둑방
민기와 현정을 지켜보는 허허로운 표정의 철기.
철기NA 핸정이 누나예!...끝까지 지키주지 몬해서 미안합니더.
64, 공중전화 박스
철기, 들어와서 선다. 동전을 넣고 잠깐 심호흡하고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쪽지에 적힌 핸드폰 번호를 천천히 누른다.
수화기에서 핸드폰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넘어간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김숙진입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숙진의 목소리로 녹음한 메시지도 나온다.
철기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녹음을 하기 시작한다. 억양은 사투리) 안녕하세요.... 저는 강 철기고요...제가 엄마 아들인거 같거든요...저는요... 아빠랑 사는게 너무 힘이 들어요....아빠한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가꼬요...저를 막 때리고 구박도 하고...맨날 말또 안대는 무식한 소리만 하고...하이튼 가정교육상 너무너무 안쫗은 환경에서 살고 있어요... 전 엄마랑 살고 싶어요. 엄마랑 살고 싶어요.
65. 기차역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든 철기, 역 안으로 들어서 표를 끊는다.
철기 서울 가낀데예.
66. 민기 마당
강노인, 레고를 하고 있다. 하나를 제대로 끼우기도 쉽지 않다. 강 노인 앞으로 철기가 쓰고 간 백지가 놓여 있다.
그동안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엄마에게 가니까 현정이 누나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사세요. 제가 없어져야 장가를 가기도 좋겠지요? 참! 제발 다른 여자들 좀 꼬시고 다니지 말고 현정이 누나 행복하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강철기 드림이라고 씌여 있다. 그 위에 철기의 마음의 소리.
철기NA 바라. 내, 진짜 괘안은 아, 맞재? 강민기씨같은 사람한테 우찌 내거치 이래 멋진 아아가 태어났는지 안 이상하나?
이때, 바람이 붙어 백지가 날려져 평상밑으로 떨어진다.
67. 플랫폼
철기, 벤치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철기NA 머가 이상하노? 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우리 엄마만 닮아서 그렇지.
68. 민기 마당
민기, 현정, 강노인과 함께 레고를 끼우고 있다. 제법 완벽한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이때, 민기가 조립하던 레고 조각하나가 평상밑으로 떨어진다.
민기, 몸을 굽혀 주우려다가 그제야 철기가 쓰고 간 백지를 발견한다.
미긴, 표정이 하얗게 굳는.
69. 플랫폼
철기, 벤치에 앉아 있는데, 저 멀리서 기적 소리 울리며 기차가 들어온다.
철기, 일어서는데, 마침 플랫폼으로 민기가 승무원과 실랑이하며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민기의 뒤를 이어 현정도 쫓아온다.
철기, 놀라서 마침 커다란 짐꾸러미를 들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아낙네들 사이로 몸을 감춘다.
기차, 플랫폼 안으로 들어선다.
민기, 두리번거리며 현정과 함께 달려와 철기야! 강철기! 애타게 부르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표정이 굳는다.
숙진(임산부다) 이 기차에서 내리고 있다. 숙진도 민기와 시선을 마주치고 싸늘하게 굳는다.
민기 (몹시 당혹스러운) ....숙진아.
숙진 ...(원망스럽게 보는) 오랜만이네, 강민기?
현정 (의아하게 뒤에서 지켜보고)
철기 (들킬까봐 숨어서 조심스레 본다...숙진아?... 저 사람이 나의 엄마구나...)
민기 (차마 말을 못 잇는)...잘 지냈나, 그동안?
숙진 (싸늘하게) 니 아들 이름이 철기니?
민기 ....(피식 쓰게 웃고) 니 아들?
숙진 대체 니 아들한테 무슨 소릴 한거야?
민기 ...와? 내 아들이 니한테 우쨌는데?
현정 (아들?... 당황하는)
숙진 니가 다 책임진다 그랬잖아. 내가 지우겠다구 했을 때 니가 굳이굳이 낳아달라 사정했었구.
민기 (O.L.)살아 있는 생맹을 직이나 그라모?
숙진 너나 나나 어려서 힘들다구... 차라리 애 없는 언니네 양자로 입양시키자 그랬을 때두 굳이굳이 니가 키우겠다구 고집 부리구...
민기 (OL) 내 새끼 내가 키운다카는 기, 잘몬된기가, 그기?!!
숙진 그럼, 니가 제대로 키우구 책을 졌어야지! 여자 생겼다구 애를 구박하구 때리기까지 한다며? 도저히 애가 자랄 수가 없는 환경이라며? 이럴려구 낳으라구 그랬어? 이럴려구 키우겠다구 고집 부렸어?
철기 (죽고 싶다.)
현정 (후들거리는 다리를 참지 못하고 무너지듯 주저 앉는다.)
민기 (돌아본다.)
현정 (원망스럽게 민기를 본다)
민기 (몹시 미안한 마음으로 착잡하게 보는)
숙진 (맥을 놓고 주저앉은 현정을 보며) 결혼해서 저 분하구 다시 애 낳구 살면 되잖아, 너두!...저 분을 위해서도 널 위해서도 그게 나아... 철기 내봐.
현정 (눈물이 그렁해서 민기를 보는)
민기 (착잡하다.)
숙진 큰 언니한테 전화했어... 언니는 못 키우구 미국에 아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입양 주선해 보겠다구...
민기 (휙 고개 돌려 숙진 보며 OL.) 입양? (속구쳐 오르는 노기를 간신히 누르며) 막차 끊어지기 전헤 퍼뜩 거지 주시지예, 아지매!
숙진 민기야.
민기 (위약적으로 구는) 안 그라모 우리 아들 철기 키우맨서 내랑 같이 살던가!!
현정 (멍해지는)
민기 (어느새 저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해지며) 그랄래? 내는 니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는데... 그래서, 9년을 기다맀는데, 내가...(마음을 감추기 위해 불량스럽게 웃고 있지만 눈물이 툭 흐른다.) 이혼하고 내한테 오래, 싸모님?
숙진 (어이가 없는...) 너 정말, 인간 말종이구나.
현정 (일어나서 체념한 듯 쓸쓸히 돌아서 간다.)
민기 (가는 현정을 보다가 다시 숙진 보며...) 그래, 내, 국가 대표급 인간 말종 맞다. 맞는데... 새끼 낳고 반년도 안되가 딴 놈이랑 눈 맞는 니보다는 그래도 0.000005는 낫다꼬 생각한다.
숙진 (기가 막힌)
민기 니가 몬바서 그라는데... 니 아들 말고 내아들 강철기! 도저히 아가 자랄 환경이 안대는데서도, 즈그 아부지 보다 딱 천만배는 더 훌륭한 놈으로 잘 컷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퍼뜩 거지 주시지예!
숙진 .....
민기 (버럭) 퍼뜩 꺼지라꼬, 가시나야!!!
이때, 우와앙하며 철기의 울음소리 들린다.
민기와 숙진, 울음 소리 나느 곳으로 고개 돌려 보면, 숨어 있던 철기, 어린 아이처럼 큰 소리로 목놓아 울고 있다.
민기, 그런 철기를 본다. 다가서지도 않고 한마디 말도 않고 그저 먹먹하게.... 본다. F.O.
70. 섬진강 (낮)
철기, 현지와 함께 참게를 잡고 있다.
문득 고개를 드는데, 둑방으로 현정과 한 남자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현지 우리 언니 어제 선 본 아저씨다?
철기 ....
현지 아, 내 타입은 아닌데.
철기 (씁쓸하게 본다.)
철기NA 우리집에는 얼라가 서이나 된다.
71. 철기마당
철기, 강노인에게 양치를 해주고 있고, 민기, 예전 모습 그래로 평상에 앉아 도색잡지 (책으로 위장해서 가리고) 보고 낄낄거리고 있다.
철기NA 첫 번째 얼라는 노망이 걸 리가 손자 되는 내보고 오빠야 오빠야 카는 할배고.
72. 할머니방
철기, 물수건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민기, 텔레비전에 나온 미녀 탤런트에 홀려 정신이 없다.
철기NA 두 번째 얼라는 지난 겨울부터 방에만 꼼짝도 안하고 들눕어 가 맨날 죽는다 죽는다 꽁까는 할매고,
73. 마을길
철기와 민기, 가위 바위보를 하며 간다. 철기가 이기고, 철기, 민기의 무등을 탄다.
민기, 잔뜩 표정이 일그러져 식식거리며 하는 수 없이 간다.
철기, 재밌어 죽겠다는 듯 활짝 웃는다.
철기NA 세 번째 얼라는 아홉 살이나 묵은 기 즈그 아부지 무등타는 거로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 나, 강철기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