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이야기.
"턱" 이란 사람의 입 아래 있는 나온 부분을 말한다. 어제 라밧에 한국어를 가르치고 열차를 타고 올 때 턱을 괴고 앉아서 그리고 흔들리는 시내버스를 갈아 타고 올 때도 서서 버스 손잡이 바에 턱을 괴고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남자인가? 지금 모로코 이 땅에 어떻게 와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턱"을 손으로 괴고 하는 많은 생각과 다르게 수없이 스쳐지나가는 창밖의 풍경들을 보며 하루 종일 서서 가르치고 오니 피곤함이 포근하게 감싼다.
"턱" 이란 평평한 곳에 어느 한 곳이 두드러지게 솟아난 부분도 턱이라 한다. 문턱, 마루턱이 그 예이다. 그런가 하면 뭔가 갑자기 몹시 막히는 모양도 "턱"이란 표현을 썼다. 무덥고 바람기 한 점 없는 날이라 박에 나가면 숨이 턱 막혔다 라는 표현을 보면 알수 있다.
"턱" 이란 또 남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친구들아 오늘 내가 한 턱 쏜다." "승진했으니까 한턱 낼 게" "턱"이란 단어의 어원이 궁금하다.
"턱"도 없다 혹은 택도 없다 라는 말도 있는 데 택도 없다는 듣기에는 좋은 데 턱도 없다가 맞고 택도 없다는 강원도 사투리로 내 관심은 여전히 턱에 있다. 턱도 없다 란 이치에 닿지 아니하거나 그럴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란 말로 수준이나 분수에 맞지 아니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턱이 있다는 것은 수준이나 분수에 맞는 다는 뜻이 되고 이치에 닿고 그럴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는 뜻이 된다고 생각하니 재미있어진다.
‘턱없다’는 ‘터무니 없다’가 변화한 말이란다. 터무니는 ‘터+무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터’는 집을 세운 자리다. 집을 헐어도 주춧돌 같은, 집이 있었던 흔적은 남게 마련. 그런데 그런 흔적(무늬)마저 없으면 그 자리에 집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터의 무늬가 없다’는 곧 허황되다는 말이 된다(뜻도 모르고 쓰는 우리말 500가지, 박숙희)에서 보듯이 "턱"이란 집 터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며 모로코에 살고 있지만 그 노력의 양과 정성과 목표가 충분한가 생각해 본다. 스스로 합리화 하고 이정도야 어때 하며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며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문해 본다. 나는 스스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 나를 보낸 분이 계시다. 그분은 턱과 대조되는 바람같은 존재이시다. 그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나 분명히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듯 현실로 존재하는 분이시다. 바람같은 분을 보내주신 분을 생각하면 존재에게는 아직도 턱이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그것이 나를 깨운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달리게 한다. 전투에 임하게 한다. 무기와 장비를 챙기게 한다. 들판을 가로지르고 성벽을 뛰어 넘게하고 마침내 승리의 깃발을 꽂고 외치게 하신다. 나는 이겼다! 나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원수마귀사탄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는 분께 감사 찬송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