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흐르던 구름도 하룻밤 머물것 같은 큰 산 운악,
운악이 숨기고 있는 속살을 들추어내듯
천천히 아주 느긋하게 운악을 올라보았었다.
토요일,
밤 늦은 시간 비박을 할수있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도착해보니 오토 캠핑장이란 느낌은 전혀없고
얄팍한 상혼의 술수인것 같은 민박겸 식당을 하는 집만 있을 뿐이다.
차를 돌려 나오는데 현등사입구 등산로라는 팻말이 보인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일단은 잠자리부터 해결하자고
맘을 먹고 들어가보니 의외로 주차장 설비가 잘되어있었다.
텅빈 주차장에 들어서서 외진곳에 주차를 한다음
비박탑을 설치하려하였으나 일요일인 내일 새벽부터
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잠을 설칠것 같아서
아예 갈걷이가 끝난 옆에 있는 고추밭으로 들어가서
대충 바닥을 고르고 잠잘 준비를 끝냈다.
칠흑같은 밤, 하늘엔 여전히 수없이 많은 별들이 빛을 발하고
백여미터 떨어진 犬舍에선 낯선 이방인들의 인기척과 냄새를 맡았는지
자신의 직분을 다하듯 개 한마리가 연신 짖어대고 있었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준비해온 키조개 관자를 구우며
용택이가 직접 담궜다는 포도주로 둘이서 건배를 하며
몇잔의 술을 마시고는 밤늦은 야식겸 저녁을 라면으로 떼우고
새벽 3시경 침낭속으로 몸을 집어넣고는 잠을청한다.
커다란 차의 엔진소리가 아득히 들려올 즈음 눈을 떠보니
비박탑의 얇은 천막이 투명하게 보인다.
해가 많이 올랐나보다 생각하며 시계를 쳐다보니 아침 7시가 되었다.
손을 내밀어 천막을 만져보니 버너를 피웠던 내부의 온도와
바깥 기온의 차이로 생겼던 결로가 꽁꽁 얼어 붙어있었다.
용택이도 침낭에서 꿈쩍않고 있는 것을 보면 깊이 잠들어 있을게다.
또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는지 잠결에 시간을 보니 10시가 되었다.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용택이도 잠이 깨어 일어나더니
습관적으로 버너를 피우고 물을 올려 라면을 끓인다.
천막의 얼음은 그 동안의 밝은 햇살에 다 녹아 내렸다.
라면을 먹은후 짐을 정리하고 주차장에 올라가보니
산꾼들을 실어온 산악회 관광버스들이 들어와있고
개인적으로 산행을 하러온 산꾼들의 승용차들이 꽉차있었다.
어젯밤의 내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운악산의 산세를 잠시 살펴보니 포천의 운주사에 오르는 길보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고 기암스러운 바위들도 보인다.
현등사에서 오르기는 나도 처음이라 등산 안내도를 보고서
머릿속에 지형을 숙지한 다음 등산로를 따라서 걷기 시작하였다.
현등사까지 돌로 포장된 도로가 이어져 있는것 같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오백여 미터를 오르다가
만경능선의 등산로를 따라서 사방을 구경하며 오르기로 하였다.
만경능선에서 정상까지는 2시간 20분 정도라는 팻말을 보고
가파른 만경능선에 올라서서 숨을 고르고 오른쪽을 바라보니
안내도에 있던 눈썹바위가 커다랗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바위 위에 또하나의 바위가 남자의 그것처럼 묘한 모양이었기에
안내도에 있는 男根 바위인줄 알았으나 사실은 따로 있었다.
밤과 낮의 차이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날씨,
밤엔 겨울이고 낮엔 따뜻한 봄을 연상케하는 날씨이다.
능선따라 나있는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용택이와 이야기도 나누고 물도 마셔가며 좌우를 구경도 해본다.
눈썹바위에서 미륵바위까지의 오름짓이 상당히 가파르다.
아마도 이 길로 오르는 운악산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아닌가싶다.
하지만 천천히 여유있게 걸어 올라 안부에 도착하니
북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고 북쪽의 비탈엔
올해 운악에 내린 序雪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한가지 인상이 찌푸려지는건 누군가가 마시다가 버린 펫트병과
주황색의 귤 껍질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서 보기에 흉하였다.
귤 껍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딱딱하게 굳어지지 쉽게 썩질 않는다.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이 썩는데 뭐 어떠냐며 귤이나 사과 껍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다.
다시 정상을 향하여 걸음을 옮겨간다.
고개를 넘어서니 눈 밭이 펼쳐지고 맞은편엔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듯
병풍바위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꼬마 눈사람을 만들어 세워놓고
사진을 찍을수있는 포토라인도 있어서 그곳에서 사진도 찍어본다.
운악의 정상이 얼마남지 않은것 같다.
구름이라도 걸려있으면 좋으련만 오늘은 운악이라는 이름을
부르기가 계면쩍을 것만 같다.
미륵바위를 바라보며 산아래로 펼쳐진 가평의 산과 들을 바라본다.
가슴이 시원할 정도로 툭 트여진 사방 저멀리엔 연인산과 명지산등
높고 낮은 산들만이 아스라히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철계단을 지나고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
놀며 쉬며 구경하며 올랐어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엔 표지석외에 굳은 항전의 표시인양 5줄 씩이나 씌여진
決.死.突.擊.隊 라고 암각이 되어있는 바위가 있었다.
6.25때 인지 아니면 그것보다 훨씬 더 이전의 外敵에 대한 항전의
의지였었는지는 알길이 없으나 어떤 비장함이 전해져왔었다.
정상에서 능선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서
안내도에 나와있던 男根石을 구경한다.
경기 북부지역의 바위나 돌들엔 유난히도 性石들이 많이있다.
예전에 수석에 관심이 있어서 5년정도 수석회를 따라서
전국의 강이나 산과 계곡을 다녀본 적이 있었던 터라
돌이나 바위를 보면 대충 그 모양을 알수가 있다.
하산은 절골안부에서 현등사가 있는 계곡으로 내려간다.
가파르게 내려가는 도중에 코끼리바위를 만나고
각각의 산악회 표지깃들이 서낭당처럼 걸려있는 사잇길을 지나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니 현등사가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악회들이 걸어놓고 가는 표지깃이 못마땅하다.
선두가 걸어놓았으면 마지막 후미는 그것을 회수하여야 되는데
그것이 산악회 이름을 나타내는 양 하나,둘씩 걸어놓다보니
이젠 너도나도 앞다투어 걸어놓기 시작한다.
제일 심한곳은 아마도 사량도 지리망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하나의 오염이 되어가고 있는것이다.
현등사에 있는 함허대사의 부도탑과 각종 석탑들을 구경하고
백팔계단을 천천히 내려와 들머리로 가서는
후덕하게 보이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도토리묵을 한접시 부탁하여
나와 용택이는 잣막걸리 한잔에 산행의 피로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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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포천에서 올라본 운악과 동쪽의 가평에서 올라본 운악은
서쪽의 힘좋은 남성미와 동쪽의 세심한 여성미가 어우러진
음과 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산,
좋은 인심이 있는 운악산,
다음에 또 한번 찾아들길 기대하면서 집으로 향하였다. |
첫댓글 지리산의 정기를 받드니만 --어느새 경기북부까지--운악산이라고--경치좋네--좋아~~그런데--여성동무들과 같이가면 --2배더 즐거운 산행이되지않았을까~~~???하는 아쉬움으로 --나으생각이여~~패러를하다보니--늘--하늘나라 선녀님들하고만 놀다보니--나도 모르게 여성 밝힘증이 생겼나보이--산행할때는 --기런 생각--아예하지말아야하는거 잘~알지----하여간 태일동기의 방랑벽은 알아줘야되는구먼--늘--그렇게 돌아당기는데--남자들만가기엔 --2%가 모자르지는않는지~~???--좋은 산행 축하하네--같이 산행을하--용택이라는 친구~~말없고 재미없는 태일이와 같이 다니는걸보니 어지간한 맨이네~~언제나 산을사랑하는 사나이로 남기바라네~~!!!
지리산에 이어 이번에는 운악산 사진으로 만보아도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랜딩장치 망가지기전에 보다더 열심히 산행을 하였으면 좋왔을걸하는 후회도해보고....언제다시마음놓고산행할수잇을만큼 랜딩장치수리가 완료될지 ? 답답한가슴 운악산사진보며 달래렵니다...
운악산, 현등사.. 현등사 오르는길 막 시작전에 나무(이름모름)들이 모여있는 평평한곳.. 그곳에 서서 바람에 나무잎들이 부비부비하는소리가 얼마나 정겹던지 가만히 들었던 기억이.. 흠 이러구 보면 나두 산을 꽤 다녔던거같다. 현등사 경내에 있는 찻집에서 국화차를 마셨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