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91권, 9년(1478 무술 / 명 성화(成化) 14년) 4월 3일(갑오) 1번째기사
이세광·성담년이 김수온의 강론 참석에 이의를 제기하다.
성균관(成均館)에 거둥하여 어차(御次)에 들어갔다.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이세광(李世匡)·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성담년(成聃年)이 아뢰기를,
“
김수온(金守溫)은 를 숭신(崇信)하여
세조조(世祖朝)에는 출가(出家)하기를 청하였으니, 진실로 의 죄인입니다. 전하께서 에 친림(親臨)하여 치도(治道)를 강론(講論)하시는데 요사한 사람을 참여 시키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하자, 승정원에 묻기를,
“김수온이 하였는가?”
하니, 좌부승지
손비장(孫比長)과 우부승지
김승경(金升卿)이 대답하기를,
“
김수온이
세조조(世祖朝)에 상서(上書)하기를, ‘신이 출가(出家)하면 3년 만에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신이 기망(欺罔)한 죄를 받겠습니다.’ 하고 드디어 산사(山寺)로 도망쳐 갔으니,
김수온이 부처를 믿는 것은 조야(朝野)에서 모두 아는 바입니다.”
하므로, 전교하기를,
“들어와 참여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조금 후에 임금이 면복(冕服)을 갖추고
문묘(文廟)에 들어가서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다.
명륜당(明倫堂)에 나아가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는데,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종순(金從舜)·행 호군(行護軍)
이영견(李永肩), 행 사직(行司直)
민효열(閔孝悅)·
이전수(李全粹), 검참판(檢參判)
변상회(邊尙會)·
이사계(李師季), 행 호군
홍경손(洪敬孫)·
임수겸(林守謙), 행 사직
권지(權至)·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개(金漑)·행 호군
황치신(黃致身)·행 사직
김세민(金世敏)·행 상호군
김한(金瀚)·행 사맹(行司猛)
조수산(趙壽山)·전 부윤(府尹)
조성산(趙誠山)·시강관(侍講官)
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
파천 부원군(坡川府院君) 윤사흔(尹士昕)·영중추부사
김국광(金國光)·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노사신(盧思愼)·좌찬성(左贊成)
윤필상(尹弼商)·판중추부사
이극배(李克培)·이조 판서
강희맹(姜希孟)·
달성군(達城君) 서거정(徐居正)·좌참찬(左參贊)
임원준(任元濬)·우참찬
허종(許琮)·
계림군(鷄林君) 정효상(鄭孝常)·공조 판서
양성지(梁誠之)·판윤(判尹)
어세공(魚世恭)·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신승선(愼承善)·예조 판서
이승소(李承召)·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예(李芮)·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권윤(權綸)이 입시(入侍)하였으며, 관관(館官)·시신(侍臣)·학생 모두 2천 8백여 인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 양로연(養老宴)을 베풀고 바른 말을 청하니, 각각 좋은 말을 진술하라.”
“군자(君子)를 가까이하고 소인(小人)을 멀리하며, 이단(異端)을 물리치고 정도(正道)를 숭상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요지는 이것에 불과합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날마다 하루같이 삼가하여 정사에 실수한 바가 없었으니, 원하건대 처음에서 끝까지 이 마음을 한결같이 하소서.”
“전하께서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禹)임금과
탕왕(湯王)·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도(道), 그리고 무릇 옛 치란 흥망(治亂興亡)의 사적(事跡)이나 명신(名臣)의 격언(格言)을 관람하지 않으신 바가 없는데, 어찌 신들의 말을 기다린 후에야 이를 알겠습니까? 원하건대 처음에서 끝까지 한결같이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의 《서경(書經)》 서문(序文)에 제왕(帝王)의 치란(治亂)의 이유를 자세히 말하였으므로, 내가 일찍이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조심하고 근신(謹愼)하였다. 그러나 지금 흙비[土雨]의 변(變)이 있으니, 천심(天心)에 부응(副應)하지 못함이 있지 아니한 것인가?”
“지금 흙비뿐만 아니라 또 지진(地震)이 있었으니, 옛사람은 지진을 큰 변으로 여겼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진이 서울에는 없었다.”
“경상도·충청도도 역시 우리의 경내(境內)입니다. 재이(災異)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마는 오직 임금이 덕을 닦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시대마다 있다고 하여 몸을 닦고 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송(宋)나라 신종(神宗) 때에 여러번 재변이 있었는데, 이 말하기를,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는 보통 있는 일인데, 이는 성려(聖慮)할 것이 못된다.’고 하였고,
신종도 말하기를, 재이(災異)는 이며 인사(人事)의 잘잘못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이 듣고 탄식하기를, ‘인주(人主)가 두려워하는 바는 오로지 하늘인데, 만약 하늘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이는 필시 간사한 사람이 옳지 못한 말을 올려 주상의 마음을 어지럽혀서 보필하고 간쟁(諫諍)하는 신하들로 하여금 힘을 펴지 못하게 하고자 함이니, 이는 치란(治亂)의 기틀이므로 마땅히 빨리 구(救)하여야 한다.’고 하고 곧 글을 올려 이를 힘써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안석이, ‘천변(天變)은 족히 두려울 것이 없고 은 족히 본받을 것이 없으며, 남의 말은 족히 근심할 것이 없다.’고까지 하였으니, 이는 만세의 죄인입니다. 임금이 재변을 만나면 마땅히 몸으로써 담당하여 경계하고 근신하면서 그치게 할 바를 강구해야 하는데, 없는 시대가 없다고 말하면서 예사로이 보고 소홀히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예전
상(商)나라 중종(中宗) 때에는 이 조정에 났고
고종(高宗) 때에는 꿩이 솥귀[鼎耳]에서 울었으나, 모두 두려워하여 덕을 닦았으므로 재이(災異)가 해(害)는 되지 아니하여,
중종은 75년이나 나라를 다스렸고
고종은 59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니, 이는 모두 하늘을 공경하고 재이(災異)를 삼가한 효험입니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정성뿐입니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라야 능히 그 성(性)을 다할 것이며, 그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면 가히 천지에 참여하며 화육(化育)을 협찬(協贊)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지극한 정성의 극진한 공(功)입니다. 정성을 다하는 도(道)는, 망령됨이 없는 것과 속이지 아니하는 것과 유구(悠久)한 것에 불과합니다.
주염계(周廉溪)가 말하기를, ‘착하지 못한 일에 함부로 동(動)하는 것은 망령된 것이니, 망령됨이 없으면 정성[誠]이다.’고 하였고,
진서산(眞西山)은 말하기를, ‘정성이란 것은 천리(天理)의 참된 것이며, 망령됨이란 것은 사람이 하는 거짓됨이다. 망령됨이 없다는 것은 내게 진실함이고, 속이지 아니한다는 것은 사물(事物)에 대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며, 유구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지켜서 조금도 중단(中斷)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하건대 전하는 지성(至誠)의 도(道)를 본받아 시종여일(始終如一)하면 재이(災異)가 변하여 상서로움이 될 것입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오직 대인(大人)만이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는데, 여러 대신(大臣)들이 어찌 임금을 잘못된 도(道)에 들어가게 하겠는가? 내가 깊이 믿고 의지한다.”
하였다.
양성지(梁誠之)가 소매 안에서 소(疏)를 내어 올리며 말하기를,
“신은 말을 더듬어서 말은 못하고 글로 대답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보고 말하기를,
“안으로 여색(女色)에 빠지거나 밖으로 사냥에 미치거나 술과 음악을 즐기거나 집과 담장을 사치하게 꾸미는 일이 하나라도 있으면 망하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약석(藥石)이다. 내가 자리 곁에 써서 붙이고 항상 보고 반성하겠다.”
“전하의 말씀이 여기에까지 이르시니, 어찌 나라가 다스려지지 아니할 것을 근심하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 간하는 말에 따르고 어긋남이 없으시며 하기를 목마른 것처럼 하시며, 마음에는 경계하고 삼가함이 있으시니, 진실로 우리 나라 만세에 무궁한 복입니다. 원하건대 이러한 마음을 끝까지 변하지 마소서.”
“천심(天心)이 임금을 인애(仁愛)하므로 재이(災異)를 보여서 경계한 것이니, 오직 몸을 조심하고 덕을 닦으면 천심(天心)에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생각하지 아니하면 광인(狂人)이 되고, 아무리 광인(狂人)이라도 잘 생각하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초년에는 뜰에서 비단 옷을 불태워 〈검소하였는데,〉 만년(晩年)에는 황음(荒淫)의 실패함이 있었고,
태종(太宗)은 즉위한 처음에는 정성을 다하여 힘썼으나 끝내는 가 있었으니, 예로부터 임금으로서 끝까지 처음과 같이 삼가는 이가 적은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마음을 두고 안두는 여하에 있을 뿐입니다. 마음은 임금이 다스리는 근본입니다.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禹)임금·
탕왕(湯王)·
문왕(文王)·
무왕(武王)이 서로 전한 심법(心法)은 중(中)에 지나지 아니할 뿐입니다.
요(堯)임금의 ‘그 중정(中正)을 잡으라.’는 것과
순(舜)임금의, ‘사욕을 버리고 오직 하나로 모아라.’는 것과
성탕(成湯)의, ‘중을 세우라.’는 것과
무왕(武王)의, ‘극(極)을 세우라.’는 것은 모두 중(中)을 말한 것인데, 중이란 것은 마음입니다.”
“천(天)과 인(人)의 관계(關係)는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득실(得失)의 기틀[機]과 감응(感應)의 묘리(妙理)는 도(道)를 아는 자가 아니면 누가 이를 능히 알겠습니까? 인사(人事)가 아래에서 감(感)하면 천변(天變)이 위에서 응(應)하므로, 만약 재이(災異)를 막으려고 하면 마땅히 몸을 조심하고 덕을 닦아서 천견(天譴)에 보답하는 것뿐입니다.
《중용》에 이르기를,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는 구경(九徑)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공자(孔子)가 으로부터 정사를 묻는 데에 대답한 말인데, 정치하는 도(道)를 논한 것이 이보다 자세한 것은 없습니다. 그 〈구경의〉 조목은, ‘몸을 닦음[修身], 어진 이를 존경함[尊賢], 친족과 친애함[親親], 대신을 공경함[敬大臣], 여러 신하를 내 몸과 같이 함[體群臣], 서민을 자식처럼 사랑함[子庶民], 백공(百工)을 권장함[來百工], 먼 지방 사람을 관유(寬柔)함[柔遠人], 제후를 포용함[懷諸侯]이며, 재계하여 마음을 밝게 하고 의복을 갖추어 몸을 엄숙하게 가지며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은 몸을 닦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재계하여 마음을 밝게 하고 의복을 갖춘다는 것은, 바로 동(動)하여 사물(事物)을 접(接)하지 아니하는 때이니, 바로
《중용》의 수장(首章)에 이른 바, ‘보이지 아니하는 곳을 조심하고 들리지 아니하는 곳을 두려워하라.’는 것이고,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것은 동(動)하여 사물을 응접(應接)하지 아니할 때이니, 바로 수장에 이른바, ‘군자(君子)는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간다.’는 뜻입니다. 능히 이와 같이 하면 안팎이 서로 수양(修養)되어 몸이 닦아집니다. 그러므로 ‘몸을 닦으면 도(道)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도가 세워진다는 것은 도가 몸에 이루어져서 백성의 표본이 될 만한 것을 이르는 것인데, 이른바, ‘임금이 그 극(極)을 세운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군자는 그 극진함을 쓰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고 하였으니, 그 어버이에게 극진히 하여 천하에사람의 부자(父子)가 되는 도리를 정하고, 그 의(義)를 극진히 하여 천하에 군신(君臣)이 되는 자들의 도리를 정하며, 그 분별을 극진히 하여 천하의 부부(夫婦)가 되는 자들을 본받게 하니 한 마디의 말 하나의 행실에까지 만백성이 본받지 아니할 것이 없습니다. 간악함을 버리고 여색(女色)을 멀리 하며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덕(德)을 귀(貴)하게 함은 어진 이를 권하는 일이라고 하였으니, 를 믿으면 어진 이를 신임함을 오로지 못하고, 재물과 여색을 탐하면 어진 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돈독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에
가연지(賈捐之)의 상소에 말하기를, ‘후궁(後宮)이 미인(美人)이면 어진 자가 숨어 살고, 간악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간(諫)하는 신하가 입을 다문다.’고 하였으니, 이는 저울의 형세와 같아서 이쪽이 무거우면 저쪽이 가벼워지는 것으로, 이치가 본래 그런 것입니다. 이러므로 간악함을 버리고 여색을 멀리하며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한결같이 덕을 귀하게 여김이 어진 이를 권장하는 일입니다. 이러므로 어진 이를 존경하면 미혹(迷惑)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미혹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치에 의심이 없는 것을 이르는 것인데, 어진 이를 얻어서 스승으로 삼으면 강구(講究)해 밝히는 데에 이바지하기 때문입니다. 신은 원하건대 간악한 사람을 멀리 하고 충량(忠良)한 사람을 가까이하며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덕을 귀하게 여겨서 항상 이 도(道)를 체득하소서.
그 지위를 높이고 그 녹(祿)을 후하게 하며 그 좋고 나쁨을 함께 하는 것은 친친(親親)함을 권하려는 소이(所以)이니 친애(親愛)하는 것은 부귀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지위를 높이고 녹을 후하게 하며 그 좋고 나쁨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맡기지 아니하는 것은, 만약 일을 맡겼다가 불행히 죄가 있어서 죄를 다스리면 은혜를 상하게 할 것이며 다스리지 아니하면 법을 폐하는 것이니, 이로써 부귀(富貴)하게 하고 친후(親厚)하게 하되 일을 맡기지 아니하는 것은 친애하며 보전하려는 소이(所以)입니다. 이 때문에 ‘와 가 원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관원(官員)을 많이 두어 일을 맡기어 부리는 것은 대신(大臣)을 권려하는 소이(所以)이니, 대신은 작은 일은 친히 하지 아니하나 도(道)로써 임금을 섬기기를 스스로 다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眩惑)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는데, 현혹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일에 미혹(迷惑)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대저 신임을 오로지 하여 이 이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에 임하여 현혹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또 임금이 사람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두루 알 수가 없으므로, 군자(君子)를 들이고 소인을 물리치는 것은 한 어진 정승을 얻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곧은 사람을 들어서 옳지 못한 사람의 위에 두면 능히 옳지 못한 자로 하여금 곧아지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
순(舜)임금이 여러 사람 중에서
고요(皐陶)를 택하여 등용하자 어질지 못한 자가 멀리 갔고,
탕(湯)임금이 여러 사람에서
이윤(伊尹)을 택하여 등용하자 어질지 못한 자가 멀리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충신(忠信)하며 녹(祿)을 후하게 주는 것은 관리[士]를 권려하려는 소이(所以)이니, 정성으로 대(待)하고 후하게 기르면 관리가 부모를 섬기고 자녀를 기르는 데에 걱정이 없어서 일에 나아가고 공(功)을 세우기를 즐겨하기 때문에, 여러 신하를 내 몸처럼 하면 관리가 예(禮)로써 보답함이 중하다고 이르는 것인데, 몸처럼 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 처지에 두어서 그 마음을 살피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지금 살펴보면, 내신(內臣)은 승정원(承政院)·예문관(藝文館)이고, 외신(外臣)은 각사(各司)인데,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무편무당(無偏無黨)하면 왕도(王道)가 탕탕(蕩蕩)하다’고 하였으니, 원하건대 내외의 신하를 한결같이 대하소서.
때를 맞추어서 부리고 세금 거두는 것을 적게 하는 것은 백성을 권장하는 소이(所以)이니, 때를 맞추어 부리는 것은 바로 맹자(孟子)가 이른바, ‘농사 때를 어기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고, 《전(傳)》에 이른 바, ‘사시(四時)의 사냥을 모두 농한기에 한다.’는 따위가 이것입니다. 거두기를 적게 한다는 것은 바로 맹자가 이른 바, ‘농사 짓는 자는 를 내고 세(稅)는 내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들이 이것입니다. 사람의 심정은 모두 편하려고 하며 또 모두 부유(富裕)하려고 하기 때문에, 때를 맞추어 부리고 거두기를 적게 하는 것은 백성을 권려하는 바입니다.
날마다 살피고 달마다 시험하여 희름(餼廩)이 일에 맞게 하는 것은 백공(百工)을 권려하는 소이라.’고 하였는데, 희름은 이고 일에 맞게 한다는 것은 그 〈만든〉 를 살펴서 그 초식을 올리고 낮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날마다 살피고 달마다 시험하여 그 능함을 헤아리고 녹봉을 일에 맞추어서 그 노고를 보상하면 법도(法度)를 믿지 아니하거나 음교(淫巧)하게 만드는 자가 용납할 바가 없을 것이며, 게으른 자를 힘쓰게 하고 능한 자를 권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백공(百工)이 오면 재용(財用)이 족하다.’는 것은 공사(工事)가 통하고 이 서로 의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는 사람을 전송하고 오는 사람을 맞이하며 착한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능하지 못한 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먼 나라 사람을 관유(寬柔)하는 것이니, 이를 위하여 을 주어서 그 가는 것을 전송하고 그 을 풍족하게 하여 오는 것을 맞이하며, 재주의 능함에 따라 임무를 주어서 그 잘하는 것은 아름답게 여기되, 하고싶지 아니한 것은 억지로 하도록 아니하며 그 능하지 못한 것을 가엾이 여기면 천하의 나그네가 모두 기뻐하여 그 나라의 길에 나오기를 원할 것이니, 에서 이른바, ‘를 잊지 말자.’는 것이 이것입니다.
끊어진 대(代)를 잇게 하고 황폐한 나라를 들어 세우며,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고 위태로운 것을 붙들어 주며, 조빙(朝聘)을 때로 하며, 후하게 보내고 박하게 받는 것은 제후(諸侯)를 회유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끊어진 대(代)를 잇는 것은
무왕(武王)이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뒤를 세운 것이 바로 이것이고, 황폐한 나라를 들어 세우는 것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위(衛)나라를 봉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조빙을 때로 한다는 것은 매년 한 번씩 소빙(小聘)하고 3년마다 한 번씩 대빙(大聘)하며 5년마다 한 번씩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후하게 보내고 박하게 받는 것은, 연사(宴賜)는 후하게 하고 납공(納貢)은 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어지러움을 다스려서 상하(上下)가 서로 편하게 하고 그 위태로움을 붙들어서 크고 작은 것이 서로 구휼하게 하며 조빙을 때로 하여, 그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고 가 법도가 있어서 그 재물을 다하지 아니하게 하면, 전하의 제후(諸侯)가 모두 그 힘을 다하여 왕실(王室)을 보호하고 배반하는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하는 것이 한결같아야 하니, 한결같다는 것은 성(誠)입니다. 또 구경(九經)의 근본은 스스로 수신(修身)하는 데에서 추진되는 것인데,
《대학》에서 이르기를, ‘천자로부터 서인(庶人)까지 일체로 모두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였고,
《맹자》에는,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고 집의 근본은 〈자기의〉 몸에 있기 때문에 군자(君子)는 수신(修身)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구경(九經)이라고 이르는 것의 경(經)은 경상(經常)의 일로서 진실로 만세에 바뀌지 아니하는 떳떳한 도(道)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름다운 말이 이보다 큰 것이 있겠는가? 내가 마땅히 체득(體得)하여 잊지 아니하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9책 571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