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코나기사타케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彦波瀲武鸕鶿草葺不合命)와 타마요리히메노미코토(玉依姬命)의 넷째로 태어난 진무는 15세 때 황태자가 되어 아히라츠히메(吾平津姬)와 결혼해 타기시미미노미코토(手硏耳命)와 키스미미노미코토(岐須美美命)를 낳았다.
이후 일본서기에 따르면 45세에 휴우가쿠니(日尙國 현재의 미야자키 현)의 다카치호노 궁(高千穗宮)에 형제들을 모아서 말하기를 "천손강림 이후 179만 247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국 근처에서만 살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로다. 동쪽에 아름다운 땅이 있어 푸른 산맥이 네바퀴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천하를 다스리기에 어울리는 토지이다. 따라서 이곳을 정벌하여야 한다"라고 말하니 모든 형제들이 이에 동의하여 시작된 것이 그 유명한 진무동정(神武東征)이다. 이로써 삼대째 이어온 휴우가쿠니를 뒤로 한 기나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츠쿠시(筑紫 현재의 후쿠오카 현)의 우사(宇佐)로부터 오카다궁(岡田宮), 아키(安芸 현재의 히로시마 현)의 타케리궁(タケリ宮), 키비(吉備, 현재의 오카야마 현)의 타카시마 궁(高島宮)을 거쳐, 나니와(難波 현재의 오오사카 시) 곶(岬)에서 카와치(河內, 현재의 오오사카 부)의 오오쿠모(青雲), 시라카타(白肩) 나루터에 이르러 상륙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땅의 대호족인 나가스네히코(長髄彦)의 맹렬한 공격을 받아 멀리 후퇴하게 된다. 이 때 맏형인 이츠세노미코토(五瀬命)가 적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어버렸다. 진무는 "태양신의 자손인 우리가, 태양이 뜨는 방위를 공격한 것이 좋지 않았다"라고 깊이 후회하며, 키이(紀伊 지금의 와가야마 현)의 오노미나토(雄水門)로 상륙하여, 카마야마(竈山)로 진군하였다. 그 와중에 중상을 입었던 이츠세노미코토는 숨을 거두었다고. 진무는 형의 제사를 지낸 뒤 쿠마노(熊野)의 미와노무라(神邑)에 도착하여 바다를 건너지만 폭풍을 만나 남은 2명의 형 이나히노미코토(稲氷命)와 미케이리노미코노(三毛入野命)를 잃었다.
겨우겨우 쿠마노 산중에 접어든 진무군의 앞에 거대한 곰이 나타나느데, 이 곰은 그 땅의 토지신의 화신으로 곰이 발산한 독기에 의해 군사들은 모두 실신하여 쓰려져버렸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있던 다카야마노하라의 상고 다섯신 중 한명인 타카미무스비노카미(高御産巣日神)와 진무의 6대 조모이자 일본 덴노가의 수호대신(需護大神)인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는 원군으로 타케미카즈치노카미(武甕槌神)를 보내려 했지만, 타케미카즈치노카미자신이 지상으로 내려 가는 대신 영검 후츠노미타마노츠루기(布都御魂剣)를 내려보냈다. 영검은 쿠마노에 정착하고 있던 타카쿠라지노카미(高倉下神)의 창고 지붕을 뚫고 마루에 우뚝 서 꽂혔다. 이튿날 아침 그것을 발견한 타카쿠라지노미카미가 영검을 진무에게 진상하자마자 군사들이 모두 회복되어 일대의 호족을 쳐부숴나가며 계속 진군할 수 있었다.
허나 난관이 하나 있었으니 진무도 군사들도 큐슈(九州)에서 태어나서 큐슈에서 자란 탓에 그 주변의 지리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부락이라면 모르겠지만, 산중에서의 행군에 땅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은 큰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의기양양하게 진군하였던 것이 잘못이었는지 금새 길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이를 보고 있던 타카미무스비노카미가 즉시 카모노타케츠미누미노미코토(直ちに賀茂建角身命)를 호출하여 진무를 조력할 것을 명령하였다. 카모노타케츠미누미노미코토는 곧바로 3개의 다리를 가진 칠흑, 혹은 붉은 까마귀로 나타나서 동정군의 머리 위로 춤추듯이 내려갔다. 진무는 갑자기 나타난 이 희한한 까마귀를 신의 사자라고 확신하고, 전군에게 까마귀의 뒤를 쫓도록 명령하였다. 야타가라스(八咫烏)에게 이끌린 진무군은 무사히 산을 넘을 수 있었다.
동정군은 이제 요시노(吉野), 우다(宇多)로 진군하였다. 그 땅은 에우카시(兄宇迦), 오토우카시(弟宇迦斯)라고 하는 누가봐도 형제임을 뻔히 알 수 있는 호족들이 통치하는 땅이었다. 에우카시는 진무에게 자청하여 이 땅을 양보하니 화해성립의 연회에 나오라고 하였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함정이었지만. 에우카시는 연회장에 장치를 설치하여 진무가 들어가면 천정이 떨어져내리도록 하였다. 하지만 형의 파렴치한 행동에 질린 오토우카시가 진무에게 그 일을 밀고하여 연회장에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된 것은 에우카시가 되었고, 연회장은 바로 에우카시의 무덤이 되었다.
|

|
솔개몬 넌 내꺼야 "장님을 만드는 빛용접!!" 공격! |
그리하여 우다까지 정벌한 진무는 드디어 야마토까지 쳐들어가 맏형 이츠세노미코토를 죽인 숙명의 라이벌 나가스네히코와 다시 대립하게 된다. 진무와 나가스네히코의 싸움은 태양신의 후손과 킨키(近畿) 일대를 다스리는 패자(覇者)의 대결이었다. 양군 모두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원정에 지친 진무군은 밀려나 배수의 진을 치게 되었다. 이렇게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을 때, 전황은 생각지 못한 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무가 최후의 돌격을 각오하고 하늘을 올려다 본 바로 그때였다. 하늘에서 황금색의 솔개가 날아와서 진무가 쏘려하는 활을 막았다 그리고 마치 번갯불과도 같이 빛을 비추며 나가스네히코의 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빛을 뒤집어쓴 나가스네히코군은 모두 눈이 멀어 전의를 상실한 채 도망쳐 버렸다. 바싹 뒤를 쫓는 추격군을 피해 어떻게든 체제를 바로 세우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나가스네히코의 앞으로 뛰쳐나온 것이 바로 나가스네히코의 식객 중 한명이었던 니기하야히노미코토(饒速日尊)였다. 니기하야히노미코토가 십종신보(十種神宝)의 하나, 야츠카노츠루기(八握剣)를 번쩍이며 한번 휘두르자 나가스네히코의 목은 경악의 표정을 띄운 채 땅으로 떨어졌다(아 망했어요. 식객한테 배신당하고). 니기하야히노미코토는 처음부터 이때를 위해 나가스네히코의 곁에서 지내던 것이다. 니기하야히노미코토는 그대로 진무의 진으로 향해 야마토의 지배권을 진무에게 헌상했다.
이로서 호노니니기로부터 대대로 숙원으로 삼아왔던 전국토통일의 꿈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하여 52세 되던 BC 660년 카시하라 궁(橿原宮)에서 즉위식을 가지고 덴노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98세에 히메타타라이스즈히메노미코토(媛蹈鞴五十鈴媛命)와의 사이에서 카무야이미미노미코토(神八井耳命)와 카무누나카와미미노미코토(神渟名川耳尊, 스이제이 덴노)와 히코야이노미코토(日子八井命)를 낳는다. 이후 정사를 돌보다 137세에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