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
류 근 만
아침부터 핸드폰 소리가 요란하다. 이른 아침에 웬 전화야? 하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었다. 핸드폰 속에서 굵은 목소리로 ‘대의원님! 농협000 상무인데요, 오늘 대의원총회 알고 계시지요? 시간 늦지 않게 나오세요’ 하면서 대의원총회에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였다. 친절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전화라 생각하니 고마웠다. 사실은 엊저녁에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잠이 들었다. 대의원 총회에 참석하여 정보를 공유하려고 준비하느라 늦게 잠이 든 것이다.
지난 1월 30일 오전 10시, 농협에서 대의원총회가 있었다. 나는 대의원 총회의 1, 2부 행사가 모두 끝나면, 잠시 시간을 할애하여 대의원들에게 유용한 농사정보를 공지하려 했던 것이다. 농협대의원들은 모두가 농업인이다. 농업인은 누구나 농사법에 대하여 잘 아는 것 같지만 항상 새로운 정보를 필요로 한다. 나는 수시로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를 접속한다. 새로운 정보는 지인들과 공유를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나도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지 않았던가? ‘농자는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의 철학자 ⌜마르크스 키케로⌟는 ‘확실한 소득이 보장되는 직업 가운데 가장 좋은 직업이 바로 농사다. 농사 보다 더 생산적이면서 즐겁고 자유인에게 적절한 일은 없다.’고 한 고전까지 들추어서 준비를 하였다. 물론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노력 없이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남이 장에 가니까 씨오쟁이 메고 따라가는 격이 아니고 기술을 배워야 한다. 學歷(학교를 다닌 경력) 보다 學力(스스로 배우는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 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이번 대의원 총회는 ‘2018년도 정기총회’ 이다 보니 처리 안건이 많고 의결사항도 많아 예정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회의가 끝났다. 사회자가 폐회와 동시 점심식사 장소를 안내 하였다. 나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점심식사를 하면서 조합장한테 내 뜻을 전달하였다. 내 말을 들은 조합장은 ‘좋은 생각인데 아쉽게 되었다’면서 전달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나는 집에 와서 농협조합장에게 내가 준비한 정보를 재편집하여 이메일로 보냈다. 전체 조합원에게 공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다음 날 내가 보낸 이메일을 열어 본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2월 중에 조합원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가 있는데 그 때 유인물로 배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전화였다. 내가 보내는 농사정보가 조합원들에게 전달 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농자는 쌀 한 톨, 콩 한 톨도 헛되게 흘리지 않는다. 넓은 논바닥에 떨어진 나락이나 밭에 떨어진 낟 곡식을 하나하나 줍는 것이 농심이다. 경제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다투지만 농자는 그렇지 않다. 정모 대기업 회장은 땅에 천 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떨어져 있어도 시간이 아까워서 줍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은가?
최근에 우리사회의 트랜드로 小確幸(소확행)이 소개되고 있다. 이는 사서삼경, 삼강오륜에나 나올 듯한 한자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지만 단어 자체는 낯설다. 소확행은 일본인 소설가 하루키의 수필집에 나오는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쌓여있는 것 등, 사소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때의 기분‘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농자의 마음을 ‘소확행’에 비유하고 싶다. 이른 봄 겨우내 얼었던 흙을 힘겹게 떠들고 뾰족하게 내미는 노란 새싹을 바라보는 소박한 농자의 마음, 채소 한 포기, 꽃 한 포기 가꾸는…, 사소하지만 소박하고 수줍어하는 봄 처녀 마냥 가슴 설레는 행복감, 이런 농자의 마음이 ‘소확행’이 아닌가 싶다.
벌써 立春(입춘)이 지났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다. 금년 입춘추위는 유난스럽게도 차갑다. 그래도 이 날부터 봄이다. 옛 풍습으로 종이에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글을 써서 대문에 붙인다. 즉 봄을 맞이하여 吉運(길운)을 기원하고, 맑은 날 많고, 좋은 일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는 의미이다. 봄이 되면 農者(농자)는 일 년 농사준비에 바쁘다. 하기야 요즈음에는 농한기가 없어진지 오래지만 말이다. 한 겨울에도 과수원 경영자는 전지를 하고, 시설재배 농가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수확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나는 과수원 주인도 아니고 시설재배를 하는 농군도 아닌데,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다. 지난해에는 농기계 안전관리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계를 임대하지 못하여 서리태(검은콩)를 수확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금년에는 1월중에 농업기술센터에서 일찌감치 교육을 이수하였다.
나는 밭에 나가 고추 몇 포기, 가지 몇 포기, 상추 쌈 등 몇 종의 농작물을 내 쉼터에서 가꾸는 어정쩡한 도시농부다. 금년에는 재미삼아 꿀벌을 키우려고 시민대학에서 수강 중이고, 표고버섯도 키워보려고 참나무 몇 토막을 준비하였다. 田園(전원)에서 글감을 찾아 수필도 쓰면서 힐링하는 소확행의 삶을 살기 위해서다.
나는 일간신문에서 서정홍 시인이 쓴 ‘전원에서 띄운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이 글에서 “아내와 붙어 있는 농촌생활, 사소한 일로 종종 다투지만, 서로 잘 알게 되고 깊은 정 들어, 가장 가까운 소중한 벗 함께 할수록 사랑 더 깊어져” 를 읽고, 새삼 아내 사랑에 소홀했던 지난날을 뒤돌아보는 게기가 되었다.
나는 비록 보잘 것 없는 도시의 농부지만 ⌜農者天下之大本⌟을 스스로 깨닫고, 아내와 함께 소확행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