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알아두면 좋은 정보
예의 바른 사람이 건강하다
섬김과 순리로 사는 예(禮)의 지혜(2)
예의 하면 예의범절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의는 행하는 것이라 할 때, 예의범절은 ‘가례’나 ‘제례’처럼 의례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예의 참마음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도 섬기고 사물도 아끼고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겸양의 마음과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은 자기중심적인 ‘나’를 내세우고는 가능하지 않겠지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의 순리대로 사는 행복. 그런 예의의 시대를 기다립니다.
세 살 아기에게도 머리 숙여 인사하던 103세 할아방
제주도 애월읍의 전설 고이기 옹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1893년 가을, 육지에서는 동학혁명의 조짐이 보이던 조선시대 말기였다. 남도 제주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천수를 다하고 1995년 봄 103세의 일기로 타계한 고이기 옹이다. 봉건 왕조의 붕괴, 일제강점기와 제주 4.3항쟁, 6.25전쟁…. 그 험난한 격동기를 겪어내고도 온화한 성품과 건강을 지키며 백수를 넘긴 고이기 옹. ‘손자의 친구들은 물론, 세 살 먹은 꼬마에게도 먼저 인사를 하였다…’로 시작하는 할아방의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사람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일을 할 때나 사물을 대할 때조차 섬기기를 다하였던 고이기 할아방의 아름다운 전설은 이제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주는 마음의 등불이 되었다.
글 이권자, 사진 정하나
자식에게도 모자 벗으며 맞절하는 집
“우리 마을에서 할아버지에게 인사 안 받아본 사람이 없어요. 멀리서도 사람만 보이면 인사를 하셨으니까요. 다음에 만나면 내가 꼭 먼저 인사드려야지 해도 매번 먼저 허리 굽혀 정중하게, ‘아, 편안하신가? 어디 밭에 감서?’ 하시면서요.”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고이기 옹의 생전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아버님은 저희 자식들이 밖에 볼일이 있어 나갈 때도 그러셨어요. ‘아부지, 다녀올게요’ 하면 쓰고 있던 모자까지 벗으시면서 ‘갔다 오쿠다’ 하고 인사를 하세요. 그냥 ‘갔다 와라’ 하셔도 될 텐데. 동네 분들이 이 집은 아버지가 자식들한테 모자 벗으면서 맞절하는 집이라고 했으니까요.”
막내며느리 홍종화(66)씨는, 조용한 성품으로 남한테 싫은 소리를 일절 안 하시던 시아버지는 누구에게도 하대(下待)를 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어린 손자의 친구들이 놀러 와도 허리를 90도로 구부려 인사를 한 후 “노심노심(노시게, 노시게)” 하고는 자리를 피해주셨단다. 길에서 아이를 만나도 역시 머리 숙여 인사하시며 “어디 놀러 가심?(어디로 놀러 가시는가?)” 하고 길을 비켜주셨다.
어른이 먼저 인사하니 젊은이들이 어찌 인사를 안 할 수 있으랴.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객지 사람조차 인사성 밝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던 고이기 옹이다. 할아버지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던 배광시(70)씨는 마을이 반도시화되고, 외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고이기 옹이 생각날 때가 더욱 많아졌다고 했다.
“마을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가 영감님 얘기를 하지. 인성교육이 문제다, 영감님 같은 분이 계셔야 되는데….”
설날이면 가가호호 방문하며 세배를 다니던 풍습도 점점 줄었다. 해서 하귀리에서는 새해가 되면 어르신들을 모시고 주민들 이백여 명이 함께 합동세배를 드린다. 방학 때는 한자도 가르치고 ‘고이기 할아방’ 이야기도 들려주며 예절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덕분인지 다행히 예의 바른 마을로 알려지고 있어 그나마 고이기 옹 앞에 면이 선다”는 홍순경(76)씨. 현재 마을의 제일 어른인 그를 고이기 옹의 막내 아들 고태식(65)씨는 아버지와 비슷한 어르신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홍순경씨는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할아버지는 정말 부지런하고 근면하시고 남한테 폐 끼치지 않는 분이었어요. 다들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웃으로 태어나 60년 동안 많은 감동을 했었습니다. 저에게 근면함이 있다면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순경씨는 “고이기 옹은 쉬지 않고 일하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할아버지가 젊으실 때 소달구지를 끄셨습니다. 그 당시 우리 마을에 소주공장이 있었는데, 큰 술독 열두어 개를 싣고 배달하는 일을 하셨어요.
새벽 서너 시에 달구지에 싣고 저 모슬포 아주 먼 데까지 울퉁불퉁 험한 길을 걸어서 왕복하는 거죠. 그렇게 갔다 오면 저녁인데도, 쉬지 않고 바로 또 밭에 가서 일을 하시고, 바다에 나가셨으니까요. 아무튼 대단한 분이었어요.”
“돈만 벌려고 하면 일에 지쳐버려”
1893년 고이기 옹은 5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식솔들은 더욱더 가난에 허덕이게 된다. 일제 치하가 되자 고깃배를 타기도 했던 고이기 청년은 1920년대 중반 막내 동생 고재량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그랬듯이 워낙 열심히 일을 한 결과, 고베항에서 하역 인부를 하던 고이기 청년은 선적 화물 관리 업무를 하게 되고, 고재량은 자전거포에 취직하여 나중에는 독립된 가게를 마련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 형제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이었다. 형제는 각각 3천~4천 평의 농토를 샀다. 그때가 고이기 할아버지가 50대, 고재량 할아버지는 40대의 문턱을 막 넘어선 나이였다.
이후 ‘정말 살아남기 힘들었던’ 4.3항쟁과 6.25전쟁을 겪으며 형제는 농사도 짓고 우마차도 끌었다. 마치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열심히 일했다. 1994년 한 시사 월간지가 ‘장수 노인’ 특집으로 고이기 옹을 인터뷰했을 당시, 기자가 물었다. “평생 일을 해오셨는데, 지겹거나 힘들지 않으셨어요?” 고이기 옹은 이렇게 답한다.
“일을 해도 연구를 잘해서 요령 있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달파서 못해.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잘 가려서 순서 있게 하면 잘되고 힘도 들지 않는데 뒤죽박죽으로 하면 힘이 들어 견디지 못하지. 농사일이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지만 다 순서가 있고 이치가 있거든. 또 돈만 벌려고 마음을 먹으면 사람이 일에 지쳐버려. 그저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겠지, 일만 하면 된다 하는 마음으로 하면 일도 수월하고 정말로 좋은 일도 생기는 법이거든.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 팔자에 태우면 오게 돼 있어.”
백년을 넘게 부지런히 살아온 어르신에게서 순리와 이치를 따르는 마음을 보게 된다. 더욱이 옹은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한 게 아니었다. 배광시씨의 회고가 이어진다. “나락이나 보리를 길에다 늘어놓고 건조시킬 때 하루에 두 서너 번은 뒤집어줘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 거 영감님이 다 뒤집어주고 다녔어요. 동네 농로를 보수한다든지 공동작업 할 적에도 앞장서시고, 남 주기 좋아하시고, 그렇게 인정이 많으셔서 그런가, 백 살이 넘어서도 장마 때 비 오면 삽 들고 나서실 정도로 건강하게 장수하셨지요.”
동생 고재량씨는 고이기 옹이 타계한 지 5년 후 99세를 일기로 형님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이들 형제들이 장수했던 비결의 하나로 “달구지를 끌며 오래 걸은 덕”이라고도 한다. 특히 고이기 옹은 ‘소식(小食)’에 철저하셨다. “한 끼에 밥 반 공기 정도를 드셨는데, 딱 당신의 식량을 지켜서 하루에 네 끼에서 다섯 끼 정도를 나눠 드셨어요. 식사하신 바로 뒤에는 아무리 맛있는 후식을 드려도 절대 안 드셨어요.”
한여름에도 차가운 음식은 피했고 뜨거운 된장국은 빠지지 않아야 했다. 몸이 불편하거나 배가 아프면 식사를 줄이거나 차라리 굶으며 조절하셨지 평생에 약을 드신 적도 없다고 한다. 몸에 맞지 않는다며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았다. 1978년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되신 시아버지를 17년간 모셨던 며느리 홍종화씨는 “돌아가실 때까지 속옷도 늘 직접 빨래하시고, 방걸레질도 손수 다 하셨다”며 그 정갈하고 소탈한 인품을 그리워했다.
할아버지가 102세 때의 일이다. 고태식씨 가족은 할아버지 혼자 따로 드시면 적적하실까봐 꼭 식탁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해왔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밥상을 방에 따로 차려달라고 하신 것이다. 노환으로 자꾸 흘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손자들은 할아버지 심심해서 안 된다며 밥그릇을 들고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자식이라고 손자라고 함부로 대한 적이 없고, 자손들은 어떻게 하면 잘 모실까를 고민했다. 고태식씨 부부는 아버지를 제일 잘 모시는 길은 스트레스를 안 드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마음이 편하실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그 첫째가 싸움을 안 하는 것이었다. “가족끼리 말다툼조차 없게 했어요. 그게 부모한테 자식 된 도리예요. 간혹 싸울 일이 생기면 우리 부부는 밭으로 나갔지요.”(웃음) 할아버지의 이발은 막내손자 고봉준(35)씨 담당이었다. 햇볕 따스한 날이면 마당에서 이발을 해주는 손자에게서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던 고이기 옹.
그러던 1995년 4월 2일이었다. 평소처럼 밭을 한 바퀴 돌아보고 들어온 고이기 옹은 몸이 좀 이상하다며 자리를 폈다. 그리고 4월 4일 오전 10시경 10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날짜도 스스로 정하신 듯했다. 그날은 집안일을 논의하기 위해 먼 친척까지 다 모인 날이었고, 군대 간 막내손자 고봉준씨가 휴가를 나오는 날이었다. 워낙 건강하셨기에 돌아가시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던 가족과 친지들은 그렇게 ‘할아버지의 배려’로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는 가장 큰 영광이고 복이었습니다. 부모가 아프지 않고 돌아가신 것만도 자식에게는 큰 복이잖아요. 거기다 저희 아이들이 산교육을 받아서인지 어른들한테 참 깍듯이 잘해요. 저희한텐 그게 돈보다 중요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13년. 하지만 고태식씨 가족에겐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할아버지는 큰 힘이 되어주셨다.
고태식씨의 장남 고형욱(38)씨도 예의에 대해 묻자 고개를 갸웃했다. “예의요?…. 저희는 엄한, 그런 예의는 잘 모르겠고요. 있는 그대로 그냥 나오는 거 같애요.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이런 사람 되라, 저런 사람 되라, 하신 적이 없어요. 그냥 알게 모르게 배운 게 몸에 배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저도 애들한테 할아버지 이야기라도 많이 해주려구요.” 예의 바르고자 주위 요란하게 훈육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이웃을 공경하고, 가족을 배려하며, 자신을 다스리던 고이기 옹은 이렇게 ‘예의와 섬김의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는 사람들 마음 하나하나에 살아 있는 별빛이 되었다.
길 안내 받으면 제발 인사하고 갑시다
구두수선집 안내판이 말하는 우리의 ‘예절’
며칠 전 남대문 시장 근처를 지나는데 구두수선집에 ‘길 안내 받으면 제발 인사하고 갑시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길을 알려주면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뒤도 안 보고 가기 바빠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화내는 사람도 있고, 손님과 이야기 나누는데 알려주지 않는다고 재촉하는 사람도 많죠. 길 묻는 것을 당연한 권리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반말을 할 때도 있어요. 오죽하면 그런 글을 써 붙였겠어요?”
아주머니는 “물어보는 사람은 하루 평균 1백여 명인데 이중 10명이나 인사를 할까”란다. 올해 63세이신 아주머니가 38세 때부터 아저씨 일손을 거들기 시작해 올해로 26년째라는 구두수선집.
그간 서울의 모습도, 사람들 인정과 예의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 아이들 예의 없다고 혼낼 수만도 없는 일이에요. 나이 든 사람들도 예의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자기 편하면 된다는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십여 년 전, 나 역시 날이면 날마다 어지간히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되어 호구지책으로 노점을 했는데 그때 나도 아주머니처럼 길을 물어보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적잖이 받았었다.
‘길 물어보지 마세요’ ‘길 물어봐도 안 가르쳐줌’이라고 써 있는 것도 본 적이 있다. 함께 가던 이는 “장사하는 사람이 참 야박하다” 했다. 하지만 난 백번 이해를 했다. 하루 1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분이 그런 글을 써 붙인 이유는, 예의 없는 어른들을 그대로 따라 할 아이들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돌아볼 일이다. 나는 몇 점짜리 예의를 가진 사람인가. 내 아이가 몇 점짜리 예의 바른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가!
무례한 사람에게도 극진하게 대해보니
권윤정 37세. 한국서비스연구소 실장
굳이 안 써도 되는 부정적인 말들을 없애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찡그리거나 ‘짜증 나’ 등의 나쁜 말을 하면 얘기해달라고 했다. 근데 생각보다 자주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에는 친구가 “니가 요즘 남편 욕을 안 해서 좋다”라고 했는데, 그동안 남편 욕을 많이 했었구나 반성했다. 나쁜 말을 빼고 난 뒤부터 왠지 나와 있으면 따듯한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다.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또 살다 보면 상대가 무례하게 굴어 기분이 나빠질 때가 있다. 언젠가부터 ‘가능하면 상대의 마음을 풀어줘보자’라고 마음을 바꾸었다.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례해 보이는 이들에게 더 극진히 대했더니, 신기하게도 그 사람들도 예의 바르게 대해주었다. 내 마음에 따라 거울처럼 비춰주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
친절과 예의로 대할 때 상대 모습을 떠올려 보라
고혁준 28세. 제주 리조트 영업부 근무
전 직장이던 항공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5분 전인데도 탑승하지 않은 승객이 있었다. 손님을 찾으러 다니다가 거동이 편치 않은 할머니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꼭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통사정을 하셨다.
순간 빨리 모셔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할머니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 가족과 함께 찾아오신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당시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셔서 병원에 가야 했는데, 다행히 임종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작은 배려가 상대방에겐 중요한 순간일 수 있음에 매 순간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면 처음엔 친절해야지 해도 스트레스가 많아지면 잘 안 된다. 이럴 때 “배려했을 때의 상대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예절의 기본은 배려다. 그 마음이 있으면 예의는 저절로 갖춰지는 거 같다.
작은 물건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박창욱 40세. 머니투데이 기자
어느 날 아침, 욕실의 비누가 쓰기에는 참 작다 싶었다. 마침 새 비누가 없어 하는 수 없이 그 작은 조각을 써야 했다. 퇴근할 때 깜빡 잊어 남은 비누조각을 한참 비벼서 세수하고 손발도 씻었다. 그렇게 사흘, 그날 새 비누를 사왔지만, 결국 그 작은 조각을 무려 4일이나 더 썼다. 그동안 내게 비누는 흔하고 하찮은 물건이었다. 적당히 쓰다가 작아져 거품이 잘 안 나면 별 생각 없이 버렸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버렸던 작은 비누조각들이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 작은 비누조각이 내 얼굴과 손발을 1주일씩이나 깨끗하게 해주었으니까. 그 이후 다른 물건들도 소홀히 대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작은 물건도 소중히 여기다 보면 그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될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바로 예의이다.
예의 바르면 생김도 반듯하다
100세 이상 장수 어르신들이 알려주는 건강 비결
김종수씨는 1983년부터 10여 년 이상 백 세 이상의 장수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그 비결을 연구한 결과 공통적으로 예절을 행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예절을 행하는 순간 겸손한 마음, 차분한 마음, 조심하는 마음, 참는 마음 같은 건강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 손으로 물건을 드리면 배에 힘이 생긴다
우리는 어른에게 물건을 드릴 때 두 손으로 드린다. 한 손으로 물건을 드리면 배에 힘이 없다. 그러나 두 손으로 드리면 배에 힘이 생긴다. 당장은 한 번이지만 평생 예절을 행하면 저절로 배에 힘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머리를 숙여보자. 저절로 아랫배에 힘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머리를 들면 배에 힘이 없다. 그래서 사람은 인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무릎 꿇는 자세, 등이 곧게 펴진다 또한 아랫배에 힘이 모이는 아주 좋은 자세이다. 온몸의 경락도 뚫리게 된다. 요즘 청소년들은 등이 꼬부라지고, 턱을 괸 채 체중을 의지하니,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들 대부분 위와 장이 수축되어 소화가 잘 안 되고, 신경질적이며, 급하고, 산만한 경향이 있다. 언젠가 항상 꾸부정한 자세인 소년을 만난 일이 있다. 생각대로 심장과 폐가 나쁘고 호흡기가 나빠 늘 코맹맹이 소리를 내었다. 자세를 고쳐주었더니 건강도 되찾았다.
존댓말이 서로의 건강을 지켜준다 처음 만난 사람이 반말을 하면 남녀노소 관계없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갖게 되고 화가 난다. 기분이 나쁘면 따뜻한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서 열이 나고 인상을 쓰게 된다. 머리의 차가운 기운은 몸으로 내려와 각종 질병을 만든다. 반면 존댓말을 하면 말하는 자신의 마음도 조심하고 차분한 마음을 갖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흔히 “아빠, 밥 먹어”라고 반말을 한다. 이때 아버지가 건강하고 사업이 번창할 때는 “그래, 밥 먹자”라고 응대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건강을 잃고 실직해 있을 때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게 되며 점점 무기력해진다.
부부지간에도 서로 존댓말을 사용해보자. 설사 화가 나더라도 존댓말에서 반말을 하게 되지 바로 험한 욕설로 내려가지는 않는다. 반말을 사용하는 어린이는 장난이 심하고 산만하며 집중력이 없다. 그러나 존댓말을 사용하는 어린이는 차분하고 어른스럽고 사려가 깊다.
예절 바른 사람은 얼굴도 반듯하다 김성술(당시 119세)옹과 여행을 했을 때의 일이다. 기차로 왕복 9시간을 여행하였는데 앉아 있는 자세가 발끝이 11자이며 발과 무릎 사이가 주먹 하나 정도의 넓이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다른 장수 어르신들도 모두 같았다. 장수하는 분들은 반드시 허리를 곧게 펴고 앉는다. 그리고 턱을 약간 앞으로 끌어당긴 상태에서 고개를 똑바로 세운다. 바닥에 앉을 경우에는 이른바 책상다리를 하거나 어느 한쪽다리를 올려 놓는 반가부좌,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즉 좌우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또 전후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앉되, 아랫배를 약간 내미는 듯한 기분으로 앉는 것이다.
이때 어깨의 힘은 반드시 빼고 두 손은 무릎 위에 편안히 얹어 놓는다. 이처럼 앉을 경우, 척추가 바로 서게 되고 우리 몸에서 특히 독맥의 기가 원활히 소통될 수 있다. 바른 자세와 예절을 갖춘 사람은 얼굴도 반듯하다. 어린아이와 장수 어르신들도 얼굴이 반듯하며 좌, 우가 달라진 사람은 없다.
올바른 자세는 시력을 회복시킨다 장수 어르신들은 대부분 눈이 건강했다. 105세의 나이에도 안경 없이 신문을 읽는 분도 계셨다. 밥을 굶었을 때 눈 주위가 딸려 들어가는 느낌을 생각해 보자. 밥을 굶으면 위와 장이 비게 된다. 반대로 배에 힘을 주어 보자. 배에 힘이 들어가면 소화, 배출 능력이 좋아지고 오장육부가 제 기능을 한다. 이럴 때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이는 눈이 위와 장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수면으로 눈의 피로를 풀어주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장수 어르신들의 자손을 보면 모두가 자세가 바르며 안경을 쓴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시력이 떨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은 등이 굽고 기운이 없는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운이 없으면 등이 굽고 위와 장이 축 늘어진다. 이때 몸의 따뜻한 기운은 머리에 올라가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눈이 침침해지며, 시력이 점점 떨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침묵의 훈련 말을 많이 하면 쉬 피곤해지고 머리로 뜨거운 기운이 몰려 잠이 오게 된다. 몸의 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24시간 동안 말을 한마디도 안 해보자. 그러면 평소 아무렇게나 내뱉던 말들이 대부분 쓸데없는 말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기가 했던 불필요한 말, 남을 아프게 한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생각할 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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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김종수(57)님은 과음과 스트레스로 앓은 후부터 건강한 우리 생활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1983년부터 십여 년 넘게 전국의 100세 이상 장수 어르신 300여 명을 찾아다니며 건강한 삶에 대해 관찰,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1991년 강원도 정선에 건강교육원인 ‘기림산방’을 열어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건강은 상이고 병은 벌이다> <만병을 낫게 하는 두한족열 건강법> 등이 있습니다.
출처 _ 월간 마음수련 2008년 7월호
마음수련 웹진 http://webzine.ma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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