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명품]
앱솔루트 보드카
섞이고 싶지 않은 순수의 욕망에 현대미술의 감성을 입히다
조혜덕 ‘인터알리아 아트 컴퍼니’ 아트 컨설턴트
‘미국에 석유가 있다면, 스웨덴에는 앱솔루트가 있다.’
스웨덴에서 앱솔루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앱솔루트를 탄생시킨 라르 올슨 스미스(Lars Olsson Smith)는 세계 보드카 시장을 석권한 ‘보드카의 왕(King of Vodka)’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억L가 넘게 팔린 앱솔루트를 정작 본인은 거의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라르 올슨은 태어날 때(1836년) 고아였다. 가난에 찌들었던 그는 아홉 살 때 고향을 떠나 스톡홀름의 부잣집(카를 스미스)에 입양됐다. 사업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14세에 스웨덴 보드카 시장의 3분의 1을 석권했다. 그야말로 ‘10대에 떼돈을 벌고 20대에 스웨덴의 전설이 됐다’.
순수함에 대한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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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웨덴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는 앱솔루트 보드카.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술에 집착했을까? 도대체 앱솔루트가 어떤 술이기에 올슨 스미스는 한평생을 바쳤을까? 명주(名酒)에는 고향이 있다. 코냑이 프랑스 남서쪽 코냑(Cognac)에서, 샴페인이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Champagne)에서 탄생했다면, 앱솔루트는 스웨덴 남부의 작은 마을 아후스(Ahus)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아였던 올슨 스미스의 고향이다. 부모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가 고향에 대해 보이는 애착은 ‘완벽한 순수’를 추구하다 못해 거의 광적인 수준으로까지 발전한다.
밀에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은 재료를 섞는 다른 보드카와 달리 앱솔루트는 아후스 지방의 추운 얼음 속에 묻혀 있다가 봄에 싹을 틔우는 겨울 밀만 사용한다. 물은 4만년이 넘도록 빙하 속에 갇혀 있다가 흘러 나온 아후스의 샘물만 고집한다. 술을 증류하는 공장도 오직 한 곳뿐이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팔린 모든 앱솔루트는 아후스의 밀과 아후스의 물을 원료로 하여 아후스의 증류소에서 제조한 것이다.
이처럼 철두철미한 ‘원 소스(one sour-ce)’ 전략으로도 ‘완벽한 순수’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올슨 스미스는 열을 가해 보드카를 증류하는 획기적인 ‘연속식 증류법’을 개발했다. 엄선한 밀과 원시의 물로 담근 술을 수백 번이나 증류시켜 만든 앱솔루트는 도대체 어떤 맛이 날까? 올슨 스미스는 이 술을 ‘앱솔루트 브뢴빈(Absolut Branvin)’이라 불렀다. 당시 스웨덴에서 보드카를 브뢴빈(Branvin) 곧 ‘불타는 와인(Burning Wine)’이라 부른 걸 보면 그 맛을 짐작할 수 있겠다.
올슨 스미스의 결벽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앱솔루트는 술이 아니라 약이라는 전제 아래 술병이 아닌 약병처럼 생긴 용기에 담았다. 따르기 쉽게 목이 길다. 색깔을 넣은 술병이 아니라 깨끗하고 청정한 느낌을 주는 투명한 ‘약병’처럼 생겼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그는 앱솔루트가 속세의 술이 아니라 천상의 약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술병은 가능한 한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철의 함량이 낮은 특수한 모래를 사용한다. 모든 병은 앱솔루트를 담기 전에 반드시 앱솔루트로 먼저 헹군다. 이 독특한 술병은 아후스 부근의 한 공장에서만 제조한다.
올슨 스미스는 병에 붙이는 라벨도 불순물이라 여겼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속에 있는 알맹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라벨도 떼어버렸다. 경쟁자가 화려한 병에 요란한 상표를 붙일 때 앱솔루트는 투명한 병에 상표 대신 브랜드, 창업자, 자신의 초상을 새겨 넣었다. ‘앱솔루트 세상에서 편견 따위는 없다(In an Absolut world, there are no labels)’는 것이다.
열등감을 극복한 예술의 힘
앱솔루트는 미술, 패션, 음악 영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창의와 재치가 느껴지는 광고와 다양한 에디션 프로젝트(Edition Project)를 선보여왔다. 그중 화가들이 디자인한 병(bottle)이 인상적이다. 2005년 천사와도 같은 하얀 옷을 입은 ‘앱솔루트 세컨드 스킨(ABSOLUT SECOND SKIN)’을 시작으로 올해에는 라벨과 로고가 전혀 없는 네이키드 바틀인 ‘앱솔루트 노 레이블 (ABSOLUT NO LABEL)까지 출시했다.
앱솔루트 광고 중 ‘아트 시리즈’ 프로젝트는 1985년 팝 아트의 창시자인 미국 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로부터 시작됐다. 앤디 워홀이 제작한 ‘ABSOLUT WARHOL’은 전체 병의 이미지보다는 로고가 있는 부분을 대상으로 했다. 광고 속에서 투명한 병은 검은색으로, 로고는 알록달록한 색으로 그려져 있다.
“평소 앱솔루트 병이 주는 느낌을 좋아해 창작을 해보고 싶은 영감을 느꼈다”라고 말한 워홀은 속이 보이지 않게 어두운 색으로 칠한 병에 투명한 앱솔루트를 담아 내용물을 상상하게만 할 뿐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마셔보거나 경험해봐야 그 맛이나 사람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처럼 앤디 워홀은 앱솔루트의 내면을 철저하게 숨겼다.
그렇다고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경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 화려하고 발랄한 원색을 통해, 앱솔루트에 취하면 검은 베일 뒤에 숨어있는 그 진하면서도 순수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과 기대를 표현했다.
자신의 수줍음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앤디 워홀이 선택한 표현 방법은 실크 스크린이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스크린 판화를 통해 한정된 10가지 색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같은 작품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판화를 통해 예술의 대중화를 꾀했고, 강렬한 형광 빛이 도는 색을 통해 자신의 순수한 정체성을 드러냈다.
앤디 워홀·키스 해링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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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앤디 워홀의 작품(우)키스 해링의 작품
앤디 워홀이 앱솔루트에 추천한 사람은 키스 해링(Keith Haring)이다. 키스 해링(1958~1990년)은 누구나 쉽게 하는 낙서를 예술 영역에 끌어들여 새로운 낙서 회화를 창조해낸 미국의 팝아티스트다. 그는 사랑, 평화, 전쟁처럼 추상적인 주제를 가장 순수한 낙서를 통해 표현한다.
해링이 제작한 ‘앱솔루트 해링(ABSOLUT HARING)’은 강렬한 원색을 배경으로 사람처럼 생긴 아이콘이 앱솔루트를 둘러싸고 환호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마치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천진난만하다. 너무 쉽고 간단하게 그려진 느낌마저 든다. 인생이 항상 진지하거나 무거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듯이, 앱솔루트가 항상 진한 독주가 아니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술이라는 인상을 준다. 예술의 가장 궁극적인 경험은 순수로의 회귀라고 주장한다.
예술의 힘은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나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에서 온다. 또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을 어느 순간 갑자기 가득 채워줄 때 진한 감동이 몰려 온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어떤 대상이나 표현 기법을 집요하게 추구해 놀라운 감동을 만들어낸다. 명품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조혜덕 ‘인터알리아 아트 컴퍼니’ 아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