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 우뚝 솟은 봉우리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든 것 같기도 하고 용의 머리 같기도 하다고 해서 잠두(蠶頭) 또는 용두(龍頭)로 불리던 서강(西江) 밖의 봉우리가 절두산(切頭山)이 된 데에는 가슴 시린 아픔이 있습니다. 대원군이 자신의 쇄국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함으로써 당시 절두산에서는 수많은 교우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선참후계(先斬後啓) 식으로 무명의 순교자들이 아무런 재판의 형식이나 절차도 없이 처형되었고, 그래서 29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66년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해 순교터에 성당과 순교 기념관을 건립을 시작해 이듬해 10월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우뚝 솟은 절벽 위에 3층으로 세워진 기념관은 우리 전통 문화와 순교자들의 고난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절두산 기념관은 순례성당과 순교 성인 27위와 1위의 무명 순교자의 유해를 모신 지하 성해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수많은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된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사를 대표하는 성지이나 인근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주변 환경이 급속도로 훼손되자, 1997년 11월 교회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으로 성지 일원을 '양화나루, 잠두봉 유적'이란 명칭으로 사적 제399호로 지정했습니다. 그동안 지방 문화재로 지정된 성지는 있었으나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절두산 순교성지가 처음입니다.
2000년 11월 말 절두산 순교 기념관과 꾸르실료 회관 사이에 이춘만 조각가의 웅장한 절두산 순교자 기념탑이 제작되어 설치되었습니다. 2001년에는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맞아 절두산 순교 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2004년 개축공사에 이어 2007년 첨단 시설을 갖춘 수장고를 설치하고, 2009년에는 전시장으로서의 역할보다 박물관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시설 보완을 거쳐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재개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