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가르다
- 작가: 노동식
- 기간: 2011_1111 ▶ 2011_1206
- 초대일시: 2011년 11월 11일 금요일7시
- 부대행사: 후원 / 롯데갤러리 일산점
- 시간: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00분
- 휴관일: 없음
11월14일 휴관
- 장소: 롯데갤러리 일산점(고양)
- 가격: 무료
'솜'으로 빚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그 알고리즘algorism-작가 노동식 작품에 대한 소론
● 1. 3D영상을 보는 냥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곡예비행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한 줌의 쌀이 수백 배 커져 나타나는 신비한 뻥 튀기 기계가 제 입 한 가득 하얀 세상을 뿜어내며 현실 저 너머에 있던 향수를 자극한다. 이젠 옛 도구로 치부되는 연탄난로가 활활 타오르던 찬란한 시절을 뒤로한 채 연기를 뱉어내고, 들판에 휘날리던 민들레 꽃씨가 공간에 들어와 바쁜 일상으로 인해 잠시 잊어버렸던 기억들을 회상토록 한다. 이밖에도 움찔하도록 하는 거대한 토네이도의 위용, 큐브에 들어선 웅장한 폭포, 신(新)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운해는 그것이 실제가 아님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흡사 보이고 들리며 그곳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관람자들을 유도하는 감성의 촉매가 된다. 이처럼 작가 노동식이 '솜'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그 순백의 세상 속에는 누군가에겐 아련한 추억과 기억을 상기시키는 흐름이 부유하고 당대 일어나는 수십 가지 현상과 사물에 관한 시류가 얽히고설켜있다. 번잡하고 빠르게만 흘러가는 초침을 벗 삼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감수성을 건드리는 내레이션이 물씬 배어있으며,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하고 경험해 보았으나 마음 한구석에 밀쳐놨음직한 미지의 여백들이 그가 창조하는 다양한 형상에 포박된 채 곳곳에 들어차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약15년 간 제작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세월의 지층을 뚫고 나와 무언가를 되새김질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여러 특징 중의 일부로 규정된다. 일단 '솜'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이용한 노동식의 작품들은 스토리적 측면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익숙한 사물들은 시각적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특히 언뜻 건실한 느낌을 주지만 만지면 이내 꺼져버릴 것 같은 솜의 특성은 막상 다가서면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 같은 미지의 끝자락을 목도케 함으로써, 그의 작품이 이중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임을 발견토록 한다. 이는 분명 인상적인 흔적들이다. 물론 고정적이지 않은 물성을 조각이라는 분야로 접목시켜 효과적으로 치환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고, 습기에 약한 솜으로 단단한 형상을 구축하는 그 재주 또한 흥미를 배가시키는 이유로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솜을 통해 무한한 세상을 창조해 가는 노동식의 창작의지와 밝고 건강한 미적 세계를 구축(構築)하려는 뚜렷한 목표의식, 그것을 향한 무식하리만치 집요한 노동력이야말로 유의함의 알고리즘(algorism)이자,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진정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하지만 반드시 짚어봐야 할 부분은 노동식 작업의 미적 가치를 형성하는 근간이 이미지로 대리되는 형식에 앞서 주제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상과 기억의 재생, 혹은 환기를 일컬음인데, 건조한 우리네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인 현실을 지향하는 작가의 바람이 이입된 메시지가 어떠한지를 증거(證據) 하는 메신저가 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솜틀집의 아들로 자라면서 보고 느꼈던, 솜을 하나의 놀이도구로 삼았던 회상, 가족과 얽힌 애정사를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그가 주재료로 삼는 솜을 이용해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는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노동식의 작품은 대략 두 가지 커다란 흐름 아래 전개된다. 첫 번째는 '동화 같은 세계로의 초대'인데, 깃털마냥 안락한 여운과 푸근한 감성을 전달하고 탈(脫)현실적인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동화적 유추는 그의 작품이 지닌 장점의 하나로 꼽힌다. 일례로 노동식의 작품 「불면증」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양을 세던 구전(口傳)을 모티프로 한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 웅얼거리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그렇게 하나 둘 머릿속에 그리면서 뒤척이던 양태를 작품으로 표현한 것 이 작품은 흡사 매직리얼리즘의 한 줄기를 따라 걷는 것처럼 각 마리마다 투영된 상상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기분이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염원을 느낄 수가 있다는 사실에서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더불어 판타지하게 표현된 양은 실재 대상보다 더 귀엽고 재미있어 웃음마저 심어준다. 「불면증」 외에도 작가의 동화적인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등장하는 요정이자 아랍권의 마신을 주인공으로 한 「램프의 요정 지니」, 일본 만화를 소재로 한 「아톰의 위기」, 그리고 판타지 영화 꼬마유령 캐스퍼의 주인공인 「캐스퍼」, 『삼국지연의』, 『수호지』, 『금병매』 등과 함께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명나라 때 소설 『서유기』의 말썽꾸러기를 힌트로 한 「손오공」과 같은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이들 전부 마술적인, 그러면서도 실제를 이탈한 공상 속 배우와 내용을 통해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사랑과 정의, 희망과 소원 같은 유심적인 것들을 공통적으로 지정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이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의 동화적 화법이 그러하듯) 상징과 은유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현실 안에서 교합하는 비밀스러운 본질과, 정해진 상황에서 맞교환되는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적 충돌, 그리고 사랑과 평화, 기억과 재생, 개별적이지만 공존의 방법 또한 함께 제안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나아가 구체적 현실과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 믿고 따르는 동화의 교훈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유쾌한 공감을 연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로써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한 형식을 취하는 여타 동화적이라 불리는 작품들과의 변별력으로 손색이 없다.
3. 초현실주의적인 관점 아래 작품을 즐기도록 권유하고 작품에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동화 같은 세계로의 초대'라면 '추억과 이상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작업의 연속성에 관한 필연적인 구동체이자 동시에 그의 작품을 포괄하는 또 하나의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기실 추억과 이상에 대한 주제는 노동식 개인의 서사를 바탕으로 할 뿐만 아니라 앞서 기술한 시연동화 형식을 넘어 자기 색깔이 보다 진하고 명료하게 녹아 있어 주목할 필요성을 획득한다. 동네 귀퉁이나 재래시장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뻥튀기 장면을 묘사한 「뻥이요」를 비롯해, 지금처럼 가가호호 수도시설이 채 구비되지 못했던 시절 물을 미리 조금 넣어야 비로소 시원한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었던 펌프 식 수도를 형상화한 「1980년 여름」, 우리나라 시골 어디에서나 흔하게 피고 자라던 민들레홀씨를 꺾어 불며, 그 날아가는 모습에 즐거워했던 옛 기억을 담은 「민들레 홀씨 되어」, 마치 다정한 연인이 금방이라도 앉았다갈 것처럼 낭만적인 벤치와 자전거, 서구식 가로등이 놓여 있는 「첫 눈 오는 날」과 같은 작품들이 그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들은 대개가 작가의 기억을 뿌리삼아 의지하며 자라는 나무의 잎사귀이며, 또한 그를 대신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여름만 되면 마을마다 등장해 아이들로부터 '방구차'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으나, 하얀 소독약 연기를 쫒아 희희낙락했던 그 아이들의 인기 역시 가장 많이 받았던 소독차와 관련한 추억을 옮긴 「소독차」, 한겨울 땔감 냄새로 인해 연실 마른기침을 하면서도 각자 가져온 도시락과 온몸에 온기를 전해주던 교실 연탄난로를 형상화한 「콜록콜록」, 사내아이라면 유년시절 손에서 떼지 못했던 비행기를 주요 소재로 한 「떴다떴다 비행기」, 「곡예비행」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가운데 「떴다떴다 비행기」, 「곡예비행」을 포함해 「에어쇼」나 「운해」, 그리고 근작인 「엔진」은 지난 시간에 관한 아련함을 지정하면서 이상적인 세계, 초현실적인 공간으로의 발돋움을 상징하고 있기에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 분류된다. 특히 작금 선보인 「엔진」은 그 폼과 동새로도 시선을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특정 부품만을 이용해 속도감과 진행성을 단순하게 기호화 하고 있어 '추억과 이상향'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아쉬움이 없다.
4. 노동식 작가의 2011년 근작들은 지난날의 설치작업에 비해 더욱 조밀하게 삼투하는 흔적을 보여준다. 공간의 높이와 넓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공간장악력에 대한 가중치가 높아졌다는 것도 변화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들레를 들고 있는 소녀와 민들레를 바람처럼 타고 날아가는 소년이 등장하는 설치 작품의 경우 작가 특유의 동화적인 맥락과 이상성이 상징이라는 틀 안에서 한층 강화되어 진일보한 면모를 엿보도록 한다. 민들레의 크기가 사람 크기 이상이고 그것이 하나의 기구처럼 설정되어 있다는 것은 다분히 비실제적(판타지적)이지만 그러한 상징의 강조가 되레 꿈의 조타로 기능함을 증폭시키는 이유가 되는 셈이다. 본래의 내용을 떠나 타자의 관점에서도 이 두 작품은 누구나 체감하는 성장과정에서의 일정한 시기성을 재구성하도록 하거나 표출토록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혹자에겐 그 자체로 꽤나 멋진 조각으로 다가오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 외에도 자신의 히스토리를 대입하는 장(場)이자, 각기 다른 이야기로 각색해 자신만의 세계로 무한하게 나아가도록 하는 동기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그만큼 이 두 아이들이 던지는 상상의 분동(分銅)은 자유롭고 역동적이며 친근함을 저울질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과는 달리 약100여개에 달하는 패러글라이더들이 낙하하는 작품은 모험과 도전정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비상하려는 모습을 나타낸다. 마치 작가의 현재 상황, 다시 말해 더 높은 곳에서 보다 자유롭게 작업하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확장하려는 욕망이 엿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세밀함과 규모의 웅장함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그의 대부분의 신작에서 명료하게 나타나며 공간을 상상과 지각, 관념으로 물들여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속으로 침투한다는 수순을 따른다. 따라서 관람자들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동일하거나 훨씬 넓고 다양한 세계와 마주하게 되고, 이는 그의 작품에서 배어나오는 일종의 아우라(aura)의 영향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결국 노동식의 작품들은 '솜'으로 빚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평화롭고 마법 같은 세계로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이미지자체에 몰입하게 하기 보단 은유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그의 작품이 지닌 백미이며,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대상일지라도 바라보는 관찰자가 가진 환상이나 상상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재구성되도록 만든다는 사실, 그리고 숨 가쁘게 흘러가는 세상을 고착된 형태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인식성을 넘어선 암시적인 것임을 되묻고 있다는 것에 핵심이 있다. ■ 홍경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