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慈澐 이천희
두근거림에 하늘도 놀랬고
설레임에 구름은 지붕위에서
둥실 둥실 두둥실
가슴에 설렁줄을 치듯이
노크하던 그날
가슴에 묻혀
깃동에 흘러내리는
얼룩을 그린 애절한 흔적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무심코 밟고 지나간
당신의 발자욱은
지울수 없는 낙관이 되고
낙수되어 가슴에
뜨겁게 흐르는구나
불멸의 사랑인가
불나비 사랑인가
당신은 소리조차 내지않고
작은 등뒤에 크나큰
비수를 치고
건널수 없는
오작교 다리위에
상처만이 덩그러니
남겨 놓구 영영 떠났다
바람 / 慈澐 이천희
보이지 않는 바람은
어디서 오는건지
솔 솔 부는 바람
회호리 바람
가슴을 여미는 바람
마음을 울리는 바람
그 바람은 예고 없이 불어온다
떠날때는 소리도 흔적도 없이
고요한 밤 빛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디에 / 慈澐 이천희
아침에 눈을 뜨면
창가에 비친 햇살 만큼이나
생각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이 닿아
향이 진한 커피 한잔에
아침을 함께 열고픈 사람
오늘은 그와 함께
진한 커피한잔 하고싶은데
빈 둥지 증후군 / 慈澐 이천희
어느 순간 넓디 넓은 둥지는
적막 강산으로 변해 어둠에 갖혔다
덩그러니 버려진 채 날개 짖 하며
가로막힌 울타리 담장 넘어로
날아보려고 실오라기 홑겹을
걸친채로 춤을 춘다
어디로 갔나
젖꼭지 붙잡고 품에 안겨 잠자던
핏줄들은 다른 줄기를 따라 멀리멀리
새 둥지를 틀고 떠났다
어둠에 갖혀 외로움에 빛을 찿아
나서지만 날아 간 곳은 그 자리
잠겨진 빗장 안에서 하루하루 핏줄은 말라가고 구름 위 꿈을 싣고 날던
이상은 어디로 갔나
수필
비보와 상흔의 눈물 / 慈澐 이천희
2019년 10월 30일 밤 7시30분 청평대교에서 대형교통사고를 당했다
2명의 동승자가 내차에 타고 있었고 신호대기중에 뒤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차에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차는 360도를 돌고 맞은편 대교난간으로 차가 충돌에 의해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하였다 순간 죽는구나 하는 생각뿐인 찰라에 옆에 신호대기 전봇대가 있어서 핸들을 전봇대쪽으로 틀어서 무조건 들여받았다
눈을 떠보니 죽지않고 살았다는 생각뿐 아무런 생각도 없고 어떤 인지능력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청평파출소에 신고를 한뒤 보험사에 연락을 했다
순식간에 교차로는 마비가 되고 경찰들과 보험사 렉카차와 119차량이 왔고 그녀와 동승자들은 119차에 실려 마석에 있는 원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앞뒤로 차량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주유통에서는 휘발유가 흐르고 차량문 3짝은 열리지가 않았다
유리는 모두 깨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속에 타있던 그들은 하늘이 도왔기에 외상이 없이 살아나서 나왔다
천만다행으로 뒤 트렁크에 쌀들이 잔뜩 실려 있었기에 무게가 있어서 차가 추락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날 사고의 트라우마로 지금도 밤잠을 못 이루고 밤의 고통속에 몸부림 친다
마석 원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동안 남편이 왔고 사고접수 처리를 마치고 포천 우리병원으로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도착하여 응급실로 입원을 했고 처음부터 다시 초진 검사와 X레이등 검사를 하고 입월실로 새벽3시에 들어왔다
아픈데 어디가 아픈건지 분간도 안되고.그져 살아있다는거에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사고나기 며칠전에 그녀는 이런 일들이 생길거라는 걸 미리 남편한테 그리고 주변 사람들한테 예언을 했다
사고 당일날도 마음이 편치않고 예감은 썩 좋지 않았지만 설마하고 길을 나섰던거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그 말을 그녀는 기막히게 실감하고 또 후회하고 있다
모든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사고 5일되던 11월3일 일요일 아침 그녀의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날 저녁에 그녀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오라비가 찾아왔다
그녀는 사고났다는 소리도 나흘이되서야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오빠가 문병을 온거다
그녀는 오빠에게 또 잔소리 하듯이 당부를 했다
오빠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집에 있지?엄마 좀 잘 보살펴 들여
어제 주간보호센터에서 무의식중에 대소변을 자주 보셨데~
그러니 내일은 좀 더 신경써야해 알았지?
몸조리 잘 하라며 말없이 오빠는 병실을 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오빠의 전화는 왠지 불길했다
전화를 받는 순간 (엄마 돌아가셨어)
엉엉 울면서 전하는 소리에 그녀는 병상침대에서 벌떡일어나 맨발로 링거대를 끌고 간호사실로가서 주사바늘을 빼고 함께 사고로 입원한 여인과 택시를 타고 포천의료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119에 신고를 해서 응급처치로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후송조치 했으나 아무런 의미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며 아픈몸을 이끌고 응급실로 왔으나 출입을 금지했다
이미 사망하셨고 절차가 필요하니 잠시밖에 있으라는 간호사들의 말에 그녀는 오열을 토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왜 울 엄마가 돌아가셔
나도 안보고
왜?
엄마 나왔어 .엄마 딸 왔어
목청 높혀 통곡하며 불러도 문은 열리지 않고 수숩할 시간을 기다리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자동문이 열리고 눈 앞에 보이는건 침대위에 하얀 천으로 덮어 놓은 것 뿐이다
왈칵 뛰어들어가 씌워놓은 천을 걷어내니 엄니는 누워서 주무시고 계셨다 .주무시고 계시는데 운명하셨다고 하는게 믿기지 않는다
엄마의 얼굴을 비벼대고 온몸을 만져봐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으시고 영원히 깊은 잠에 빠지셨다
순식간에 모두 달려온 손자손녀.손주사위들.증손주들을 모두 만나고 어머니는 먼곳으로 가실준비에 들어갔다
일요일이라 어머니는 집에서 쉬는 날이다 아침9시30분경 엄마는 혼자서 화장실을 들어가셨다
옆에있던 오빠는 티비를 켜놓으채 깜빡 잠이들었다 깨어보니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아서 문을 열어보니 변기에서 털어져 숨을 거두셨다
119가 달려오고 심폐소생술을 하였으나 이미 어머니 사망시간은 오전10시20분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모든 수습이 끝나고 어머니는 선단리 포천장례문화원으로 안치되셨고 장례절차가 시작되고 아이들의 눈물은 차마 뭐라 말할 수 없는 애통함이다
27년전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무녀가 되었고 줄줄이 어린 아이들 다섯은 할머니 손끝에서 길러졌기에 아이들은 유난히도 할머니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아이들은 성인이되어 모두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며 할머니께 온갖 효를 다해왔다
어쩜 엄마의 딸인 나보다 손녀들이 할머니께 더 애착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왔는지도 모른다 미쳐 내가 챙겨드리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은 꼼꼼히 간식거리며 계절이 바뀔때마다 옷가지며 비상약 등을 챙기였기에 내가 조금은 부담이라기 보다는 수월했다
부고장을 만들어 마을주민들께 보낼준비와 sns로 어머니의 비보를 알리고 장례 절차는 시작이 되었다
산림상조 회사에서 지도사들이 오고 죄인의 옷을 갈아 입고 조문객 맞이 할 빈소에 제단이 설치되었다 어머니의 곱디고운 모습의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검은 리본을 두르고 꽃속에 사뿐히 올라 앉으셨다
지나간 여름에 한차례 위급한 상황이 오셨을때 집에서 뛰뜰에 알록달록 핀 나리꽃과 달맞이 꽃을 꺽어 손에 쥐어드리고 제일 좋아하시던 밀집모자를 씌워드린 뒤 사진을 찍어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어머니의 생생 리얼한 모습의 사진이 국화꽃 위에 올라 앉으신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이뿌기만 하셨다. 가장 최근의 모습이라서 아주 자연스럽고 실물 같으신데다가 활짝웃고 계신 어머니는 조문객들을 환하게 맞아주셨다
아무런 고통없이 이젠 편히 쉬고 싶으셨기에 아들딸의 손을 놓고 혼자 홀연히 눈을 감고 잠이 드신 내 어머니의 삼일은 많은 조문객들에 인사를 받으시고
살아생전에 유언하신데로 가족들은 상주로써 검은색이 아닌 흰색 치마저고리에 머리위에 흰 나비핀을 꽃고 또한 아들사위는 굴건제복을 입고 조문을 받았다
삼일째 되는 날 아침 9시30분 어머니께 발인제를 올렸고 지하 빈소는 울음바다에 어머니는 이 울음소리를 들으셨을께다
탈관이 시작되고 그녀의 아들은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모시고 엄숙한 자세로 앞에 섰다 1층 운구차량이 준비된 곳으로 어머니는 넓은 세상으로 떠나기 위해 캐디락 운구 차에 오르셨고 아이들은 눈물바다가 되고
마지막 길에 배웅을 나와주신 동생지섭이와 그의 아들 정웅이에게 더없는 감사를 드리며 운구차와 가족을 실은 버스는 어머니가 평생을 사시던 집을 향했고 마을 노인정에서는 어머니의 노제를 지내기 위해 준비되었고 마을 주민들 전체가 모여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계셨다
살아생전에 매일 노인정에서 제일 좋아했던 십원짜리 고스톱 치기가 어머니의 최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 만큼은 온갖 시름 다 잊고 즐기셨던 수많은 날들이 이제 끝을 맺였다 마을에서 최고의 고령자며 먹을거라도 뭐만 생기면 가져다 나눠 먹는게 제일의 낡이셨던 어머니는 마을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인심이 후하고 나눔에 달인이셨다
당신도 넉넉치 못하게 살면서도 지니지를 못하고 풀어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는 마을에 대모셨다
노인회장의 주관으로 노제가 마무리되고 영정사진을 들고 마을회관방을 둘러나서 한걸음 한걸음 그녀가 사는 집 즉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애지중지 하던 딸 집을 향해 다가갔고 어머니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한바퀴 둘러나와서 다시 어머니가 살던 집을 향해 행렬은 이어졌다
어머니의 집을 둘러보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영이별의 시간은 눈물바다다
홀로 남은 아픈 손가락의 아들을 두고 떠나는 어머니의 마음은 혼이라도 넋이라도 아프고 쓰리셨을거다
못난 아들이기에 더 애뜻했던 어머니는 그 아들을 위해 일평생을 설거지 통에서 물마를새가 없었고 늘 챙겨먹이려고 애쓰시던 어머니였기에 정떼고 떠나기가 쉽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눈을 감지 못했을거다
이제 영이별의 시간은 왔고 집을 떠나 가족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승화원을 향해 시속60키로로 달려 화장터에 도착했다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은 우리뿐이 아니다
빽빽히 주차된 차들은 수십대가 되고 오색 찬란한 가을 단풍이 반겨주는 산속에는 눈물자욱으로 얼룩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