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식물의 관계? ‘식물 분포도’ 보면 알 수 있다
영국왕립식물원 공동연구팀,
전 세계 식물분포도 및 활용식물종 분포도 발표.
생물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관계 입증돼
정월 대보름이 다가온다. 음력으로 1월 15일,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새해에 들어 처음으로 완전히 둥근 달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득 찬 보름달이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날에는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다양한 풍속을 즐겼다. 특히 정월 대보름에는 명절식으로 오곡밥과 나물 반찬, 귀밝이술과 부럼을 깨서 먹는다.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이 풍습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제21대 비처왕(毗處王)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역모를 알려준 까마귀를 기리고 매년 정월 15일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해 모든 일에 조심하기 위한 제를 지낸 데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설화적 측면에서 명절식의 유래는 이렇지만, 문화기원적 측면에서 이 음식들은 우리나라의 사계절에 따른 생물분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식물종의 분포와 기후환경의 상관관계는 식물지리학에서는 이미 오래된 생태학적 주제인데, 이로 인해 특정 식물종이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즉, 식물종의 지리적 분포는 인간의 생활상과 더 나아가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인 셈이다.
식물종의 지리적 분포는 인간의 생활상과 더 나아가 문화를 알 수 있다. (김홍도 ‘타작’) Ⓒwikipedia
식물을 보면 인간의 삶이 보인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지 표지에 중국 후베이성의 찻잎 농장 사진이 실렸다. 이 지역은 연평균 기온 15~17℃, 연평균 강우량은 800~1700㎖로 예로부터 토지가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알려진다. 산지가 지역 면적의 56%나 차지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고원 지대에서 자라는 양질의 찻잎을 수확하여 생계를 꾸려 나간다.
물론 이 지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은 오랜 차 문화역사를 가진 나라다. 차 생산은 지리와 자연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북위 18~37도, 동경 94~122도 사이에 위치해 있는 저장성, 장쑤성, 장시성, 후난성, 후베이성, 허난성, 쓰촨성, 광둥성, 광시성 등에서 주로 차 생산이 발달했다. 대부분 처음에는 찻잎을 주로 약용, 식용으로 사용했었으나, 당나라 문인 육우(陸羽)의 다경(茶經) 3권 이후 음다문화(飮茶文化)로 발전하게 되면서 중국인들의 일상생활 어디나 차와 함께 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특히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중국 차 제조 기술 및 관습은 유네스코가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인정하여, 2022년 11월 29일에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됐다. 식물과 인간의 삶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살아가는 모습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중국 후베이성의 찻잎 농장(사이언스지 표지). ⒸScience
인간이 주로 사용하는 식물의 사용 패턴 10가지?
‘인간에 대한 자연의 기여(Nature’s contributions to people, 이하 NCP)’는 자연이 인간의 삶에 미친 긍정적·부정적 영향 일체를 뜻한다. 이 말은 생태계 서비스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인간과 자연을 잇는 모든 연결고리를 규정함에 있어 토착지식 및 현지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자연에 의존하는 인구가 혜택을 받는 지역을 매핑하면 NCP 지수 평가 및 추이 분석에 용이하다. 이러한 필요와 더불어 식물다양성 연구 및 정책 입안 자료로서 활용이 기대되는 연구 결과가 지난달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됐다.
영국왕립식물원 연구원이 주도하는 국제공동연구팀은 식물종의 전 세계 분포를 조사하고, 이들 식물을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10가지 범주로 분류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10개 범주는 (인간)식품 재료, (척추)동물 사료, (무척추)동물 먹이, 재료(목재, 섬유), 연료(숯), 사회적 용도(종교 및 의식), 독극물, 의약품, 환경용도, 유전자원 등이다.
연구팀은 전 세계 식물 연구기관에서 운영하는 12개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를 추출하여 35,687개 종의 활용을 식별하고, 1,100만 개 이상의 식물 서식지를 매핑했다. 이렇게 구축한 ‘식물 분포도’를 통해 전 세계의 활용 식물 및 잠재적 활용 식물, 식물 다양성 분포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활용 식물종의 풍부도 및 분포도. 발견된 식물종의 분포 지역을 중복 체크(합)한 결과로
색이 짙을수록 종 분포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Science
결과에 따르면 활용 식물종이 가장 많이 분포된 지역은 열대지역으로 나타났다. 또 중국과 히말라야, 서유럽과 미국 동부 등 일부 온대지역에서도 식물종의 분포 농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WCVP(World Checklist of Vascular Plants)의 데이터를 통해 추정한 결과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다만, 연구진은 식물의 종 다양성 패턴이 희귀종 및 멸종 위기와 같은 위협 요소들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이들의 분포를 별도로 가중치를 두어 추정한 결과 활용된 식물종이 풍부하게 분포된 지역과 고유종 분포 지역은 대체로 유사했다. 메소아메리카, 기니만, 남부아프리카, 히말라야산맥, 동남아시아 등이 이 사례에 속했다. 반면 온대지역에서는 고유종의 활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일부 온대지역에서 관찰되는 종 다양성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식물종 분포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구진은 정량적 증거는 부족하지만 식물 다양성이 높은 지역에는 인간에게 유익한 종이 더 많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식물종 분포도와 활용식물 분포도가 정비례 관계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특별하게 사용하는 식물일수록 지역의 식물종 풍부도가 높다는 것인데, 이는 고유한 식물종의 사용이 지역의 고유한 문화 형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생물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관계를 입증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추후 이를 바탕으로 생물 다양성과 문화 다양성을 공간적으로 설명하는 ‘생물문화 다양성’ 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 식물의 사용용도 10개 범주에 따른 식물 종 분포도. 왼쪽의 곡선은 모든 식물종 다양성의 위도 분포를 의미하며,
윗부분의 개별 곡선은 각각 사용 분류에 따른 종 풍부도의 위도 분포를 의미한다. 색깔은 전체 활용 식물종
패턴에 대해 특정 용도의 활용 식물종 풍부도이며 녹색은 높은 풍부도, 보라색은 낮은 비율을 뜻한다.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