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제1독서 2마카 7,1-2.9-14
제2독서 2테살 2,16-3,5
복 음 루카 20,27-38
†찬미 예수님!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논의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하는 날이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쇄신을 위한 공의회로 그간 성직자들만으로 이어져 오던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탈피하고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한 공의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내는 평신도 주일은 평신도의 사도직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오늘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는 이유는 교회 안에서 평신도가 가진 사명을 이해하고
그것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둡니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 안에서 평신도 사도직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천주교의 시작은 평신도로부터 시작된 유일한 케이스이기 때문이지요.
서학을 공부한 양반들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한 천주교 신앙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와 신자들의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완전한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에 천주교 신앙이 참으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사 안에서 수많은 이들이 주님을 증거하며 그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평신도 순교자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요. 박해시대에 하느님을 믿은 이들은 주님의 나라에서 얻을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희망을 두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신앙을 증거하며 목숨을 바쳤지요.
평신도의 역할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면서 동시에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이가 바로 평신도이지요.
평신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한 여정을 늘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나 자신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이웃들, 세상 사람들의 구원,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십니다.
사두가이는 주님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일곱 형제들의 비유를 들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오히려 잘 모르는 것임을 들어 말씀하시며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시잡가는 일도 장가드는 일도 없고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을 것임을 가르쳐주시지요.
또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모세 앞에 나타나셨을 때
하느님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드러내셨음을 말씀하시며
산 이들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직접 부활에 대한 것을 확정해주셨음을 가르쳐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부활을 향해 살아갑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이로 인해 주어진 구원을 받을 희망을 얻으며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분을 이 세상에 드러냅니다. 그것이 바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삶이지요.
그분을 믿는 평신도, 신자로서 어느 때보다도 믿음이 부족한 이 세상을 향해 하느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시며
세상을 향해 우리가 선포할 복음을 깊이 새기고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은총과 지혜,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함께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