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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잘 믿고 하나님께 충성 봉사했는데 버림받는 교회와 성도가 있다!! 하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에 메시지를 전하고 난 후에 마태복음 24장 말씀에 전하지 못한 세 곳 정도를 보다가 마지막 때 성도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을 좀 더 전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2절에서 33절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방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실 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하십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지만 마태복음 24장은 36절까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고 이방인에 대한 예언이 아닌데, 지금까지 교회가 대체 신학에 함몰되어서 교회와 적용을 시키다 보니 왜곡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대체 신학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한다고 하는데 이 대체 신학이 뒤엎어지는 중대한 사건이 바로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왜 무화과나무라고 하냐면 국가는 성립이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절대 금방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갑자기 하나님이 애굽 땅에서 데리고 나오셔서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바로 국가가 시작됩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 국가는 시작되었고 땅이 없었을뿐입니다. 하루 아침에 모세가 백성들을 모으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면서 국가가 성립이 됩니다. 꽃이 피어나지 않고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로 비유를 들어서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탄생에 비유하여 앞으로 장차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 똑같이 있을 사건이 바로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갑자기 이스라엘 국가가 건립될 것이며 그때부터 마지막 때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대체 신학은 그때 이미 끝난 것인데 아직도 80년 전의 이론들을 교회가 버리지 못합니다. 세상은 자꾸 발전하고 변화되고 있는데 교회는 과거에 세웠던 정립했던 교리나 생각들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건립되었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이방교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라고 하면 어떤 분은 이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단이다, 아니다 논쟁의 문제가 아니고 지식의 문제입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바로 이스라엘 국가로부터 전 세계는 깨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이것은 아직 열매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열매가 맺힌다는 것은 주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 국가가 건립되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지, 이스라엘이 전부 예수님께 돌아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말라 죽은 사건이 2~3일 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장차 이스라엘 국가를 어떻게 할 것이며, 전 세계가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를 미리 알려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들이 예수님이 왜 멀쩡한 무화과 나무를 죽이셨는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맺히지 않을 때라고 (막11:13) 적혀 있는데 이스라엘 국가의 상황을 모르다 보니 오해한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가서 예수님이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신 것이고, 때가 아닌 봄철에 사과나무에 가서 사과를 구한 것과 같이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잘 모르고 생각하는 상상입니다. 잘 모르고 하는 대체 신학과 같습니다. 상황을 모르다 보니까 ‘러셀’이라는 사람은 ‘내가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하는 사설에서 예수님을 비난하고 모욕까지 하는데 이것은 지식 결여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찾아갔을 때는 조그마한 설익은 열매들이 맺힐 때입니다.
설익은 무화과나무 열매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돈 없는 이방인들, 배고픈 사람들이 먹습니다. 진짜 맛있는 무화과 나무 열매는 나중에 열립니다. 성경에 적어놓은 것은 아직은 좋은 열매를 맺는 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 자라는 무화가나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글자만 가지고 이해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무화과나무에 가서 구한 것이 설익은 무화과나무의 열매입니다. 처음 익은 무화과나무 열매는 상품성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상품성은 없지만 설익은 무화과나무 열매를 드시러 가셨는데 그 무화과나무에는 전혀 열려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마 21:19) 예수님이 진짜 배가 고프셔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설익지만 열매가 맺혀야 되는 이스라엘 국가가 전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더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입니다. 그 직전의 상황에서 예수님은 이 무화과 나무가 말라 죽은 것 같이 이스라엘 국가가 멸망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멸망 당했던 이스라엘 국가가 건립될 것이고 그날부터 세상은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고 예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건립된지 이미 75년이 지났습니다.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말씀에 우리 나라는 여름에 잎이 무성하고 제일 과일이 많이 날 때지만 이스라엘은 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은 여름철이 되면 햇빛이 너무 강해서 모든 것이 말라 죽고, 곡식이 가장 잘 자라고 비가 가장 많이 오는 계절은 우리와 반대로 성경 말씀에 나오는 복된 장맛비가 내리는 겨울입니다. 이스라엘을 모르니까 여름이 가까워 온다는 말을 이해를 못했는데 계절의 끝이 가까이 온다는 뜻으로 우리나라로 보면 겨울이고 곧 세상의 종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을에 모든 것이 시작해서 유대력 7월 1일부터 새해가 시작된다고 이해를 하시면 되고 우리와 반대입니다.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끝이 가까이 온 것을 아나니. 라는 뜻이고 .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나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모든 교회가 아직도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처음 종교개혁을 하고 또 개혁을 하면서 1800년대까지 계속 개혁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국가가 건립된 이후로부터 개혁이 끝나고 새로운 신학이 나와서 성경을 모독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점점 세상과 결합되고 타락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예수님은 이미 보고 계신 것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부터 39절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시작될때 노아의 때와 마지막 때는 같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홍수 전에 곧 환란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세상에 빠져서 마음을 뺏기고, 세상의 소망과 즐거움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즐길까, 어떻게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까를 생각하다가 예수를 잊어버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안 그렇습니까?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는 지상 재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임하실 때까지 세상은 평화기이고, 환란 전에 예수님이 임하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0절부터 44절
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노아의 홍수 때는 비유이고 밑에 말씀은 현재 우리의 상황입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예수님은 밭을 교회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는데 두 교회 중에서 한 교회는 데려감을 당하고, 한 교회는 버려둠을 당할 버려지는 교회가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이고 밑에 더 구체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는 그 당시에 밀을 갈아서 밀가루로 만들어서 반죽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각 집마다 맷돌이 있어서 담보물을 가져갈 때 맷돌 윗짝을 가져가고 저녁까지 돌려주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필수적으로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절대 담보물로 가져가지 말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맷돌은 각 가정에 먹고 살기 위해서 있어야 될 필수 물품입니다. 여자가 맷돌을 간다고 한 것은 남편 되신 예수님의 아내인 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양식을 먹이고 있는 교회입니다.
밭이 교회에 있는 성도를 이야기했다면 아래쪽은 교회의 목사를 이야기합니다. 성도들에게 맷돌을 갈아서 양식을 먹이는 주님을 기다리고 깨어 있는 교회 중에서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는 교회 중에서 두 개로 나누어집니다. 교회의 숫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인데 교회 중에서도 데려감을 당하는 교회가 있을 것이고 버려둠을 당하는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곧 오신다고 기다리는 교회에서 예수를 먹이고 있는데, 어떤 교회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고 어떤 교회는 데려갈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 교회 중에서도 왜 어떤 교회는 버려질까요?
마태복음 24장 45절부터 51절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두 여자가 매를 갈 때 한 종은 맷돌을 갈아서 양식을 잘 먹이고, 한 종은 잘못된 양식을 먹인 것입니다. 양식을 잘 먹여서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데려감을 당하는 것은 공중 강림입니다. 평화기때 환란 전에 휴거가 있을거라고 말씀하시고, 어떤 자들이 휴거될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양식을 먹어야 되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 맷돌을 갈아서 양식을 만드는 것은 때에 맞춰서 양식을 잘 먹여야 되는 것이고 마지막 때 주의 종은 때를 알아야 됩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에는 일반 메시지를 전해도 예수님이 탓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생기면 주님 오실 때가 됐으니까 충성된 종이 때에 따라 양식을 먹여야 그 집 사람들이 예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셔도 양식을 잘 먹고 예비하고 있어야 휴거 될수 있습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주는 종은 축복하는데 때를 모르는 종들에게는 예수님이 분노하십니다. 모른것도 죄가 있어서 종이 어려운 것입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이 이르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악한 종은 예수님이 나중에 오신다고 생각하는 종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선한 종 같아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악한 종은 때를 분별치 못하고 예비치 못하게 했으므로 악한 종입니다. 가령 교통사고가 났는데 운전할 때 잘못보고 주변을 못살핀 것도 죄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고 때를 살피지 못한 자에 대해서 예수님은 악한 종이라 합니다. 말씀을 잘 분별치 못하고 예수님 오실 때가 멀었다고 하면 악한 종이라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얼마나 연구 안했으면 눈이 어두워져 예수님가 오실 때 다 되었다고 하면 이단이라 합니다. 목사님들이 다 깨어나셔야 되고 안그러면 두드려 맞습니다.
예수님이 천천히 오실 거라고 생각하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동무들을 때리고 겁 주는 자입니다. 목사님들 중에서 죄를 지으면 지옥가고 예수님한테 조금만 잘못하고 목사한테 조금만 잘못하면 지옥가고 저주받는다고 성도에게 겁을 줍니다. 저도 그런 교회를 2개월정도 다니다가 목사에게 얼마나 주목을 시키던지 교회를 나왔는데 떠나면 벌받는다고 사모님과 전도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벌 받겠습니다.하고 조용히 나왔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성도에게 겁주고 속박시키는 것은 동무들을 때리는 것입니다. 성도는 목사에게 예속되지 않는 동무이고 친구입니다. 목사는 성도를 섬겨야 되는데 주의 종이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말씀에 어긋나고 삯꾼 목자이므로 도망가셔야 합니다.
두 번째 종류는 술친구들도 더불어 먹고 마십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아서 하는 일이 잘 되고, 하나님이 삶을 인도하여 주시고, 모든 질병도 낫고, 심은 대로 받으리라고 헛소리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술취하게 하고 세상에 소망을 갖게 하고, 삶의 문제에 소망을 갖게 하여 세상에 취해 살게 하고,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가짜 음식을 먹이는 것입니다. 예비하지 않아서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우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지옥간다는 것이 아니라 환란에 들어가고 목사가 정신을 못 차리면 따라가던 성도들도 다같이 환란에 들어갈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방주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으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버려짐을 당한 성도와,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가 버려짐을 당한 목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도에 대해서 예수님이 더 깊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휴거된다는 말은 달콤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말이고 잘 예비해야 예수님을 만납니다.
마태복음 25장 5절부터 13절
5 신랑이 더디오므로 다 졸며 잘쌔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신랑은 성도들이 자야 오시는데 어떤 분에게 2024년에 오실 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서 제가 속으로 올해도 힘든가 생각을 합니다. 많이 더디지는 않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다 잠들었을 때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사건이 생깁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달이 핏빛같이 되며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는 사건이 생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각 대 변동으로 모두 깨어나는 사건이 있을 때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보라 신랑이로다.하는 말씀이고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때 미련한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이 없습니다. 등을 준비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이고, 두 여인이 매를 가는 교회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성도들은 준비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예비를 못하고 그릇의 기름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이 그릇의 기름이 무엇일까요? 구약에서 성전에는 항상 거룩한 기름을 예비하고 성전의 불을 밝힙니다. 불의 기름인 거룩한 올리브유로 성전에 절대로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 하십니다.
불을 밝히려고 기름이 필요하고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있어야 되는 이유는 빛이신 예수를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릇에 기름을 예비하라는 것은 빛이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령의 기름으로 예비하라는 말씀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라는 뜻입니다. 빛이신 예수를 맞이할 수 있으려면 거룩한 기름이 예비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기름을 예비한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25장에 말씀하셨던 똑같은 이야기가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옵니다. 기름을 예비해야 되는 것은 빛이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의 성전에 불이 밝혀지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의 성전에 불이 밝혀지는 것은 예수님과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이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절부터 7절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는 충성하고 봉사하고 깨어 있는 교회 같아 보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거의 완벽한데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그 악한 종이 놀랍게도 에베소 교회입니다.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예수님은 왜 에베소 교회를 악한 종이라고 얘기했을까요? 에베소 교회에 촛대를 옮길 거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 처음 목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수많은 에베소 교회가 못 믿는 교회가 아니라 너무나 신실한 교회들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들에게 책망하시고 악한 종이고 환란이 남겨질 거라고 말씀하실까요? 놀랍게도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시고 첫 사랑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때 깨어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첫 사랑을 회복해야 될 때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 오실 때까지 첫 사랑을 회복하자고 외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칭찬하신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이 무엇인가는 좀 이따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꾸중하셨던 잃어버린 처음 사랑이 무엇인가를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의 기름이 예비되지 못한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았고, 예수님을 기다려도 그릇의 기름이 예비되지 못한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3절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날 밤 저녁에 제자들과 성만찬을 나눕니다.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모든 물과 피를 다 흘려서 새 언약을 맺는 현장에서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처소를 다 예비하면 너희를 데리러 올 것이다.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새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혼인 언약입니다. 혼인 약속은 결혼하자고 하신 것이고 약혼하는 날이며, 다른 데 눈길을 주지 말라는 약혼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의 법은 약혼하면 결혼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결혼한 것이니 처소가 예비되면 신방이 준비되고 집이 다 준비되면 데리러 올 것이니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부터 21절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은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오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나를 못 보되 너희는 나를 보리라 말씀하시고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리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휴거의 사건은 죽었던 육체와 영혼을 살리시는 사건이고, 예수님을 만나는 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과 결혼하는 혼인 날입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날을 결혼에 비유한 것은 너희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첫 사랑 이야기에서 예수를 잘 믿는데 왜 교회의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하십니까? 첫 사랑을 버려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 나와 너는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맺는 관계는 고백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데 있지 않습니다. 혼인 언약을 굳게 믿고 지키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고 나를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라야 예수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지키고 예수를 사랑하는 데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죄에 포인트를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베드로는 물은 세례니 깨끗하게 씻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를 사랑하며 서로 사랑하며 기다리라. 이것이 첫 사랑의 언약인데 안타까운것은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잊어버리고 있습니까? 이미 이스라엘은 독립했습니다. 과거에는 묻지 않았지만 이제는 물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부터 28절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여기서 왜 성령을 보내셨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첫째로 우리를 가르쳐 예수를 믿게 하는 분이시고 둘째는 예수를 알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내가 너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곧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분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늘 기억하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는 기름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예수를 기억하며, 주님을 사모하며, 빛과 소금되는 삶을 살며,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자가 나의 신부.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름을 예비해서 우리 마음에 등을 밝히고 빛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라고 성령님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부터 14절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새 계명의 내용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자기의 생명을 다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늘 기억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첫 사랑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늘 기억하며 언약을 기억하고 예수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에게 요한복음 14장에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이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자기의 생명을 대신 주셨으므로 평안속에 거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삶 속에 많은 일들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 있으면 평안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여러분께 평안을 주시려고 합니다. 15장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성도는 두려움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진짜 오셨다면 그릇에 기름을 예비한 성도라면 평안과 기쁨으로 기다립니다.
평안과 기쁨안에 거하며, 십자가의 사랑을 늘 기억하며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기다리고 삶에 평안과 기쁨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삶에 주님이 평안과 기쁨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은 약속입니다. 거짓 약속이 아니고 주님이 하신 진짜 축복입니다. 그 축복의 언약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임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올 한 해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 들어오고 십자가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사랑하는 예수님을 기다립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평안과 기쁨과 축복이 함께할 줄 믿습니다. 주님의 돌보심이 함께할 줄 믿습니다. 다시 계시록 2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 교회도 휴거되지 못하는 분들이 나올까요? 이것은 니골라 당과 연결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2절부터 16절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버가모 교회는 두 가지 책망할 것이 있는데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발람은 악한 종이고, 발락은 세상 권세자 곧 사탄입니다. 사탄의 꾀임에 빠져서 주의 종이 세상의 것을 가르치는 것을 발람의 교훈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교회에 들여서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으로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병 고침 받는다. 하는 일이 복되고 모든 걸 주님이 지켜주신다’. 이것이 우상의 제물입니다. 물질과 세상에 마음을 뺏기게 하고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이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먹이는 곳인데 성령을 통하여 복 받고 신비로운 체험을 받으려고 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를 전하는 영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가 믿어지고 예수를 사모하게 되고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행음하여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재물과 물질에 마음 뺏기게 하는 것이고 하나는 쾌락에 마음 뺏기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로 분리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타락하여 발람의 교훈을 받은 것을 니골라 당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니골라 당을 말씀한 것을 예수님은 성경으로 밝혀 발람의 교훈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서적에 보면 니골라 당의 사상은 구약의 율법적 제도와 교리들은 신약 교회 안에서는 필요치 않으므로 율법의 행위에 제약받지 않고 사랑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습니다.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니골라 당의 교훈입니다. 두 번째는 율법의 때는 지났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고 ‘육’은 악이고 ‘영’만 선하므로 육신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지옥 가지 않는다는 것이 니골라 당의 교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해됨을 받지 않는다.고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구원론을 이야기합니다. 니골라 당의 행위를 말씀하신 것은 구원론이 왜곡된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구원론이 왜곡된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왜곡된 구원론을 가르치는 교회에 대해서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24장에는 악한 종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교회는 반드시 환란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니골라 당은 그 당시에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니골라 당에 대해 더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니골라 당은 발람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고 세상과 짝하여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으로 삽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함으로 돈 버는데, 명예를 차지하고 노후 대비하는 것에 정신을 다 뺏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물과 돈이 생기고 나면 두 번째로 자기가 기쁨의 중심이 되려고 합니다. 둘 다 자기에게 주목하게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자기 인생을 사랑하고 자기를 위해서 살려 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마지막 때를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케 하는 것, 쾌락을 사랑케 하는 것이 니골라 당의 교훈이고 멸망 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부터 23절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두아디라 교회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분류됩니다. 두 여인이 매를 가는 것은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로 분류되고, 두아디라 교회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말씀들이 서로 연결되고 보완해 줍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하는데, 여자 이세벨은 니골라 당이 하는 주장과 똑같습니다. 니골라 당이 발람의 교훈을 받아들여서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했습니다.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 주를 기다리는 신부 교회에도 예수님이 곧 오신다고 말은 하지만 성도를 때려서 목사에게 주목하게 합니다. 예수님께 주목하게 하지 않고 목사에게 주목하게 하고 동무를 때리고 성도들이 세상에 주목하게 합니다. 예비하려면 복을 받아야 되고, 복 받은 재물로 예수님을 섬겨라, 돈 바치면 예수님이 산업에 복을 주시고 예비도 하게 하실 거다. 천국에 재물을 쌓자.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느니라.하고 성도들의 마음이 재물과 세상 축복에 뺏기게 하는 것도 미혹입니다.
예수님께 주목해야 하는데 행음한다는 것은 천국도 복 받는 것으로 성도를 욕심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가 더 타락된 교회도 많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린다고 흰옷 입고, 재물 다 바치고, 죄 씻는다고 매일 밤에 모여서 회개한다 하고 매일 주님을 위하여 헌물을 바친다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이런 자가 이세벨이고 예수님이 안계십니다. 마지막 때 재림 교회가 오히려 욕을 듣고 있는 것은 여자 이세벨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첫 사랑을 잊지 말라. 그릇의 기름을 예비하라.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언약을 기억하며 날마다 나를 사랑하며 서로 사랑하며 나를 기다리라. 매일매일 등에 불을 켜고 빛과 소금 된 삶을 살아라. 그리고 나를 기다리라. 내가 곧 오리라. 내가 너희를 평안 속에 거하게 하며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리라. 하신 언약의 말씀을 굳게 붙잡읍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납시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을 통하여 주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그릇의 기름을 예비하기를 원하시는지 우리가 깨달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기다리며 섬기는 자로 살겠습니다.
늘 성령님을 통하여 사랑하는 예수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주님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 잘 예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만이 우리를 예비할 수 있게 준비할 수 있게 인도할 줄 믿습니다.
날마다 기도하며 날마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